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해무>에서 조선족 처녀 홍매 역의 배우 한예리가 7일 오후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오마이스타와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영화 <해무>에서 조선족 처녀 홍매 역의 배우 한예리가 7일 오후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오마이스타와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정민


|오마이스타 ■취재/이선필 기자·사진/이정민 기자| 짧지 않은 한예리의 족적을 살펴보자. 분명 그는 흔히 말하는 출발부터 스타급 배우는 아니었다. 하지만 영화를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기린과 아프리카> 등의 단편을 기억할 것이다. 한국 무용을 전공했고, 이후 연기를 시작하면서 철저하게 작품으로 검증받아 온 배우가 바로 한예리다.

비교적 최근작에서 상업영화로의 행보가 두드러진다. <코리아> <남쪽으로 튀어> <동창생> 등에서 능력을 보이며 보폭을 넓힌 것은 좋았지만, 여전히 그의 잠재력을 십분 담기엔 부족해 보였다. 그런데 <해무>는 달랐다.

이십 대 후반을 넘어 삼십 대로 접어든 한예리가 조선족 여인 홍매가 되어 전진호의 여섯 선원들을 마주했다. 이야기 설정상 홍일점이었고, 배 위에서 일어나는 모든 비극적 사건의 시발점이 되는 인물이었다. 이 역할을 두고 스타급 배우들이 하마평에 오르며 스쳐 지났다. 그래서였는지 최종적으로 한예리가 맡게 됐을 때 분명 일각에선 걱정과 의문의 시선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홍매가 된 한예리..."<해무>는 로맨스가 중심인 작품"

 영화 <해무>에서 조선족 처녀 홍매 역의 배우 한예리가 7일 오후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오마이스타와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정민


결론부터 말하면 문성근-김윤석-유승목-김상호-이희준-박유천으로 이어진 막강한 남성 배우들에게 한예리는 꽤 훌륭하게 대응했다. "다른 배우가 하고 싶다고 할까봐", "오히려 홍매가 시나리오 상에서 친절하게 표현되지 않아 다양하게 만들 수 있을 거 같아 꼭 하고 싶었다"고 말하는 그에게서 승부사의 기질을 느낄 수 있었다. 경기를 뛰는 운동선수들이 사기를 충전하듯 배우는 응당 그래야 한다. 역할에 대한 승부 기질 면에서도 한예리는 충분히 홍매를 차지할 자격이 있었던 거다.

다양한 해석이 나올 법한 <해무>를 두고 한예리는 "동식(박유천 분)과 이끌어가는 로맨스가 중심인 영화"로 이해했다. IMF라는 시대 배경에서 경제적으로 침체됐던 전진호 선원들이 조선족 밀항을 시도하며 배 위에서의 혼돈이 시작됐지만, 그 틈에서 동식과 홍매의 감정선은 관객이 놓지 말아야 할 주요한 가치를 상기시키는 역할을 했다.

"해석의 여지가 열려 있는 건 분명해요. 다만 영화에서 동식과 홍매가 치열하게 살아남고, 성숙해지는 과정을 보이기에 <해무>가 사랑에 더 가까운 지점에 있지 않나 생각해요. 이들의 이야기가 없다고 상상해보세요. 진짜 우울했을 걸요(웃음).

홍매 입장에선 살던 곳을 떠나 밀항을 결심하기가 쉽지 않았을 거라 그녀의 전사를 심성보 감독님과 오래 상의했어요. 부모를 일찍 여의고 동생을 공부시키기 위해 한국으로 떠난 오빠 소식마저 끊기면서 중국에서 힘들게 하루 벌이를 했을 거라 생각했어요. 살아 있는 피붙이가 오빠밖에 없기에 순수하게 보러가야겠다 결심할 수 있었을 거고, 그래서 계산 없이 동식에 대한 경계를 풀 수 있었을 거라고 생각했죠."

장애물이었던 언어와 베드신..."함께한 배우들 덕에 넘었다"

 영화 <해무>에서 조선족 처녀 홍매 역의 배우 한예리가 7일 오후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오마이스타와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영화에서 동식과 홍매가 치열하게 살아남고, 성숙해지는 과정을 보이기에 <해무>가 사랑에 더 가까운 지점에 있지 않나 생각해요. 이들의 이야기가 없다고 상상해보세요. 진짜 우울했을 걸요(웃음)." ⓒ 이정민


강한 의지가 있었지만 홍매는 그만큼 쉽지 않은 캐릭터였다. 심성보 감독이 "<코리아>에서 북한 탁구 대표선수 역을 했기에 사투리를 잘 표현할 것"이라 말했지만 홍매는 북한말이 아닌 연변 말이었다. 또한 선원들이 죽어 나가는 위기 상황에서 동식과 잠자리를 하는 장면 또한 납득을 시원하게 해야 했다.

"북한말을 지우고 처음부터 다시 말을 배운다는 생각으로 임했어요. 다행히 듣는 귀가 늘어서인지 조금은 빨리 습득했던 거 같아요. 연변 말을 지도한 선생님이 20대 중반인 친구였는데 설매였어요. 매화와 관계된 이름이 많이 쓰인다고 하더라고요. 홍매는 좀 강한 이름이지만 실제로 그쪽에서 쓰여요. '빵가매' 역시 컵라면을 뜻하는 중국말을 연변 말로 표현한 거예요.

베드신 부분을 이해하기 위해 많이 노력했어요. 여러 자료를 보니 전쟁 때 실제 그런 사례가 있더라고요. 죽음을 마주한 순간에서 동식과 홍매는 사랑을 넘어선 행위를 했다고 생각해요. 머리로 이해하는 건 한계가 있었고, 촬영이 들어가니 그때 납득이 되기 시작했어요. 정해진 콘티 외에 어떤 추가촬영도 없었어요. 4시간 동안 딱 집중해서 임했습니다."

여린 몸으로 여수와 거제도, 마산 등을 오가며 출렁이는 바다 위에서의 강행군을 버틸 수 있었던 건 동료 배우들 덕이 컸다. 함께 호흡을 맞춘 박유천이 첫 영화 주연이기에 걱정되진 않았는지 물으니 "호락호락하지 않은 가요계에서 많은 일을 겪으며 성장해서인지 다가가기 쉬웠고 많은 힘이 됐다"고 전했다. "외모와 달리 상남자의 매력이 있다"는 말도 덧붙였다. 

"유천씨를 비롯해 선배님들과 함께 술 마시면서 대화를 그렇게 많이 했어요. 촬영에 대한 말부터 자신들의 추억담, 경험담도 들을 수 있었죠. 그 분들이 연기하는 모습을 가까이서 보고 함께 할 수 있는 자체가 즐거웠어요. 문성근 선배의 영화를 보면서 자란 저인데 같은 작품에 나올 수 있어서 진짜 감사했죠. 많은 감독님과 후배 배우들이 여전히 찾고 따를 수 있는 건 그 분이 좋은 배우시니까 그런 거라고 생각해요. 저 역시 선배님처럼 좋은 연기를 오래 하고 싶어요."

▲ [스타영상] 한예리, '해무'는 매력있는 영화! 영화 '해무'에서 조선족 처녀 홍매 역의 배우 한예리가 인사말을 하고 있다. ⓒ 이정민


 영화 <해무>에서 조선족 처녀 홍매 역의 배우 한예리가 7일 오후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오마이스타와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정민


인터뷰 말미에 한예리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해무>라는 작품이 본인에게 갖는 의미가 남다를 것이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었다.

"<해무> 전까지는 그저 연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면 이젠 배우라는 수식어를 얻을 수도 있다고 느꼈어요. (연기에 대한 생각이) 좀 더 특별해 졌다고 할 수 있을 거 같아요. 오히려 열정을 키워준 작품이었죠. 여배우가 작품을 만나기 쉽지 않은 구조지만 좋은 작품을 더 잘 해내야겠다고 생각해요."

<해무> 이후 한예리는 그간 꾸준히 해왔던 한국 무용 공연을 선보인다. 대중에게 멀게만 느껴졌던 순수 창작 무용이다. "이 참에 한국 무용도 잘 홍보하고 싶다"며 "영화도 외국 고전만 훌륭한 게 아닌 좋은 한국 고전 영화가 있듯 우리가 잊고 있었던 한국의 미를 잘 표현하겠다"는 각오를 전했다. 속도가 느려 보이지만 자기 분야에서 좋은 목적과 마음으로 열정을 쏟는 만큼 그 결실 또한 하나씩 얻고 배우가 바로 한예리 아닐까.

인터뷰 속 인터뷰 - "최윤영씨는 기특하고 좋은 사람"
 영화 <해무>에서 조선족 처녀 홍매 역의 배우 한예리가 7일 오후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오마이스타와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정민


<해무> 개봉 직전 배우 최윤영이 기자의 SNS로 한예리에게 응원의 말을 전했다. 현재 KBS 드라마 <고양이는 있다>에서 호연을 보이고 있는 최윤영은 영화 <코리아>에서 남한 탁구 선수 대표 역할로 한예리와 인연을 맺었다. "어서 좋은 영화로도 관객을 만나고 싶다"는 최윤영에게 한예리가 화답했다.

"<코리아> 때 인연으로 지금까지 보고 있는 친구에요. 연기 선배라지만 제가 미흡하더라도 너무 미워하지 말았으면! (웃음) 배우라는 직업 이런 걸 다 떠나서 오래 보고 만나고 싶은 동생이에요. <코리아> 때 윤영씨가 곁에 있어서 이겨낼 수 있던 게 많습니다. 참 기특하고 좋은 사람이에요. 응원합니다!"


ⓒ 이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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