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은교>에서 서지우 역의 배무 김무열이 23일 오후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오마이스타와 인터뷰를 마친 뒤 포즈를 취하고 있다.

영화<은교>에서 서지우 역의 배무 김무열이 23일 오후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오마이스타와 인터뷰를 마친 뒤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정민


영화 <은교>의 서지우. 그는 간절하게 시인이 되고 싶었다. 자신의 작품이 아닌 데에 본인의 이름을 올려야했던 수모를 감수하면서까지 말이다.

영화 <은교>의 서지우는 시인에 대한 갈망과 함께 자신이 그토록 존경했던 스승 이적요에 대한 열패감을 갖고 있던 인물이었다. 마음의 간극이 큰 캐릭터였던 것. 그것은 곧 배우가 캐릭터의 내면을 세밀하게 표현함으로써 관객을 설득시켜야 한다는 말이었다.

김무열은 자신이 뱉어야 했던 대사가 나오지 않아 매우 힘들었던 촬영 당시를 떠올렸다. 원작도 읽었고, 시나리오 상에 쓰여 있는 서지우의 모습이 심정적으로 이해가 갔지만 그게 표현이 안됐던 것이다.

"서지우의 대사가 안 나와 너무 힘들어"...해법은 그냥 비우고 부딪혀보기

"<은교>라는 영화가 딱히 겉으로 보여줄 거리도 없고, 관객이 즐길 거리도 부족한 작품이잖아요. 디테일한 모습을 최대한 가져가야 했기에 아무리 고민을 해도 결국 선택의 기로에 설 수밖에 없더라고요.

'자 이렇게 이야기가 흘러왔는데 그 다음은 어떻게 표현해야 하지?' 이런 생각의 연속이었죠. 준비를 하고 촬영 시작 할 때까지도 그날 촬영해야 했던 캐릭터들이 어떻게 보여야 하는지 그 목표를 모를 때도 있었어요.

감독님에게 '서지우의 이 대사가 안 나와요, 너무 힘들어요'라고 여러 번 말했어요. 그때마다 감독님은 '해봐, 그럼 봐줄게' 라고 말했죠. 그런 식으로 해나갔어요. 끝을 모른 채로."

서지우라는 인물은 곧 김무열에게 큰 숙제였던 게다. 결국 김무열이 스스로 내린 해법은 '정공법'이었다고. 소설가의 특정 습관을 담기보단 시나리오를 여러 번 읽어가며 다른 배우들과 부딪혀 보기를 택했고, 감독과 얘기를 하면서 톤을 잡아가는 식이었다.

서지우와 김무열, 그 둘은 닮았다
 영화<은교>에서 서지우 역의 배무 김무열이 23일 오후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오마이스타와 인터뷰를 마친 뒤 포즈를 취하고 있다.

영화<은교>에서 서지우 역의 배무 김무열이 23일 오후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오마이스타와 인터뷰를 마친 뒤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정민


공대생 출신의 서지우를 표현하기엔 김무열이 너무 감성적이었을까. 외형으로만 보면 선이 굵은 얼굴에 훤칠한 키의 김무열은 남성성이 물씬 풍긴다. 하지만 알려진 대로 그는 연기를 전공한데다 소설가 어머니를 두었다. 가히 피부터가 예술가 기질이 짙은 집안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평소에 공대생처럼 생각하려고 노력한 것 같아요. 공대생 특유의 이성적인 모습이 있잖아요. 제가 연기하는 모습조차 객관화시켜서 바라보는 모습이 필요하거든요. 의외로 연기하시는 선배들 중에도 이성적인 분들도 많고요.

근데 제가 매우 감성적인 편이라 쉽지 않더라고요. 아직은 젊으니까 감성적인 부분을 생각하면서 이리저리 부딪혀 보면서 깨쳐야죠! 그렇게 해보라고 선배들도 조언해주셨고요." 

배우로서 자신이 연기하는 모습을 객관적으로 바라본다는 건 경력 10년 이상의 베테랑 연기자들에게도 어려운 일이다. 내로라하는 배우들도 영화 첫 시사회 이후엔 '시간이 더 지나야 알 것 같다'며 본인 연기에 대한 언급을 피하곤 한다. 

여기서 이 점을 기억해두자. 서지우가 시인이 되고 싶어 했던 만큼 김무열은 배우가 되고 싶어 했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것도 매우 간절히. 

"아버지, 그리고 제가 좋아했던 (박)용하 형까지 20대 후반에 잃었죠. 이게 아홉수인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현실이 버겁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나름 열심히 살았는데 '아무리 해도 안 되는 것도 있구나'라면서요."

 영화<은교>에서 서지우 역의 배무 김무열이 23일 오후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오마이스타와 인터뷰를 마친 뒤 포즈를 취하고 있다.

영화<은교>에서 서지우 역의 배무 김무열이 23일 오후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오마이스타와 인터뷰를 마친 뒤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정민


세상에서 돈이 전부구나라는 생각에 사로잡혔던 때가 있었단다. 동시에 스스로 지녀야했던 삶의 무게를 짊어지면서도 그는 배우라는 꿈을 놓지 않았단다. 주변에선 자기만 아는 이기주의자라는 질타에도 뚜벅뚜벅 그 길을 걸었다고.

짓누르던 절망감에 비례하듯 배우의 꿈은 커졌고 당당하게 연기를 했단다. 결국 <광화문 연가> <아가씨와 건달들> <삼총사> <쓰릴 미> <김종욱 찾기>과 같은 뮤지컬 작품을 통해 그는 일찍이 떠오르는 신성으로 인정받았고, 이젠 영화연기로까지 그 영역을 넓혀갈 수 있었다.

"결국 어머니의 덕"...새로운 영역에 계속 도전하겠다

어려웠고 힘들었던 때의 얘기 뒤엔 그의 어머니가 담겨 있었다. 배우로서 입지를 잡아갈 무렵이 돼서야 주변이 보였다며 김무열은 그의 어머니에게 공을 돌렸다.

"제가 당연하게 연기할 수 있던 건 어머니 덕이죠. 어느덧 늙어가는 엄마가 보이고, 주변사람들도 보이기 시작했어요. 날 그나마 아름다운 사람으로 만든 게 엄마라는 사실을 깨달은 거죠."

훈훈한 이야기에 감동이 몰려올 무렵, 김무열은 "그럼에도 요즘 아침마다 싸운다"며 호탕하게 웃었다. 소재는 아침밥을 먹네 마네란다. 어머니 앞에선 그 어떤 스타 배우라도 철없는 아들이 되는 법. 무척이나 공감이 돼 문득 생각해보니 이건 전 세계 아침 밥상머리에서 벌어지는 공통된 현상일지도 모른단 생각이 들었다. 이 얘기에 그는 또 한 번 크게 웃음보를 터뜨렸다.

'철없는 아들' 김무열을 다시 <은교>의 김무열로 끌어왔다. 온 감정을 다해 한 영화의 중심축으로 분한 그에겐 이제 관객의 평가와 반응이라는 과제가 남겨져있었기 때문이다.

마지막 질문을 전제로 하고 그에게 물었다. 뮤지컬과 영화 연기는 그에게 어떤 의미일까. <은교> 속 이적요의 시와 서지우의 소설처럼 비슷하지만 결코 닿을 수 없는 평행선일까. 
 영화<은교>에서 서지우 역의 배무 김무열이 23일 오후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오마이스타와 인터뷰를 마친 뒤 포즈를 취하고 있다.

영화<은교>에서 서지우 역의 배무 김무열이 23일 오후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오마이스타와 인터뷰를 마친 뒤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정민


"뮤지컬 연기와 영화 연기요. 본질은 똑같은 거 같아요. 제가 거만해진 걸 수도 있겠지만 다른 점은 못 찾겠더라고요. 솔직히 욕심도 생깁니다. 영화배우에겐 뮤지컬이 힘들고 뮤지컬 배우가 영화에 출연하면 과장된 연기로 보인다는 말이 있는데 젊은 배우가 해결해 나갈 수 있는 몫이라고 생각합니다. 장르 구분이 굳이 필요할까요?

뮤지컬 안에도 장르가 참 많아요. 그리고 3D영화 촬영 때 보면 블루 스크린을 치고 가상으로 연기하잖아요. 이런 상황에서 장르로 구분해버리고 규정짓는 건 배우의 한계를 긋는 게 아닌가 싶어요.

젊은 예술가로서 그런 걸 섞어보고, 도전하고 싶은 의식이 생깁니다. 영화랑 음악이랑 연극을 합쳐볼 수도 있겠고요. 하나의 공연 자체로 시도할 수 있는 거죠. 해내면 나중에 관객 분들이 이름을 지어주겠지요(웃음)."

시인이 되고 싶어 했던 서지우처럼 배우이고 싶었던 김무열은 그렇게 좋은 배우로 성장하고 있었다.

김무열 은교 박해일 김고은 서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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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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