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저녁 CGV 춘천에서 열린 <시바, 인생을 던져> 특별상영에 앞서 관객들이 이성규 감독을 응원하는 글을 써서 종이비행기로 날리고 있다.

11일 저녁 CGV 춘천에서 열린 <시바, 인생을 던져> 특별상영에 앞서 관객들이 이성규 감독을 응원하는 글을 써서 종이비행기로 날리고 있다. ⓒ GS칼텍스 페이스북


감독이 극장에 들어서는 순간 사회자가 "시바, 비행기를 던져!"라고 외쳤다. 관객들이 가득 찬 극장 안으로 수백개의 종이비행기들이 날았고, 감독 앞으로 떨어졌다. 종이비행기 안에는 감독을 향해 관객들 한 사람 한 사람이 정성들여  빼곡히 쓴 글들이 적혀 있었다.

11일 저녁 7시 CGV 춘천에서는 특별한 시사회가 열렸다. 이름하여 '한 사람만 모르는 특별 개봉'. 오는 19일 정식 개봉을 예정하고 있는 영화 <시바, 인생을 던져>의 특별한 상영이었다. 다큐멘터리 영화 <오래된 인력거>를 만든 이성규 감독 신작인 <시바, 인생을 던져>는 인도에서 오래 생활했던 이 감독의 자전적 이야기를 담은 극영화다.

특별 개봉을 몰랐던 유일한 한 사람은 바로 이성규 감독이었다. 그는 극장에 들어서기까지 이날 상영에 대해 자세히 알지 못했다. 이 감독은 간암 말기로 호스피스 병원에 입원해 있는 상태다. 하루하루를 간신히 잇고 있는 상황에서 그의 영화가 유작이 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생각에 다큐멘터리 동료들과 주변 지인들이 팔을 걷어 붙였다. 평소 이 감독이 자신의 영화가 관객들이 가득 찬 극장에서 개봉하길 원했던 소원도 작용했다.

내일 일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에서 감독과 한 동네에 살았던 후배인 광고업체 이성용 하우즈 대표가 주변 지인들의 도움을 요청했다. 그는 지난 8일 SNS를 통해 특별 개봉 계획을 알리며 많은 분들의 관심을 부탁했고, 이 소식은 퍼져 나갔다. 이 대표와 함께 광고 작업을 했던 GS칼텍스 홍보기획팀에서 서울 관객들을 위해 왕복 교통편을 제공하겠다고 나섰고, 강원문화재단은 대관료를 지원했다.

처음 160석 극장에서 계획했던 특별 개봉은 전국에서 신청자들이 몰리면서 210석으로 늘어났다. 그러다 다시 380석 극장으로 바뀌었고, 추가로 120석 극장 하나를 더 대관해야만 했다. 서울, 경기, 강원, 울산 등에서 온 500명이 넘는 관객이 이날 특별 개봉에 함께했다.  좌석이 모자라 일부 관객은 통로에서 관람하기도 했다.

"독립예술영화 르네상스 올 수 있게 사랑해 달라" 

 11일 저녁 CGV 춘천에서 열린 <시바, 인생을 던져> 특별 상영에 앞서 관객들에게 인사하고 있는 이성규 감독

11일 저녁 CGV 춘천에서 열린 <시바, 인생을 던져> 특별 상영에 앞서 관객들에게 인사하고 있는 이성규 감독 ⓒ 성하훈


영문도 모른 체 휠체어에 이끌려 극장을 찾은 이성규 감독은 감격스러운 표정이었다. 사실 이날 감독이 관객들을 만날 수 있을지는 불투명했다. 간성혼수가 수시로 찾아오는 상태였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를 만나기 원했던 관객들과 감동적인 만남을 가졌고, 정신력으로 버티면서 영화의 시작을 흐뭇하게 바라본 후 병원으로 돌아갔다.

이 감독은 힘없는 가운데서도 "이렇게 많은 관객이 상영관을 찾아준 것은 처음"이라며 관객들에게 고마움을 나타냈다. 이어  "제 생애 잊지 못할 영화 스타트가 된 것 같다"면서 "그런데 제 인생이 얼마 안 남았다는 게 문제"라며 슬픈 감정을 감추지 못했다.

하지만 이 감독은 힘든 가운데서도 목소리에 힘을 주면서 "한국 관객들이 외국 예술영화만 사랑하지 말고 한국의 독립예술영화도 사랑해 달라"고 간곡히 호소했다. 그는 "천하에 김기덕 감독이나 홍상수 감독도 관객 2~3만이 언제 드는지 걱정한다"면서 "저예산 예술독립영화들의 르네상스가 오도록 도와 달라"고 요청했다.

 11일 저녁 CGV 춘천에서 열린 <시바, 인생을 던져> 특별상영에 앞서 관객들에게 인사하고 있는 이성규 감독을 이외수 작가가 옆에서 바라보고 있다.

11일 저녁 CGV 춘천에서 열린 <시바, 인생을 던져> 특별상영에 앞서 관객들에게 인사하고 있는 이성규 감독을 이외수 작가가 옆에서 바라보고 있다. ⓒ 성하훈


이날 상영관에는 이외수 작가도 참석해 이 감독을 성원하며 쾌유를 기원했다. 이외수 작가는 "감독이 힘을 얻기 바란다"며 "기적이 일어나길 기대하는 마음"이라고 말했다. 그는 "독립영화의 현실이 <시바, 인생을 던져>에 나오는 사막과도 같다"면서, "많은 관객들이 독립영화를 볼 수 있기를 기대하는 마음으로 적극 동참하겠다"고 덧붙였다.

이성규 감독의 <시바, 인생을 던져>는 인도에서 만난 한국 남녀들의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다. 인도 여행을 담는 외주 다큐 감독과 한국 여행자들이 인도에서 만난 사람들을 통해 고난과 시련의 연속인 인생에 대해 생각해 보는 영화다. 어려운 형편 가운데서도 탄생하는 생명과 갠지즈강에서 장례를 치르는 인도인들의 모습 등을 통해 삶에 대한 고민을 던진다.  
영화의 제목에 들어있는 '시바'는 '시바에게 귀의합니다'라는 뜻의 '옴나마 시바야'에서 따왔다. '시바'는 힌두교의 창조와 파괴의 신이다.

"감독 쾌유 응원하는 마음에 개봉 앞당겨"

<시바, 인생을 던져>는 원래 내년 개봉을 예정하고 있었으나 이성규 감독의 건강이 악화되면서 급하게 개봉 날짜를 앞당겼다. 배급을 맡고 있는 인디플러그 고영재 대표는 "다른 부분을 신경 쓸 만큼 사치스러운 상황이 아니"라며 "다만 감독님의 쾌유를 응원하고픈 마음 뿐"이라고 말했다.

그는 "일이 급하게 진행되면서 시간이 없어 언론 배급 시사회 등도 모두 생략할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인디스페이스 한 곳에서 개봉하려고 했었으나 일부 멀티플렉스 예술영화관들의 협조를 해 줘 상영관이 일부 늘어날 것 같다"고 전하고, "원하는 극장들에게는 적극 배급할 생각"이라고 덧붙였다.

 11일 저녁 CGV 춘천에서 열린 <시바, 인생을 던져> 특별 상영에서 관객들과 함께 영화를 보고 있는 이성규 감독

11일 저녁 CGV 춘천에서 열린 <시바, 인생을 던져> 특별 상영에서 관객들과 함께 영화를 보고 있는 이성규 감독 ⓒ 성하훈


이날 영화를 보기 위해 서울에서 온 한 중년 여성 관객은 "독립영화를 자주 보지는 않지만 이 감독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 찾게 됐다"며 "서울에서 개봉하는 모습도 지켜봤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나타냈다.

이 감독은 투병생활 중에 SNS를 통해 외부와 소통해 왔으나 며칠 전부터 그의 SNS는 조용해진 상태다. 감독은 지난달 말 병원의 권유에 따라 호스피스 병동으로 옮기는 걸 결정했다고 알리면서 페이스북에 이렇게 적어 놨다.

'아내와 끌어안은 채 한참을 울었다. 그리고 울음을 털었다. 울어서 달라질 건 없다. 일상처럼 웃었다. 이제 우리 가족의 일상에 나의 죽음이 들어왔다. 죽음은 나를 존엄하게 한다. 죽음은 존엄의 동반자다. 아내와 나는 그 죽음을 웃으며 맞이한다. 환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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