씹고, 뜯고...고기 먹을 때만 쓰는 단어가 아닙니다. 음악도 고기처럼 먹을 수 있습니다. 음원, 라이브, 악기, 보컬 등을 각각 뜯다 보면, 어느새 맛있는 노래 한 곡을 다 먹게 됩니다. 하지만 포털 등에서 유용한 '개념 기사'를 찾기가 어렵습니다. 새롭고 의미 있는, 그럼으로써 함께 공감할 수 있는 글이 되길 바랍니다. 평범한 대학생 박종원 드림

이쯤이면 록 페스티벌로 간주해도 무방하다. 슈퍼키드, 몽니, 피터펜 컴플렉스, 와이낫, 내귀에 도청장치까지. 인디신에서 최고의 커리어를 자랑하는 밴드들이 속속 KBS 2TV 오디션 프로그램 <밴드 서바이벌 TOP 밴드>(아래 <탑밴드>) 시즌2에 출전의사를 밝혔다. 시즌1과 달리 프로밴드에 대한 출전제한이 완전히 풀리면서 걸출한 인디밴드들의 출사표가 연이어 쏟아진 것이다.

록 마니아들은 흥분의 도가니에 빠졌고, 동시에 판이 급격하게 커지는 <탑밴드2>에 대한 걱정이 시작됐다. 이러다 넬과 피아까지 나오는 것 아니냐는 반응이었다. 결국 피아와 바닐라 유니티가 출전의사를 밝힌 것이 17일 오후에 알려지면서 록 커뮤니티 게시판은 한 차례 폭풍이 휩쓸고 간 상태다.

 <밴드 서바이벌 TOP 밴드> 홈페이지

<밴드 서바이벌 TOP 밴드> 홈페이지 ⓒ KBS


<탑밴드> 시즌2, 프로 밴드의 대 역습

마니아의 입장에선 사실 이만한 귀 호강이 없다. 밥상으로 치면 상다리가 부러질 만큼의 진수성찬인 셈이다. 그간 공중파에서 제대로 된 밴드음악을 접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웠나. <유희열의 스케치북>이나 <공감>에 아는 밴드라도 나오면, 그걸 놓칠세라 촉을 바짝 세우고 기다리던 마니아들이었다.

<탑밴드2>의 커진 스케일은 분명 '리스너'의 가슴을 뛰게 만든다. 그러나 마냥 즐거워할 수만은 없다. 대회 시작 전부터 여러 문제가 대두되고 있기 때문이다. 일단 주요 참가자들의 커리어를 보자.

와이낫의 경우 10년 간 정규 앨범을 일곱 장이나 발매한 베테랑 밴드고, 내 귀에 도청장치는 2001년 '이메일'이란 곡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끈 사실상의 메이저 밴드다. 슈퍼키드는 2006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의 메인 스테이지에 오르며 마니아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정규앨범도 이미 세 장이나 발표했다.

몽니는 못(MOT)과 더불어 일찌감치 넬(Nell)의 대항마로 자리매김한 밴드고, 피아는 모두 지금까지 다섯 장의 정규앨범을 발매하며 린킨파크(Linkin Park)에게 전미투어까지 제안 받았던 밴드다. 실제로 피아는 린킨파크의 동남아 투어에 동행하며, 같은 무대에서 합동 무대까지 선보이기도 했다.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17일 김광필 PD가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글

17일 김광필 PD가 세간의 이른바 '음모론'과 관련하여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반박글 ⓒ blog.daum.net/feelkk


아마추어 밴드에 대한 '대량학살' 우려

이렇게 화려한 커리어의 밴드 참가가 늘어날수록 아마추어 밴드들이 <탑밴드2>에서 두각을 나타낼 기회는 그만큼 줄어들 수밖에 없다. 네티즌 용어로 '양민학살'의 가능성이 높아진 셈이다.

물론 이번 시즌부터 예선 심사를 아마추어 밴드와 프로 밴드로 나눠서 하기 때문에 예선 단계부터 아마추어 밴드가 전멸할 일은 없다. 아마추어 밴드가 이름을 알릴 수 있는 최소한의 안전장치는 마련된 셈이다. 그러나 이들이 8강 또는 4강 이상의 토너먼트가 진행되는 동안에도 꿋꿋하게 살아남을 수 있을지는 또 다른 문제다.

프로 밴드를 어떤 방식으로 평가할 것인지도 의문이다. 세계적인 밴드와 투어를 다니고 해외에 진출한 경험이 있는 베테랑 밴드를 과연 누가 어떻게 평가한다는 소리일까.

신대철과 송홍섭이라면 응당 그들에 대한 평가가 가능한 것일까. 청중평가단이라면 그들의 음악세계를 정확하게 평가할 수 있는 걸까. 청중 평가단은 대중의 인기를 단순 반영하기에 그렇다 치더라도 전문가가 전문가를 평가한다? 모양새가 조금은 우스꽝스럽다.

 <탑밴드> 시즌1 당시 16강 대진표

<탑밴드> 시즌1 당시 16강 대진표 ⓒ KBS


모두가 상처받지 않는 축제가 되기를...

사실 위 문제들보다 더 신경 쓰이는 건 인디 뮤지션으로써 그들이 지켜온 자존심에 생길지도 모르는 상처다. 이미 각오를 하고 참가의사를 밝혔겠지만, 자존심을 걸고 음악을 한 이들 하나하나에 순위가 매겨진다는 사실이, 또 그래야만 주목받을 수 있는 현실이 쓴웃음을 짓게 만드는 건 어쩔 수 없다.

무대가 끝나고 밴드 멤버 전원이 숙연한 모습으로 늘어서 있다. 심사위원이 독설을 쏟아내고 고개를 숙인다. 그리고 이를 꽉 깨물며 "감사합니다"를 외치며 심사위원과 청중들에게 90도 인사를 한다. 떨어진 밴드는 울며 서로를 부둥켜안는다.

그게 하필 내가 몇 년간 홍대 앞 공연을 쫓아다니면서 응원했던 밴드다. 차마 그 광경을 볼 수가 없어 <탑밴드2>를 즐겁게 보겠다는 약속은 못하겠다. 그들의 무대를 보는 것이 즐거울지는 몰라도 그들의 직업적 자존심이 우르르 무너지는 순간을 지켜보는 것까지 즐겁지는 않을 테니까.

내부적으로 평가방식을 열심히 논의 중이겠지만, 판이 커진 만큼 기존의 평가 방식으로는 명백한 한계가 존재한다. <탑밴드2>는 과연 축제가 될까 지옥이 될까. 아무쪼록 그 누구도 상처받지 않는 축제이길 바란다.

탑밴드 와이낫 피아 슈퍼키드 몽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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