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오후 한 트윗글이 지속적으로 RT(리트윗)가 됐다. 애니메이션 <돼지의 왕>을 연출한 연상호 감독이 올린 글이다.

"만화 애니의 도시 부천 : <돼지의 왕> 상영관 없었음. 국내 유일의 애니메이션 전용 극장 서울 애니 시네마 : 18금이라 <돼지의 왕> 상영 못함. ㅎㅎㅎㅎ"

<돼지의 왕>은 작년 11월 3일 개봉해 2만 여에 육박하는 관객을 동원한 2011 애니메이션계의 문제작이자 화제작. 애니메이션으로서는 이례적인 학교 왕따 문제를 소재로 삼은 파격적인 주제, <사랑은 단백질> 등으로 촉망받던 연상호 감독의 장편 데뷔작, 오정세, 양익준, 김꽃비, 박희본, 김혜나 등의 젊은 배우들의 목소리 출연 등과 함께 화제를 모으며 <마당을 나온 암탉> 등과 함께 2011년 애니메이션의 수확으로 꼽히는 작품이다.

한국독립영화협회가 2011년의 독립영화로 꼽으며 "한국 독립장편 애니메이션의 역사는 <돼지의 왕>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고 극찬한 <돼지의 왕>. 그러나 이 작품을 국내 최초 애니메이션 전용관인 서울애니시네마와 '만화의 도시'라 자처하는 경기도 부천에서는 보기 힘들었다. 도대체 무슨 이유로?

 애니메이션 <돼지의 왕>이 한 장면

애니메이션 <돼지의 왕>이 한 장면 ⓒ KT&G 상상마당


"19금 애니메이션은 아무리 작품이 좋아도..."

"어떤 규정이나 조례 때문이 아니다. 서울애니시네마는 학교보건법 상 절대정화구역으로 지정돼 있다. 바로 옆에 초등학교가 둘이나 있지 않나. 우리도 극장 인가를 내고 상영을 하고 있다. <돼지의 왕> 만을 위해 '유도리'를 부릴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서울애니시네마측 한 관계자의 설명이다. 학교보건법 제 6조는 초중고 교육시설의 정문으로부터 직선거리 50M 이내는 교육상 위생․ 유해업종의 인․허가 등에 대해 제한과 규제를 할수 있도록 지정하고 있다. 남산 자락에 위치한 서울애니시네마 인근에는 리라초등학교와 숭의초등학교가 위치해 있어 학교보건법 상 청소년관람불가 등급 영화는 상영할 수 없는 실정이다. 

학교 폭력이란 주제를 자유로운 상상력과 파격적인 표현력으로 그린 <돼지의 왕>의 상영등급은 역시나 청소년관람불가 등급. 서울애니시네마는 지금껏 단 한번도 청소년관람불가 등급의 영화를 상영한 적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애니시네마 측 또 다른 관계자는 또 "서울시와 학교 측과 협의를 거쳐 특수하게 설립 허가를 내 준 것이다. 일반 상영관과 다르게 운영할 수밖에 없다. <소중한 날의 꿈>도 그렇고, <돼지의 왕> 또한 우리도 다 상영을 했으면 했다. 등급이 15세만 됐어도 편하게 상영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학교가 이사를 가지 않는 이상 힘들다"라고 설명했다.

서울애니시네마는 서울시 산하기관인 서울산업통산진흥원 서울애니메이션 센터가 운영주체다. 이 관계자는 또 "학교들 측에서 2005년 서울애니시네마 설립 초기에도 설립을 반대했다고 알고 있다. 현실적으로 당장 법 개정을 하지 않는 이상 우리도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다"고 덧붙였다.

 <돼지의 왕>의 조영각 PD와 연상호 감독

<돼지의 왕>의 조영각 PD와 연상호 감독 ⓒ 성하훈

"서울애니메이션 센터가 이사를 간다면 상영 가능할까?"

이에 대해 연상호 감독은 "예전 상영시간이 30분이 넘는 <지옥>이라는 단편도 서울애니시네마에서 개봉을 추진한 적이 있다. 하지만 그 규정 때문에 역시나 상영을 할 수가 없었다. 기획전이나 특별전 형태도 고려해 봤는데 그 쪽에서 거부하기도 했다"고 밝혔다.

연 감독은 또 "서울애니메이션센터가 이사를 간다고 하던데 그 쪽에도 초등학교가 있으면 큰일"이라면서도 "성과를 거둔 애니메이션의 경우 서울애니메이션센터나 컨텐츠진흥원 쪽에서 좀 더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것 아닌가 싶다"는 속내를 내비췄다.

트위터에 올린 부천시의 경우 "사실 만화영상진흥원 내 400석 규모의 극장에서 상영을 하기도 했는데 일반 관객들이 찾기에 너무 외지고 위치가 안 좋았다"며 "자칭 '만화의 도시'라는 부천에서 멀티플렉스는 물론 제대로 상영할 일반 극장이 없다는 현실이 안타까웠다"며 아쉬움을 보였다.

평단과 관객들의 지지 속에서도 2만 명을 돌파하지 못한 속내에는 이러한 배급 상의 어려움이 산재해 있던 것이다. 과감히 청소년관람불가 등급을 굽히지 않고 작품성을 택한 <돼지의 왕>의 경우는 '아동용'이란 애니메이션에 대한 선입견을 깨고 제16회 부산국제영화제 영화진흥기구상(NETPAC), 한국영화감독조합상, 무비꼴라쥬 상을 수상한 바 있다.

3년이 넘는 제작기간을 소요하며 한국 애니메이션의 한 획을 그은 <돼지의 왕>가 겪은 이러한 상영의 제약은 독립애니메이션 더 나아가 독립영화의 열악한 배급환경을 엿볼 수 있는 단적인 에피소드라 할 만하다. 한국애니메이션의 도약의 해로 평가받았던 2011년 이후에는 이러한 안타까운 소식을 접하지 않게 될 수 있을까.  

돼지의왕 연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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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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