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영화관 운영지원 사업에 선정된 주요 극장들. 대기업 롯데시네마도 포함됐다.

예술영화관 운영지원 사업에 선정된 주요 극장들. 대기업 롯데시네마도 포함됐다.ⓒ 성하훈


"예술영화관 최종 선정 극장 발표가 참 가관이다. 10년의 노고에 충분히 인정하고 감사하단다. 그동안 관객개발을 못하고 지원금 의존율이 높다. 지난 10년간 예술·독립영화 발전에 이바지하였으니 이제 그만 문 닫으란다. 차라리 일 년 동안 독립영화만 하라고 지원을 해주지 이제 나이 많이 드셨으니 집에서 쉬란다. 근데 아직 해야 할 영화 많은데 어찌해야 되지?"

지난 9월 1일 발표된 영화진흥위원회의 '예술영화관 운영지원 사업' 심사 결과에 대해 한 영화사 대표가 나타낸 푸념이다. 그는 "이대로 가다간 우린 앞으로 대기업의 오락 영화만 극장에서 보게 될 겁니다. 1700만의 대기록 곧 깨질 겁니다"라고 덧붙였다.

독립영화 정책전문가인 원승환 독립영화전용관 확대를 위한 시민모임 이사도 "정말 충격적이다. 영화진흥위원회는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고 영진위의 심사 결과를 비판했다.

규모 축소되고 고군분투한 극장은 탈락, 멀티플렉스는 포함

독립예술영화관의 지원을 목적으로 한 영진위의 '2014 예술영화관 운영지원 사업 심사'에 대해 독립영화계가 강한 불만을 나타내고 있다. 전체 지원 규모가 축소된 데다. 지역에서 열악한 환경을 딛고 고군분투해 온 영화관들이 탈락하고, 멀티플렉스 영화관이 포함되면서 논란이 일고 있는 것이다.

영진위의 '예술영화관 운영지원' 사업은 예술·독립영화 등의 상영을 통해 영화관 운영을 특화시키려는 영화관 운영자들의 지원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최대 200석까지 좌석규모에 연동해 좌석 점유율의 6~10%를 운영보조금으로 지원하고 온라인 홍보도 돕는다. 약정기간 내 정해진 기준에 따라 예술·독립영화를 의무적으로 상영해야 한다.

지금껏 작은 규모의 독립예술영화관들이 혜택을 받아 왔으나 이번 심사에서는 뜻밖의 결과가 나오면서 독립예술영화관들뿐만 아닌 독립영화계가 충격을 받은 모습이다. 선정된 극장들 역시 탈락한 극장들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에 착잡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올해 예술영화관 운영지원 사업에 선정된 극장은 모두 20곳으로 지난해 25곳에 비해 20% 김소했다. .

 대전지역의 독립예술영화전용관 대전아트시네마

대전지역의 독립예술영화전용관 대전아트시네마ⓒ 대전아트시네마


특히 대구과 대전에서 독립예술영화 확장에 기여해 온 대구 동성아트홀과 대전 아트시네마가 탈락해 영진위의 이번 지원사업에 어떤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닌지에 대한 의구심도 생겨나고 있다.

원승환 이사는 "예술영화전용관 지원 정책이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흘러간다면, 영화 문화의 종 다양성과 지역의 다양성 등은 모두 끔찍하게 훼손될 것이다"고 우려했다. 이어 당장 2014년 심사 결과만으로도 영화 문화를 지탱한 한 축이 무너질 것이고, 이 축을 다시 세우는 데는 몇 배의 노력과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롯데시네마는 형식적인 관심만 두는 데 선정. 허무한 결정"

이번 심사 결과에서 눈에 띄는 부분은 지역의 전통적인 독립예술영화관들이 탈락한 대신 대기업 롯데시네마가 5개관이나 포함된 점이다. 지난해 3개관이 포함됐던 롯데시네마는 올해는 2개관이 더 늘었다. 이에 반해 지난해 4개관이 지원을 받았던 CGV는 올해는 신청 자체를 하지 않았다.

한 예술영화관 관계자는 "영진위가 해보려는 의지를 보이는 곳에는 지원을 끊고 큰 의미를 두지 않는 멀티플렉스를 지원 대상으로 선정했다"며 "심사 결과가 허무하다"고 비판했다. 이어 "롯데시네마가 그간 독립예술영화에 보인 관심은 지극히 형식적이었다"며 제대로 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 곳을 지원 대상으로 선정했는데, CGV 무비꼴라쥬의 80%만이라도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지원 대상에서 탈락한 지역 예술영화관들은 당장 극장 문을 닫는 일이 생기지는 않겠지만 적자가 쌓여 앞으로의 운영에 큰 어려움이 생길 것 같다고 근심어린 표정을 나타냈다.

대구 동성아트홀 남태우 프로그래머는 "지원금은 극장 운영의 절반을 차지한다"며 "지원을 받을 줄 알고 지난 6개월간 먼저 사용한 비용들도 있는데 적자가 더 커질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영진위가 지난 3월 절차상 하자가 없던 기존 공모를 4개월 지나 재공모하더니 불공정하고 형평성 없는 심사를 했다"면서 불만을 나타낸 후, "영진위가 비판 여론을 의식해 추석을 즈음해 발표한 것이 아닐까 생각될 정도"라고 덧붙였다.  

남 프로그래머는 또한 "특정 대기업 영화관을 밀어주기 위한 수순이 아니었나 의심될 정도다. 부산과 대구지역은 대기업 멀티플렉스로 대체했다고 변명하는데 물타기나 날치기와 다름없다"고 영진위의 이번 심사 결정을 맹비난했다.

영진위 심사 결과, 정책보고서와 모순

 열악한 지역극장의 활성화를 위해 운영지원을 받을 수 있는 예술영화관으로서의 전환을 제안한 영진위 정책 자료

열악한 지역극장의 활성화를 위해 운영지원을 받을 수 있는 예술영화관으로서의 전환을 제안한 영진위 정책 자료ⓒ 영화진흥위원회


영진위에서 소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한 한 영화과 교수는 "영진위의 이번 예술영화전용관 지원결정 원칙이 지난해 발간된 정책보고서와도 모순이 있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영진위가 지난해 12월 펴낸 '지역극장 현황과 지원방안'이라는 정책 연구 자료에 따르면 지역 극장의 활성화를 위해 예술영화와 독립영화 등 다양성영화 전용관으로의 전환을 제안하고 있다.

이렇게 될 경우 '예술영화전용관 운영지원 사업에 따른 지원을 받을 수 있고 운영지원금이 연간 극장운영에 충분한 수준은 아니지만, 예술영화와 같은 다양성 영화로 상영관을 특화시킨다면 멀티플렉스 체인 극장과 동일한 영화, 동일한 관객을 놓고 경쟁하지 않아도 되므로 경영전략 상 하나의 방편이 될 수 있음은 분명하다'고 정책 연구 자료는 제시하고 있다.

또한 "다양성 영화를 상영하면 관객이 무조건 더 줄어들 것이라는 인식보다는 장기적 관점에서 적극적 홍보를 통해 다양성 영화에 대한 수요를 보다 이끌어내는 전략을 추진해 보는 것도 지역극장이 살아남을 수 있 는 한 가지 방법이 될 것이다"는 조언도 덧붙였다.

심사 결과에 붙여진 심사 총평도 논란을 부추기고 있다. 심사위원들은 "지금의 에술영화전용관은 위원회의 지원금 의존율이 매우 높고, 관객 점유율은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며 "변화하는 예술영화시장과 관객 성향을 고려하여 예술영화전용관도 함께 변모할 필요성을 느낀다"고 밝혔다.

이어 "우리 심사위원회는 지원극장의 제반여건과 운영실적 및 향후 발전가능성을 고려하여 지원을 결정하였습니다. 향후 예술영화전용관 사업의 획기적인 개선을 위한 위원회의 정책적, 사업적 행보를 기대해 봅니다"라고 심사 결과를 정리했다.

이에 대해 원승환 이사는 "문제의 원인을 파악하고 해결 방안을 찾기도 전에 먼저 숨통을 끊어 놓고, '향후 예술영화전용관 사업의 획기적인 개선을 위한 위원회의 정책적, 사업적 행보를 기대해 본다'는 심사총평은 도무지 이치에 맞지 않는 궤변"이라고 비난했다. 스스로가 지원 대상을 없애려고 하는 쪽의 손을 들어주면서, 개선을 기대해 본다는 건 말 장난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독립영화 진영은 "영진위의 이번 심사가 지역의 독립형 예술영화관 대신 멀티플렉스 중심으로 지원을 몰아주면서, 정책이 영화 산업 독과점을 과속화 시켜주는 모양새"라고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는 모습이다.

영진위, 지난 사업 점검해 보고 새로운 대안 마련 위한 것

 영화진흥위원회

영화진흥위원회ⓒ 영진위


영진위 측은 이 같은 비판이 나오는 것에 대해 곤혹스럽다는 반응이다. 영진위의 한 관계자는 "이번 심사 결정이 9인 위원회에서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와 재공모를 했다"면서 "10년이 넘은 지원 사업을 재점검해 보고 전환점을 마련해 보려는 의도"라고 설명했다.

영진위 관계자에 따르면 이번 심사에서 주안점을 둔 부분은 극장 시설과 고객 편의, 접근성 등이다. 시설의 낙후성이나 주차 시설 미비 등 지역극장들이 갖고 있는 약점에 비해 상대적으로 환경이 좋은 곳을 선정했다는 의미다.

또한 "지역극장들의 수입이 지원금보다 적은 곳들이 있어 기획재정부나 문화부 등의 상급기관에서 지적이 나오고 있다"면서 "지역에서 예술영화 확산에 역할을 한 것을 모르는 건 아니지만 상급 기관에서는 계량화 된 수치를 요구하다 보니 구체적으로 확인되지 않는 이상적인 성과를 판단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지원 대상이 줄어든 것에 대해서는 "신청한 곳들 다 줄 수는 없지만 일부러 줄이려 했던 것은 아니고, 9인 위원회 쪽에서는 전환점을 마련할 필요가 있었다"면서 "지금껏 예술영화관 예산은 가장 편하게 썼고, 극장들이 주로 인건비로 사용했다. 그러다 보니 극장들이 프로그램 개발이나 활성화 대책에 약한 부분이 있었다"고 지적했다.

심사 결과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지원 사업 개선을 위해 용역을 의뢰했고 내년에는 다른 쪽으로 발전할 수 있도록 하겠다. 지원을 안 하려는 게 아니고 지난 10년을 점검해 보면서 새로운 발전 전략 마련을 위한 고육책으로 이해해 달라"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탈락한 극장들의 불만은 이해는 간다. 이미 지원을 예상하고 비용을 쓴 곳은 어려움이 많을 것"이라며, "마케팅비 지원 등의 대책이 마련되면 좋겠다고 생각하지만 추가 공모는 없다"고 말했다.


  • 당신이 좋아할 만한 기사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