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C스나이퍼

MC스나이퍼 ⓒ 스나이퍼사운드


아티스트에게 '도전'은 숙명이다. 익숙한 것을 꾸준히 잘하면서도 새로움에 대한 도전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 그러지 않고서는 고인 물이 되기에 십상이다. 하지만 기존의 것을 지속적으로 유지하면서 신선함까지 안긴다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 게다가 일정 궤도에 오른 뒤부터는 안주하고 싶어지는 것이 바로 인간이다. 가진 것이 많을수록, 또 잃을 것이 많을수록 '모험'보다는 '안정'을 추구한다.

그러나 여기, 힙합계의 세대교체를 꿈꾸는 이가 있다. 래퍼 MC스나이퍼(본명 김정유, 35)다. 1990년대 언더그라운드에서 시작해 힙합 팬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그는 래퍼이면서 동시에 엔터테인먼트 회사 스나이퍼 사운드의 대표이다. 그동안 배치기, 아웃사이더 등을 발굴한 MC스나이퍼는 최근 '젊은 피' 영입에 나섰다. 지난 9일 서울 합정동의 한 카페에서 2세대 스나이퍼 사운드를 만들겠다고 선언한 MC스나이퍼와 마주했다. 

"기존 아티스트를 많이 내보냈다. 타성에 젖은 친구들도 있고, (자신을 향한 지원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아티스트도 있었기 때문이다. 기존의 시스템에서 벗어나고 싶어서 변화를 꾀했다. 되게 노력해서 큰 아티스트를 만들고, 이와 동시에 신인들도 탄탄하게 챙겨야 하는데 아웃사이더, 배치기처럼 한 명의 큰 아티스트가 나오면 거기에 편중되기만 하더라. 이런 상황에서 그 아티스트와 단절되면 다시 신인을 끌어올리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

 MC스나이퍼

ⓒ 스나이퍼사운드


"신인 발굴, 가장 먼저 보는 것은 '근성'"

현재 스나이퍼 사운드에는 '속사포 래퍼'로 알려진 아웃사이더와 신예 이고밤 등이 있다. Mnet <쇼 미 더 머니>에서 활약한 송래퍼도 출격 준비를 하고 있다. MC스나이퍼는 "완전히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고 생각하면 된다"고 했다. 지금까지의 시스템을 완전히 갈아엎으면서, 오디션을 통해 '무서운 신예'를 찾고 있다고. MC스나이퍼는 "젊은 친구들과 함께하면서 나 역시 에너지를 받는다"면서 "가사 내용도 확실히 다르더라. 이들의 열정이 나에게도 투영되는 것 같다"고 미소 지었다.

"신인을 발굴할 때, 근성을 가장 많이 본다. 랩이랑 음악은 배우면 되지만, 이 모든 것을 받아들이려면 근성이 있어야 하거든. 일정 수준에 올라갔을 때 '이 정도면 됐어' 하는 사람과 '여기부터 시작'이라고 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건 근성의 차이에서 오는 것이다. 근성이라는 건 단번에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꽤 오랫동안 눈여겨본다. 배치기도 고1 때 만나서 고3 때 계약했다. 어떨 때 성격이 나오고, 기쁘고 슬플 때는 어떤 행동을 하는지, 어떤 가사가 나오는지 지켜봤다. 아웃사이더 역시 근성이 대단했던 것 같다."

 MC스나이퍼

MC스나이퍼 ⓒ 스나이퍼사운드


MC스나이퍼가 후배를 양성하는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그는 "간절함을 느껴서"라고 답했다. 파릇파릇한 신예들의 열정과 독기, 성공을 향한 의지와 마주하는 순간을 잊지 못한다고 했다.

그는 "아웃사이더와 함께 배치기의 공연을 본 적이 있는데, (아웃사이더가) 무대 위에 선 그들을 정말 간절한 눈빛으로 쳐다보더라"면서 "그들을 부러워하던 아웃사이더가 앨범을 내고, 열정을 불사른 끝에 다시 그 무대에 섰다. '고맙다'고 얘기하는데 정말 미치겠더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MC스나이퍼는 "내가 조금 피곤하면 다른 이들의 꿈과 함께 갈 수 있다"고 뿌듯함을 드러냈다.

"배치기 1위, '보는 눈 있구나' 싶어 뿌듯했다"

1998년 힙합을 시작했던 제천 출신의 이 청년은 26살이 되던 해, 처음으로 음반 제작에 눈을 돌렸다. 처음 함께했던 이들은 배치기. 전세금을 빼서, 혹은 자신의 계약금을 내걸고 음반을 제작했다. "지금은 무서워서 그렇게 못 한다"고 눙을 친 MC스나이퍼는 "당시 '이 친구들 아니면 안 돼'라는 절박함과 절실함이 있었다"고 털어놨다. "제작을 안 하고 온전히 내 앨범만 만들었다면 건물 한 두 채는 샀겠더라"면서도 "내 팔자는 어쩔 수 없는 것 같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얼마 전, 배치기가 1위를 하더라. '나가서 잘되면 배 아프지 않느냐'고들 묻는데 잘돼서 기분이 좋다. '내가 역시 보는 눈은 있구나' 싶고. 아티스트는 자신의 재능을 믿고 움직여야지, 회사의 힘으로 살아남는 것은 문제가 있다. 생산력 있는 아티스트가 되어야 한다는 거다. 사실 이해관계를 따질 수밖에 없는 관계인데, 아티스트 스스로가 정체성을 찾겠다는 것을 막을 수는 없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이 너무 과해도 문제가 되는 것 같다."

 MC스나이퍼

ⓒ 스나이퍼사운드


"예전엔 다 쥐려고 했다면, 이젠 다 내주려고 한다"는 그. "밤새 작업하라"거나 "뭐라도 하라"고 강요하기보다 "즐겁지 않으면 하지 마라"고 이야기한단다. 회사를 만들면서 1등이 되고 싶었고, 더 멋있는 아티스트와 좋은 음악을 만들고 싶었다던 MC스나이퍼는 30대 중반에 접어든 최근 '비움의 미학'을 깨닫고 있다. 꽉꽉 채우기보다 여력을 남겨두는 것. 아티스트와 소속사 대표의 역할 사이에서 '정체성의 혼란'을 겪기도 했던 그는 이제 더욱 행복해질 준비를 하고 있다.

"힐링이 필요한 시대...음악이 소모품 됐다고?"

다른 장르와 시도에 비교적 보수적이었던 힙합계도 서서히 변하고 있다. 틀을 깨는 콜라보레이션 작업이 계속되는가 하면 힙합을 좋아하는 이들의 저변도 확대됐다. MC스나이퍼는 "(힙합을) 만드는 사람보다 듣는 사람들이 많이 바뀐 것 같다"고 평했다. 과거에는 소수의 마니아가 '목숨을 걸고' 들어줬다면 이제는 랩에 대한 거부감도 없어졌다고. MC스나이퍼는 "오히려 힙합 골수들은 더 깊이 들어가고 싶어하기도 한다"면서 "삶을 반영하는 음악이기 때문에 깊이 파고들려는 경향이 있다"고 전했다.

"시대를 반영하는 게 음악이라고 생각하는데 요즘 음악은 너무 가벼워지지 않았나 싶다. 삶이 힘드니까 사람들이 쉬운 이야기, 기분 전환용 음악을 원하는 것 같다. 난 최근 레게 음악에 꽂혔다. 반주는 가볍지만 그 속에 메시지를 담고 있지 않나. 쓰고 있는 노래 중 'Slow Tempo(슬로우 템포)'라는 곡이 있다. 하루만 여유를 부리며 충전해도 뒤처진 것 같은 느낌이 들곤 하는데 '세상이 빨리 돌아가지만 너의 템포가 있다. 천천히 가자'는 내용을 담았다. 힐링이 필요한 시대다."

"할 수 있다면 1~2개월만 아무 생각 없이 내 음악을 만들고 싶다"는 MC스나이퍼. 2012년 정규 6집을 발표했던 그는 올여름께 신곡을 발표할 예정이다. "작년 이후 '다시는 정규 앨범 안 내겠다'고 얘기했는데 이상하게 정규가 좋다"면서 "만약 여름 안에 내지 못하면 겨울에 정규 앨범을 낼 것 같다"고 덧붙였다.

"래퍼들은 '변호사'라고 생각한다. 나를 변호하는 사람인 거다. 앨범을 내는 것은 세상에 일기장을 내놓는 느낌이다. 음악이 소모품처럼 변했다고 하지만,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은 여전히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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