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동사서독> 속 장국영

영화 <동사서독> 속 장국영 ⓒ 모인그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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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일에 태어난 후배 녀석에게 항상 이런 말로 축하를 건네곤 했었다. "거짓말 같은 삶을 사는 너는 다른 이들보다 더 행복할 수 있을 거야"라고. 그러나 정확히 10년 전 만우절에는 도저히 이 말을 내뱉을 수가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도 알고, 나도 아는 바로 그 '장국영'이 투신자살했단 소식이 전해진 그 날도 그에겐 여전히 만우절이자 자신의 생일이었으니까 말이다.

그리고 10년이란 시간이 훌쩍 흘러 버렸다. '아시아의 연인'이었으며 40대임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미소년'이었으며 결국 세상이란 둥지에 정착하지 못했던 '발 없는 새' 장국영을 우리는 오늘도 다시 추억할 수밖에 없다.

누구는 그의 영화 <성월동화>를 리메이크한다는 보도자료를 하필 기일에 맞춰 뿌리고, 또 누구는 그가 투신한 호텔 앞에서 추모제를 올릴 것이며, 또 누구들은 이렇게 글로, 그의 영화로, 그의 노래들로 마지막까지 고독했던 장국영의 생을 회고할 것이다. 거짓말 같은 그의 죽음은 그렇게 (슬픈) 전설로 남았고, 그의 얼굴은 여전히 '미소년'인 채로 박제돼 있다.

그래서 장국영을 추억하는 건 이제 단순히 생을 마감한 스타를 떠올리는 일로 그칠 수 없게 돼버렸다. 그의 죽음을 기억하는 일은, 동시대에 그의 작품들을 공유할 수 있던 과거들과 박제된 그와는 달리 한 살 한 살 나이를 먹고 있는 우리의 현재를 만나게 하는 일종의 타입슬립과도 같다. 지금도 자유로이 세상을 떠돌 '발 없는 새'를 기억하며, 그를 떠올릴 때면 언제나 함께 연상되는 몇 가지 장면들을 꼽아 봤다. 다시 펼쳐본 이 장면들에서 장국영은 여전히 아름다웠다.

 영화 <천녀유혼> 속 장국영과 왕조현

영화 <천녀유혼> 속 장국영과 왕조현 ⓒ 비디오코리아


순수함으로 상징되는 장국영의 80년대 

2011년 <천녀유혼>의 리메이크 작품이 공개되기 전후, 대중과 매체의 관심은 왕조현의 섭소천을 누가, 어떻게 연기하느냐로 쏠렸었다.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연 작품의 공허함은 장국영이 연기한 순수한 서생 영채신 캐릭터에서 비롯됐다. 강력했던 장국영의 존재감은 리메이크 영화의 중심 추를 섭소천과 영채신의 사랑에서 서브 캐릭터인 연적하로 옮겨가게 만들어 버린 것이다.

홍콩과 아시아를 넘어 한국에서까지 1980년대를 풍미하는 한 장면으로 남게 된 <천녀유혼> 속 장국영은 '순수'란 이미지를 우리에게 각인시켰다. <영웅본색> 1, 2편도 크게 다르지 않다. <초록물고기>의 공중전화 장면을 연상시키는 형사 장국영의 최후도 마찬가지였다.

폭력 조직원인 형과 형사라는 직업, 가족과 일의 괴리 속에서 고뇌하는 장국영의 '동생' 이미지는 <영웅본색>의 드라마를 풍부하게 만들어줬다. 홍콩영화의 전성기를 이끈 이 중 한 명인 장국영은 그렇게 주윤발의 '마초'성과 유덕화의 '댄디'한 이미지와는 분명 다른 길을 가고 있었다.

초콜릿 매출을 10배로 끌어 올린 '장국영 신드롬'

소설가 김경욱의 <장국영이 죽었다고?>는 그 시절을 함께 한 장국영을 경유해 386세대와는 뚜렷하게 다른 양상을 보였던 1990년대 학번들에게 보내는 편지와 같은 소설이다. 그렇게 각자 다른 기억 속에 남겨진 장국영을 (영화 팬 이외의) 대중들에게 각인시킨 것은 한 편의 CF 광고였다.

해당 초콜릿의 매출을 10배 가까이 끌어올렸다고 전해지는 장국영의 '투유' CF는 홍콩 스타들의 한국진출이 절정이던 1989년에 공개됐다. "나 홀로 그대 찾아 이 빗속을 헤메이네"와 같은, 지금 보면 손발이 충분하게 오그라들 카피가 인상적인 이 CF는 촉촉한 비와 장국영의 미소년 이미지를 결합시키며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다. 훗날 유덕화가 바통을 이어받으며 신인 이영애의 동반 출연으로도 화제를 모은 바 있다.

 왕가위 감독의 영화 <해피투게더>에서의 장국영과 양조위

왕가위 감독의 영화 <해피투게더>에서의 장국영과 양조위 ⓒ 모인그룹


장국영의 게이 연기가 특별한 이유

훗날 양성애자로 알려진 장국영이 2편이나 동성애자 역을 연기했다는 점도 흥미롭다. 특히나 완벽하게 상반된 성격의 인물을 연기했다는 점은 초창기 외모로 부각됐던 장국영의 연기력을 다시 평가하게 만드는 근간이 되어 준다.

<패왕별희>의 부서질 것 같은 감성의 경극 연기자 두지와 <해피투게더>의 무심한 듯 시크한 동성애자 보영이 그 상극의 캐릭터들이다. 칸 영화제를 통해 해외에 장국영의 이름을 알린 전자와 역시 왕가위 감독의 명성으로 전 세계 팬들에게 사랑을 받았던 후자 모두 장르적인 영화가 판 친 홍콩영화들 속에서 작품성을 인정받은 '예술영화'들이다. 그리고 어쩌면 여배우들과의 연기와는 또 다른 장국영의 '눈빛'을 확인할 수 있는 작품들이기도 하다.

촌스러운 흰색 속옷이 이리도 아름다울 수가

"빰 빰빰빰빰 빰~~" 이 글자들만을 보고도 특정한 트럼펫 연주가 들려오는 듯하다면, 당신은 진정한 '장국영 덕후'일 가능성이 농후하다. 위아래로 흰색 속옷만 걸쳐도 섹시할 수 있다는 것을, 장국영을 사랑했던 왕가위 감독은 이미 눈치 채고 있었을지 모른다.

장국영의 아름다움을 롱테이크로 잡아낸 영화 <아비정전> 속 맘보 댄스 장면은 두고두고 회자될 명장면이다. 이미 각종 CF와 방송에서 수없이 패러디된 이 장면은 <아비정전>을 극장에서 본 관객들의 수십, 수백 배를 띄어 넘는 대중들에게 반복 주입됐다. 어쩌면 장국영의 이 댄스 장면은 대중문화 트렌드를 이끌었던 예술영화 전성기의 짧지만 강렬했던 권능을 상징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아비정전> 속 장국영과 장만옥

<아비정전> 속 장국영과 장만옥 ⓒ 스폰지


우리 안에서 숨 쉬는 장국영이란 '발 없는 새'

유작이 돼버린 호러영화 <이도공간>의 장국영은 분열하는 정신의 소유자로 그려진다. 결코 미소를 보이지 않는 유작 속 장국영의 모습은 그의 자살과 겹쳐지면서 팬들의 큰 안타까움을 자아냈었다.

그리고는 강산이 완벽하게 변할 수 있는 시간이 지났고, 홍콩에서, 아시아에서, 세계에서 그를 여전히 기억하고 추모한다. 인터넷을 타고 종이학을 가득 채운 장국영의 반신상이 제작됐다는 소식도 들려온다.

때 마침 한국영상자료원에서는 6일 '장국영 10주기 추모 특별전'을 통해 <아비정전>과 <백발마녀전>을 상영한다. 이 특별전에서 관객과의 대화를 진행하는 <씨네21> 주성철 기자는 <그 시절 우리가 사랑했던 장국영>이란 책을 최근 출간하기도 했다.

우리 안의 장국영은 그렇게 각자의 방식으로 살아 숨 쉬고 있다. 망자를 기억하는 수 백, 수 천 가지의 방법들로 말이다. 지금도 장국영이란 '발 없는 새'는 자유로이 세상을 훨훨 날아다니고 있을 것이다. 부디, 우리 기억 속에서도 오래오래 유영하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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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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