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전국동계체전에서 스피드 3관왕에 오른 김민석(평촌중). 그는 3월 쇼트트랙 종별종합 선수권 대회 준비를 위해 빙상장을 찾았다.

지난 2월, 전국동계체전에서 스피드 3관왕에 오른 김민석(평촌중). 그는 3월 쇼트트랙 종별종합 선수권 대회 준비를 위해 빙상장을 찾았다. ⓒ 정호형


태릉 실내 빙상장에서 부지런히 형들을 쫓아가는 그의 눈빛이 예사롭지 않다. 지난 2월, 전국동계체전을 마지막으로 스피드의 모든 시즌 일정을 마치고, 잠시의 휴식도 없이 바로 쇼트트랙 훈련장으로 향했다. 이제 막 중학교 2학년이 된 김민석(평촌중)의 이야기다.

김민석은 이미 정상의 자리에 오른 선배이자 자신의 롤 모델인 이승훈(대한항공)의 초등부 기록을 10년 만에 갈아치우며 빙판계에 혜성처럼 등장했다. 그는 어릴 적부터 쇼트트랙을 병행해오며 더해진 능숙한 코너링으로 스피드 스케이팅의 국내 대회는 모두 휩쓸었다. 여기에 스케이트를 선택한 것을 단 한 번도 후회해 본 적이 없을 만큼 운동이 재미있다고. 김민석은 노력하는 자와 즐기는 자의 습성을 모두 지닌 셈이다.

김민석은 올해 열린 세 차례 국내대회에서 물오른 실력을 뽐냈다. 1월 열린 회장배 대회에서 5000m를 7분05초82의 기록으로 대회신기록을 세우며 가뿐하게 우승한 것에 이어 뒤이어 열린 종별종합선수권에서는 4관왕에 올랐다. 국내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전국동계체육대회에서도 그의 기량은 꺾일 줄 몰랐다. 가장 어린 나이로 출전한 중등부 3000m 경기에서 쟁쟁한 3학년 형들을 모두 누르고 가장 빠른 기록을 세웠다. 5000m에서는 중등부의 정상자리는 물론, 고등부 형들의 기록도 넘어서며 관계자들을 주목시켰다.

한 달간 치러진 일정에서 출전종목 모두 상위권에 랭크되었음은 물론, 이 중 금메달만 8개를 목에 건 셈이다. 김민석의 놀라운 성장세에 빙판계에서는 그가 고등부와 겨뤄도 해볼 만 하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온다. 김민석은 "대회를 치르면서 자신감이 오른 것은 사실"이라며 "기록과 등수 모두 만족스러운 시즌이었다"라고 기분 좋은 소감을 밝혔다. 이어 "하지만 3학년 형들 중에는 나보다 뛰어난 형들도 많기 때문에 쉽지는 않다"면서 긴장의 끈을 놓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쟁쟁한 형들을 물리친 비결은 무엇일까. 김민석은 주저 없이 말한다. "코치 선생님께서 시키는 대로 그저 묵묵히 그리고 꾸준히 훈련한 덕분인 것 같다. 포기를 모르고 매사에 즐기는 운동스타일 또한 한몫 했다." 사실 지금의 승승장구는 김민석의 지독한 훈련량의 결과이다. 김민석은 스포츠 유치원을 다니면서 자연스레 스케이트를 접했다. 처음에는 형편없는 실력이었다. 이렇다 할 성적도 나지 않았다. 재능을 발견한 코치 선생님의 권유로 선수생활을 시작하는 보통 선수들에 비해 김민석은 스스로 재미를 느끼고 선수생활을 시작했다.

타고난 것이 없었기 때문에 자기 관리는 더욱 중요했다. 김민석은 스케이트를 처음 신었던 8년 전부터 지금껏 쉬는 날 없이 하루 7~8시간의 훈련량을 소화하고 있다. 짜릿한 속도감에 반해 스스로 빙상계에 입문한 탓일까. 고된 일정에도 그는 늘 "지금 못하기 때문에 나중에는 남들보다 잘 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하며 자신을 다독여왔다. 그리고 마침내 6학년이 되던 해, 선배들의 기록을 깨며 그 진가를 인정받기 시작했다.

 2월 열린 스피드 스케이팅 종별종합 선수권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한 김민석(평촌중). 그의 도전은 현재진행형이다.

2월 열린 스피드 스케이팅 종별종합 선수권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한 김민석(평촌중). 그의 도전은 현재진행형이다. ⓒ 정호형


꾸준한 노력과 체력관리로 김민석은 중등부에 올라와서도 그 기세를 이어갔다. 하지만 김민석으로서도 쉽지 않은 과정이었다. 스피드 스케이팅과 쇼트트랙, 두 종목에 모두 나서기 때문이다. 여기에 스피드에서는 단거리와 장거리를 모두 석권하며, 서로 다른 두 가지 훈련법을 익히고 있다.

실제로 스피드 스케이팅은 3월 13일 고 빙상인 추모 경기대회를 마지막으로 시즌을 마감하였으나, 3월 16일 열릴 쇼트트랙 종별종합선수권 대회를 위해 김민석은 휴식도 반납했다. 두 종목을 병행하는 탓에 남들보다 시즌을 일찍 시작하고 늦게 마치는 셈이다. 이에 김민석의 아버지는 "두 종목에서 모두 꾸준한 성적을 내면서 병행하게 되었다"며 "무엇보다 본인이 즐거워한다, 두 종목을 동시에 소화하면서 서로의 종목에도 일정 부분 도움이 된다"며 병행 이유를 밝혔다.

김민석 역시 "몸싸움과 경쟁을 한다는 점에서 요즘에는 쇼트트랙이 더 재미있다"며 승부사 기질을 드러냈다. 하지만 학년이 올라갈수록 체력적 부담이 더해지기 때문에 이제는 선택과 집중이 필요한 시기이다. 실제로 한 시즌에 쇼트트랙과 스피드스케이팅을 모두 병행하는 선수는 드물다. 한 종목에서 뛰어난 두각을 드러내고 있다면 더더욱 그렇다. 게다가 김민석은 스피드 스케이팅에서 단거리와 장거리 모두 정상권 기록을 가지고 있다. 주로 장거리 훈련을 위주로 하다가 시합 1주일 전부터 단거리 훈련도 소화한다는 김민석은 "가장 자신 있는 종목이 3000m이기 때문에 다음 시즌에서는 장거리 훈련에 더 집중할 것"이라고 말했다.

주변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김민석은 이미 국내 대회에서 두 마리 토끼를 잡은 바 있다. 쇼트트랙으로 이번 시즌을 시작한 김민석은 전국남녀 대회에 출전, 3000m에서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그로부터 한 달 뒤 열린 쇼트트랙 회장배 대회에서도 1000m에서 은메달을 획득, 쇼트트랙 전문선수 부럽지 않은 성적을 냈다. 두 종목을 소화하는 탓에 발생하는 체력적인 열세는 두 배의 훈련량으로 극복했다. 앞서 2개의 쇼트트랙 대회를 마치고 바로 스피드 대회를 준비, 출전하는 족족 신기록을 갈아치우며 스피드 대회에서도 메달을 휩쓸었다.

이처럼 김민석이 두 종목을 모두 소화하는 까닭은 간단하다. 그의 실력이 출중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본인 스스로가 목표를 세우고 이를 즐기고 있으니 두 종목에서 놀라운 성과를 내고 있다. 불평 없이 끈기 있게 운동하는 것이 자신의 가장 큰 장점이라고 밝힌 김민석은 두 종목을 병행하면서 발생하는 고충에 대해서도 "전혀 없다, 오히려 운동으로 인한 스트레스도 운동으로 푸는 스타일이다"라고 말했다.

 김민석(평촌중)이 인터뷰 후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민석(평촌중)이 인터뷰 후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정호형


스케이트 8년차, 내공은 더욱 많아졌다. 기록상 늘 정상권에 머물지만, 자만이 가장 큰 적이라는 생각에 선배 선수들을 유심히 관찰한다. 롤 모델로 이승훈을 지목한 김민석은 "안정적인 자세와 어려운 상황에서도 훌륭히 마인드 컨트롤을 해 나가는 모습을 닮고 싶다"고 말한다.

자신과 마찬가지로 한 때 쇼트트랙을 병행했다는 눈에 보이는 사실 외에도 경기장에서 이승훈을 유심히 지켜보며 선배들의 숨은 노하우를 스스로 터득해간다. 스피드와 쇼트트랙을 병행해 가며 얻은 다양한 기술도 빼놓을 수 없다. 김민석은 "쇼트트랙 훈련을 통해 배운 코너링은 스피드의 곡선주로에 도움이 된다"면서 "훈련법을 잘 활용하면 두 종목 모두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보완해야 할 점도 분명 있다. 쇼트트랙 훈련을 통해 곡선주로에서의 안정된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반대로 직선주로에서는 오른발이 불안정한 모습을 종종 보인다. 국내에 적수가 없다는 점 또한 우려가 되는 부분이다. 특히 스피드 스케이팅에서는 이미 중학교 1학년 때부터 중등부를 모두 석권한 탓에 자칫하면 목표 의식을 쉽게 잃을 수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실제로 김민석은 경쟁자를 묻는 질문에 "또래 선수 중에는 없다"고 답변했다. 나이 제한으로 국제무대는 빨라야 1년 후에나 기대할 수 있다. 김민석은 당분간 국내 무대에만 참가할 수 있는 셈이다. 이미 국내 대회 사냥을 마친 김민석에게 힘이 빠질 수밖에 없는 부분이다. 그러나 김민석은 이에 대해 크게 우려하지 않는다.

"스피드 스케이팅은 어차피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다. 더 이상 올라가지 못할 기록이란 없다. 내 기록을 내가 다시 깨면 된다."

쇼트트랙을 병행하는 탓에 오히려 새로운 목표도 생겼다. 스피드에서는 당분간 적수가 없겠지만, 쇼트트랙에서는 아직 이루지 못한 목표들이 많아 빙판 위 그의 도전은 앞으로도 진행형이다. 불안정한 자세에 대해서도 철저한 대책을 마련해 두었다.

"비시즌 동안 자세를 고치기 위해 지상훈련에 주력할 것이다. 자세가 안정되면 기록을 지금보다 더욱 앞당길 수 있을 것이다. 다음 시즌에는 3000m에서 8초 이상 앞당기는 것이 목표다."

다부진 포부와 함께 그는 여전히 두 마리의 토끼를 잡기 위한 노력을 기울인다. 흔히들 '두 마리의 토끼를 잡으려다가 두 마리를 모두 잃는다'고 말한다. 하지만 김민석에게 만큼은 적용되지 않는 말이다. 그는 두 배의 노력을 기울이면 충분히 두 마리 토끼 잡기가 가능하다고 말한다. 이것이 그의 무대가 될 평창올림픽이 기대되는 이유이다. 그는 인터뷰 내내 어느 종목, 어떤 메달을 따겠다는 말을 아꼈다. 다만 어떤 선수가 되고 싶냐는 질문에는 자신 있게 대답했다.

"스피드 스케이팅만큼 정직한 운동은 없다. 정직하게 노력하고, 정직하게 결과를 받고 싶다. 이를 통해 후배들에게도 좋은 귀감이 되는 선수로 남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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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위 사진은 정호형 기자님께서 제공해주셨습니다.
김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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