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결혼전야>의 한 장면. 연애 7년차, 스타 쉐프 원철(옥택연 분)과 네일 아티스트 소미(이연희 분).

영화 <결혼전야>의 한 장면. 연애 7년차, 스타 쉐프 원철(옥택연 분)과 네일 아티스트 소미(이연희 분). ⓒ 수필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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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밴드 장미여관이 부른 '장가가고 싶은 남자 시집가고 싶은 여자'란 노래가 인기다. 가사를 들여다보면 장가가고 싶은 남자는 장가 갈 돈이 없고, 시집가고 싶은 여자는 시집 갈 남자가 없다.

궁색하기 짝이 없는 가사인데도 요즘 젊은 사람들이 이 노래를 찾아 듣는다. 왜일까? 이 노래가 결혼을 한 번쯤 생각하는 젊은 사람들의 가슴을 후벼 파기 때문이다. 공감과 치유, 이 노래가 히트할 수밖에 없었던 '코드'다. 궁색해도 그것이 현실이기에.

실제로 올해 7월에 한 결혼정보회사가 예비부부 317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신혼집 마련'이 결혼 전 예비부부의 싸움을 부추기는 최고의 이유로 꼽혔다. 그 다음으로 순위를 장식한 골칫거리는 '예물·예단' , '결혼식' , '혼수' , '상견례'다. 상견례를 제외한 네 가지의 이유는 '돈'과 얽혀있다. 이것만으로도 결혼이 절대 판타지의 영역이 아님을 밝히는 데는 충분하다. 결혼은 현실이다.

로맨틱 코미디가 다루는 결혼, 결국 판타지

 영화 <결혼전야>의 한 장면

프로야구 코치 태규(김강우 분)와 비뇨기과 의사 주영(김효진 분). ⓒ (주)수필름


영화 <결혼전야>에서 프로야구 코치 태규(김강우 분)는 비뇨기과 의사인 주영(김효진 분)의 이혼 전력을 뒤늦게 알아차리고 배신감을 느껴 파혼을 선언한다. 7년을 교제한 네일 아티스트 소미(이연희 분)와 셰프 원철(옥택연 분)은 오래 만난 만큼 설렘은 무뎌졌으나 결혼은 당연지사로 받아들인다. 사실 소미는 장기 연애가 설렘 없는 결혼 생활로 이어질까 걱정하지만 원철은 소미의 고민을 해결하기보다는 다른 사람들의 사례로 그녀를 설득시키려고만 한다.

오래 된 커플들은 다들 그렇다는 주장이다. 결혼과 동시에 네일 아티스트로서의 삶도 포기하기로 약속한 소미는 마지막으로 열의를 불태우기 위해 제주도에서 열리는 네일아트 경연대회에 참가하기로 한다. 그곳에서 그녀는 여행가이드 경수(주지훈 분)를 만나고 둘은 서로에게 빠져든다.

좋은 덩치를 멜빵으로 수줍게 가린 건호(마동석 분)는 우즈베키스탄 출신 미녀 비카(구잘 분)와의 결혼을 앞두고 있는 노총각이자 꽃집 사장님이다. 그런데 그에게 성기능 문제가 생긴다. 비뇨기과 원무과장인 대복(이희준 분)은 클럽에서 춤추다 만난 이라(고준희 분)와 관계를 가졌다. 뜨거웠던(?) 관계의 결과는 이라의 임신. 둘은 급하게 결혼을 결정하는데 교제기간이 짧다 보니 이것저것 부딪치는 일들이 많다. 이라는 혼란스럽다.

영화 결혼을 결국 판타지로 미화한다. 결혼을 앞둔 네 커플에게 현실적이고 보편적인 골칫거리 하나씩을 나눠 주긴 했지만, 이는 로맨틱 코미디 장르들이 짬짜미한 결말, '해피엔딩'으로 달려가기 위한 단순 소재로 쓰일 뿐이다.

그래서 각 커플이 겪는 문제는 그다지 심각해보이지 않는다. 현실감 있는 소재들임에도 깊게 와 닿지 않고 흉내만 내는 수준에 그친다. 어쨌든 영화는 해피엔딩으로만 달려가면 된다는 것이 감독의 생각인 듯하다. 모로 가도 해피엔딩으로만 가면 기본은 한다는 로맨틱 코미디의 공식을 마냥 답습했다.

또, 출중한 외모의 배우들을 기용해 잦은 클로즈업으로 그들의 매력을 부각시키는 데에만 골몰하는 연출은 여성 감독이 감독으로서가 아닌 여성으로서 이 영화를 연출하고 있다는 생각을 부추긴다. 주지훈, 옥택연 사이를 갈등하는 이연희보다 임신과 배우자의 종교 문제로 갈등하는 고준희가 훨씬 더 현실적인데도, 영화에서는 금기시되는 로맨스의 판타지가 구질구질한 현실을 압도한다. 더 달콤해 보이는 커플이 더 많은 분량을 챙길 수 있다는 '비주얼 분량 비례의 법칙'은 이 영화에서도 통용되고 있다.

여기저기 풍기는 묘한 기류...로맨스의 남발

 경수(주지훈 분)와 소미(이연희 분).

경수(주지훈 분)와 소미(이연희 분). ⓒ 수필름


이뿐만 아니라 영화 속 인물들은 결혼을 일주일 앞둔 시점에서 자꾸 '초록 물'(그린라이트 신호)을 흘리고 다닌다. 줄거리 상 필요했던 소미와 경수를 논외로 하더라도, 비카와 원철, 주영과 대복의 묘한 기류는 로맨스 남발로 비친다. 게다가 대복의 누나인 여기자까지 원철과 인터뷰하며 군침을 흘리고 있다. 조금 과하다.

원철과 비카가 주고받는 눈빛과 대화는 요리를 가르치고 배우는 스승과 제자 사이가 아니다. 아니, 영화가 그들을 순수하게 보이지 않도록 연출하고 있다. 따라서 비카의 예비신랑인 건호가 둘 사이를 오해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 된다. 영화도 관객의 상상을 부추기기 위해 둘 사이를 연인처럼 연출하고 있지 않은가.

주영과 대복도 마찬가지다. 결혼을 앞두고 우울감에 빠져있는 주영을 달래는 사람이 느닷없이 대복이다. 대복은 신나는 음악이 나오는 헤드폰으로 주영의 귀를 덮고, 자신에게는 들리지도 않는 그 음악에 맞춰 춤을 춘다. 주영은 그런 대복을 보고 웃는다. 이 장면이 단순히 직장 상사에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 알랑거리며 춤을 추는 부하 직원의 모습으로는 보이지 않을 것이다.

영화는 그렇게 필요 없는 로맨스를 남발한다. 곰곰이 그 이유를 생각해보면 감독이 관객에게 '장르 선택권'을 쥐어주기 위해서라는 긍정적인 해석도 가능하다. <결혼전야>가 달콤한 로맨스 영화인지, 웃기는 코미디 영화인지에 대한 판단을 관객의 몫으로 남겨두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이유로 로맨스와 코미디의 분량을 엇비슷하게 맞추다보니 분명 과한 지점 몇 군데가 거슬리는 것도 사실이다.

로맨틱 코미디 영화로 <결혼전야>는 가볍게 보기에는 좋다. 영화는 여성 관객들에게 현실에서는 거의 불가능한 조합으로 보이는 옥택연, 주지훈 사이에 이연희가 될 수 있는 기회를 준다. 이연희에게 감정을 이입하기만 하면 난형난제 급의 두 남자를 저울질 할 수 있다. 또, 영화는 결혼 전의 불안한 정신 상태를 일컫는 '매리지 블루'(marriage blue)를 소재로 하면서 네 커플의 예비신부들이 겪는 심리 변화를 섬세한 시선으로 묘사하고 있기 때문에 여성 관객이 공감할 수 있는 지점이 많다.

이야기보다 배우의 외모 부각...'상품'이 된 영화

 영화 <결혼전야>의 한 장면

대복(이희준 분)과 이라(고준희 분). ⓒ (주)수필름


반대로 영화는 남자들의 내면은 깊게 다루지 않는다. 남자는 그저 묵묵히 여자의 모든 것을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하는 너른 가슴을 지닌 이들로 묘사한다. 그들은 억지로라도 멋진 남자가 되기 위해 입을 닫았다. 현실에서 장가가고 싶은 남자는 영화에서처럼 '배우자의 과거, 나를 비자 취득의 수단으로 삼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심, 성기능의 문제, 배우자와 다른 종교' 등등을 신경 쓰고도 가장 큰 장애물인 '장가갈 돈'을 해결해야 하는 것이 우선이다.

하지만 이 문제에 대한 걱정은 대복-이라 커플에만 살짝 비칠 뿐이다. 이 영화에서 결혼은 판타지이기에 이 정도의 무관심은 당연하다. 대신 남성 관객들은 마동석의 코미디에 껄껄하고 웃을 수 있다. 자칫 죽을 뻔했던 이 영화를 인공호흡 해가며 살린 배우는 단연 마동석이다. 감독의 과장되고 어색한 코미디 감각을 뛰어넘는 것은 마동석의 불꽃같은 애드리브다.

사실 로맨틱 코미디 영화라는 장르가 굳이 구질구질한 현실을 끄집어내 요리할 필요는 없다. 대중영화를 감상하는 관객의 목적은 어떤 방식이든 간에 '재미'고, 관객은 극장에서 그날 보고 싶은 영화를 골라 돈을 지불하고 자신의 감정을 분출하거나 느낌을 공감하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혼전야>는 결혼을 소재로 하고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결혼이라는 것이 영화에서 예쁜 판타지로 묘사할 정도로 지금 대한민국 현실에서 가벼운 것이던가.

몇 달 전 개봉한 장건재 감독의 영화 <잠 못 드는 밤>은 결혼 2년째에 접어든 부부의 일상을 매우 현실적으로 그려내 깊은 인상을 남겼다. 영화 속 부부는 일상 속의 소소한 행복을 함께하며 살아가지만 나름의 고민을 안고 살아간다. 그들의 고민은 바로 '아이를 낳아 키울 수 있을 것인가?'하는 현실적인 문제.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결혼을 진지한 자세로 바라본다. <잠 못 드는 밤>과 <결혼전야>, 두 영화의 소재는 결혼이다. 하지만 이야기하는 내용과 방식은 달랐다.

결혼을 판타지로 다루는 수많은 로맨틱 코미디의 동어반복이라면 굳이 <결혼전야>가 현 시점에서 같은 목적으로 제작될 이유는 없다고 생각한다. 제작의 변은 당연히 커플들이 달라붙는 겨울 시즌을 노린 기획 영화라는 것일 게다. 하지만 그 제작의도가 한 시즌을 노려 관객의 마음과 돈을 훔치는 철저한 기획 영화라 하더라도 기대 수준의 완성도를 채우는 것은 관객의 지불력이 필수인 영화란 예술이 갖춰야할 기본이다.

그런데 <결혼전야>는 보는 내내 산만한 분위기와 장르 인식을 위해 억지로 부딪히고 맺어지는 인물 관계를 보여주고, 이야기보다는 배우의 외모를 부각시키는 연출법을 택하면서 한 몫 노린 '상품'에 그치고 말았다.

영화가 다양한 매력의 배우를 동원해 관객몰이에는 성공했을지 모르지만, 이 영화를 기억에 남길 관객은 특정 배우의 팬들을 제외하고 많지 않을 것 같다. 영화는 배우를 자신의 이야기를 대신 말해줄 메신저로 활용해야 한다. 단순히 그림을 예쁘게 만들 모델로 활용해서는 안 된다. 영화가 CF가 아니듯, 배우도 단순히 영화를 예쁘게 만들 목적으로 쓰이는 모델이 아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종길 시민기자의 개인블로그(http://jksoulfilm.tistory.co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결혼전야 마동석 주지훈 이연희 옥택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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