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그녀>의 한 장면.

영화 <그녀>의 한 장면 ⓒ UPI 코리아


|오마이스타 ■취재/이선필 기자| 최근 영국의 한 대학교 연구실에서 13세 수준으로 생각하고 대화하는 대화 프로그램 '유진'을 개발했다. 단순한 데이터베이스의 확률적 반복이 아닌 인공지능의 아버지라 불리는 앨런 튜링이 고안한 '튜링 테스트'를 통과한 첫 사례라 의미가 깊다면서 말이다. 그간 명멸해갔던 무늬뿐인 인공지능과 비교했을 때 분명 획기적인 사례로 보인다.

그럼에도 인간은 외로움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이건 확신할 수 있다.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과학은 하루가 다르게 첨단화되지만 본질적인 외로움은 사실 기술로는 어찌할 수 없는 문제 아니던가.

스파이크 존즈 감독의 신작 <그녀(Her)>에 등장하는 OS(운영체제, Operating System) '사만다'는 그런 의미에서 테오도르(호아킨 피닉스 분)에게 유일한 희망이었을지 모른다. 유진이 업그레이드를 거듭하면 사만다가 될지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처와 이혼한 돌싱남의 마음을 달래기엔 머나먼 '그녀'일 뿐, 인간의 감정을 느낀 이 급진적 운영체제는 너무도 빨리 인간의 마음을 추월했고 외로운 한 남자의 곁을 무심하게 떠났다.

<그녀>는 지난 5월 22일 국내에서 개봉한 지 한 달이 되지 않았지만 벌써 20만 명의 누적 관객을 기록했다. 다양성 영화로 분류돼 상업영화의 10분의 1 정도의 상영관 수로 이룬 성과다. 비슷한 조건에서 국내 저예산·독립영화가 1만 명의 관객을 모으면 성공이라 평가받는다는 사실을 기억하면 놀라운 흥행이라고 할 수 있겠다. 장기흥행 분위기를 타는 차에 <오마이스타>는 스파이크 존즈 감독과 서면 인터뷰를 진행했다. 이 문답은 국내 영화 전문지 등에도 일부 실린 내용임을 밝힌다.

<그녀>는 미래 예측한 영화?..."통렬한 고독 담고 싶어"

 영화 <그녀>의 촬영 현장. 스파이크 존즈 감독이 보인다.

영화 <그녀>의 촬영 현장. 스파이크 존즈 감독이 보인다. ⓒ UPI 코리아


- 이 작품은 당신이 시나리오와 연출을 맡은 첫 번째 영화다. (그의 전작 <존 말코비치 되기> <어댑테이션> 등은 작가 찰리 카우프만과 함께했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그녀>는 비평가들에게 공격당하기 쉬울 수도 있다.
"한편으로는 맞다. 하지만 내 영화는 매우 개인적인 작품이다. 찰리와 함께 만든 것도 마찬가지다. 내가 시나리오에 이끌릴 때는 내게 의미 있는 아이디어를 발견할 때다. 찰리든 모리스 센닥(<괴물들이 사는 나라>의 작가)이든 영화를 만들겠다고 생각하면 이들과 관계를 맺고 아이디어를 나누는데 이것들 모두 개인적인 부분에서 출발했다."

- <그녀>에 등장하는 세계는 일반적인 SF에서 볼 수 있는 전형적으로 기술적이고 미래지향적인 모습은 아니었다.
"이 영화가 따뜻하고 다채로웠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시나리오를 쓰려고 자리에 앉기 전부터 여러 가지를 메모했는데 그중 하나가 '잠바 주스'였다. 물론 영화가 주스보다 훨씬 아름답다고 생각하지만, 잠바 주스의 다양한 색채와 깨끗함에서 시작된 것이기도 하다.   

물론 전통적인 조사도 했다. 앞으로 유리 제품이 어떻게 변할 것이며 그것이 모니터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지 등 말이다. 나노테크놀로지는 이론적으로 흥미로웠고 보기에도 좋았지만 매우 차가운 느낌이라 영화에 넣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다 버렸다. 우리 이야기를 위한 미래의 모습을 만들어내면 됐지, 미래가 어떻게 될지 생각할 필요는 없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야기를 위해 표면적으로는 외로움과 고독에 이상적인 환경을 만들고자 했다. 아주 고통스러워 보일 정도로 말이다."
  
스칼렛 요한슨의 목소리 연기..."큰 도전이었다"

 영화 <그녀>의 촬영 현장.

영화 <그녀>의 촬영 현장 ⓒ UPI 코리아


- 테오도르와 사만다(스칼렛 요한슨 분)의 상호 작용은 어떻게 촬영하게 된 건가. 이렇게 섹시한 배우를 화면에 등장시키지 않다니 너무한 거 아닌가.
"원래 '그녀' 역은 사만다 모튼이었다. 실제로 그녀는 매일 촬영장에 있었다. 호아킨은 그녀의 목소리를 듣고, 그녀는 호아킨 피닉스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연기했지만 후반 작업에서 다시 캐스팅했다. 사만다 모튼과 함께한 작업이 '그녀'의 캐릭터나 영화에 딱 맞는 게 아님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스칼렛이 영화에 나오지는 않지만 그녀의 DNA는 영화에 있다. 호아킨의 연기에 그녀가 녹아있기 때문이다. 스칼렛을 캐스팅한 이후 녹음실에서 우린 다시 테오도르와 OS 사만다의 친밀함을 만들어냈다. 내 생각에 스칼렛도 목소리 연기에 재미를 느꼈을 것 같다. 사만다에 대해 스칼렛에게 '세상에 처음 나오는 캐릭터인 만큼 '그녀'는 두려움과 불안함을 알지 못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스칼렛이 '이거, 어려워지겠군요'라고 말하기도 했다.

우리는 그녀를 매주 불러서 토요일에 12시간, 일요일에 12시간씩 일했다. 우리가 작품을 파고들수록 스칼렛 역시 캐릭터 속에 들어갔다. 사만다라는 캐릭터의 범위와 깊이 자체도 큰 도전이었지만 이 모든 게 스칼렛 목소리에서 나와야 한다는 건 더욱 도전이었다."

- 호아킨 피닉스의 연기도 인상적이었다. 배우로서 그가 특별한 점은 무엇이라 생각하나.   "그는 연기하는 방법을 모른다. 겸손한 척하는 게 아니다. 진짜로 그는 연기를 방법론으로 접근하지 않는다. 장면과 어떻게 어우러질지, 무엇을 연기할지 등을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 암흑에서 방황하는 건 두려운 일이다. 그래서 그는 항상 긴장한다. 호아킨은 절대 '전에 해봤으니 이렇게 하면 되겠네요'라고 말하지 않는다. 어떠한 분석도 없이 그저 자신의 본능에 의지한다."

"<그녀>에 대해 다양하고 상반되는 감상 느끼길 원해"

  영화 <그녀>의 한 장면.

영화 <그녀>의 한 장면 ⓒ UPI 코리아


- 영화를 통해 결국 사랑과 관계에 대해 말하고 싶었나. 로맨틱한 느낌도 주고 싶었던 것 같다. 
"그런 질문을 던지려는 의도는 있었지만 간단히 답할 수는 없다. 이 영화는 우리가 현대를 사는 방식에 대한 모든 주제를 건드리고 있다. 타인과 관계 맺기를 원하는 마음과 동시에 그걸 방해하는 우리 안의 또 다른 마음 말이다. 아마 우리가 존재하는 동안 그런 마음은 항상 있었을 것이다. 흥미로운 건 사람들과 얘기해보니 영화에 대한 의견이 다양하다는 점이다. 로맨틱하다는 사람도 있고, 슬프고 우울하다고도 하고, 섬뜩하다거나 아니면 희망에 차있다고 말하기도 한다.

이런 반응이 날 행복하게 한다. 내게 <그녀>는 그 모든 반응을 뜻하기 때문이다. 앞서 개인적인 작품이라고 말했듯 우리가 현대 기술과 더불어 사는 방식을 생각하면서도 관계 속 나에 대해 더 생각하게 됐다. 그 안에서 뭔가 의미를 끌어내려고 했다."

- 인공지능 제품이 슬프고 우울한 남자의 인생에 와서 사랑을 가르친다는 설정이 재미있었다. 테오도르가 인터넷회사에서 편지 대필 작가로 일한다는 설정도 흥미롭고.
"재밌지만 그녀가 그에게 어떤 것을 가르치려고 한 건 아니다. 그녀는 그저 인생을 살아가는 거다. 그와 함께하면서 그녀는 그에게 영감을 주기도 하고 화나게 하기도 한다. 그녀의 감정은 그녀에게는 진짜이기 때문이다. 테오도르가 자신의 삶을 바라보는 시각에서 벗어나서는 타인을 알 수 없는 것처럼 영화 속 그의 방식으로는 그녀를 궁극적으로 알 수 없다.

우리는 누구나 관계를 맺을 수 있고, 궁극적으로 그건 우리가 뛰어넘어야 하는 것이기도 하다. 물론 사만다는 컴퓨터 안에 살고 있다. 그렇다고 그녀의 자각이 다른 어떤 자각보다 열등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테오도르의 직업은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하고 나서야 결정했다. 그 역시 사람들의 삶에 있는 운영체제라는 것을 깨달았다. 사람들의 삶에서 그들을 돕고 있다는 면에서 말이다. 그래서 지금의 직업이 나온 거다. 웃긴 설정이지 않나? 사람들이 자기 개인적인 면에서까지 용역을 쓴다는 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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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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