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공정사회> 포스터

영화 <공정사회> 포스터 ⓒ 시네마팩토리,(주)엣나인필름


남편과 별거한 후 보험회사에 다니며 10살 딸을 키우는 그녀(장영남 분). 회사 일로 귀가가 늦어진 어느 날, 홀로 하교하던 딸이 누군가(황태광 분)에게 납치되어 성폭행당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범인을 잡기 위한 수사가 시작되었으나, 마 형사(마동석 분)는 절차만을 강조하면서 딸에게 더욱 깊은 상처를 준다. 전 남편(배성우 분)은 딸의 아픔보다 유명 치과의사라는 자신의 명예만 신경 쓴다.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 현실에서 그녀는 "도대체 나는 어쩌라는 거냐고!" 절규한다. 마침내 그녀는 범인을 잡기 위해 직접 나선다.

 영화 <공정사회>의 한 장면

영화 <공정사회>의 한 장면 ⓒ 시네마팩토리,(주)엣나인필름


한국 영화에 나타나는 신파의 어머니상과 복수극의 어머니상

요즘 안방극장에 나오는 어머니상은 과거 <전원일기>와 사뭇 다르다. '시월드'로 대표되는 어머니를 주로 등장시키면서, 여기서 파생되는 고부갈등을 극단적으로 밀어붙인다. 반대편에는 다른 형상의 친정어머니가 서 있다. 드라마는 이렇게 대한민국의 한 단면을 긴 호흡으로 그린다.

반면 드라마보다 호흡이 짧은 영화는 다른 시각을 취한다. 영화 <애자>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 <웨딩드레스> 등은 가족의 가치를 소중히 여기는 어머니의 모습을 묘사한다. 관객의 눈물샘을 자극하는 이 영화는 <미워도 다시 한 번>으로 대표되는, 전통적인 한국 신파 장르를 계승한다.

어머니를 복수의 형상으로 담아내는 작업도 근래 쉽사리 볼 수 있는 어머니상 중 하나다. 고 박철수 감독의 <에미>(1985)가 아마도 출발지일 것이다. <에미>는 인신매매되었던 딸이 끝내 죽음에 이르자 그녀의 어머니가 자신의 딸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던 이들에게 직접 복수하는 내용이다.

그러나 지금 한국 영화에서 다루어지는 '복수'라는 정서를 표면 위로 올라오게끔 한 이는 박찬욱 감독이다. <올드 보이>(2003)는 한국 영화 지형에서 '복수'의 영역을 확연히 구축한 계기였다. 이후 방은진 감독의 <오로라 공주>(2005), 박찬욱 감독의 <친절한 금자씨>(2005)는 어머니가 벌이는 잔혹한 복수극의 서사를 각자의 방식으로 완성했다. 그리고 봉준호 감독은 <마더>(2009)에서 복수의 서사를 변형해 모성애의 맹목성과 연결했다. 이들 영화가 마지막에 공통으로 던졌던 질문은 "그녀는 구원받을 수 있을 것인가?"였다.

 영화 <공정사회>의 한 장면

영화 <공정사회>의 한 장면 ⓒ 시네마팩토리,(주)엣나인필름


<도가니>에 반응한 <공정사회>의 기운

실제 사건을 토대로 만든 <도가니>(2011)는 대중의 분노를 촉발시켰다. 불공정한 사회, 정의롭지 못한 사회를 산다고 느낀 대중의 울분을 감지한 정지영 감독은 <부러진 화살> <남영동 1985> 같은 실화에 바탕을 둔 영화로 우리의 정서를 표출했다.

복수의 어머니상을 다뤘던 일련의 복수극도 이런 사회적 분위기에 반응하여 실화의 어머니를 영화로 소환하기에 이르렀다. <돈 크라이 마미>는 2004년 밀양의 한 여중생이 44명에게 성폭행을 당한 사건에 기초했다.

<공정사회>는 <돈 크라이 마미>처럼 '정의'라는 사회 정서의 자장에 '복수'의 어머니상이 결합한 영화다. <공정사회>는 성폭행당한 12세 딸의 어머니가 경찰의 부실한 수사를 참다못해 직접 40여 일간 서울, 경기도 일대를 돌며 성폭행 피의자가 사는 곳을 찾았던 실화에 근거한다.

전체적인 면에서 <공정사회>는 <오로라 공주>의 이야기와 규모를 작게 줄인 듯한 모습이다. 싱글맘의 아이 키우기, 타인에 대한 무관심 등은 같은 맥락에서 다뤄진다. 그러나 <공정사회>는 "사적 복수를 허용할 수 있느냐?"에 대해 질문하지 않는다. <돈 크라이 마미>와 마찬가지로 <공정사회>는 실제 사건을 재가공하면서 관객의 분노를 더욱 끌어내는 데 주력할 뿐이다. 사회가 정의롭지 못하기에 사적인 복수를 용인하고 복수의 쾌감을 얻으라는, 모두 분노하자는 호소의 목소리만이 울린다.

 영화 <공정사회>의 주인공을 맡은 배우 장영남

영화 <공정사회>의 주인공을 맡은 배우 장영남 ⓒ 시네마팩토리,(주)엣나인필름


속죄도, 구원도 묻기 불가능한 처지에 놓인 그녀

<공정사회>와 유사한 내용과 정서를 다른 영화에서 찾는다면 닐 조던 감독이 만들었던 <브레이브 원>을 꼽을 수 있다. 냉혹한 복수에 나서는 에리카(조디 포스터 분)를 통해 영화가 말하고자 했던 것은 9·11 테러 이후 뉴욕의 공기였다. 복수에 이르는 과정에서 폭력의 정당성을 고민하는 에리카의 혼란을 끄집어냄으로써 폭력이 폭력을 부른 모순과 사회의 징후 등 미국 사회의 현주소를 대변했다.

흥미롭게도 <브레이브 원>과 <공정사회>는 비슷하게 마무리한다. <브레이브 원>은 "이젠 돌아가지 못해. 예전의 나로, 옛날의 그곳으로. 지금의 낯선 사람이 이젠 나다"는 에리카의 고백으로 끝맺는다. 그녀에겐 자신을 이해해주었던 머서 형사(테렌스 하워드 분)가 있기에 외롭지 않다.

<공정사회>의 그녀는 모든 대상에 완벽한 복수를 행한 후 사라진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거지. 이 모든 게 일어난 일이 아니었으면 좋겠다"는 마지막 대사가 쓸쓸하게 느껴진다. 그녀에겐 사회 시스템도, 가정도 모두 파멸되었기에 자신이 만든 폭력에 대한 속죄도, 구원도 묻기 불가능하다. <돈 크라이 마미>에서는 유림(유선 분)의 사적 복수를 형사(유오성 분)가 단죄했다. 그러나 <공정사회>의 그녀의 곁엔 아무도 없다.

영화가 극단적으로 그녀를 묘사한 탓일까? 아니면 우리 사회가 이 정도로 암울한 것일까? 극장을 나서며 혼자 되묻게 된다.


공정사회 이지승 장영남 마동석 배성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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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당 24프레임의 마음으로 영화를 사랑하는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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