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딸 서영이 이서영은 부잣집 며느리가 되지 않았어도 신분이 상승했을 유일한 사례에 속한다. 고시에 붙어 로펌에 근무할 정도의 재원이란 건, 이서영이 민채원이나 혹은 서윤주, 한세경과는 달리 법조인 신분에 들어선다는 걸 의미한다.

▲ 내 딸 서영이 이서영은 부잣집 며느리가 되지 않았어도 신분이 상승했을 유일한 사례에 속한다. 고시에 붙어 로펌에 근무할 정도의 재원이란 건, 이서영이 민채원이나 혹은 서윤주, 한세경과는 달리 법조인 신분에 들어선다는 걸 의미한다. ⓒ KBS


작년 말에 영화 <타워>를 계급 담론으로 분석한 적이 있다. 화마의 재난 속에서 그 누구보다도 먼저 구해야 할 사람은 어린아이나 여자가 아닌, 국회의원처럼 높은 분을 우선 구해야만 하는 아이러니에 직면하는 소방관의 이야기로 말이다.

한데 계급 담론이 치열하게 벌어지는 곳은 정작 스크린이 아니라 주말 브라운관 속에서 벌어지고 있다. 그것도 KBS와 SBS, MBC 공중파 모두에게서 벌어지는 현상이다. 이들 방송국의 주말 브라운관은 계급 담론을 펼치기에 앞서 똑같은 공통분모가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신데렐라 스토리 라인이 전개된다는 점이다. MBC의 <백년의 유산>에는 서울 변두리에서 삼대째 국수 공장을 경영하는 집안의 딸 민채원(유진 분)이 등장한다. 그녀는 부잣집 남편 김철규(최원영 분)를 만나 결혼에 골인하는 데 성공한다. KBS의 <내 딸 서영이> 속 고시생 이서영(이보영 분) 역시 강성재(씨엔블루 이정신 분)의 과외 선생으로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부잣집 남자 강우재(이상윤 분)가 그녀에게 반해 결혼에 골인한다.

SBS의 <청담동 앨리스> 속 한세경(문근영 분)도 아르테미스의 회장인 차승조(박시후 분)와 결혼하기 일보 직전이다. 하나 더, 한세경의 동창 서윤주(소이현 분) 역시 부잣집 남자 신민혁(김승수 분)을 만나 청담동 마나님으로 등극한다.

세 드라마 모두 '없는 집' 딸이 '부잣집' 남자를 만나 결혼에 골인 혹은 결혼에 성공하는 이야기다. 세 드라마 속 네 명의 여자는 모두 부잣집으로 시집을 가서 장차 팔자를 펼 예정이거나 혹은 팔자를 펴고 사는 중이다. 이들 드라마 속 네 명의 여자, 이서영과 민채원, 한세경과 서윤주 모두 유산 계급에 입성하는 데 성공한다.

이들 가운데서 이서영은 부잣집 며느리가 되지 않았어도 신분이 상승했을 유일한 사례에 속한다. 고시에 붙어 로펌에 근무할 정도의 재원이란 건, 이서영이 민채원이나 혹은 서윤주, 한세경과는 달리 법조인 신분에 들어선다는 걸 의미한다.

백년의 약속 제일 애매모호한 지점을 갖는 드라마는 <백년의 유산>이다. <백년의 유산> 속 민채원은 시댁을 나와서는 자신의 ‘신분’을 보증할 만한 직업이 드러나지 않는다. 부잣집에 시집갔다는 계급을 탈색하면 직업이라는 ‘신분’이 보여야 하는데 민채원은 신분이 명확하게 드러나지 못하는 캐릭터다.

▲ 백년의 약속 제일 애매모호한 지점을 갖는 드라마는 <백년의 유산>이다. <백년의 유산> 속 민채원은 시댁을 나와서는 자신의 ‘신분’을 보증할 만한 직업이 드러나지 않는다. 부잣집에 시집갔다는 계급을 탈색하면 직업이라는 ‘신분’이 보여야 하는데 민채원은 신분이 명확하게 드러나지 못하는 캐릭터다. ⓒ MBC


여기에서 주목해야 할 단어는 '계급'과 '신분'의 구분이다. '신분'은 직업을 가진 당사자에게만 해당하는 용어다. <내 딸 서영이> 속 이서영의 직업인 변호사 혹은 시누이 강미경(박정아 분)의 직업인 의사는, 그 직업이 아무리 좋다 한들 2세에게 세습이 되지 않고 당사자가 살아 있을 때에만 누릴 수 있다.

하지만 '계급'은 다르다. <내 딸 서영이> 속 기업인인 강기범(최정우 분)이나 <백년의 유산> 속 시어머니 방영자(박원순 분)가 쌓아놓은 부는 2세인 강우재(이상윤 분)나 김철규(최원영 분)에게 세습될 수 있다. '신분'은 직업을 갖는 당사자만 누릴 수 있는 한시적인 특권인 반면에 '계급'은 2세나 3세에게도 부를 물려줄 수 있는 특권을 지난다.

주말 드라마 속 여주인공들이 신데렐라 이야기의 주인공이 된다는 건 그녀들의 신분이 상승하는 게 아니라 '계급'이 상승한다는 걸 뜻한다. 무산 계급에서 유산 계급으로의 수직 이동이 결혼을 통해 이뤄진다는 걸 의미하기에 그렇다.

<내 딸 서영이>와 <백년의 유산>, <청담동 앨리스>는 부잣집 도련님을 만나는 신데렐라 스토리가 공통으로 나타나지만, 그 가운데에는 결혼을 통해 계급이 상승하는 수직 상승효과를 여주인공들이 누린다는 공통점을 갖는다.

여기서 제일 모호한 지점을 갖는 드라마는 <백년의 유산>이다. <청담동 앨리스>의 한세경이나 <내 딸 서영이>의 이서영은 부잣집에 입성하는 계급 상승 이전에 자신만의 고유한 사회적 지위인 전문직 혹은 전문직에 바싹 다가서 있는 상태다.

하지만 <백년의 유산> 속 민채원은 시댁을 나와서는 자신의 '신분'을 보증할 만한 직업이 드러나지 않는다. 부잣집에 시집갔다는 계급을 탈색하면 직업이라는 '신분'이 보여야 하는데 민채원은 신분이 명확하게 드러나지 못하는 캐릭터다.

청담동 앨리스 <청담동 앨리스> 속 예비 시아버지 차일남의 분노와 <백년의 유산>속 시어머니 방영자의 만행은 아들의 배우자로 무산 계급의 며느리가 들어오는 게 탐탁치 않은 유산 계급의 시선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 청담동 앨리스 <청담동 앨리스> 속 예비 시아버지 차일남의 분노와 <백년의 유산>속 시어머니 방영자의 만행은 아들의 배우자로 무산 계급의 며느리가 들어오는 게 탐탁치 않은 유산 계급의 시선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 SBS


그렇다면 기득권자인 상위 계급 아들을 둔 예비 시댁은 예비 며느리가 부잣집 딸이 아닐 때 어떤 반응을 나타낼까. 이서영의 아버지인 예비 사돈이 유산 계급인지 아닌지가 궁금해 "아버지는 무얼 하는 분이니?"라고 이서영에게 물어보는 <내 딸 서영이>의 차지선(김혜옥 분)은 그나마 양반이다.

<청담동 앨리스>의 차일남(한진희 분)은 "내가 (아들의 결혼을) 인정하는 순간 (한세경 너는) 바로 버려질 거다"라며 예비 며느리가 아들에게 이용당하는 것이라고 불같이 화를 낸다. 사랑해서 결혼하는 게 아니라 아버지의 부아를 돋우기 위해 아들이 결혼하는 것이라고 숨김없이 그대로 한세경을 못마땅해 한다.

<백년의 유산>은 막장 시어머니의 전형을 보여준다. 시어머니 방영자는 무산 계급의 며느리인 민채원이 너무나도 못마땅한 나머지 새로운 며느리를 받아들이고자 민채원에게 세 여자의 사진 중 어느 여자가 남편의 아내감이냐고 도발한다.

결혼은 가문과 가문의 결합이다. 어느 한 쪽 집안이 다른 집안의 기대에 미치지 못할 때 기득권층 계급의 반발은 심해지기 마련이다. <청담동 앨리스> 속 예비 시아버지 차일남의 분노와 <백년의 유산> 속 시어머니 방영자의 만행은 아들의 배우자로 무산 계급의 며느리가 들어오는 게 탐탁지 않은 유산 계급의 시선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청담동 앨리스 내 딸 서영이 백년의 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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