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윤현민이 20일 오후 서울 상암동 오마이스타 사무실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배우 윤현민이 서울 상암동 오마이스타 사무실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정민


|오마이스타 ■취재/이미나 기자·사진/이정민 기자| 전작의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에 새로운 작품에 얼굴을 내미는 건, 드라마에도 배우에게도 좋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배우 윤현민은 달랐다. KBS 2TV <감격시대>에서 딱 떨어지는 수트 차림에 '다음 생에선 나를 먼저 만나 달라'는 비장미 넘치는 고백을 남겼던 아오키가, 단 몇 주 만에 화려한 패턴의 의상에 천연덕스러운 표정을 지어 보이는 tvN <마녀의 연애> 용수철이 됐다.

"사실 기대를 많이 한 작품이었어요. 그만큼 준비도 많이 했고요. 대본을 보면서 생각나는 것들이 있으면 계속 적고…. 그간 출연했던 작품의 대본을 다 모으고 있는데, <마녀의 연애>는 대본을 가장 많이 더럽혔던 드라마에요. <감격시대>가 끝나고 하루도 못 쉬고 바로 촬영에 들어가서 여러모로 힘들었지만 그래도 좋은 건, '(<감격시대>의) 걔가 (<마녀의 연애>의) 얘야?'라는 반응을 볼 때였어요. 그런 게 저에겐 최고의 칭찬이죠."

이름처럼 통통 튀었던 용수철은 그가 브라운관에선 처음 시도했던 발랄한 역할이었다. "공연에선 이런 역할을 해 본 적이 있었다"는 그는 "드라마에서도 보여주면 보는 분들이 좋아해 주시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던 덕분에 어렵지 않게 출연을 결정할 수 있었다. 그를 보다 많은 대중 앞에 소개해준 작품인 JTBC <무정도시> 이정효 PD와 또 한 번 함께할 수 있다는 것도 플러스 요인이었다.

 배우 윤현민이 20일 오후 서울 상암동 오마이스타 사무실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감격시대>가 끝나고 하루도 못 쉬고 바로 촬영에 들어가서 여러모로 힘들었지만 그래도 좋은 건, '(<감격시대>의) 걔가 (<마녀의 연애>의) 얘야?'라는 반응을 볼 때였어요. 그런 게 저에겐 최고의 칭찬이죠." ⓒ 이정민


이 PD가 처음부터 그에게 주문한 것은 딱 하나, '막 해라'였다. PD의 주문을 받아들인 윤현민은 그야말로 카메라 앞에서 '뛰어 놀았다'. 본 방송에선 편집됐지만, 여자친구와의 베드신에서는 '제대로 해 보겠다'며 즉흥적으로 바지를 벗어 현장의 모두를 '뻥' 터뜨리기도 했다. 하지만 카메라 앞에서의 자유분방함을 위해선 치열한 수 싸움이 필요했다. 윤현민은 "계산을 많이 했던 작품"이라고 돌이켰다.

"진짜 열심히 했어요. 이게 '유작'이 되면 안 되니까요. (웃음) 또 <무정도시>나 <감격시대>에선 대본을 보고 즉흥적으로 느끼는 대로 연기를 했어요. 특히 <감격시대>는 시대극이다 보니 그냥 그 옷을 입으면 느낌이 왔어요. 그런데 <마녀의 연애>는 달랐죠. 계산을 많이 했어요. 제가 말할 때나 움직일 때 효과음이 많이 들어가다 보니, 동작도 많이 연구해야 했고요. '그게 계산할 연기야?' 하겠지만, 전 나름대로 머리를 썼죠. (웃음)"

"깨끗하게 '돌아' 프로야구 그만둬...후회하지 않는다"

윤현민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흥미로운 사실 중 하나는 그의 이력이다. 한 포털 사이트에 그의 이름을 검색해 보면 '2004년 한화 이글스 입단'이라고 적혀 있다. 한 해 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에 참가하는 선수들은 700여 명. 그 중 고등학교 졸업 후 프로야구 구단으로 직행하는 경우는 1/10도 안 된다. 오랜 노력 끝에 그 명단에 당당히 이름을 올렸지만, 몇 년 후 윤현민은 돌연 선수 생활을 접었다. 당시를 떠올리던 윤현민은 "지금 생각하면 나도 내가 신기하다"고 했다.

"지금 제가 프로야구 선수라면 '관둬야겠다'는 생각이 들어도 실제로 그만두지 못할 것 같아요. 그땐 어리니까 용감했던 거죠. '왜 그런 생각을 했지?' '현실을 냉정하게 바라봤지?' 생각해보면…운이었던 것 같아요. 깨끗하게 '돌았던' 시기였죠. (웃음) 어느 순간 유니폼을 입는 게 싫어지더라고요. 형식적으로 구장에 가서 유니폼 입고 모자 쓰고 시합에 나가는 것 같은 느낌, 기계적으로 야구하는 느낌…그게 싫었어요. 그러다 보니 야구도 잘 안되더라고요."

평생을 한 길에 투신했던 사람이 어느 순간 그 길을 포기한다는 건 적지 않은 용기가 필요하다. 그 전에, 그 길을 두고 회의를 느끼는 경우도 많지 않다. 설령 회의를 느낀다 하더라도 그때까지 들인 시간과 노력이 아까워 대부분은 그 '마음의 소리'에 귀를 막는다. 하지만 윤현민은 대담했다. 비시즌 때 우연히 보았던 뮤지컬 <김종욱 찾기>가 머리를 스쳤던 건 '운명'이었다. 결국 2010년 윤현민은 <김종욱 찾기>의 배우가 되었다.

 배우 윤현민이 20일 오후 서울 상암동 오마이스타 사무실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정민


 배우 윤현민이 20일 오후 서울 상암동 오마이스타 사무실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한 번은 최민식 선배님을 만나 여쭤봤는데, 선배님도 자신의 연기에 만족스러우셨던 적이 없으시대요. '죽을 때까지 못 느낄 것 같다'고 하시더라고요. 그게 맞는 것 같아요." ⓒ 이정민


"'얼굴이 반반하니 프로야구 하다가 누가 (연예계로) 꼬였겠구나' '야구 하면서도 여자 많이 만났겠네'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겠지만, 전 되게 보수적인 사람이었어요. 야구밖에 안 했고, 가끔 '(외모가) 아까우니 연기를 해 봐라'는 이야기를 들으면 정말 기분 나빠했고요. 그런데 뮤지컬은 신선했어요. <김종욱 찾기>에는 배우가 셋밖에 안 나오거든요. 힘들 텐데도 배우가 무대 위에서 땀 흘리고 웃는데…멋있더라고요."

혹시나 진로를 바꾼 걸 후회하진 않을까. 윤현민은 고개를 저으며 "후회하지 않는다. 오히려 일찍 그만둘 걸 그랬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촉망받던 타자는 '운명'이 던진 공을 깨끗이 받아 쳤다. 지금 이 공은 담장 너머로 쭉쭉 뻗어가고 있다. 당초 한 달을 쉬려 했지만, 일주일 만에 좀이 쑤셔 견딜 수가 없었다는 그는 차기작으로 KBS 2TV 새 월화드라마 <연애의 발견>을 점찍고 한창 촬영에 몰두하고 있다. 올해만 세 작품 째다.

그간 자신이 겪었던 주연 배우들의 면면을 떠올리며 "후배들이 '저 선배처럼 되고 싶다, 진짜 잘한다'고 생각하는 '진짜 주연'이 되고 싶다"고 미소 지은 윤현민. 이내 "마냥 돈을 벌기 위해 연기하는 게 아니다. 성취감이 있어야 한다"라며 "성취감을 위해선 배우로서 스펙트럼을 넓혀가야겠다는 생각이 크다"고 힘주어 말했다. '진짜 주연'이 되어 홈런을 기록할 날, 그가 홈플레이트를 밟으며 지을 표정이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아직까지 제가 연기한 건 잘 못 보겠더라고요. 낯부끄러워서요. (웃음) 한 번은 최민식 선배님을 만나 여쭤봤는데, 선배님도 자신의 연기에 만족스러우셨던 적이 없으시대요. '죽을 때까지 못 느낄 것 같다'고 하시더라고요. 그게 맞는 것 같아요. 앞으로도 제 연기를 잘 못 보겠지만, 그래도 모니터는 해야 하니깐…. 제 연기에 낯부끄럽지 않으려면 진짜 잘해야겠죠. 잘 하는 모습 보여드리고 싶어요. 욕심도 많죠? (웃음)"

윤현민 연애의 발견 마녀의 연애 감격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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