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N 드라마 <응답하라 1997>에서 동성 친구 윤윤제(서인국 분)를 좋아하는 강준희(호야 분).

tvN 드라마 <응답하라 1997>에서 동성 친구 윤윤제(서인국 분)를 좋아하는 강준희(호야 분). ⓒ CJ E'&M


"니를 좋아하는거 모르나?"라고 고백한 윤제는 시원이의 "우리 친구 아이가?"라는 대답에 "지랄한다"로 받아치고는 무려 6년을 보지 않는다. 그리고 6년 만에 만난 시원이는 대뜸 윤제에게 여자 친구가 있는지 확인하고는, '여자인 친구'라는 윤제의 어설픈 변명에 다시 "지랄한다"로 대꾸한다. 마치 <응답하라 1997>의 연애 코드는 '지랄한다'인 것처럼.

6년간 함께 생활해오던 준희가 집을 나간다고 하자 이해한다고 하는 윤제에게 어떻게 준희가 "어떻게 그리 담담할 수 있냐"고 섭섭해 하자 윤제는 말한다. "우리 친구 아이가?" 하지만 준희는 그런 윤제에게 감히 "지랄한다"라고 말하지 못한다. 예의 준희만의 아련한 눈빛을 보낼 뿐.

<응답하라 1997>은 90년대 청춘들의 삶을 다룬 드라마인 만큼 그들의 '사랑'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영화 <건축학개론>처럼 드라마의 후반부에 이르러서 주인공들은 6년이란 물리적 시간도 소용없이, 그 시절의 감정을 고스란히 간직한 채 다시 사랑을 한다. 그리고 사람들은 시원의 남편이 누군지 비밀에 부치는 작가에게 "낚지 말라"고 욕을 하면서도 혹시나 윤제와 시원이 이루어 지지 않으면 어떻게 하나 조바심을 내며 이 드라마에 집중한다.

그렇게 '누구'와 '누구'가 이어지는 와중에 내내 짠한 눈빛을 뿌리며 드라마 한편에서 속앓이를 하는 준희란 인물이 있다. 이 싱싱한 젊음의 드라마 안에서 그가 내내 슬픔의 코드를 담당하는 것은 바로 준희가 사랑하는 인물이 동성인 윤제이기 때문이다.

처음엔 준희의 윤제에 대한 연정은 '뭥미?'스러웠다. 하지만 준희가 첫 만남에서 대찬 윤제에게 반하고, 내내 그와 시원의 관계를 곁에서 지켜보고, 그를 따라 공군사관학교까지 지원하고, 이제 시원과 재회하기 전 6년을 함께(?) 하는 시간을 통해 보는 사람에게 '게이'라는 편견(?)을 벗어던지고 준희의 아플 수밖에 없는 사랑을 공감하게 한다.

'짝짓기'가 시작되며, 준희의 사랑은 사그라졌다

 윤윤제와 강준희

윤윤제와 강준희 ⓒ CJ E'&M


연출을 맡은 신원호 감독이 한 인터뷰에서 준희의 사랑에 대해 "'학창 시절 있을 수 있는 정도의 감정'이라는 수준에서 벗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했듯이, 준희의 사랑은 조심스럽고 소극적이다. 그리고 굳이 '게이'로서 정체성의 당당함을 내세우고 싶지 않게 소녀의 첫 사랑 같은 풋풋함의 감성을 유지한다.

그리고 돌이켜 생각해 보면, 한 시절 우리도 친구와 손을 잡고, 팔짱을 끼고, 세상 그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우정의 이름으로 동성에게 탐닉하던 시절이 있었지 않았나. '동성판 건축학 개론'처럼.

함께 H.O.T 공연을 기다리고, PC 통신으로 채팅을 나누는 등 윤제보담 시원이와 더 이야기가 잘 통하는 섬세한 감성의 준희. 그런 모습들을 보면 그의 윤제에 대한 끌림이 거의 거슬리지 않는다.

하지만 이제 다른 '남녀' 커플들이 본격적인 짝짓기에 돌입하면서 준희는 결코 자신을 돌아봐 주지 않을 윤제를 시원이게게 보내려고(?) 한다. 그리고 담담하게 자신의 감정조차 혼돈스러운 윤제에게 "가슴의 이야기를 들으라"고 충고까지 하며.

물론 작가의 낚시가 어떤 방향으로 이루어질지 모르겠지만, 시원-윤제 라인이 이루어 지지 않으면 전 국민 성토대회라도 벌어질 이 상황에서 준희의 사랑이 이루어질 가능성은 별로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자신의 가슴이 말하는 바를 솔직히 받아들이고, 늘 그의 곁에서 함께 하려 하고, 이제 다시 그가 원하는 대로 놓아주는 준희의 안쓰럽지만 성숙한 사랑은 예고된 16의 제목, '첫사랑이 이루어지지 않는 이유'에 가장 걸맞은 이야기가 되지 않을까.

준희는 우리가 누군가와 사랑에 목말라 할 때, 또 누군가 나를 보며 가슴을 쓸어내렸을 지도 모른다는 사랑의, 인간관계의 다면체적 속성을 뒤늦게 깨닫게 하기도 한다.

응답하라 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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