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좋은 시절>의 한 장면

<참 좋은 시절>의 한 장면 ⓒ KBS


40%의 시청률을 넘나들었지만 막장 논란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던 KBS 주말드라마 <왕가네 식구들>이 종영한 후 <참 좋은 시절>이 등장했다. MBC <오로라 공주>도 그랬고 잘 나갔던 막장 드라마 후속작은 일반적인 드라마와는 또 다른 부담을 안고 시작하게 된다. 전작의 막장과는 다른 새 드라마의 가치를 증명해내야 하는 것과, 전작만큼의 시청률은 유지해야 한다는 점이 그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방영 2회 만에 시청률 30%를 넘은 <참 좋은 시절>의 출발은 순조로운 듯하다. "<왕가네 식구들>이 스피드 스케이팅이라면 <참 좋은 시절>은 제한된 시간 안에 소소한 몸짓으로 점수를 얻는 피겨 스케이팅 종목"이라고 규정한 김진원 PD의 말처럼, 이 드라마는 나름의 차별성을 각인시키는 중이다.

가족이란 존재의 무거움, 이경희 작가의 일관된 소재

 최근 종영한 KBS 주말드라마 <왕가네 식구들>.

최근 종영한 KBS 주말드라마 <왕가네 식구들>. ⓒ KBS


<참 좋은 시절>은 그간 주중 미니시리즈만 집필해오던 이경희 작가가 2000년도의 <꼭지>이후 모처럼 돌아온 주말극이다. 이미 <고맙습니다>를 통해 가족 간의 사랑을 절절하게 그려 전 국민적 사랑을 받은 이경희 작가에게, 주말 드라마는 어찌 보면 생소하거나 도전해야 할 장르이기보다 조금 더 풍부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놓을 수 있는 또 다른 장이라 볼 수 있다.

이경희 작가 작품의 주인공들은 대부분 가족으로 부터 시작된 해원의 희생자들이곤 했다. <미안한다 사랑한다>에서 갈등의 시작은 엄마 오들희(이혜영 분)의 숨겨진 아들이었던 차무혁(소지섭 분)이란 존재였다. <크리스마스엔 눈이 올까요>도 다르지 않다. 차강진(고수 분)과 한지완(한예슬 분)의 슬픈 사랑의 시작은 그의 부모 차춘희(조민수 분)와 한준수(천호진 분)의 비극적 관계로 부터 나왔다.

<참 좋은 시절> 역시 다르지 않다. 강동석(이서진 분)의 어머니 장소심(윤여정 분)이 차해원(김희선)의 집에서 가정부로 일하면서 갈등의 씨앗은 뿌려진다. 차해원을 좋아하지만, 자신이 가족들이 차해원의 어머니에게서 받는 수모를 견뎌내기 힘든 강동석은 이경희 월드에서 그리 낯선 인물이 아니다. 혼자로서는 너끈히 자존감을 내세울 수 있는 존재지만 가족이란 울타리 안에 들어서면 그는 한 없이 상처를 받는 존재가 된다. 

끊고 싶지만 끊어낼 수 없는 가족이라는 이름 위에 주인공들을 상처 입히는 또 하나가 있다. 돈에 의해 재편된 인간관계가 그것이다. 가진 것 없는 주인공이 세상의 핍박을 견디지 못하고 자아를 외면한 채 기계인간과도 같은 존재로 거듭나는 건 '이경희 월드'의 또 다른 특징이기도 하다. <미안하다 사랑한다>에서 차무원이 입는 상처는 숨겨진 자식이란 사실 말고도 부잣집 사모님의 온갖 무시 때문이기도 했다.

'이경희 월드'의 진짜 주제 의식은 따로 있다

이서진-김희선-옥택연, '참 보기 좋은 선남선녀'  18일 오후 서울 논현동의 한 호텔에서 열린 KBS2TV 주말연속극 <참 좋은 시절> 제작발표회에서 강동석 역의 배우 이서진과 차해원 역의 배우 김희선, 강동희 역의 배우 옥택연이 포토타임을 갖고 있다. <참 좋은 시절>은 가난한 18살 소년이었던 한 남자가 검사라는 직업을 가진 잘 나가는 어른이 돼서 15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오게 된 이야기를 시작으로 가족의 가치와 사랑의 위대함, 내 이웃의 소중함과 사람의 따뜻함을 담아낸 드라마다. 2월22일 오후 7시55분 토요일 첫방송.

▲ 이서진-김희선-옥택연, '참 보기 좋은 선남선녀' 지난 2월 18일 오후 서울 논현동의 한 호텔에서 열렸던 KBS2TV 주말연속극 <참 좋은 시절> 제작발표회 현장. ⓒ 이정민


하지만 사회적으로 불균등한 부, 그리고 거기에 얹힌 가족 관계로부터 상처받고 발톱을 드러내는 주인공은 이경의 월드의 필요조건에 불과할 뿐이다. "피겨 스케이팅 같다"는 연출자의 말처럼 이경희 월드를 본질은 사람 냄새 풍기는 순박한 사람들이다.

'어른들을 위한 동화'를 표방했던 드라마 <고맙습니다>에 등장한 이영신(공효진 분)처럼 세상에 상처받고 자신의 딸마저 병이 있었지만 영신은 운명을 원망하기보다는 품으로 애썼다.  아직 초반이지만 <참 좋은 시절> 역시 비슷하다. 10년 만에 돌아온 자신의 쌍둥이 동생을 동네 어귀에서 하염없이 기다리는 강동옥(김지호 분)으로 대변되는 바보 같은 사랑. 그리고 잘 나가는 검사 아들 대신 못나고 부족한 동옥과 심지어 친 아들이 아닌 동희(택연 분)를 부둥켜안고 사는 장소심 여사가 바로 이경희 월드를 완성시키는 충분조건이다.

그들 역시 상처받지만 그 상처를 들고 울부짖기 보다는 내면에서 나오는 사랑의 힘으로 자신과 주변 사람들을 일으켜 세운다. 그것이 이경희 작가의 주제 의식이라 할 수 있겠다. 세상으로부터 상처받고 아파하는 주인공들은 발톱을 세우지만 결국엔 발톱 대신 화해와 사랑으로 귀결하는 것이다.

이처럼 <참 좋은 시절>은 이경희 월드의 색채를 고스란히 드러낸다. 경주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는 둥그런 고분을 배경으로 해서인지 역사의 어느 시점을 보는 것 같은 착각이 들게 한다. 배경 뿐만이 아니다. 2014년을 사는 주인공들이지만 <왕가네 식구들>의 현실적 아비규환과는 또 다른 감정을 느끼게 한다. 마치 서울의 오래된 주택가를 지나가다 마주하는 추억처럼 말이다. 점점 찾아보기 힘들어지는 사람다운 훈훈함이 <참 좋은 시절>의 기조이기 때문이리라.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이정희 시민기자의 개인블로그(http://5252-jh.tistory.com/)와 미디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게재를 허용합니다.
참 좋은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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