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스타 ■취재/이선필 기자·사진/이정민 기자| 생태계 평형과 균형을 위한 필수불가결의 조건은 바로 '다양성'이다. 절대 강자는 없다. 주어진 환경에서 저마다 특징을 지닌 채 삶을 충실히 살아가는 모든 종이 존재이유가 있는 것이다.

윤진서는 한국 영화계에서 전형적인 스타 혹은 배우와는 거리가 멀어보인다. 스스로는 "평범한 배우"라 항변하지만 타인들은 종종 그녀를 두고 '독특한', '신비한'의 틀로 바라보곤 했다. 그런 사람들에게 윤진서는 외친다. "저같은 배우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으면 좋겠어요!"

윤진서의 최근 행보를 보면 한결 힘을 뺀 느낌이다. 장률 감독의 <경주>와 가벼운 멜로물 <산타바바라>를 택한 것에서 알 수 있다. 특히 <산타바바라>에서 맡은 캐릭터 이름이 윤진서의 본명이기도 한 수경이라는 점을 기억하자. 연출을 맡은 조성규 감독이 윤진서에게서 최대한 자연스러움을 뽑으려 했다고 읽을 수 있다. 수경이 광고 일을 하는 커리어우먼이라는 설정만 제외시킨다면 <산타바바라>는 여러모로 배우 이전의 사람 윤진서를 느낄 기회다. 

"극 중 캐릭터, 나와 닮아서 이름도 수경으로"


영화의 줄거리는 간단하다. 광고 AE 수경은 광고 작업을 위해 음악 감독 정우(이상윤 분)를 만난다. 절대로 함께 일하는 사람과 사적인 감정으로 엮이지 않는 게 원칙이었던 수경은 자신도 모르게 정우에게 끌린다. 일과 사랑, 그 사이에서 부침을 겪으며 두 사람은 성숙해 간다.

"관객들이 최대한 자연스럽게 정말 자연스럽게 느꼈으면 좋겠어요. 우리 주변에 수경 같은 사람이 존재한다고 느끼도록 하고 싶었어요. 너무 자연스러워 오히려 영화처럼 안 보일까봐 그게 고민이었어요. 또 이상윤 오빠와 로맨스가 있잖아요. 전문인이면서 동시에 이성적인 매력도 보여야했죠."

오랜 시간을 알아왔던 조성규 감독이 어느 날 윤진서에게 연락을 해왔고, 시나리오를 보냈다. 미국 캘리포니아 주에 있는 마을 산타바바라를 검색하던 중 윤진서는 "친한 사람들이 만나 함께 영화를 해보는 것도 좋겠다"고 생각했단다.


"원래 극 중 이름이 수경은 아니었는데 감독님이 저와 닮았다며 각색한 거예요. 전 잘 모르겠는데... 와인을 좋아하고, 뭔가 똑 부러지게 얘기하는 점이 닮았다고 생각하셨을까요? (웃음) 그간 제가 전작에서 밝은 역할을 많이 못했는데 평소의 제 밝은 모습을 보시고 연락하신 거 같아요. 근데 사실 상윤 오빠가 본인의 캐릭터와 더 닮았어요. 싱크로율 100프로예요!"

영화의 첫 주연을 맡은 이상윤이 어색하진 않았을까. 윤진서는 "오빠가 드라마를 오래해서 이쪽 시스템을 잘 모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는데 바로 적응하시더라"며 "첫 주연이고 나이 또한 있다 보니 책임감을 느끼셨던 거 같다"고 당시 소회를 전했다.

"이번 영화가 제겐 약간은 휴식 같았어요. 남녀 사이의 설렘을 소재로 감정선을 잡아야 했고, 촬영은 물론 똑같이 고된 작업이었지만, 뭔가 채워가면서 했다는 느낌이었죠."

"여행 기억 살려 소설의 형식 빌린 기행문 쓰는 중"


일상의 윤진서는 보다 자유롭다. 4년 전엔 친구와 함께 카페를 운영하며 종종 일을 돕기도 했고, 그 친구가 아일랜드로 떠나자 자신도 짐을 싸서 유럽의 이곳저곳을 다니기도 했다. 인터뷰 중에도 "이젠 북유럽에 가봐야겠다. 분위기가 더욱 자유로운 거 같다"고 말할 정도로 떠남에 있어서 윤진서는 충분히 열려있었다.

그래서일까. 그녀는 저예산, 독립영화를 비롯해 상업 영화까지 오가며 작품을 해왔고, <경주>에선 직접 박해일 등의 캐스팅을 도맡을 정도로 열성을 보였다. 연기자 생활을 하면서 자신의 감성을 담은 산문집을 냈고, 현재 또 하나의 책을 준비 중이다. 삶의 치열함을 느끼며 충실하게 움직이다보니 어느덧 윤진서는 서른의 초반을 지나고 있었다.

"20대 후반엔 제가 좀 많이 놀았죠. 한국에 거의 없었어요. 남유럽에 5개월, 미국에 1년 정도 있었죠. (그때의 기억을 살려) 이번엔 소설의 형식을 빌린 기행문을 쓰고 있어요. 상상 속의 일기장이랄까요. 글을 쓰면서 맘껏 놀았어요. 제가 여행지에서 현지 친구들을 잘 사귀는 편이거든요. 영화 일을 했으니 세계 어느 대도시에 가도 아는 사람들이 있더라고요. 그런 게 즐거워요. '<올드보이>에 나왔던 배우'라고 알려져서 사람들 만나는 게 수월하더라고요.

오지를 가면 자연을 보며 마음을 비워내요. 많이 걷다가 지치면 자고, 일어나면 또 걷죠. 반면 도시를 찾으면 사람들을 만나 문화와 영화 얘기를 해요. 그럴 땐 또 촬영 스케줄 소화하는 것처럼 바빠요(웃음). 지난달에는 바다에 가서 한참을 멍하니 있었거든요. 비워내서인지 그 다음 달에 책을 50권이나 봤어요. 역시 사람은 비워야 채울 수 있다는 걸 한 번 더 깨달았죠."


모든 게 일련의 흐름이었다. 굳이 독립영화를 해봐야지 생각하지 않고, 자신이 할 수 있는 게 있으면 참여하는 게 윤진서의 작업 방식이다. "너무 느긋해 보여 주위에선 오히려 조급함을 가지라고도 한다"며 웃는 윤진서의 모습에서 그녀만의 삶의 철학을 느낄 수 있었다.

"<산타바바라>의 내용처럼 함께 일을 하는 과정에서 연애 감정을 느껴보고도 싶고, 싸우며 정드는 경험도 하고 싶죠. 여자의 로망 아닐까요. 여배우로서 할 수 있는 역할이 적었기에 쉴 때가 있었고, 사람의 따뜻함이 그리워 <산타바바라>를 하기도 했어요. 그리고 상업 영화를 할 땐 또 제가 가진 에너지를 다 쏟아부었고요. 정해놓은 건 없어요. 이 모든 게 우연의 결과죠."

윤진서의 차기작은 상업 영화 <태양을 향해 쏴라>다. 강지환과 호흡을 맞춘 이 작품에서 윤진서는 밤무대를 전전긍긍하는 재즈 가수 역을 맡았다. 매혹적인 재즈 선율에 맞춰 노래하는 그녀의 모습은 또 어떨까. '평범함과 자연스러움 속 특별함'. 윤진서만이 보일 수 있는 매력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