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한 그루를 위해 포클레인에 올라가는 이들. 윙윙거리는 전기톱에도 아랑곳 않는 사람들. 서울의 대표 마을공동체, 성미산 마을의 성미산 지킴이 활동이 다큐로 나온다. '별종 마을'의 유쾌한 분투를 그린 다큐, <춤추는 숲>이 23일 개봉한다. <오마이뉴스>는 송호창 무소속 의원, 김정헌 서울문화재단 이사장, 유창복 서울시 마을공동체 종합지원센터장, 김우영 <고지전> 촬영 감독의 리뷰를 싣는다. [편집자말]
 성미산의 나무를 지키기 위해 마을의 한 아이가 나무를 껴앉고 있다.

성미산의 나무를 지키기 위해 마을의 한 아이가 나무를 껴앉고 있다. ⓒ 스튜디오 느림보


자전거 탄 아이들이 골목을 누비면서 제 또래의 친구는 물론 동네 형, 누나들과 정겨운 인사를 나눈다. "저녁 밥 먹으러 철이네로 와", 장바구니를 든 이웃 영이엄마도 아이들을 그냥 보내지 않는다. "명수야, 엄마한테 내가 나물 많이 샀으니 우리 집에 와서 좀 가져가라고 전해줘". 아이들은 "예, 알았어요" 하는 대답을 허공에 남기고 '쌩'하니 지나친다. 구멍가게 할머니도 아이들에게 반갑게 손을 흔들고, 복덕방 할아버지도 "애들아 조심해서 살살 다녀라" 하며 한 마디를 거든다. 동네 목욕탕을 나서는 모녀가 젖은 머리칼을 털어내며 "네 엄마가 좀 있으면 나올 거야" 하며 아이 엄마의 행방을 알려준다.

성미산마을, 옛 기억을 간직한 이상향

동네 사람들은 이웃을 소상히 알고 있다. 가족사항은 물론이고 이웃집에 숟가락이 몇 개인지를 알 수 있을 만큼 집으로 초대하여 가족같이 가깝게 지내기 때문이다. 스마트폰과 위치 추적기가 없어도 자기 아이들이 동네 어디에 있는지 금방 알 수 있다. 복덕방 할아버지와 구멍가게 할머니, 시장 다녀온 영이 엄마 등이 위치 추적기보다 더 빠르고 정확하게 아이들의 위치를 알려줄 뿐 아니라, 함께 있던 친구들까지 알려주므로 아이들의 이동경로까지 쉽게 파악할 수 있다.

서울 마포구의 성미산 마을은 주민들이 생활공동체를 이루며 안전하고 안락한 삶을 누리고 있는 곳이다. 그래서 00동이라는 행정구역 명칭보다는 00마을이라는 우리 전통 호칭이 더욱 어울린다. 실종, 유괴, 폭력 등 현대사회를 얼어붙게 만드는 흉악한 범죄용어들은 이런 동네에 어울리지 않는다. 중년이 된 어른들의 어린 시절 이야기가 아니라 2013년 서울의 한 동네 이야기라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

좁은 골목에서 주차 때문에 싸우고 '여기에 쓰레기 버리면 이 동네에서 못 살게 쫓아낼 거다'라는 험악한 표지판이 곳곳에 붙어있는 삭막한 서울의 다른 곳과는 너무도 딴판이다. 시골에서 어린 시절의 기억이 있는 사람들은 '그때가 좋았지' 하며 옛 기억을 떠올릴 곳이고 그런 기억이 없는 젊은 사람들은 '그런 동네에서 살아봤으면' 하는 미래의 이상향이다.

<춤추는 숲>, 마을의 공동체 의식으로 똘똘 뭉친 감동작

 성미산을 지키기 위해 마을 사람들이 분주해졌다. 산에 천막을 짓고 번을 서는가 하면 매일 저녁 성미산 아래에서 촛불집회를 열었다. 다큐 <춤추는 숲>은 마을 사람들의 절박하면서도 유쾌한 성미산 지킴이 투쟁을 담고 있다.

성미산을 지키기 위해 마을 사람들이 분주해졌다. 산에 천막을 짓고 번을 서는가 하면 매일 저녁 성미산 아래에서 촛불집회를 열었다. 다큐 <춤추는 숲>은 마을 사람들의 절박하면서도 유쾌한 성미산 지킴이 투쟁을 담고 있다. ⓒ 스튜디오 느림보


 서울 마포구에서 유일한 친환경 생태공원 성미산은 인근의 아이들에게 생태체험학습장이었다. 한 교육재단이 성미산에 학교를 이전하면서 산 일부가 파괴되기 시작했다.

서울 마포구에서 유일한 친환경 생태공원 성미산은 인근의 아이들에게 생태체험학습장이었다. 한 교육재단이 성미산에 학교를 이전하면서 산 일부가 파괴되기 시작했다. ⓒ 스튜디오 느림보


다큐멘터리 <춤추는 숲>은 성미산 마을주민들의 일상을 꾸밈없이 카메라에 담았을 뿐이지만 재미와 감동이 가득하다. 물론 주민의 한 사람인 강석필 감독의 섬세하고 뛰어난 능력에 힘입은 바 크다. 하지만 강 감독의 능력에도 불구하고 성미산 주민들의 열정과 이웃간의 사랑, 개인과 자기 가족만의 이기심보다 마을을 더 중하게 여기는 공동체 의식이 없었다면 다큐 <춤추는 숲>이 그렇게 큰 감동을 줄 수는 없었을 것이다(관련기사: '춤추는 마을'이 세상을 구할 수 있을까?).

이 마을을 아름답고 안전한 마을 공동체로 만든 것은 함께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의 노력에서 시작됐다. 아이 키우는 문제만큼 주민들의 열정을 크게 불러일으킬 수 있는 일은 그리 많지 않다. 게다가 육아를 함께 하기 위해 주민들은 퇴근 후나 주말에 같이 일하고 같이 의논하는 시간이 많다. 자연스레 아이를 키우는 방법에서 공통점을 발견하고 한 아이가 안전하게 잘 자라기 위해선 마을 전체가 뜻과 힘을 하나로 모아야 함을 깨닫게 된다. 그 가운데 주민들은 친형제 자매보다 더욱 가깝고 서로를 사랑하는 이웃이 된다. 그렇게 만들어진 마을 공동체가 성미산 마을이다.

주차공간이나 쓰레기 버리는 문제로 서로 싸우고 갈등하는 이웃이 아니라 아이를 함께 돌보고 사소한 먹을거리라도 나눌 줄 아는 이웃들이 만드는 따뜻한 공동체는 그 구성원들의 삶에 대한 만족도를 드높인다. 집과 동네에서 일상생활에 만족하는 부모 밑에 사는 아이들은 행복할 수밖에 없다. 자식을 밝고 쾌활하게 키우는 가장 훌륭한 방법은 부모들이 그렇게 생활하는 것이다. 부모만이 아니라 마을주민 전체가 삶에 만족하며 산다면 아이들에게 그 보다 더 좋은 성장조건은 없을 것이다.

그런 공동체에는 왕따, 폭력, 자살 같은 현대사회의 질병이 자리 잡을 곳이 없다. 안전하고 훈훈한 공동체의 이야기는 또 다른 공동체로 전파력을 갖는다. 90년대 초반부터 만들어진 성미산 마을의 성과는 입소문을 타고 전국으로 퍼져 나갔다. 민들레 홀씨가 나라 전역으로 널리 퍼지듯. 서울은 물론 경기, 부산 등 전국 각지로 공동육아의 바람이 일어났고 많은 곳에서 성공적으로 자리잡기 시작했다. 공동육아는 단순한 아이 키우기 프로젝트에서 하나의 마을 공동체 운동으로 발전하였다. 한 아이를 건강하게 키우려면 마을 전체가 노력해야 한다는 진리를 실천에 옮기는 것이다.

예정된 패배에도 사랑으로 감싸는 성미산 마을

 성미산마을 다큐멘터리 영화 '춤추는 숲'의 한 장면

성미산 마을 사람들은 100인 합창단을 통해 성미산 지킴이 투쟁을 유쾌, 즐거움으로 승화해 나간다. ⓒ 스튜디오 느림보


가정의 울타리를 넘어 마을 전체로 관심을 넓히는 순간 '개발'이라는 장벽을 만나게 된다. 개발은 마을을 더욱 깨끗하고 편안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 오래토록 많은 사람들의 기억에 남고 사랑을 받으며 영향을 미친 소중한 자원들을 없애기도 한다. 나무와 수많은 동물들의 쉼터인 성미산 개발이 대표적이다. 그 개발에 맞선 마을 주민들의 싸움이 처절하다. 자기 자신보단 아이들과 미래세대를 위한 싸움이다. 하지만 물리적인 힘도, 법적인 권리도 없는 주민들에게 이 싸움은 패배를 예정하고 있는 것이다.

<춤추는 숲>은 패배가 예정된 싸움의 과정이 마을 주민들에게 단지 절망감만 준 것이 아님을 분명히 한다. 싸우고 패하는 과정에서 주민들은 서로의 소중함을 더욱 절감하고 서로를 더욱 사랑할 줄 알게 된다. 그 과정을 성미산 마을 아이들은 티끌없는 순결한 눈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보고 있다. 그 과정은 아프고 고통스런 시간이지만 또한 주민들이 서로 사랑하는 과정이다. 사랑하는 법을 아이들은 그렇게 배우고 있다. 사랑하는 법을 배운 아이들은 세상에 대한 두려움 없이 무엇이든 이뤄낼 큰 힘을 갖게 된다. 성미산 마을은 우리 아이들에게 축복이다. <춤추는 숲>은 그래서 우리 모두에게 축복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송호창 무소속 의원이 작성한 것입니다. <춤추는 숲>은 5월 23일 개봉하며 관람 정보는 <춤추는 숲> 누리집(http://d_forest2013.blog.me)에서 참고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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