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재인 미니앨범 '여름밤'  앨범 재킷

▲ 장재인 미니앨범 '여름밤' 앨범 재킷 ⓒ 나뭇잎엔터테인먼트


"버스커버스커는 오디션 프로그램 출연 전 거리에서 공연하던 그대로의 음악을 선보여 큰 사랑을 받았죠. 본연의 모습에 사람들은 호응한 겁니다. 저도 버스커버스커를 보며 용기를 얻었어요. 홍대 클럽 시절 선보인 제 예전 감성을 받아들여 줄 거란 희망이 생긴 거죠."

지난 7월 말 새 미니앨범 <여름밤> 출시를 앞두고 장재인은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첫 번째 미니앨범 <데이 브레이커>가 어쿠스틱한 포크 감성을 기대했던 팬들에겐 배반처럼 느껴졌을 수도 있다면서.

이윽고 모습을 드러낸 <여름밤>에는 총 다섯 곡이 실렸다. 두 가지 버전이 담긴 'Rainy Day'를 하나로 보면 신곡은 네 곡이고, 모두 사랑 이야기를 담고 있다. 첫 번째 트랙 '여름밤'부터 네 번째 트랙 '굿바이'까지 이 앨범에 실린 곡들은 결국 한 커플이 만나서 사랑을 하고 위기를 겪고 끝내 이별하기까지 과정을 담은 이야기로 꿸 수 있다.

장재인은 이번 미니앨범에 자기 본연의 감성을 담기 위해, 직접 프로듀싱을 하고 수록곡 모두를 자작곡으로 채웠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데이 브레이커>와 <여름밤>을 옷에 비유한다면, 장재인에겐 후자가 상대적으로 좀 더 편하고 운신의 폭이 자유로운 옷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여름밤'은 한 여자의 '짝사랑'에 관한 곡이다. 화자는 오늘밤 좋아하는 남자와 함께 있고 싶다. 문제는 그녀가 보기에 남자가 이런 화자의 마음을 짐짓 모른 척하고 있다는 거다. 그래서 자꾸 초조해진다. 노랫말은 대략 이런 내용이지만, 남자가 그녀의 마음을 정말로 모른 척하고 있는지 여부는 불분명하다.

오히려 분명한 건 화자가 남자의 마음을 확신하지 못하고 있고 스스로 자신감이 없다는 것. 그리하여 그녀의 사랑은 '짝사랑'이거나, 화자는 이른바 '소심녀'일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이 시점에서 화자가 알아야 할 것은 드라마 <신사의 품격> 장동건의 대사처럼, 남자들은 직접 얘기해주지 않으면 여자의 마음을 죽었다 깨어나도 알 수 없다는 '진실'이다.

사실, 이 곡은 처음 들었을 때 멜로디가 귀에 쏙 들어오지 않았다. 장재인의 독특한 보이스 컬러 뒤로 멜로디가 자꾸 숨는다고나 할까? 하지만 반복해 들을수록 기타와 일렉트로닉 기타의 앙상블이 도드라지면서, 후렴부 멜로디가 귀에 감기기 시작했다. 20대 싱글 여성의 솔직한 욕망을 드러낸 노랫말, 다양한 소리를 내는 기타라는 악기의 매력 등이 눈길을 끄는 곡이다.

'STEP'은 달콤한 꿈결처럼 행복으로 충만한 순간에 관한 곡이다. 화자는 지금 덩실덩실 몸이 알아서 춤을 출 정도로 행복하다. 노랫말을 보면 그 행복이 지금 그녀 곁에 있는 사랑하는 이에게서 비롯됐음을 알 수 있는데, "그대 웃음이 멜로딜 만들죠", "지난 시간이 화음을 이뤄요" 등의 표현에서 볼 수 있듯 행복의 감정을 음악의 요소들로 은유한 노랫말이 인상적이다.

전반적인 사운드는 포크보다는 가벼운 춤이 어울리는 감각적인 팝에 가깝다. 특히 'step'이라는 단어가 여섯 번씩 반복되는 부분에서 흐르는 키보드의 맛을 낸 선율이 인상적인데, 단순한 음계가 반복되지만 산뜻한 느낌을 준다.

장재인이 "두 발이 멈추지 않아요 I can't say", "지금 두 다릴 바람에 맡겨요 so just step" 등의 노랫말을 부를 때 발생하는 일정한 리듬은 후렴부를 제외한 곡 전반에 걸쳐 사용되고 있는데, 이는 화자가 마치 춤을 추듯 밟고 있을 일정한 스텝을 연상시킨다. 가성이 부분적으로 사용된 후렴부 장재인의 보컬이 상큼한 곡이다.

'Rainy Day'는 비 오는 날 연인에 대한 사랑을 재차 확인하는 한 여자의 이야기를 담은 곡이다. 화자는 연인을 만나고 돌아오는 길이다. 다툰 것인지, 그간 쌓아둔 섭섭한 감정들 때문인지 알 수는 없으나 지금 그녀의 마음에는 구멍이 나 있다.

노랫말은 비 내리는 정경을 보며 위로를 받고, 평정심을 찾고, 마침내 연인에 대한 그리움을 다시 지피는 화자의 심리를 섬세하게 전달한다. 특히 "우리 모습이 저 밤하늘로부터 흘러내린다" "우산 속으로 스며들어 와요 기억 속 미소짓는 우리 모습이" 같은 노랫말이 아름답다.

곡 시작 후 1분 11초 즈음 본격적으로 등장하는 밴드 사운드는 드라마틱하게 변화하는 화자의 감정의 결을 풍부하게 전달한다. 특히 몽롱하면서도 몽글몽글한 일렉트로닉 기타 연주가 청자의 감성을 자극한다. 세련된 밴드 사운드와 장재인의 호소력 있는 보컬, 시적인 노랫말 등이 잘 어우러진 곡이다.

다섯 번째 트랙에 실린 이 곡의 '작은 방' 버전은 밴드 사운드 없이 기타를 주로 사용했는데, 오리지널 버전과 비교하면 보다 사적인 '독백'처럼 다가온다.

'굿바이'는 연인과의 결별을 노래한 곡이다. 화자는 연인을 보낸 후 노을이 보이는 창가에 앉아 그와의 이별을 받아들이고 있다. 노랫말에 나오는, 미처 "끝맺지 못한 말" 때문에 "또르르 흘러내려 입술에 맺"힌 그녀의 눈물은 분명히 말갛고, 따뜻하되 뜨겁진 않을 것이다.

"돌아선 그대 어깨에 햇살이 가득해"라는 노랫말에서 읽을 수 있듯, 두 사람의 이별은 격렬한 '파탄'이라기보다는 인정과 수용이 수반된 '정리'에 가까워 보이기 때문이다.

기타와 피아노가 사용된 사운드는 이런 화자의 마음 상태를 닮았다. 느린 속도와 따뜻한 톤으로 담박하고 정돈된 느낌을 전달한다. 가랑비에 옷 젖듯 청자의 마음을 아리게 하는 아름다운 멜로디와 장재인의 정제된 보컬이 돋보이는 곡이다.

장재인의 미니앨범 <여름밤>은, 각기 뚜렷한 개성은 있되 이질적인 분위기의 곡들이 맥락 없이 담겼던 <데이 브레이커>와 비교했을 때, 한 커플의 사랑 이야기라는 현실적인 맥락이 생기면서 확실히 청자가 공감할 만한 여지가 많아졌다.

즉, <데이 브레이커>가 '팬시'(fancy)했다면 <여름밤>은 '일상'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데, 당연한 얘기겠지만, 소박하면서도 엉뚱한 구석이 있는 인간 장재인의 자연스런 매력이 강하게 드러나는 건 후자 쪽이다. 이는 곧 청자들이 <여름밤>을 들었을 때, 그녀의 감성에 보다 오롯이 집중할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재인의 바람처럼 <데이 브레이커>와 <여름밤>이 확연히 다른 앨범이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사운드의 색깔과 스펙트럼 등 스타일에서 일정 정도 차이가 있는 건 분명하지만, 두 앨범이 공유하고 있는 정서 또한 결코 작지 않기 때문이다. 장재인이 인정하든 그렇지 않든 상관없이 두 앨범은 여지없는 그녀의 분신이다.

따라서 장재인이 강조하는 본연의 감성이 단지 이런 사운드 스타일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면, 그녀가 자기 본연의 감성을 공고히 한다는 이유로 그녀 자신의 음악이 폭넓게 발전할 수 있는 여지를 스스로 좁히는 우를 범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자기 본연의 감성이란 지극히 모호한 것이어서, 스스로 발견할 수 있는 것이라기보다는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비로소 발견되는 것이고, 의지를 갖고 만들 수 있는 것이라기보다는 시간과 경험이 쌓이면서 결과적으로 형성되는 것에 가까운 것이기 때문이다.

<여름밤>은 장재인이 대중이 원하는 음악과 자신이 원하는 음악의 접점을 찾는 과정에서 나온 결과물이다. 그래서 'STEP'에 나오는 "그대 웃음이 멜로딜 만들죠"라는 노랫말은 많은 이들이 자신의 음악을 들으면서 행복하기를 바라는 장재인의 마음으로도 읽힌다.

물론 이런 접점을 찾는 일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하지만, 장재인이 뮤지션으로서 이른바 롱런을 꿈꾼다면, 지금 그녀에게 중요한 것은 오히려 시행착오를 겁내지 않는 마음일 듯하다. 장재인은 아직 '원석'에 가깝다. 끝으로 기획사라는 '보호막'에서 걸어 나와 홀로 서기를 택한 장재인의 건투를 빈다.

장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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