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하늘의 황금마차> 한 장면

영화 <하늘의 황금마차> 한 장면 ⓒ 자파리필름


시한부 인생에 치매에 걸린 큰 형에게 남은 세 명의 동생이 모여 든다. 형이 죽으면 남겨질 집을 놓고 각자가 욕심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재산을 말아먹고 집안에서 거의 쫓겨나다시피 했던 둘째, 술로 탕진하는 셋째, 밴드를 만들어 성공하고 싶지만 돈이 없는 막내가 오랜 만에 한 자리에 모이지만 우애가 좋지 않은 이들은 서로를 경계하거나 불신하고 형의 건강보다는 집에 대한 관심만 보인다.

속보이는 동생들을 내치고 싶지만 날로 상태가 악화되던 큰 형은 결국 병원의 권유를 받아들여 여행을 다니기로 결정한다. 집을 탐내는 동생들이 형의 제안을 수락하면서 갑작스런 여행이 시작된다. 막내 뽕돌이 만들려는 밴드의 멤버들도 팀워크를 다지기 위해 여행을 떠나는데, 형제들과 밴드가 여행 중간 중간 마주친다.

형제들이나 밴드들 모두 여행 도중 소소한 갈등이 계속 불거진다. 위태위태함이 이어지는 이들의 여행은 크고 작은 소동이 끊이지 않는다. 이들의 여행은 성공할 수 있을까?

제주 4.3을 소재로 한 영화 <지슬: 끝나지 않는 세월2>(이하 '지슬')로 지난해 크게 주목받았던 오멸 감독이 신작 <하늘의 황금마차>를 제천국제음악영화제(이하 제천영화제)를 통해 첫 공개했다.

<하늘의 황금마차>는 밴드 킹스턴 루디스카가 출연하고 음악영화로 제작돼 올해 제천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됐다. 14일 개막식에 이어 17일까지 모두 세 차례 관객들과 만남을 가졌다. 앞서 지난 7월 카를로비바리영화제를 통해 해외에서 먼저 공개됐는데, 오는 9월 개봉을 앞두고 있다,

오멸 사단과 제주어 대사, 신나는 음악을 통한 위로

 영화 <하늘의 황금마차>의 한 장면

영화 <하늘의 황금마차>의 한 장면 ⓒ 자파리필름


<지슬>이 워낙 강렬했기에 <하늘의 황금마차>는 제작 소식이 알려졌을 때부터 궁금증을 자아냈다. <지슬>과 정반대의 분위기를 나타내지만 다른 듯 보이면서도 같은 느낌을 받게 된다. 미술을 전공했던 감독의 미학적인 고민이 제주의 아름다운 풍광을 영상미로 강조한다.

배우들이 대부분 <지슬>에 출연했던 '오멸 사단'이고, 대사가 제주어로 돼 있어 한글자막이 등장하는 것, 그리고 처음부터 끝가지 제주에서 만들어진 영화라는 것은 전작과의 공통점이다. 기생 화산 오름으로 대표되는 제주의 자연과 바다는 스크린을 밝고 환하게 만든다. 

<하늘의 황금마차>는 제주도 사람들을 중심으로 제주를 배경으로 했으나, 주제는 가족과 노인에 대한 문제고 인권영화로 만들어진 것이 특징이다. 제주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닌 보편적인 문제를 제주를 통해 그려낸 것이다. 특히 무거운 주제를 가볍고 경쾌하게 만들었다는 것은 전작과 큰 차이를 보이는 부분이다.

<하늘의 황금마차>는 산뜻한 수채화를 보는 느낌이다. 흑백영화로 만들어진 <지슬>이 수묵화를 연상시키는 것과 다른 부분이다. 내용으로 따지면 상당히 무겁고 슬픈 내용인데 역설적이게도 흥겹고 신나게 그려냈다.

하지만 가장 눈에 띠는 것은 삶과 죽음의 기로에 선 사람들에 대한 위로와 다독거림이다. <지슬>을 통해 4.3 희생자들을 제사 의식으로 위로했다면, 이번에는 인디밴드들을 활용했다. 갈등과 다툼이 있는 곳에도 어김없이 화해를 위한 신명나는 음악과 춤이 등장한다. 이를 통해 아픔을 치유한다.

단단했던 갈등은 경쾌한 음악이 이어지면서 서서히 녹아내리고 슬픔은 웃음으로 밝게 승화된다. 생의 마지막 과정은 상징적인 요소들이 곁들여진 영상미와 흥겨움, 울음보다는 미소로 마무리되어 진다. 갈등을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 전하는 화해의 메시지이기도 하다.

영화 제목 '하늘의 황금마차'는 4형제 중 막내 뽕돌의 밴드이름이지만, 그 의미는 중의적이다. 개인의 꿈과 사랑, 위로, 장비를 싣고 다니는 도구 등의 상징성이 복합적으로 담겨 있다. 둘째 용필 역으로 나오는 가수 양정원 선생의 옛 노래는 지나온 시간들을 떠올리게 하고, 뽕돌의 딸로 나오는 아역배우 조이준 어린이의 깜찍한 연기는 영화에 웃음을 더해 주는 양념이다.

"노부모님 모시고 살아 노인문제 선택...예술이란 작가의 인생"

 16일 제천국제음악영화제에서 <하늘의 황금마차> 상영 후 관객과의 대화를 갖고 있는 오멸 감독과 출연배우들

16일 제천국제음악영화제에서 <하늘의 황금마차> 상영 후 관객과의 대화를 갖고 있는 오멸 감독과 출연배우들 ⓒ 제천국제음악영화제


<하늘의 황금마차>는 국가인권위원회 인권영화 프로젝트로 만들어졌다. 여러 주제 중 노인 문제를 선택한 것이지만 가족 간의 사랑이나 형제간의 우애 등에 대한 인식이 더 돋보인다.

오멸 감독은 16일 오후 제천영화제 일반상영 직후 열린 관객들과의 대화에서 "인생을 깨닫게 해 준 기회였고 스스로의 부족함도 알게 해준 영화"라고 말했다. 그는 "인권위원회에서 제안한 여러 주제들 중 노부모님을 모시고 살아서 선택한 것인데, 가족들과의 관계에서 무심했던 부분이 많았음을 알게 됐다"면서 "예술이라는 것이 결국 작가의 인생임을 뼈저리게 느꼈다"고 덧붙였다.

오 감독은 또한 영화에 출연한 밴드 킹스턴 루디스카에 대해 "<불후의 명곡>을 보고 섭외했다"고 밝혔다. 이어 "실제로 만나보니 자기들끼리 잘 싸운다"며 "찌질하게 보일만큼 아무렇지도 않은 일로 싸우던데, 그래도 심정이 착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또, 오 감독은 영화에 해녀 역할로 출연했던 오영순 선생이 2주전 쯤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전하며 감정이 북받치는 듯 잠시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오영순 선생은 감독의 이전 작품인  <어이그 저 귓것>에 출연한 적이 있는데, 당시 간암 판정을 받았다고 한다. 오 감독은 "이 작품을 마지막으로 세상을 떠나신 건데 영화를 못 보고 돌아가셔서 가슴이 아프다"면서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슬픈 내용이지만 즐겁게 만들고 싶었다"
[인터뷰] <하늘의 황금마차> 오멸 감독

 오멸 감독

오멸 감독 ⓒ 성하훈


지난 14일 제천국제음악영화제 개막식에는 <하늘의 황금마차>에 출연한 자파리필름 배우들이 모두 참석했다. 비가 내리는 궂은 날씨였지만 대다수 관객들은 자리를 뜨지 않고 영화를 지켜봤다. 인디밴드가 출연하고 로드무비로 만들어진 덕분인 듯 "산뜻한 느낌"이었다는 게 관객들의 평가였다.

15일 제천영화제 상영관인 메가박스 앞 야외 카페에서 배우들과 함께 있던 오멸 감독을 만나 신작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 영화를 자세히 보면 무겁고 죽음이 나오는 슬픈 내용인데, 전혀 그런 느낌이 안 든다. 의도적인건가?
"그렇다. 일부러 그렇게 만들었다. 어둡게 그리고 싶지 않았다. 슬픈 이야기지만 즐겁게 만들고 싶었기에 가볍고 밝은 느낌으로 만들었다."

- 노인을 주제로 한 인권영화라는 데, 그런 느낌이 강하지는 않다.
"국가인권위원회의 노인에 대한 이야기를 주제로 제안했을 뿐 제한은 없었다. 어느 집에서나 있을 법한 이야기이고 보편적인 내용들이다."

- 전반적으로 신나고 흥겹게 가다 보니 더 늘려도 됐을 텐데, 분량이 짧다는 느낌이다.
"가족들이 함께 볼 수 있는 영화인만큼 지루함을 느끼지 않도록 상영 시간을 90분 정도에 맞췄다.

- <지슬>처럼 영상미가 돋보이는 부분들이 보인다. 
"공들여서 찍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나무가 나오는 장면의 경우 나무들이 울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지슬>의 배우들이 이번 영화에도 등장한다. 이름도 그대로 나오는 것 같다. 셋째인 용필의 경우 <지슬>에서 용필 아재였고, 뽕똘은 이전 영화의 제목이기도 했는데 의미가 있나?. 
"사람과의 관계에 초점을 맞췄기 때문에 이름에 큰 의미는 없다. 배우들은 내게 있어 최고의 배우들이다. 새로운 배우들을 쓰려고 하면 서로가 알아 나가는 과정에 시간이 걸린다. 하지만 이들은 내가 자세히 아는 배우들이다. 내가 작업하기 가장 좋은 조건의 배우들이다"

- 영화 중에 음악을 듣고 집밖으로 고개를 내미는 할머니의 모습이 나온다. 이 분도 섭외했나?
"그 분은 실제 모습이다. 음악 소리가 들리니 무슨 일인가 싶어 밖으로 고개를 내미시더라. 그 모습을 담은 거다"

- 지난 7월 체코 카를로비바리영화제에서 처음 상영됐다. 관객들 반응이 어떻던가?
"관객 중에 아들을 잃은 어머니가 계셨다. 아들의 유골을 목걸이로 만들었다며 걸고 계셨는데, '영화를 보면서 공감이 됐다'며 위로가 되신 듯 '고맙다'는 인사를 전하셨다."

- 제작비는 어느 정도이며 전액 인권위원회에서 지원을 받은 건가?
"2억 정도인데, 우리 돈도 많이 들어갔다. 적자가 난 상황이다. <지슬> 영향으로 힘이 많이 들어간 것 같아 촬영 분량의 50%를 들어내고 올해 3회차 정도를 다시 찍었다. "

- 계속 제주를 중심으로 한 독립영화를 만드시는 것 같다. 혹시 상업영화 찍자는 제안은 안 들어오나?
"그런 제안은 전혀 못 받아 봤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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