영화 <레드카펫>에서 톱 여배우 은수 역의 배우 고준희가 21일 오후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오마이스타와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영화 <레드카펫>에서 톱 여배우 은수 역의 배우 고준희가 21일 오후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오마이스타와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정민


|오마이스타 ■취재/이선필 기자·사진/이정민 기자| SBS 드라마 <야왕>에서 정의감에 불탔던 기자 석수정을 맡았던 이후 고준희는 밝은 영화로 관객과 만나고픈 소망이 있었다. 다행히 지난해 <결혼전야>와 올해 상영 중인 <레드카펫>으로 연이어 쾌활한 캐릭터를 소화했다. 이런 걸 두고 때가 맞았다고 할 수 있겠다.

<레드카펫>에서 고준희는 유명 아역 배우 출신이지만 인기가 시들해지며 대중에게 잊힌 은수 역을 맡았다. 아무도 찾지 않던 때에 우연히 상업영화 데뷔를 꿈꾸는 에로감독 정우(윤계상 분)을 만나며 도약의 길을 맞는다. 이 과정에서 엇갈리는 서로에 대한 감정이 영화에서 때로는 코믹하게, 때로는 짠하게 풀려간다.

"뻔한 로맨틱 코미디가 아니잖아요. 영화 한 편 제대로 만들겠다며 꿈을 좇는 사람들이 나오고 무엇보다 오정세 오빠, 조달환 오빠가 캐스팅 됐다고 해서 신뢰감도 있었어요. 또 박범수 감독님이 신인 감독이라지만 자신의 이야기를 진솔하게 녹였다는 부분도 좋았어요."

에로감독 출신? "그래서 더 순수한 사랑 그릴 수 있었다"


전체적으로 밝지만 <레드카펫>은 꿈을 이루려는 사람들이 겪는 좌절과 어려움을 에둘러 표현하지 않았다. 고준희가 맡은 은수 역시 초반엔 철판을 깔고 정우에게 빌붙고, 타인에게 대놓고 도움을 요청하지만 배우가 돼 가면서 진짜 사랑과 우정에 대해 고민하는 모습을 보인다.

"영화를 통해 눈물을 흘리게 하거나 감동을 줘야겠다는 생각은 안했어요. 캐릭터가 너무 진지하게 보여서도 안됐죠. 느끼해지잖아요. 여배우로서의 화려함과 일상에서의 애잔한 모습을 병행하며 표현해야했어요. 감독님이 에로영화 연출자 출신이시고 설정 상 그 부분이 영화에도 등장하기에 오히려 정우와 은수의 사랑은 더 순수하게 그리신 거 같아요. 뻔뻔하면서도 감정에 충실한 은수가 되려 했어요."

윤계상과는 이미 SBS 드라마 <사랑에 미치다>에서 호흡을 맞춰봤기에 고준희는 한결 더 집중이 수월했다고 전했다. 캐스팅 순서상 가장 마지막에 합류했기에 상대적으로 다른 배우들과 친해질 시간은 적었지만 상대 주연 배우가 구면이니 그만큼 거리감이 없었다는 게 그의 설명이었다.

"윤계상 오빠도 그간 <풍산개> 등에서 무거운 모습을 주로 보였잖아요. 이번 작품으로 보다 밝아진 거 같아요. 호흡 또한 좋았죠. 오정세, 조달환 오빠 역시 현장에서 밝은 기운을 주곤 했는데 그게 참 큰 힘이었던 거 같아요.

저 역시 이 작품을 통해 깨달은 게 커요. 여배우가 되고 싶은 건지 여배우로 살고 싶은 건지 스스로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죠. 여배우로 살고 싶진 않아요. 따지고 보면 이 역시 다른 사람들이 갖고 있는 직업과 같잖아요. 겉모습만 좀 더 화려할 뿐이죠. 순수함을 잃기 쉽고, 타성에 젖기 쉬워서 누군가에게 좀 더 대접받으려 하면 눈총받기 쉬운 직업입니다."

"고민하기 보단 즐기면서 작품 활동 하고 싶어"

 영화 <레드카펫>에서 톱 여배우 은수 역의 배우 고준희가 21일 오후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오마이스타와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있다. ⓒ 이정민


<레드카펫>의 은수는 정우와의 오해로 마치 배우병에 걸린 스타인 것 처럼 행동한다. 스타가 되면 안하무인이 되는 이른바 '배우병'에 대해 고준희는 분명한 생각을 갖고 있었다. "신인 시절부터 고현정, 이미연, 김정은 언니 등과 연기를 해서 스스로 내세울 게 없는 상황이었다"는 그는 "오히려 집에서 짜증을 냈으면 냈지, 감히 목에 힘주고 다닐 깜도 안 됐다"고 말했다.

"인복이 많은 건지 좋은 선배들과 작품을 해왔어요. 제게 선배인 척 하며 윽박지르는 분도 없었죠. 남들은 그렇게 기가 센 분들과 연기하는데 힘들지 않냐고 묻기도 했어요. 만약 제가 언니들을 이겨보겠다고 생각했으면 많이 힘들었겠지만 전 그저 제 맡은 역할만 잘 해내면 된다고 여겼어요. 그것 때문에 누군가에겐 제가 주변 신경을 안 쓰는 사람이 되기도 하더라고요."

이제 막 30대에 접어들었기에 고민이 많을 수도 있었다. 고준희는 "20대엔 영화 속 은수처럼 불안하고 외로운데 아닌 척도 많이 했다"며 "아무 것도 모르고 욕심만 부렸던 때였다"고 회상했다. 스스로 돌아보고 그는 배우 생활에서의 변곡점을 지나고 있었다.

"주위를 신경 쓰지 않은 채 그저 연기만 잘하면 된다고 생각했어요. 어디서 들은 건 있어서 '작품으로 증명하면 된다'고 여겼던 때였죠. 그래서 작품 선택에 더 고민이 많았어요. 언제부턴가는 너무 생각이 많이 가는 작품은 안 하고 있어요. 내 인생 마지막 작품도 아닌데 심각하게 고민하지 말자고 생각이 바뀌었죠.

이젠 즐기면서 하려고 해요. 관객 분들이 무엇을 좋아할지 아무도 모르잖아요. 높은 기대치를 떨어뜨리기보다 예상치 못한 즐거움을 주고 싶어요. 그래서 주어진 걸 즐기면서 편하게 하려고 합니다. 혼자 고민하고 있으면 속이 타서 얼굴만 까매져요(웃음)."

그렇다고 고준희가 생각 없이 즐거움만 추구하는 건 아니다. 스무 편 가까이 작품을 경험했지만 그는 "여전히 고준희 하면 떠오르는 대표작은 없는 거 같다"며 "배우로서 대표작을 만나고픈 욕심은 늘 있다"고 강조했다.

고준희 레드카펫 운계상 오정세 조달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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