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N <섬마을 쌤>의 한 장면. 샘 해밍턴, 샘 오취리, 아비가일, 브래드가 주축이 된 리얼버라이어티 예능프로였다.

tvN <섬마을 쌤>의 한 장면. 샘 해밍턴, 샘 오취리, 아비가일, 브래드가 주축이 된 리얼버라이어티 예능프로였다. ⓒ CJ E&M


|오마이스타 ■취재/이선필 기자| 이제 더 이상 외국인 출연자들은 낯설지 않다. TV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다 보면 군복을 입은 푸른 눈의 백인 아저씨가 '충성'을 외치며 땅을 구르고, 가나에서 온 청년이 외딴 섬 마을에서 시골 아이들의 영어선생님이 되어 그들 삶에 녹아든다.

더 나아가 최근엔 국적을 달리한 이들이 집단으로 모여 한국 서열 문화나 동거 문제를 가지고 '한국말'로 토론을 벌인다. KBS <미녀들의 수다>(2010)를 시작으로 JTBC <비정상회담>까지, 외국인만 패널로 모아 놓고 진행하는 방송 프로그램이 대표적 예다.

분명 달라지긴 했다. 최초 외국인 예능인으로 여겨지는 짐 하버드(1972년 데뷔 후 가수 등으로 활동)와 이참(이한우라는 예명으로 활동), 하일(본명은 로버트 할리), 이다도시 등 1세대 외국인 방송 출연자들이 낯선 외형으로 '러빙 코리아'(Loving Korea)를 외치며 대중에게 재미를 줬다면, 최근 각광을 받거나 재조명 받기 시작한 샘 해밍턴, 에네스 카야 등을 위시한 외국인들은 한 발 더 나아가 '텔링 코리아'(Telling Korea) 즉, 스스로 주체가 돼서 한국과 자신에 대해 말하고 있다.

그래서 현재 활발하게 활동하며 대중의 주목을 받고 있는 외국인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백샘과 흑샘' 커플로 불리는 샘 해밍턴과 샘 오취리를 비롯해, <비정상회담>에 출연하며 '터키 유생'의 호칭을 얻은 에네스 카야, 진보적 발언으로 멋진 외모와 함께 호감형으로 등극한 줄리안이 그 대상이었다.

이들과 함께 방송 프로그램을 기획한 현직 PD들의 생각도 담았다. '한국 방송의 외국인 활용법' 내지는 '외국인 방송 활동을 바라보는 우리의 현재 시각'을 직접 드러내고자 했다.

그저 신기한 외국인?..."대중은 이제 다른 걸 원한다"

  방송인 샘 해밍턴(위)과 샘 오취리가 18일 오후 서울 상암동 델미디어에서 오마이스타와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방송인 샘 해밍턴(위)과 샘 오취리가 18일 오후 서울 상암동 델미디어에서 오마이스타와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정민


외국인으로서 현재 방송가에서 가장 상종가를 구가하고 있는 호주인 샘 해밍턴은 "한국이라는 곳이 외국인들의 이민이 활발하지 않기에 외국인을 여전히 신기하게 보는 시선이 있는 것 같다"고 운을 뗐다.

참고로 국내 외국인 거주자는 총 156만 9470명(안전행정통계연보, 2013년 12월 31일 기준)으로 전체 인구 수 대비 약 3%에 해당하는 규모다. 동시에 꾸준히 외국인의 유입은 늘고 있다.

벨기에 출신의 줄리안 역시 "유럽 등의 국가는 수 백 년 전부터 다민족 국가인 곳이 많기에 외국인 방송인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다"며 "한국은 1950년 전쟁 이후 미군을 비롯해 외국인들이 들어와 방송 활동을 하기 시작했고, 그 역사가 짧기에 신기하게 보는 면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인터뷰에 응한 외국인들은 입을 모아 "이젠 한국 사람들이 외국인에게 다른 걸 원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가나에서 온 샘 오취리는 "한국에서 방송 활동하는 외국인들이 전보다 많아졌다"며 "예전엔 방송을 하고 싶다고 하면 바로 섭외가 들어왔는데 이젠 경쟁도 심해졌고 단순히 한국말을 잘하는 걸로는 특별하게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방송인 줄리안이 20일 오전 서울 이태원동에서 오마이스타와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방송인 줄리안이 20일 오전 서울 이태원동에서 오마이스타와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정민


"과거 한국 방송 프로에서는 우리가 단순하게 외국인이기만을 원했어요. '한국 김치 좋아요!'만 외치는 걸 원했죠. 이젠 아니에요. 대중들 역시 그런 걸 원하지 않고 외국인의 생각을 존중하려 하는 것 같아요. 한국을 사랑하는 외국인은 많이 봤으니, 이젠 한국 문화를 바라보는 구체적인 생각을 원하죠.

한국은 최근 큰 변화를 맞고 있어요. 휴가도 여가도 즐기면서 다른 사람의 생각도 궁금해 하는 거 같아요. 방송에 나오는 외국인들이 전문가는 아니지만, 적어도 각자의 나라에서 이런 식으로 살아왔고, 한국에 대해 이렇게 생각한다고 말할 수는 있잖아요. 거기에 공감해주시면 감사한 거죠." (줄리안)

외국인의 방송 활동 전망에 대해선 긍정과 부정 두 부류로 갈렸다. 이미 전문 예능인을 목표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샘 해밍턴과 샘 오취리는 비교적 한국 연예계의 독특한 문화를 받아들이고 있었다.

이들은 "사실 공손한 표현과 예의를 지키는 건 외국 사람 입장에선 선택의 문제지만, 한국에서 방송 활동을 해나갈 것이기에 예의를 아는 게 중요하다"고 전했다. 또, "외국인으로서 한국 예능인과 다른 재미를 보이도록 노력하는 게 우리 일"이라는 게 두 사람의 생각이었다. 능동적인 자세와 함께 의욕도 보이고 있었다.

 영화 <초능력자> 등에서 연기자 활동을 했고, 최근 JTBC <비정상회담>에 출연 중인 에네스 카야.

영화 <초능력자> 등에서 연기자 활동을 했고, 최근 JTBC <비정상회담>에 출연 중인 에네스 카야. ⓒ 에네스 카야


반면 터키인 에네스 카야는 "그간 방송에서는 외국인들의 이미지만 소모하고 끝나는 프로그램이 많았다"며 "한국에서 연예인을 하려는 외국인들은 성공 가능성이 낮다고 생각한다"고 일축했다.

"한국은 분명 인구에 비해 시장이 커요. 그렇지만 그만큼 잘하는 한국 사람도 많습니다. 식탁이 크고 먹을 게 많아도 잘 먹는 한국인이 많아 외국인은 자기 밥그릇 찾는 게 쉽지 않아요. 외국인의 방송 활동 물론 좋지만 한계가 있어요. 한국 사람도 쉽게 달려들지 못하는 시장인데 외국인 신분으로 타국의 밥상에서 얼마나 성공할 수 있을까요.

이건 외국의 경우도 마찬가집니다. 당장은 아니더라도 근 10년 후면 한국 사람들 먹기에도 부족할지 몰라요. 외국인이 연예인을 지망하는 걸 반대하진 않지만 전 다른 꿈도 갖고 있어야 좋다고 봐요" (에네스 카야)

외국인 이미지 소모?..."그것보단 신선한 즐거움을 생각해야"

tvN <섬마을 쌤>으로 외국인 중심의 리얼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을 만든 김종훈 PD는 외국인 섭외가 자칫 소모적인 사용으로만 끝날 수 있다는 우려에 대해 "인식의 문제"라고 답했다.

김종훈 PD는 "시청자들이 이들에게 느끼는 재미의 포인트가 다르다"며 "중요한 건 이들도 우리 사회를 구성하는 구성원이자 사람이라는 관점을 갖고 섭외해야지, 어떤 편견을 갖고 발탁하는 건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비정상회담>의 임정아, 김희정 PD 역시 "새로운 소재를 찾는 과정에서 나온 발상이지, 외국인의 이미지를 소모한다는 생각은 해본 적 없다"고 말했다.

 JTBC <비정상회담>의 한 장면.

JTBC <비정상회담>의 한 장면. ⓒ JTBC


"제작진 입장에서 외국인 출연자를 소모한다는 느낌은 없는 거 같아요. 하일씨 등이 활동하던 때엔 단순히 외국인이 사투리 쓰는 게 웃겨서 섭외했다지만 그런 시대는 지났죠. 이젠 외국인들의 재능을 보는 시대입니다. 다만 <섬마을 쌤>과 <비정상회담>을 통해 느낀 건 외국인 스스로도 한국에서 활동하려면 재미에 대한 공통분모를 인식해야 한다는 점이에요." (김종훈 PD)

"전문 연예인이라면 이미지 소진에 대해 조심스럽지만 기본적으로 외국인은 자기 일을 갖고 있어요. 적어도 <비정상회담> 출연진은 그렇죠. 석사, 회사원, 강사 등의 활동을 하다 일주일에 한 번 방송 출연을 한다는 건 자기 브랜드를 위해서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요.

다양한 외국인 출연 방송이 나오는 게 결국 새로운 소재를 찾는 과정이에요. 제작진이라면 새로움에 대해 목마름이 다 있으니까요. <미녀들의 수다>가 외국인 패널 프로그램의 시발점이란 의미가 있고, 우리는 지금 이 시대에 할 만한 이야기를 찾은 거예요. 한국에 대한 의견을 넘어 문화 간 토론으로 확장시킨 거죠." (임정아 PD)

"다만 연출자 입장에서 항상 조심해야 할 건 편집이에요. 출연자들이 의견을 피력하면서 특정 이미지로 굳어지는 면은 피할 순 없겠지만, 그들의 화법을 곡해하지 않고 전달하려고 노력해야죠. 자막도 늘 조심하면서 써요. 최근에 (한국의 서열 문화에 대한 토론 등) 논란이 좀 있었지만, 그들의 생각을 제대로 잘 전달하는 게 핵심입니다." (김희정 PD)

"예능의 기본은 재미이자 즐거움"이라며 임정아 PD가 덧붙였다. "외국인 출연자의 등장이 새로움에 대한 대중의 갈망에 부응하고 있는 만큼 제작하는 사람 입장에서도 충분히 이들로 신선한 재미를 주려고 고민하는 모습이 필요하다"는 게 연출자들 공통의 생각이었다.

"서로 '윈윈'하는 문화 만들어지길"...외국인들은 소통하고 싶다

외국인 출연자들 역시 제작진과 같은 지점을 고민하고 있었고, 또한 개선을 바라고 있었다. "<미녀들의 수다> 출연자들이 단계적으로 활동하는 걸 잘 못 봤다"고 우려를 표한 샘 해밍턴은 "이제 한국이 다문화 사회인만큼 외국인 출연이 단순한 유행으로 멈추기보다 제작진도 외국인들의 재능을 보고 섭외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신기해서 말고, 우리가 재밌어서, 특이해서 섭외하는 게 좋을 거 같아요. 또 외국인 중에 저희처럼 취미가 아닌 직업 예능인을 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다면, 캐릭터나 방향성을 함께 생각해야 한다고 봐요." (샘 오취리)

"감히 그 분야 전문가인 연출자 분들에게 제가 무슨 말을 하겠어요. 다만 터키 속담에 '모든 양은 자기 다리로 잡힌다'라는 말이 있어요. 말로 풀기 쉽진 않은데 수 십 마리 양이 무리지어 다녀도 결국 한 마리의 다리를 잡으면 되는 거예요. 알아서 자기 걱정을 하고 고민하다보면 좀 더 나아지지 않을까요? <비정상회담> PD님 입장에서도 출연진 개개인이 잘 돼야 먹고 살 수 있죠. 또 그 프로그램이 잘돼야 출연진도 잘 되는 거고요.

제임스가 얼마 전 하차했는데 다들 한 가족이라는 인식이 있어요. 제작하는 분들은 '새 프로그램을 하니 외국인 한 번 써볼까?' 이런 생각보다는 한국인과 외국인 구분 없이 서로 잘 되는 방향으로, 똑같은 사람이라는 기준으로 바라봐주시면 좋겠어요. 프로그램만 살리자는 고민 말고 출연진까지 잘 되는 방법을 고민해가가자는 거죠.

사실 감정은 다 느껴져요. 진심으로 대하는지, 가식인지는 방송을 보는 시청자 분들은 모르실 수도 있겠지만 출연진끼리는 서로 다 느낀답니다. " (에네스 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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