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회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포스터

4회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포스터 ⓒ DMZdocs

"우파들이 만드는 좌파 영화제라며?"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이하 영화제)에 대해 영화계 인사들이 우스개로 하는 말이다. 영화제를 바라보는 아이러니가 담겨 있는 표현이지만 영화제의 특징은 이 한마디에 녹아 있다.

영화제 조직위원장은 새누리당 소속인 김문수 경기도지사다. 그런데 영화제를 통해 주목받거나 혜택을 받는 것은 이른바 정권 차원에서 영화계 이념공격의 표적이 됐던 강성 독립다큐진영들다. 그러니 이런 표현이 나올 수밖에. 

하지만 그 안에 이 영화제의 가치가 담겨 있다. 이념을 떠나 폭넓게 다큐멘터리란 장르를 아우르는 영화제로, 다큐 영화를 통해 대중과 가까이 호흡하려는 노력에는 좌우가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

남과 북이 대립하고 있는 완충지대 역할로서 비무장지대(DMZ)가 존재하듯, DMZ 다큐멘터리 영화제 역시 좌우가 대립이 아닌 조화를 이루며 함께 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영화제로서 의미를 갖고 있다.

다큐 지원, 영화진흥위원회가 DMZ영화제에 배워야

4회 DMZ국제다큐멘터리 영화제가 21일 개막한다. 단 3회 만에 국내에서 주요한 다큐멘터리 행사로 부각된 영화제는 4회를 맞으며 다큐멘터리계의 주요 행사로 자리매김했다. '다큐는 지루하고 따분할 것'이라는 선입관을 불식시켰고, 행사를 거듭하며 대중적인 효과도 나타나고 있다. 지난 3회 때 다큐영화제로는 드물게 무려 12회의 상영이 매진되는 등 다큐의 재미를 알리는 데 기여한 것이다.

다큐멘터리 제작 환경이 열악한 가운데, 의미 있는 다큐영화 제작에 앞장서고 있는 것은 DMZ영화제의 긍정적인 부분이다. 특히 다큐 지원은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 보다 낫다는 말까지 들을 만큼 호평을 받고 있다. 상대적으로 영진위가 해야 할 일을 영화제가 대신하고 있어 영진위가 배워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다.

덕분에 4회를 맞으며 규모나 비중도 많이 커졌다. 올해 상영 작품은 35개국 115편으로, 지난해 30개국 100편보다 늘었다. 특히 올해 큰 화제를 모았던 용산 참사를 다룬 <두 개의 문>,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 이소선 여사를 소재로 한 <어머니>, 제주 강정마을을 소재로 한 <잼다큐강정> 등은 DMZ영화제의 지원 속에 완성돼 주목받은 작품들이다.   

그간의 성과가 알찼기 때문인 듯 4회를 맞이하며 DMZ영화제가 밝히는 각오는 남다르다.

'올해 영화제가 준비한 다양한 작품들은 다큐멘터리 장르에 대한 대중의 일반적인 편견을 바꿀 것이다. 지적 교육적 가치를 넘어 다큐멘터리가 사실은 상업적 극영화 못지않은 재미와 감동이 있다는 사실을 관객들이 깨닫는 것, 이런 다큐멘터리 장르의 재발견이 올해 우리 영화제 프로그램의 지향점이다.' 

이번 영화제의 특징은 생활 다큐에 중점을 뒀다는 점이다.  개막작 <핑퐁>이 대표적이다. 몽골에서 열린 80세 이상 노인들을 대상으로 한 세계 탁구 챔피언 대회를 소재로 한 영화는 노인들이 펼치는 놀라운 스포츠 세계를 담고 있다. 영화제 측은 "개막작은 관객들의 시선을 초반에 사로잡을 수 있는 작품으로 선정했다"며 "대중적인 재미를 갖춘 작품"이라고 소개했다.

 4회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개막작 <핑퐁>

4회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개막작 <핑퐁> ⓒ DMZdocs


다큐로 만나는 레슬링쇼 여인들, 치어리더 챔피언, 초밥 요리사

영화제의 간판과 같은 경쟁부문에 선정된 영화들 역시 예전보다 폭이 넓어졌다. 그간 갈등과 분쟁에 초점을 맞춘 영화들이 많았다면 환경, 가난, 차별, 부패한 사법 체계 등 소재가 다양해졌다. 

국제 경쟁에 출품된 <카불의 권투소녀들>은 변변한 지원 없이 올림픽 출전을 준비하는 아프카니스탄 소녀들의 모습을 담았고, <펑크 신드롬>은 지적장애인들로 구성된 핀란드의 가장 강렬한 펑크록 밴드를 통해 음악으로 주류사회에 대항하는 장애인들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동성애를 불법으로 규정한 탓에 마녀사냥이 빈번히 자행되는 우간다 게이 이야기를 다룬 <쿠추>, 필리핀의 부패한 사법체계를 폭로한 <내일이 온다면> 등 다큐의 의미와 재미를 느낄 수 있는 11편의 작품들이 포진해 수상을 놓고 경쟁을 펼친다.

국내 경쟁작은 한중일 작가들이 일본군 '위안부'에 대한 그림책을 만드는 과정을 담은 권효 감독의 <그리고 싶은 것>, 제주 4.3 희생자들과 제주도에 대한 임흥순 감독의 <비념>, 쉼터에서 머물던 10대 후반 소녀들의 생활을 담은 이숙경 감독의 <간지들의 하루> 등 모두 8편이다.

유럽의 주요 다큐멘터리 영화제들이 한 해 최고의 다큐로 엄선한 '닥 얼라이언스 걸작선', 바다와 산, 북극을 담은 '자연 다큐멘터리', 다큐 강국 '폴란드 다큐멘터리 특별전', 대중적인 재미를 최우선으로 앞세운 '다 함께 다큐를' 등은 다큐의 흥미를 안겨줄 작품들을 모아 놨다. 여자 레슬링쇼의 히로인들과 태국 치어리더 챔피언, 초밥 요리사와 프랑스 요리의 진수 등을 소재로 시선을 끌 만한 작품들을 전면에 배치했다.

대한문 투쟁 이야기 서울시청 앞 대한문 앞에서 농성중인 쌍용차 노동자들을 담은 다큐영화다

▲ 대한문 투쟁 이야기 서울시청 앞 대한문 앞에서 농성중인 쌍용차 노동자들을 담은 다큐영화다 ⓒ DMZdocs


DMZ영화제의 기존 색깔을 담고 있는 '현장 속의 카메라' 역시 약자와 억압 받는 자의 편에서 힘 있는 자들의 횡포를 고발하며 카메라를 가까이 들이댄다. 쌍용차 노동자들의 대한문 농성을 찍은 <대한문 투쟁 이야기>, 2011년 이집트 민주화 시위를 담은 <이집트 혁명 리포트>, 뉴욕 월가의 시위를 그린 <센트럴 파크를 점령하라> 등이 선보이는 작품들이다. 

하지만 폭과 소재가 넓어진 만큼 사회적 문제를 다룬 강렬한 다큐들이 예년보다 줄었다는 시선도 없지 않다. 이는 2~3회 행사를 책임져 온 강석필 프로그래머가 내부적인 문제로 중도 사임한 데 따른 여파로도 보인다. 이에 대해 DMZ영화제의 한 관계자는 "그런 측면이 없지 않아 있다"고 인정하면서도 "강석필 프로그래머가 있을 때도 생활다큐 쪽에 중심을 두자는 논의가 있어 왔다, 기존 색깔이 크게 바뀐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권력이 불편해할 소재인데도...김문수 지사, '간섭없는 지원'

다큐멘터리는 한국독립영화의 성장 속에 가장 앞장선 역할을 맡아 왔다. 치열한 다툼의 현장에 서 있었고, 정치사회적 현안에서 노동자 농민 철거민 빈민 등 상대적으로 소외된 자들의 편에 머물렀다. 민주 통일 인권 환경 등등 다양한 분야에서 미학적 성과를 이뤄냈다는 평가도 받는다. <워낭소리>처럼 대중적 흥행에 성공하거나, 최근 <두 개의 문>처럼 사회적 파장을 일으키기도 했다.

권력자와 기득권층이 불편할 수밖에 없었던 소재들이 주를 이루고 있다는 것은 다큐 영화의 주요 특색이기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새누리당 소속의 김문수 지사의 경기도가 '간섭없는 지원'을 하고 있다는 것은 DMZ다큐영화제가 의미있게 평가되는 부분이다.

또한 회를 거듭할수록 다큐진영 뿐만 아닌 대중적인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이렇듯 관객들의 많은 관심과 참여가 영화제의 가치를 높임과 함께 열악한 국내 다큐멘터리 환경에 힘을 불어 넣어줄 것으로 보인다. 

 4회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의 홍보대사로 활동하는 '2AM'

4회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의 홍보대사로 활동하는 '2AM' ⓒ 성하훈


다큐의 대중화를 위해 올해 영화제 홍보대사로 선정된 그룹 '2AM'을 비롯해 지난해 홍보대사였던 배우 배수빈·류현경, 집행위원을 맡고 있는 배우 유지태·방송인 이광기 등 'DMZ패밀리'들이 올해도 영화제를 지원한다. 상영관을 찾아 관객들과 함께 영화를 보고 호흡할 예정이다.

영화 시작을 알리는 트레일러 필름은 조재현 위원장이 소통을 주제로 직접 아이디어를 내고 전규환 감독이 촬영했다. "내가 얘길 하면 네가 내 얘길 듣고 나는 네 얘길 듣고. 그래야지 서로 대화가 되는 거지"라며 조재현 위원장이 술자리에서 독백하는 장면을 담았다. 대화의 필요성이 요구되고 있는 DMZ를 형상화하면서 소통의 중요성을 강조한 내용이다. 전 감독과 조 위원장이 올해 베니스영화제에서 각각 연출과 주연을 맡은 영화 <무게>로 퀴어 라이온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영화 외에 부대행사로는 DMZ의 풍경을 담은 김중만 사진전과  뮤직페스티벌·다큐멘터리 세미나 등이 펼쳐진다. 4회 DMZ다큐멘터리영화제는 21일 저녁 민간인통제선 지역인 도라산역에서 개막식을 갖고, 27일까지 7일간  파주 출판도시에 있는 롯데시네마와 메가박스 상영관에서 개최된다.

DMZ영화제 다큐멘터리 김문수 조재현 유지태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