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5일 조기종영을 선택한 영화 <터치> 포스터

지난 15일 조기종영을 선택한 영화 <터치> 포스터 ⓒ (주)민병훈필름


지난 11월 8일 영화 <터치>가 국내 상영을 시작했다. 최근 KBS <넝쿨째 굴러온 당신> 출연으로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하는 유준상 주연에, 지난 10월 제17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처음으로 공개돼 당시 아시아필름 마켓에 참가한 일본과 중국 등 아시아 6개국에 사전 판매되는 큰 성과를 거뒀다.

하지만 <터치>는 개봉한 지 불과 8일 만에 상영관에서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아니 애초 <터치>는 지난 8일 개봉 첫날부터 '교차상영'을 겪어왔다.

개봉 전 평단의 반응도, 입소문도 좋았기에 기대했던 영화인터라 지난 8일 <터치> 상영관을 알아본 결과 마침 기자가 사는 동네 근처 영화관에서 개봉을 하여 내심 기뻤다. 하지만 놀랍게도 <터치>는 그 멀티플렉스 영화관에서 8일 딱 하루 상영하는 것이었다.

애초 <터치>와 같은 저예산 영화를 걸어주지 않는 상영관이긴 하다. 아무리 흥행에 저조하다해도 최소 주말까지는 상영관을 확보하는데 반해, <터치>는 고작 하루 상영이었다. 행여나 다른 영화관에서 <터치>를 상영하는 지 알아보았는데 의외로 <터치>를 상영하는 극장이 많지 않았다. 하긴 그도 그럴 것이 서울 시내에서조차도 <터치>를 상영하는 곳은 불과 3곳. 그것도 '퐁당퐁당' 교차 상영으로 이뤄졌다.

'퐁당퐁당'의 수모. 과연 <터치>만의 문제일까

 영화 <MB의 추억> 포스터

영화 포스터 ⓒ 스튜디오 느림보

지난 15일까지 <터치>가 확보한 상영관은 서울 한 곳을 포함해 전국 12개 극장. 그것도 하루 1~2회 상영이 고작이었다. 결국 <터치> 민병훈 감독은 배급사에게 '사실상' 종영을 통보한 상태다.

유준상과 김지영이라는 유명한 배우가 출연했음에도 불구, 애초 대다수의 멀티플렉스 극장들은 <터치>를 외면해왔다. '부산국제영화제'라는 특수에 유독 저예산 영화 개봉이 많았던 시기라 대형 배급사의 도움을 받지 않은 <터치>가 설 자리는 어느 때보다 더 좁을 수밖에 없었다.

영화를 찾는 관객들의 추이에 따라 개봉관 상영이 결정되는 극장의 상업 논리를 앞세워 관객들이 들지 않는 저예산 영화들의 대부분은 아주 적은 스크린을 확보하고 시작해야한다.'교차상영'에 대해 대형 멀티플렉스는 저조한 예매율 실태를 근거로 들이대지만 대기업 자본이 뒷받침하는 영화와 저예산 영화는 예매 과정에서조차 차별받는다는 것이 지난 16일 CBS라디오<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한 민병훈 감독의 주장이다.

< MB의 추억 >이나 <두개의 문>처럼 독립영화전용관 위주로 상영하다가 관객들의 끊임없는 요구와 흥행 성공으로 소수이지만 멀티플렉스 상영관까지 진출한 특이 사례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 저예산 독립 영화들은 작품성과 별개로 시작과 동시에 극장들의 차가운 외면을 받으며 일찍 문을 닫아야한다. <터치>는 그렇게 빠른 시기에 관객들의 뇌리에 잊혀져간 영화들 중 하나일 뿐이다.

관객들의 선택권을 박탈하는 멀티플렉스 다양한 영화에게도 기회를

 영화<터치>의 민병훈 감독이 7일 오후 제17회 부산국제영화재가 열리고 있는 부산 해운대에서 인터뷰를 하며 영화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영화<터치>의 민병훈 감독 ⓒ 이정민


현재, 민병훈 감독은 조기종영을 선언한 상황에서 지난 13일 영화진흥위원회에 멀티플렉스 등 영화관의 불공정 거래에 대해 신고한 상황이며, 오는 21일 영상진흥위원회의 조사위원회에 참석해 자세한 정황을 밝힐 예정이다.

워낙 영화 자체 입소문이 좋아 <터치> 극장 관람을 계획했던 이들에게 '조기종영'은 날벼락 같은 소식이나 다름없다. 그 중에서는 <터치>를 보고 싶어도, 시간과 거리를 이유를 이유로 관람을 미루거나 포기했던 이들이 대다수이다. 그도 그럴 것이, 주중에 그것도 심야시간에 몰아서 상영하는 영화를 관람할 수 있는 관객들은 많지 않다.

이건 비단 <터치> 관람을 원하던 이들만의 문제만이 아니다. 대부분 저예산, 독립, 예술 영화를 즐겨 보는 관객들에게는 일상다반사가 되어버린 해프닝이다. 꼭 극장에서 보고 싶은 다양성 영화가 있다면, 언제 상영이 끝날 줄 몰라, 만사 제쳐두고 상영하는 극장에 달려가는 현실. 15일 개봉한 <내가 고백을 하면>에서 강릉에 사는 여주인공 김유정(예지원 분)이 주말만 되면 서울에 올라와 보고 싶은 예술 영화를 관람하는 장면이 전혀 낯설지 않은 이유다.

물론 대다수 극장을 찾는 관객들은 대규모 멀티플렉스를 운영하는 배급사의 손길을 거친 상업 영화를 즐겨 찾는다. 하지만 그들에 비해 아무리 소수의 규모라고 해도 끊임없이 다양한 영화를 찾는 관객들도 존재한다. 모든 관객들이 <광해, 왕이 된 남자>, <늑대소년>, <브레이킹던2> 관람만을 원하는 것을 아닐 것이다. 상업 논리에 따라 상영관 개수와 상영 시기가 결정된다고 하나, 다소 대중들이 보기에 묵직한 주제로 보여 진다는 이유로 상영 첫날부터 '교차 상영'으로 관객들이 보다 다양한 영화를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박탈할 수는 없다.

<광해><도둑들> 화려함 뒤에 잊혀지는 영화들의 희생과 아픔

 김기덕 감독

김기덕 감독 ⓒ 이정민


"정태성 CJ E&M 태표가 CJ와 영화를 함께 만들자고 제안했고, 영화관의 문을 열 개가 아닌 한 개만 열어준다면 그들과 함께 손잡고 영화를 만들겠다."

지난 7일 <피에타> 김기덕 감독이 제32회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영평상) 최우수작품상을 수상하면서 한 말이다. 김기덕 감독은 끊임없이 소수의 영화가 상영관을 독점하는 한국의 멀티플렉스 현실을 지적해왔다. 현재 스스로 '상영 중단'이라는 초유의 결정을 내림으로서 불공정한 한국영화 현실에 대한 처절한 몸부림을 표시하는 민병훈 감독의 심경도 매한가지다.

올해 <도둑들>, <광해, 왕이 된 남자> 등 2번 연속 천만관객 영화를 배출하고 김기덕 감독의 <피에타>가 베니스 국제 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수상하는 등 어느 때보다 한국 영화가 주목받는 시대다.

하지만 화려한 영광 뒤에는 '교차 상영'으로 쓸쓸히 잊혀져가는 수많은 한국 영화들의 희생과 아픔이 있었다. 재능 있는 젊은 감독들이 다양한 장르와 소재의 영화를 만들어내어야 충무로의 스펙트럼과 저변이 넓혀지는 법이다. 그런데 지금처럼 대기업 자본의 도움을 받는 영화만 온전히 스크린 상영관을 확보할 수 있는 현실이, 향후 문화 강국을 꿈꾸는 대한민국의 미래에 큰 도움이 될 수 있을까.

이제 한국을 넘어, 아시아, 세계 시장의 성공적인 진출을 꿈꾸는 한국 영화. 한국의 메이저 영화사들이 한국시장에서 서로 싸우지 말고 더 큰 시장을 향해 나가 우리의 시장을 넓혔으면 한다는 김기덕 감독의 바람에 귀를 기울여봐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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