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김강우

배우 김강우 ⓒ 나무액터스


|오마이스타 ■취재/이미나 기자| 캐스팅 단계에서부터 난항을 거듭했던 KBS 2TV 수목드라마 <골든크로스>는 시작부터 녹록치 않았던 작품이었다. 결국 주인공 역할을 품에 안은 건 배우 김강우. "드라마에서 쉽게 만날 수 없는 인물"이었다고 강도윤에 대한 첫인상을 전한 그는 "어렸을 때 막연히 '거대 권력과 맞서 싸울 수 있는 유일한 존재'라는 생각에 검사가 되고 싶다는 꿈이 있었다"며 "그런 생각이 은연중에 작품을 고르는 데 영향을 미쳤을 수도 있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렇게 시작한 <골든크로스>는 머리채를 잡히고, 목을 졸리고, 구타를 당하는 등 배우 김강우의 '수난시대'가 되어 버렸다. 심지어 생매장까지 당했으니 '생고생 5종 세트'라 불리는 것도 이해할 만하다. 게다가 김강우의 최근 필모그래피에는 '돈의 맛'을 아는 이들에게 부림을 당하거나 '찌라시' 하나 때문에 고군분투하는 인물들로 즐비했다. '계속해 코너에 몰리는 인물만을 연기한다'는 평에 미소 지은 김강우는 "일부러 몸이 고달픈 역할을 고르는 건 아니다"라고 답했다.

"그런 게(몸이 고달픈 역할이) 재미있다고 느끼는 것 같아요. 모든 걸 갖춰놓고 그 안에서 활동하는 인물들 보다는, 우여곡절이 많은 인물을 표현하는 데 재미를 느끼는 거죠. 그런데…이제는 하면 안 될 것 같아요. (고생하는 역할에) 너무 특화되고 전문가화되는 것 같아서요. 평생 그런 것만 하면 어쩌지? 재미없잖아요. (웃음)"

좀 '떴다' 싶으면 영화에만 '올인'하는 일부 배우들과 달리, 김강우는 영화와 드라마를 오가며 고루 활동하고 있다. 여기에는 이유가 있다. "영화에서 못 쓰는 순발력을 쓸 수도 있고, 개인적으로 '영화만 하면 내가 너무 나른해지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한다"는 김강우는 "한 번씩 나사를 조여 주는 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배우로서 균형을 잡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뜻이었다. 그래서 인터뷰 내내 그가 강조한 단어도 '균형' '중심'이었다.

"'드라마 스태프는 늘 혹사당한다'고? 인식 변했으면"

 배우 김강우

"농담으로 '연말 시상식에 상을 받았으면 좋겠다'는 말을 했지만, 사실은 작가님이나 감독님, 아니면 <골든크로스>라는 작품이 상을 받았으면 좋겠어요. 무슨 대단한 사명감이 있어서가 아니라, 풍성한 작품을 하고 싶은 욕심 때문이에요." ⓒ 나무액터스


돌이켜 보면 <골든크로스>를 택한 이유 중 하나도 그만의 균형 감각 때문이다. "어떤 사람은 '사회파 배우가 될 거냐, 정당에 입당할 거냐'고 묻기도 하는데, 그런 거 없다"며 미소 지은 김강우는 "과거 <인간시장> <모래시계> 같은 드라마는 '우리들의 삶은 어떤가' 물음표를 던져 준, 생각할 거리를 준 드라마들이었다"며 "그런데 요즘엔 개인의 행복을 다룬 드라마가 대다수고, 후련하게 (사회에) 할 말을 해 주는 드라마가 없었던 것 같다"고 안타까워했다.

"드라마의 기능 중 이것도 하나의 축이거든요. 이런 드라마가 사장되긴 너무 아깝다고 생각했어요. 사실 인생을 살면서 누가 강도윤처럼 그렇게 분노하고 외치고 절규하겠어요. 그게 리얼리티가 떨어진다고 생각하면서도 한 건, 제가 (감정을) 토해내는 걸 보고 통쾌해 할 사람들이 있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었어요. 이런 드라마들이 사랑을 받아야, 작가님들도 용기를 내서 (드라마를) 쓰지 않을까요? 편하고 재미있는 드라마만 하는 건 드라마의 역할이 아닌 것 같아요. 드라마는 지금의 삶을 표현하는 최전방에 있는 거잖아요.

농담으로 '연말 시상식에 상을 받았으면 좋겠다'는 말을 했지만, 사실은 작가님이나 감독님, 아니면 <골든크로스>라는 작품이 상을 받았으면 좋겠어요. 무슨 대단한 사명감이 있어서가 아니라, 풍성한 작품을 하고 싶은 욕심 때문이에요. 방송사나 시청자가 이런 작품을 뚝심 있게 해 오신 분들께 상도 주고 응원도 해 줬으면 좋겠어요. 시청자 입장에서도 그래야 다양한 작품을 볼 수 있을 테니까요. 영화계에서 저예산 영화, 다양성 영화를 응원하는 것과 마찬가지 개념으로 봐 주셨으면 해요."

동시에 김강우는 '열악한 드라마 제작 환경'에 대해 반복되는 이야기들에도 안타까움을 표했다. "항상 사람들은 드라마 얘기를 하면 '개선되어야 할 열악한 환경'이라는 말을 한다"고 조심스럽게 운을 뗀 김강우는 "물론 (환경이) 개선되면 좋겠지만, 그 안의 사람들이 (환경 때문에) 불행한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인터뷰에 '힘들었다'는 말이 안 쓰였으면 좋겠다"라고도 했다. 드라마 종영 이후 SNS에 글을 남겼던 것도 같은 맥락이었다고 했다.

"저는 드라마 스태프가 정말 대단한 예술가들이라고 생각해요. 보통 며칠씩 밤을 새요. 쉬고 싶겠죠. 그런데도 카메라 앵글이 이상하고, 조명이 이상하다고 '다시 가자'고 해요. 그런데 그걸 싫어하는 사람이 누구 하나 없어요. 더 좋은 작품을 만들고 싶은 거죠. 그게 그들의 전제에요. 작가님은 며칠 밤을 새고도 계속 수정고를 보내 주시고, 감독님도 머리를 싸매고 찍어요. 그래놓고 또 편집실에 가고, 배우들은 그걸 또 열심히 외워서 찍고.

그게 다 재미있어서 그런 거예요. 게임하면서 며칠 밤새는 것과 같은 거죠. 물론 미국처럼 여유 있게 사전제작을 할 수 있으면 더 좋겠죠. 하지만 이렇게 순발력 있게, 본능적으로 촬영하는 게 또 우리의 힘이기도 해요. '어떻게 이렇게 촬영하지?' 싶어도 생각해 보면 다들 그래요. '사랑해서 하는 일'이라고. 그런데 왜 그런 부분은 간과되고, 혹사되고 이용되는 것처럼만 비춰지는지 모르겠어요. 같이 고생해 좋은 작품을 만든 사람들이잖아요. 그들이 혹사되는 존재가 아니라, 같이 작품을 만들어가는 '예술가'로 여겨졌으면 좋겠어요."

"배우의 삶 따로 있는 것 아냐...보편적인 정서에 삶 맞춰야죠"

 배우 김강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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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우 김강우

"연기를 해도 항상 (전작과) 반대인 게 끌리더라고요. 길게 보면 연기를 오래 하고 싶어 그런 것일 수도 있고, 또 당장 제가 연기하기 편하려고 그런 것도 있는 것 같아요." ⓒ 나무액터스


무엇에 크게 빠지지도, 혐오하지도 않는다. 신문도 일부러 보수 성향과 진보 성향을 다양하게 본다고 했다. 아버지로부터 '깔끔 떠는' 성격을 물려받았지만, 종종 편한 집을 떠나 민소매 티 한 장으로 며칠을 버틴다. 이렇게 의식적으로 중간을 찾아가는 것이 김강우가 사는 법이다. "나를 객관화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는 그는 "그런 것들이(균형을 찾는 것이) 점점 나를 만들어가는 과정인 것 같다"고 했다.

"연기를 해도 항상 (전작과) 반대인 게 끌리더라고요. 길게 보면 연기를 오래 하고 싶어 그런 것일 수도 있고, 또 당장 제가 연기하기 편하려고 그런 것도 있는 것 같아요. (앞으로) 어떤 걸 할지 모르는 상태다 보니 몸도…어떤 영화 때문에 제가 항상 왕(王)자가 딱 있고 '갑바'가 있고…그런 사람으로 생각하실 텐데 절대 아니에요. 평소엔 그냥 평범한 30대에서 조금 살이 빠진 정도죠. 그래야 역할에 맞게 빼기도 좋고 찌우기도 좋으니까요. (웃음)"

"사실 옛날엔 연기가 재미없었고, 늘 나에게 재능이 있는 건지 의심했다"는 김강우는 "다행히 3년 전쯤부터 (연기에) 재미를 느꼈고, 평생 해도 안 질리겠다는 믿음을 갖게 됐다"고 했다. 그러면서 목표도 생겼다. '50대의 멜로'다. 영화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에 나오는 것 같은 멜로를 찍을 수 있을 때까지, 마음은 '아저씨'의 그것이 될지라도 겉모습만은 매력적이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동시에 삶에선 평범함을 추구하고 싶단다. '미중년'을 꿈꾸는 배우의 '평범한 삶' 예찬이라니, 마지막까지 김강우의 '균형 감각'은 비범했다.

"배우 생활을 하면서 가장 마음속에 두고 있는 건 '나를 객관적으로 보자'는 거예요. 또 '평범하게 살자'는 거고요. '배우니까' '배우이기에' 같은 말은 제 인생에서 다 빼자고 생각하고 있어요. 가끔 '왜 일찍 결혼했어요?'냐는 질문을 받아요. 저는 그럼 '왜요? 33살의 성인 남자가 결혼한 게 잘못됐어요?'라고 묻죠. 보편적인 정서에 삶을 맞춰야죠. 배우의 삶이 따로 있는 건 아니니까요."

김강우 골든크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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