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N드라마 <응답하라 1997>에서 방성재 역의 배우 이시언이 3일 오전 서울 상암동 오마이스타 사무실에서 인터뷰를 하기에 앞서 밝게 웃고 있다.

tvN드라마 <응답하라 1997>에서 방성재 역의 배우 이시언이 3일 오전 서울 상암동 오마이스타 사무실에서 인터뷰를 하기에 앞서 밝게 웃고 있다. ⓒ 이정민


이시언(31)은 불과 3년 전까지 이보연이라는 본명으로 살았다. 데뷔작인 드라마 <친구, 우리들의 전설>(2009, 김중호 역)로 곽경택 감독을 만난 그는 '선비처럼 베풀라'는 뜻의 새 이름을 얻었다.

'이시언'은 드라마 제작을 맡았던 진인사 필름의 양준경 대표와 곽경택 감독이 함께 작명소에 가서 사주까지 보고 지어준 이름이다. 학교 다닐 때 공부깨나 못했던 그의 과거를 꿰뚫듯 '학마가 꼈다'는 사주는 다행히 '3~4년 안에 확 뜰 것'이라는 배우로서의 밝은 미래를 담고 있었다.  

그로부터 딱 3년 뒤, 이시언은 tvN 드라마 <응답하라 1997>에서 말 많고 오지랖 넓은 방성재 역으로 얼굴을 좀 더 확실히 알렸다. 그는 2007년 곽 감독이 MBC <무릎팍도사>에 나와 "<친구>를 드라마로 만들어보고 싶다"는 말을 듣고 무작정 그를 찾아갔던 때를 떠올렸다.  

<친구> 곽경택 감독의 마음을 얻은 오디션

당시 이시언은 한 뮤지컬 무대의 청소를 도맡아 하며 배우의 꿈을 키우고 있었다. 연습실에서 독백을 준비하고 <친구> 등장인물들처럼 머리를 짧게 깎으러 간 그는 미용실에서는 '가위 팔러 온 잡상인' 취급을 당하며 쫓겨났고, 곽경택 감독도 만나지 못하고 돌아와야 했다.
  
 tvN드라마 <응답하라 1997>에서 방성재 역의 배우 이시언이 3일 오전 서울 상암동 오마이스타 사무실에서 미소지으며 포즈를 취하고 있다.

tvN드라마 <응답하라 1997>에서 방성재 역의 배우 이시언이 3일 오전 서울 상암동 오마이스타 사무실에서 미소지으며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정민


"그 뒤에 공개 오디션이 있었어요. 경쟁률은 1600대 1이었죠. 원서 접수할 때 연기 동영상을 올리면 가산점 10점 준다고 해서 어떻게든 그걸 받으려고 했어요. 대부분 이재용 선생님(눈칼자욱 역)의 대사나 장동건, 유오성 선배님의 유명한 장면만 따라했더라고요. 같이 연기하는 친구가 좋은 아이디어를 냈는데, '내가 못 살리겠으니 네가 해줬으면 좋겠다'고 오디션을 포기하더라고요."

그 좋은 아이디어는 유오성(준석 역) 대사의 패러디였다. '칼로 사람을 죽이는 방법'을 신입 건달들에게 교육시키는 장면이다. '너희들이 어릴 때 갖고 다니던 커터 칼이나 이런 걸로는 사람을 죽일 수가 없다'며 사시미 칼이나 스웨덴제 칼을 많이 쓰는 이유를 설명하는 무시무시한 대사는 '택배용 박스 붙이는 방법'으로 순화됐다. 서울 친구가 '못 살리겠다'고 포기한 사투리 대사는 부산 출신의 이시언에게 오히려 장점이 됐다. (해당 동영상은 이시언의 미니홈피에서 볼 수 있다)

'너희들이 어릴 때 갖고 놀던 스카치테이프나 이런 딱풀로는 택배용 박스를 붙일 수가 없다'며 노란색 테이프나 스웨덴제 청색 테이프를 추천하는 재치 있는 대사는 이미 곽경택 감독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 마음을 굳히게 만든 것은 곽 감독 앞에서 직접 연기를 하는 오디션이었다.

"오디션을 보기 위해서 교련복을 사 입고 신발도 구겨 신었어요. 근데 제가 눈이 안 좋거든요. 심사위원석을 돌아서 들어가야 하는데, 잘 안 보이니까 그 앞을 질러서 지나간 거예요. 감독님 앞을 쓱 지나갔으면서 찾지도 못하고 두리번거리고 있으니까 뒤에서 부르더라고요. 다들 '애가 왜 저러지' 싶었겠지만, 곽경택 감독님은 그때 저를 캐스팅하기로 결정하셨대요."

이시언은 "감독님만큼 배우의 숨어 있는 역량을 끌어낼 수 있는 사람이 없는 것 같다"며 "아마 그분이 안 계셨다면, 지금의 나도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보연은 그렇게 이시언의 삶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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