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의 작품일까. 소셜테이너라는 단어를 만든 게. 여타의 정치적 신조어들이 그렇듯, 연예인의 사회참여를 하나의 정치적 프레임에 담기 위한 의도로 매스컴에서 만들어낸 듯 보이지만, 물론 이는 어디까지나 짐작일 뿐이다. 확실한 건 의도하든 의도치 않았든, 현재 사회에서 통용되는 소셜테이너라는 단어가 담는 함의에 차별과 낙인효과가 추가됐다는 사실이다.

미국사회 역시 연예인들의 정치적 참여를 두고 이를 폴리테이너로 규정한 바 있다. 폴리테이너는 정치인(politician)과 연예인(entertainer)의 합성어로 미국의 정치학자 데이비드 슐츠가 1998년도 미네소타주 주지사 선거에서 프로레슬러 출신인 벤투라가 예상을 뒤엎고 당선되면서 이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만든 신조어다.

두 신조어 모두 대중문화산업과 영상매체의 영향력이 커지고 이에 따라 이미지와 대중적 인지도가 높은 연예인이 사회적 이슈에 참여할 때 미치는 사회적 파급력에 대한 의미를 담고 있다. 차이가 있다면 이 신조어를 받아들이는 두 사회의 문화적 토양이다.

 작년 미국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라이브 무대를 선보인 푸 파이터스(Foo Fighters). 작년 미국 양당의 전당대회는 뮤직 페스티벌 라인업을 연상케 할 만큼 많은 스타들의 참여가 두드러졌다.

작년 미국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라이브 무대를 선보인 푸 파이터스(Foo Fighters). 작년 미국 양당의 전당대회는 뮤직 페스티벌 라인업을 연상케 할 만큼 많은 스타들의 참여가 두드러졌다. ⓒ Foo Fighters


윌 아이 앰부터 니켈백까지, 해외 뮤지션들의 자유로운 정치참여

미국과 유렵의 수많은 스타들, 예컨대 뮤지션들은 곡을 만들어 특정 후보에게 헌정하거나 지지를 호소하는 퍼포먼스에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정당 활동에 적극적인 뮤지션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특히 두 번의 선거를 모두 승리로 이끈 오바마 캠프에 있어 음악은 매우 핵심적인 요소였다.

2008년 미 대선 당시 블랙 아이드 피스(Black Eyed Peas)의 윌 아이 앰(Will.I.Am)이 작곡한 '예스, 위 캔'(Yes, We Can)은 그 정점이었다. 그의 노래는 유투브에서 약 2400만 건의 조회수를 기록하며 미국 대선 정국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뮤직비디오에는 오바마의 열렬한 팬이라 자처해온 스칼렛 요한슨과 존 레전드, 허비 행콕 등이 함께 출연해 오마바의 연설에 맞춰 노래를 불렀다.

공화당의 전당대회에서는 컨추리 싱어 트레이시 엣킨스와 한국에서도 잘 알려진 키드락, 사이키델릭 밴드인 레너드 스키너드가 출연해 롬니 후보를 위한 노래를 불렀다. 모두 자발적인 참여를 통해 마련된 무대였다. 

제도권 정치를 벗어나 시민사회에서 목소리를 내는 뮤지션들도 있다. 1992년 랩과 메탈을 결합한 앨범으로 빌보드에서 폭발적인 반응을 끌어냈던 밴드 레이지 어게인스트 더 머신(Rage Against the Machine)은 그 대표 격이다. 이들은 정규 앨범을 발매할 때마다 투쟁 대상을 함께 발표하며 재야 시민운동을 주도해왔다. 1집에선 인디언 인권운동가 레오너드 펠티어의 구명운동을, 2집에선 티베트의 독립을, 3집에선 흑인 인권운동가 마미아 아부 자말의 석방과 월 스트리트 금융가를 타깃으로 삼았다.

 랩과 메탈을 결합한 앨범으로 빌보드에서 폭발적인 반응을 끌어냈던 밴드 레이지 어게인스트 더 머신(Rage Against the Machine)은 앨범을 발매할 때마다 투쟁 대상을 함께 발표하며 재야 시민운동을 주도해왔다.

랩과 메탈을 결합한 앨범으로 빌보드에서 폭발적인 반응을 끌어냈던 밴드 레이지 어게인스트 더 머신(Rage Against the Machine)은 앨범을 발매할 때마다 투쟁 대상을 함께 발표하며 재야 시민운동을 주도해왔다. ⓒ Rage Against the Machine


힙합 앨범을 최초로 빌보드 1위에 올려놓은 비스티보이즈(Beastie Boys) 역시 티베트의 독립을 주장하며 자선 콘서트를 연 바 있다. 1991년 5주간 빌보드 차트 1위를 기록하며 아일랜드의 영혼이라는 별칭을 얻은 시네이드 오코너(Sinead O'Connor)는 북아일랜드에서 분리-독립 투쟁을 전개해온 무장단체 IRA(아일랜드공화국군)에 대한 열렬한 지지 의사를 밝히며 논란의 중심에 서기도 했다. 그녀는 그래미 어워드의 상업성을 지적하며 수상을 거부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힙합에 인도음악을 결합한 음악으로 평단으로부터 만점에 가까운 점수를 받았던 영국 밴드 아시안 덥 파운데이션(Asian Dub Foundation)은 영국 사회의 뿌리 깊은 백인우월주의를 정면으로 거론하며 사회에 파장을 일으키기도 했다. 이들은 영국 경찰의 부당한 조치로 수감된 이주노동자 셋팔 램(Satpal Ram)에 대한 석방운동을 주도하기도 했다.

이라크전이 발발한 2003년은 뮤지션들의 정치적 표현이 가장 활발히 이뤄진 시기였다. 마돈나는 전쟁을 반대하며 아메리칸 라이프 앨범을 발표했다. 콜드플레이의 크리스 마틴(Chris Martin)은 2002년 영국의 브릿 어워드 시상식에서 "조지 부시가 자기의 길을 가면 우리 모두 죽을 것이다"라고 수상 소감을 밝히기도 했다.

펄잼(Pearl Jam)의 에디 베더(Eddie Vedder)는 호주 투어에서 청중들에게 "차라리 내가 대통령하는 게 낫겠다. 전쟁판을 걷어치워라"며 부시 정부를 향해 돌직구를 날렸고 샤키라(Shakira)는 공식석상에서 "우리는 마분지 인형이 아니라 사람들 머리 위로 폭탄이 떨어질 거라는 걸 잊고 있다"며 "사랑을 이야기하는 새로운 지도자가 나와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전쟁을 찬성하는 뮤지션들도 적지 않았다. 림프비즈킷(Limp Bizkit)의 프레드 더스트(Fred Durst)는 "우리는 뭉쳐야만 하며, 더 이상 반전시위는 안 된다. 우리는 우리나라를 응원해야 한다."며 부시 정부를 지지했다.

니켈백(Nickelback)의 채드 크로거(Chad Kroeger)역시 "앉아서 '전쟁은 안돼'라고 떠들긴 쉽다. 그러나 우리는 분명한 이유를 가지고 전쟁을 수행하는 것이다."라며 기자들 앞에서 이라크전의 당위성을 강조했었다. 페이브먼트(Pavement)의 스티븐 말크머스(Stephen Malkmus), 와 갓스맥(Godsmack)의 설리 어나(Sully Eran) 역시 미 행정부와 부시 대통령의 행동과 미군의 용맹함에 찬사를 보내며 자국의 이라크 침공을 지지했다.

센스도 매력도 없는데 살벌하기까지 한 국내 정치문화

이들에 대한 역사적 판단은 각자 알아서 하시라. 중요한 것은 각자 자신의 소신을 밝히는 미국의 뮤지션들과 이를 받아들이는 미국 사회의 성숙한 태도다. 오마바가 집권한지 이제 5년째를 맞았지만 공화당을 지지한 림프 비즈킷은 여전히 이슈의 중심에 서있고 이라크전의 필요성을 이야기한 니켈백은 전미 투어에서 매번 매진을 기록한다. 인기가 예전 같지 않은 아티스트가 있다면 그것은 시장논리에 따른 자연스런 현상일 따름이다. 한국처럼 정치적 발언으로 연예인이 한순간에 직장을 잃고 인기가 추락하는 일은 미국에서 일어나지 않는다.

표현의 제한은 창작의 질을 떨어뜨린다. 정치의 영역도 다르지 않다. 대중 예술가들의 정치 참여에 대한 시선이 곱지 않은 사회 분위기 속에서 고품질의 정치 콘텐츠가 나올 리 만무하다. 한국의 대선 로고송은 언제나 원래 있던 곡에 가사만 바꿔 부르는 수준이고, 정당들의 전당대회는 수십 년간 한결같이 정치인들이 일렬로 늘어서 손을 잡고 인사하는 폐막식으로 마무리된다. 화려한 무대에서 록 스타들이 무대에서 노래를 부르고 음악에 맞춰 당원들이 자유분방하게 춤을 추는 미국의 전당대회와는 정확히 지구와 안드로메다의 거리만큼 떨어져 있다.

미국의 민주당은 일부러 젊은 층의 지지를 과시하기 위해 대회기간 동안 먹고 마시고 춤추는 페스티벌 형식의 파티를 별도로 마련한다. 작년 템파베이에서 열린 공화당 전당대회에 역시 당원들을 위한 200여개의 크고 작은 파티가 일주일 내내 줄을 이었다. 정당정치가 따분한 게 아니다. 한국의 정당정치를 끌어가는 정치인들의 마인드가 고리타분하고 협소하기 때문이다.

시민들의 부진한 정치 참여를 탓하기 전에 한 번 따져보자. 그 동안 한국의 정치는 과연 얼마나 즐겁고 매력적이었나. 가수들을 로고송 자판기로 여기고 꿔다 놓은 보릿자루마냥 거리 유세에 끌고 다니면 지지율이 올라가고 투표율이 상승하리라 믿는 정당들이 시민들이 즐겁게 참여하는 정치를 만든다는 건 그 자체가 하나의 넌센스다.

대선 후보들이 선거 기간 동안 길거리에서 시민들과 인증사진을 찍고 브라우니를 데려와 '물어!' 퍼포먼스를 했다 한들, 그것으로 인해 대중들이 정치를 바라보는 뿌리 깊은 반감이 과연 얼마나 바뀔 수 있을까. 재미가 없는 수준을 넘어 멋도 센스도 없다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일지 모른다.

 미국은 공화당 당원들도 블랙아이드피스의 노래에 맞춰 춤을 추고 민주당 지지자들도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영화에서 진한 애국심을 느낀다. 진정 즐겁고 신나는 정치를 원한다면 적어도 이만큼의 열린 마음이 필요하다.

미국은 공화당 당원들도 블랙아이드피스의 노래에 맞춰 춤을 추고 민주당 지지자들도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영화에서 진한 애국심을 느낀다. 진정 즐겁고 신나는 정치를 원한다면 적어도 이만큼의 열린 마음이 필요하다. ⓒ CNN 영상 갈무리


매력없는 정치, 열등감에 휩싸인 방송, 폐쇄적인 대중

작년 미국 민주당 전당대회는 뮤직 페스티벌 라인업을 연상케 할 만큼 많은 스타들의 참여가 두드러졌다. 스칼렛 요한슨과 나탈리 포트먼이 정당 지지 연설에 동참했고 지지자를 자처하는 푸 파이터스, 제임스 테일러, 메리 제이 블라이즈가 대회 분위기를 뜨겁게 달궜다. 한국에선 이 모든 것들이 소셜테이너와 폴리테이너라는 족쇄를 통해 사실상 원천 봉쇄된다. 한국사회는 시민들의 적극적인 정당정치 참여를 유도할 수 있는 기회도, 정당정치가 세련되게 변모할 기회도 그렇게 제 발로 걷어차고 있다.

결론적으로 이 논쟁을 통해 비판받아야 할 것은 특정 연예인이 정치 참여 여부가 아니다. 매력 없는 정치권과 정치 집단화된 방송의 열등감 가득한 소통 방식이다. 상대방의 영향력이 두렵다면 대중을 향해 더 매력적으로 더 어필하면 그만이다. 자기가 가진 콘텐츠에 대한 확신이 없다면 더 나은 결과물을 내놓아야 하는 게 정상적인 경쟁 사회의 논리다.

현실은 그런가. 방송은 소셜테이너 금지법을 사규로 만들어 연예인들의 출연을 인위적으로 가로막고, 활자매체는 특정인의 행보를 놓고 소셜테이너냐 폴리테이너냐를 따위의 소모적인 논쟁들을 지면에 싣기 바쁘다.

이효리는 자신의 정치적 성향을 드러내지 않는 이유에 대해 "방송이 더 하고 싶어서"라 말하고, 새누리당 지원 유세에 참여한 은지원은 네티즌들로부터 자신이 출연하는 예능프로에 대한 하차 요구로 홍역을 치른다. 이 사회 내에서 연예인이 정치적 발언을 한다는 것은 51%와 48% 둘 중 하나를 고르라는 압력의 다른 말이다.

해답은 이미 존재한다. 부모 자식 간에 정치적 성향이 달라도 서로를 같은 구성원으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듯이, 정치적 성향을 소신 있게 밝히는 연예인 역시 진영논리를 벗어나 같은 사회 구성원으로서 인식하는 사회적 토양이 필요하다. 이 부분에서만큼은 문화적 인식이 제도를 우선한다. 정당정치의 저변 확산이 실현될 수 없었던 한국의 역사적 특수성을 고려한다면 더더욱 그렇다.

미국은 공화당 당원들도 블랙아이드피스의 노래에 맞춰 춤을 추고 민주당 지지자들도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영화에서 진한 애국심을 느낀다. 대중이 원하는 것이 진정 즐겁고 신나는 정치라면 적어도 이만큼의 열린 마음이 필요하다.

진영을 막론하고 연예인들의 정치 참여가 선동으로 폄훼되지 않고 그들의 상상과 비판과 표현이 온전히 보장될 때 정치는 창의적인 축제의 장이 되고 사회는 그만큼 성숙해진다. 그로 인한 유, 무형의 혜택은 정치권은 물론 대중인 우리 모두에게 돌아올 것이다. 서로 말이 통하는 매력적인 정치는 그렇게 가깝고도 멀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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