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니앤클라이드 보니앤클라이드를 연기하는 엄기준과 리사

▲ 보니앤클라이드 보니앤클라이드를 연기하는 엄기준과 리사 ⓒ 엠뮤지컬


<오마이스타>는 스타는 물론 예능, 드라마 등 각종 프로그램에 대한 리뷰, 주장, 반론 그리고 인터뷰 등 시민기자들의 취재 기사까지도 폭넓게 싣고 있습니다. 언제든지 '노크'하세요. <오마이스타>는 시민기자들에게 항상 활짝 열려 있습니다. 편집자 말

범죄자가 뮤지컬의 주인공으로 등극했다. 1930년대 실존했던 2인조 강도 보니와 클라이드의 이야기를 그리는 <보니앤클라이드>는 1960년대 영화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를 토대로 만들어진 무비컬(무비+뮤지컬)이다.

그렇다고 이야기 구조가 영화와 판박이 구조로 빼닮지는 않았다.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는 보니와 클라이드 외에 벅과 모스, 블랑슈 세 명이 범죄에 합세하지만, 뮤지컬에서 보니와 클라이드에 합세하는 이는 벅과 블렌치 두 명으로 압축되어 표현한다. 영화에 있는 모스의 아버지는 뮤지컬에 나오지 않는다. 모스라는 캐릭터가 뮤지컬에서는 아예 묘사되지 않기 때문이다.

인물을 간결화하는 대신에 뮤지컬은 보니와 클라이드의 사랑에 방점을 찍는다. 뮤지컬이라는 장르가 사랑을 먹고 사는 데 익숙한 장르이기 때문일까. 기자간담회 당시 "많은 뮤지컬 무대에 출연했지만 이토록 키스신이 많은 뮤지컬은 처음이었다"는 뮤지컬 배우 안유진의 발언은 빈 말이 아니었다. 범죄를 다루는 이야기임에도 보니와 클라이드 두 사람이 사랑이라는 유대감으로 얼마나 단단하게 묶여졌는가를 농염한 키스 장면과 같은 연출로 보여주고 있었다.

보니의 사랑은 교통사고와도 같다. 하필 한 눈에 필 꽂힌 남자가 많고 많은 남자 중에 보니의 차를 훔치려 한 클라이드였으니, 차 도둑을 매몰차게 내쫓으려다가 그만 마음을 도둑맞고 만다. 여성이 나쁜 남자에게 마음을 빼앗기는 경우는 요즘의 경향만은 아닌 듯하다.

1930년대 미국 대공황 시대가 낳은 범죄자들에 대한 연민 

보니앤클라이드 보니앤클라이드를 연기하는 샤이니 키와 천상지희 다나

▲ 보니앤클라이드 보니앤클라이드를 연기하는 샤이니 키와 천상지희 다나 ⓒ 엠뮤지컬


다른 사람의 돈을 빼앗고 심지어는 살인을 하는 강도 커플의 이야기를 관전하는 중에 관객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보니와 클라이드에게 감정이입하기에 이른다. 이들이 범죄자임에도 불구하고, 그 전에는 사회적으로 보호받지 못하는 경제적인 취약 계층이라는 '언더독 법칙'에 근간하기 때문이다.

감옥에서 탈옥하기를 반복하는 클라이드의 주변에는 나쁜 교도관이 서성인다. 감옥에 있는 클라이드에게 면회 온 보니의 허벅지를 더듬어 숨겨놓은 담배를 빼앗는 이는 다름 아닌 교도관이다. 동료 죄수에게 얻어맞는 클라이드를 보고도 담배 한 갑의 뇌물로 못 본 채하는 파렴치한 역시 교도관이다.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자신에게 총을 겨눈 경찰에게 발포하고 보니에게 괴로움을 토로하는 이가 클라이드니, 아무리 강도를 일삼는 범죄자라 하더라도 연민의 감정을 느낄 수밖에 없다.

경제적인 취약 계층이라는 관점으로 살펴보자. 강도가 되기 전에 보니는 할리우드의 스타를 꿈꾸고 15살에 프로필 사진을 찍어보지만 남는 건 웨이트리스로 연명하는 삶이다. 클라이드는 빌딩 숲 아래 다리 밑의 천막촌에서 3년 동안 사람대우를 받지 못한 채 살아가야만 했다.

정상적인 노력만으로는 신분 상승이 제대로 이뤄질 턱이 만무한 대공황이라는 시대적인 암울함 가운데서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노력하다가 범죄에 발을 들여놓는 보니와 클라이드는 '안티 히어로'임에 틀림없었다.

보니앤클라이드 보니앤클라이드를 연기하는 한지상과 안유진

▲ 보니앤클라이드 보니앤클라이드를 연기하는 한지상과 안유진 ⓒ 엠뮤지컬


1930년대 당시의 미국이 대공황이라는 어려움 가운데서도 사회적인 보장망이 확충되는 나라였다면, 혹은 땀 흘린 노력의 대가만큼 경제적인 신분 상승이 가능한 사회였다면 보니와 클라이드는 어쩌면 총을 겨누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두 사람은 정상적인 경제적 상승을 차단 당한 사회가 낳은 범죄자가 아닐까 하는 측은함이 드는 건, 시민을 보호하지 못한 사회가 비단 대공황 시대의 미국만은 아닌 듯한 씁쓸함 때문이었다.

요즘 영화를 보면 <숨바꼭질>과 <설국열차><엘리시움> 등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코드를 찾아볼 수 있다. 그건 바로 신분 상승에 대한 욕구가 이들 영화에 반영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뮤지컬 가운데서 신데렐라 이야기는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지만, <보니앤클라이드>처럼 신분 상승에 대한 욕구가 반영되는 뮤지컬은 드문 경우에 속한다. 신분 상승 욕구라는 점에 비추어 볼 때 <보니앤클라이드>는 앞의 영화들을 닮았다.

어리바리하던 '아기병사' 박형식에게 이런 남성미가

보니앤클라이드 보니앤클라이드를 연기하는 제국의 아이들 박형식과 안유진

▲ 보니앤클라이드 보니앤클라이드를 연기하는 제국의 아이들 박형식과 안유진 ⓒ 엠뮤지컬


'아기병사' 박형식이 연기와 넘버를 풀어가는 솜씨는 기대 이상이었다. 미안한 이야기지만 <늑대의 유혹>으로 무대에 오를 당시만 하더라도 박형식은 뮤지컬에 출연하는 그저 한 명의 아이돌일 뿐이었을 뿐 크게 주목받지 못한 게 사실이다. 하지만 그는 최근 몇 년 사이 뮤지컬 무대에서 이야기를 풀어가는 솜씨가 늘어가고 있었다.

인터뷰에서 짬 날 때마다 런스루(연습실 리허설) 영상을 보며 뮤지컬의 큰 그림을 눈에 익힌다는 박형식의 발언은 빈 말이 아니었다. <진짜 사나이>에서 어리바리하게만 보이던, 혹은 미성의 가녀린 박형식에게 있어 이런 면이 있나 할 정도로 강인한 남성미를 물씬 풍기는 연기를 펼치고 있었다. 이는 그가 연습실에서 성실하게 흘린 땀이 무대에서 결실을 맺고 있음을 방증하는 순간이기도 하다.

마초 연기만 잘 하는 게 아니었다. 1막 초반에서 경찰차 소리가 들리자 자신을 잡으러 온 줄 알고 황급하게 차 뒤로 숨는 박형식은 '마초미' 가운데서 의외로 허당의 모습을 보여줌으로 관객에게 예기치 않은 즐거움을 선사하기도 한다. 아이돌 가수인지라 격렬한 동작을 하면서 넘버를 부를 때에도 숨이 차지 않고 고르게 노래할 줄 아는 넘버 소화 능력도 갖추고 있었다. 제국의아이들 팬이라면, 혹은 박형식의 팬이라면 박형식이 웃통을 벗고 있는 명장면 역시 놓치지 않을 수 없다.

또, 보니를 연기하는 리사 역시 바다와 옥주현 못잖게 가창력에 있어서만큼은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뮤지컬 스타 아니던가. 2막에서 '죽는 건 괜찮아'를 애잔한 감정을 섞어 노래하는 리사의 넘버 실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보니앤클라이드 박형식 안유진 엄기준 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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