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드라마들의 경향을 보면 이제 사랑 타령만으로 진행되는 것은 별반 찾아볼 수 없다. 예를 들어, MBC의 <보고싶다>는 성폭행 피해자와 그 주변, KBS의 <학교 2013>은 낭만을 배제한 채 학교의 현실을 깊게 논하고 있다. 또 SBS의 <청담동 앨리스>는 취직, 결혼, 출산을 포기한다는 '삼포세대'를 다루고 있다. <마의>는 '인술 휴머니즘'에 관한 이야기다. 이제 드라마들은 사안들이 그저 '이야깃거리'로만 사용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마의>에서 백광현(조승우 분)은 자신의 낮은 신분에도 끝없는 노력으로 결국 어의의 자리에 오르게 된다. 당시의 시대상황은 의원들이 처치할 때, 환자의 신분 여하에 따라 몸에 손을 대지도 못하게 하는 등의 불합리한 일이 비일비재했다고 한다. 그런 속에서 당대 최고의 자리에 오르기까지의 그의 역정은 오늘날 '개천의 용'이 나기 어렵다는 비관적 시대상황과 대비되며 시청자들에게 카타르시스를 안겨주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그 과정에서 벌어지는 일들과 인물들의 행태가 너무나 안일하게 펼쳐지고 있다는 것.

<마의> 이명환(손창민)과 좌상(김창완)이 마주보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두 사람은 악역을 맡고 있지만 지극히 감정적인 대응으로 일관하는 캐릭터에 머물고 있다.

▲ <마의> 이명환(손창민)과 좌상(김창완)이 마주보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두 사람은 악역을 맡고 있지만 지극히 감정적인 대응으로 일관하는 캐릭터에 머물고 있다. ⓒ MBC


드라마에서 주인공을 빛내기 위해서는 맞수, 또는 악역이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초반 백광현의 강한 경쟁자로 여겨졌던 윤태주(장희웅 분)가 몇 회 전부터는 왠일인지 힘을 잃고 있다. 그간 인의 시험의 과정과 현종의 병증에 대한 엇갈린 처방 등, 두 사람 간의 팽팽한 신경전은 극에 긴장감을 불어넣었다.

게다가 맞수에도 매사 합리적이고 수용적 자세를 가진 윤태주의 존재는 신선했다. 지킬 것은 지키되 새로운 조류에 대해서 배타적인 태도만을 견지하지 않은 때문이다. 그의 열린 사고는 실력도 없으면서 불평불만만 일삼는 다른 의생들과 비교되어 더욱 빛을 발했다.

그러나 윤태주의 역할은 이제 착한 조력자 수준으로 전락해 버리고 말았다. 그에 따라 <마의>에서 의술 대결은 의미가 없어진 지 오래다. 이제 백광현은 약간의 도움만 있으면 외과술까지 비교적 자유자재로 시행하는 인물이 되어 있다. 그것을 방해하는 것은 이명환(손창민 분)의 저열한 방해공작뿐이다.

이명환은 여러 면에서 입체적 악역이 될 소지가 다분했다. 마의 출신이라는 신분을 철저히 감추고 있고, 양녀 강지녕 앞에서는 좋은 아버지 역할을 하면서도 자신의 출세를 위해서는 그 어떤 일이라도 행할 준비가 되어있는 인물. 그러나 그런 그가 지극히 일차원적 악역에 머물고 있는 것은 아쉬운 점이다.

그 이유 중 가장 큰 것은 그의 행위가 '의술'과는 전혀 동떨어져 있다는 점이다. 왕실의 의료를 장악해 권세를 유지하는 정치적 인물이라지만 의원으로 활약하는 모습은 별반 드러나지 않고 있다. 또한, 그의 구태의연한 사고방식도 악역으로서의 매력이 현저히 떨어지게 하고 있다.

마의 시절의 경험을 인술에 접목하는 백광현의 진취적 모습보다 이명환은 사사건건 그 공을 덮으려는 노력에 치중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그 어떤 인간적 고뇌와 새로운 의술의 시도는 보이지 않는다. 그 곁의 인물들, 즉 좌상 등도 수동적 태도로 일관하고 있고, 심복들 또한 명령만 떨어지면 무슨 일이든 자행하는 기계적 캐릭터로 국한되어 있어 아쉬움을 더한다.

<마의> 백광현(조승우)가 고주만(이순재)의 상태를 살피고 있다. 백광현이 의술을 시행한 후 펼쳐지는 이명환(손창민)의 음해공작은 이제 예측가능한 수준이다.

▲ <마의> 백광현(조승우)가 고주만(이순재)의 상태를 살피고 있다. 백광현이 의술을 시행한 후 펼쳐지는 이명환(손창민)의 음해공작은 이제 예측가능한 수준이다. ⓒ MBC


이제 <마의>는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백광현은 자신의 신분을 확실히 알게 되었고, 강지녕 또한 그 진실에 근접해 있다. 그것이 그저 술술 풀릴 것으로 기대하는 시청자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의술의 대결이 아닌 권모술수에 휘말리는 주인공을 반복적으로 보고 싶은 사람들 또한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현재 <마의>에서 백광현의 대척점에 있는 인물들은 그를 둘러싼 일들에 감정적이며 부정적으로만 반응하는 일차원적 캐릭터에 머물러 있다. 방어적 태도를 뛰어넘어 변화에 대해 열린 마음을 보여줬던 초반의 '윤태주식' '합리적 보수주의자'의 모습을 좀 더 많이 볼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한다.

마의 백광현 고주만 강지녕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