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2TV 월화드라마 <직장의 신>에서 와이장 마케팅 영업부 팀장을 맡고 있는 장규직(오지호 분).

KBS 2TV 월화드라마 <직장의 신>에서 와이장 마케팅 영업부 팀장을 맡고 있는 장규직(오지호 분). ⓒ 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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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사회면에 날마다 남양유업 관련 기사가 오른다. 30대 영업사원이 50대 대리점 점주에게 재고를 넘기다 못해 막말까지 해대서 물의를 일으켰다는 내용이다. 점주는 이 대화 내용을 고스란히 녹음을 했고, 인터넷에 올려 대중에 회자가 되면서 남양우유 불매 운동에, 본사 압수 수색까지 사건은 확장 일로에 놓여 있다. 그리고 당연히 막말을 한 영업사원은 해고가 되었다.

여기서 막말을 한 영업사원은 정말 나쁜 놈이라서 자신보다 한참 나이가 많은 대리점 점주에게 대리점 계약까지 들먹이며 막말을 해댔을까? 단지 그 영업사원 한 사람의 해고로 불을 끄려던 사건이 본사의 불매 운동으로 퍼져가는 것을 보면, 사람들의 인식은 이번 일이 그저 나쁜 개인 때문에 벌어진 일이 아니라는 걸 보여주고 있다.

왜 멀쩡한 사람이 위아래도 없는 나쁜 사람이 되었을까? 12회까지 진행된 KBS 2TV 월화드라마 <직장의 신>을 보고 있노라면 착한 사람과 나쁜 사람은 그 본성이 아니라 그가 속한 사회가 만들어가는 것을 깨닫게 된다.

조직이, 세상이 만드는 '나쁜 사람'

<직장의 신>이 처음 시작 됐을 때 이름마저 정규직과 비슷한 장규직(오지호 분) 마케팅 영업부 팀장은 천하에 간 쓸개도 없는 전형적인 회사 딸랑이로 그려졌었다. 비정규직들을 '언니'라고 부르며, "니들은 3개월이면 사라지기 때문에 이름을 부를 가치조차 없다"고 일갈했다. 비정규직인 미스 김(김혜수 분)이 자기보다 잘 난 것을 못 견뎌 하며 폭주하는 장규직은 두말 할 것도 없이 '나쁜 놈'이었다.

반면, 그와 동기이지만, 정규직이건 비정규직이건 가족처럼 잘 지내보자며 실수를 해도 너그럽게 덮어주려고 애쓰고, 직원들 하나하나를 감싸 안으려는 마케팅 영업지원부 무정한 팀장(이희준 분)은 당연히 좋은 놈이었다.

직장의 신 항상 미스김에게 호의를 보여온 무정한이 미스김의 화상을 보고는 미스김의 과거를 캐는 셜록 홈즈로 분한다. 미스김의 맨 다리를 보기 위해 엿볼 궁리를 하던 장규직을 내쫓는가 하면 미스김이 자주 가는 클럽에서 미스김의 과거를 캐묻고는 스마트폰으로 대한은행 화재 사건을 검색한다.

<직장의 신>에서 와이장 마케팅 영업지원부 팀장을 맡고 있는 무정한(이희준 분). ⓒ KBS


그런데 선악의 구도가 분명해 보이던 <직장의 신>이 중반을 들어서면서 사람들의 선입관과는 조금 다른 변주를 시작했다.

그 싸가지 장규직이 알고 보니 대학 시절 아버지의 자살로 인해 집안의 몰락을 겪은 사람이요, 이제 다시는 어머니의 시래기 된장국을 먹지 못해 눈물 흘리는, 사연 있는 보통 사람이라는 것이다. 처음엔 단순 무식한 싸가지였던 장규직의 인간적 면모가 조금씩 드러나면서, 심지어 이제는 미스 김을 좋아하는 무정한과 삼각 구도를 이루는 것이 전혀 빈정 상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이렇게 <직장의 신>은 대표적인 악역처럼 보였던 장규직으로부터 시작하여, 사무실의 병풍 같던 고정도(김기천 분) 과장의 역사와 톰과 제리 같던 정규직 구영식(이지훈 분)과 비정규직 박봉희(이미도 분)의 사랑 이야기까지 그저 조직의 일원일 뿐인 그들의 사람 냄새를 풀풀 풍기기 시작했다. 다른 드라마 같으면 대사 몇 마디하며 지나쳐갈 조역들조차 어느 틈에 <직장의 신>에선 사람으로 살아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그 사람 좋아 보이던 무정한 팀장이 한때 전투 경찰로 복무하며 본인의 뜻과 무관하게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시위를 무자비하게 진압한 기억을 통해 <직장의 신>은 또 다른 화두를 던진다. 제 아무리 좋은 사람이라도 그가 속한 조직에 의해 얼마든지 나쁜 사람이 될 수 있다고.

사원 체육 대회에서 박봉희의 임신 사실을 알고 축하는커녕 윗선에 알려야 한다고 방방 뛰던 장규직. 회사가 돌아가기 위해서는 악역이 필요하다고 애잔하게 말하던 그의 모습은, 무정한이 정주리(정유미 분)를 돋보이게 하기 위해 그의 이름으로 기획안을 올렸지만 이로 인해 그 생명줄과도 같은 비정규직 자리마저도 빼앗는 결과를 낳은 것과 겹쳐지면서, 조직적으로 '나쁜 갑'을 조장하는 사회를 상징적으로 그려낸다. 예전 어른들의 '처음부터 나쁜 사람이 어디 있나? 세상이 나쁜 놈을 만드는거지'라는 그 말씀처럼.

갑을 간 갈등이 터져 나온 남양유업의 불매운동이 확산되고, 최근 <무한도전>을 통해 방영된 '무한상사' 정준하의 해고가 많은 공감대를 얻어가며, <직장의 신>이 생각 외로 다수의 공감을 얻으며 선전하는 것처럼, 뿌리 깊은 '갑을'의 문제가 자조적 회한을 넘어 사회적 문제로 해결해 낼 힘을 얻어가고 있는 증거이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다음 주의 정주리 해고 문제가 어떻게 해결될 지, <직장의 신>의 또 다른 화두를 기대가 된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개인블로그(5252-jh.tysory.co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직장의 신 오지호 이희준 김혜수 정규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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