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N드라마 <로맨스가 필요해>에서 포토그래퍼 서준이 역의 배우 이관훈이 1일 오후 오마이뉴스와 만났다. 배우 이관훈이 서울 상암동에서 인터뷰를 하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tvN드라마 <로맨스가 필요해>에서 포토그래퍼 서준이를 연기하고 있는 배우 이관훈이 1일 오후 오마이뉴스와 만났다. 그는 KBS드라마 <대조영>에서 호위무사로 출연한 것을 시작으로 MBC의 전쟁드라마 <로드 넘버원>에서 권진철 하사역으로 인상적인 연기를 선보였다. ⓒ 이정민


"두려운 것이 없었어요. 비행기에서 낙하산 타고 뛰어 내리고, 잠수도 하고, 산악등반도 해보고... 세상에 하늘, 땅, 바다를 다 가져봤는데, 카메라 앞에 서니까 어찌나 떨리던지."

특전사 출신 배우 이관훈은 드라마 <대조영>에서 검이(정태우 분)의 호위무사 역으로 받은 첫 대사 "장군, 저기를 보십시오"를 하면서 총 8번 NG를 냈다. 이후 전쟁드라마 <로드 넘버원>에서는 군인 출신이어서인지 권진철 하사 역을 몸에 꼭 맞는 옷처럼 소화해내고 자신감을 얻었다. 그런데 최근 케이블드라마 <로맨스가 필요해>의 '까칠한 도시 남자' 서준이 역은 '전쟁보다 무서운 멜로'가 무엇인지 느낄 정도로 어렵다. 최민수의 남자다움을 동경하는 이관훈에게 느와르는 익숙했지만, 시크함은 낯설었다.

차가운 도시건, 따뜻한 도시건 복잡미묘한 꾸밈이 필요 없는 그냥 남자 이관훈을 1일 오후 서울 상암동에서 만났다.

갓 제대한 부산 총각의 '압구정 상경기'

 tvN드라마 <로맨스가 필요해>에서 포토그래퍼 서준이 역의 배우 이관훈이 1일 오후 오마이뉴스와 만났다. 인터뷰를 하기에 앞서 배우 이관훈이 서울 상암동의 한 작은터널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특전사에서 4년 동안 군생활을 한 이관훈은 제대 후 수영강사와 모델일을 하면서 돈을 벌었다. 그는 직접 에이전시에 프로필 사진을 돌리면서 배우의 꿈을 키웠다. ⓒ 이정민

이관훈을 소개할 때마다 독특한 이력으로 거론되는 특전사는 20살 당시의 생존 방식을 따른 선택이었다. 공업고등학교 3학년, 소위 '날라리'였던 그는 때가 잔뜩 낀 손톱을 하고 받은 월급으로 맛있는 걸 사주겠다는 선배를 보고 대학 진학을 결심했다.

하지만 아버지의 연이은 사업 실패로 집안 형편은 어려웠다. 학교 갔다 오면 아버지를 찾으러 온 건장한 남자들이 집안에 아무렇게나 누워있었다. 그때 "돈을 벌면서 군 생활을 할 수 있다"는 이야기는 그에게 솔깃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게다가 병무청에 가서 본 검은색 베레모를 쓴 군인이 그렇게 멋있어 보일 수 없었다.

"군에 들어가서 21살 쯤 되니까 내 인생을 살아야겠다는 결심이 확고해지더라고요. 어릴 적 이국적인 외모 덕분에 사람들의 시선을 받으면서 막연하게 '연예인 할까?' 생각했던 배우의 꿈을 다시 떠올리게 됐어요. 군대는 밤 10시에 불을 끄는데 2시간 동안 상상의 나래를 폈죠. 제대하고 해야 할 일을 생각할 때의 에너지는 엄청 났어요."

2004년 1월 제대한 이관훈은 부산 집에도 들르지 않고 무작정 지하철을 타고 압구정 로데오 거리로 와 찜질방에 짐을 풀었다. 트레이닝복 2벌, 청바지 3벌, 티셔츠 몇 장이 전부였다. 포장마차에서 서빙 아르바이트부터 시작했다. 돈도 벌어야 했지만, 오랜 군생활로 후임들이 뭐든 챙겨주면 받기만 하던 습관을 버리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찜질방에 함께 투숙하며 알고 지내던 사기꾼들에게 모은 돈과 카드를 털리고 빈털터리가 됐다. '서울서 눈감으면 코 베어간다'는 말은 이제 갓 제대한 부산 총각에게 우스갯소리가 아니었다.

이관훈은 돈을 벌기 위해 수영강사를 시작했다. 몸 하나 뉘이면 남는 공간이 없는 30만 원짜리 고시원에서 탈출하기까지 10개월이 걸렸다. 책상 밑에 침대가 들어가는, 인체를 고려하지 않은 '면적공학' 구조 탓에 항상 무르팍에 생채기가 냈다. 방수 반창고를 붙여도 노상 수영장에 있으니 잘 아물지 않았다. 하지만 수입은 꽤 쏠쏠했다.

수영강사들의 로망이라는 잠실 소재 스포츠센터에 800:1의 경쟁률을 뚫고 들어갔다. 도회적으로 생긴 청년이 "요래 해가, 죽~ 땡기가, 쫙 밀면 진짜 잘 나가는데~"하는 구수한 사투리를 써 회원들 사이에서 인기가 좋았다. 아줌마 회원들이 싸준 반찬 덕분에 이관훈의 고시원 식구들은 항상 고기를 섭취할 수 있었다. 더 이상 연기의 꿈을 미루면 안 되겠다는 생각에 모델 학원에 등록할 때 그의 나이는 26살이었다.

"아따~ 젊은 양반, 고향이 어디시오"

 tvN드라마 <로맨스가 필요해>에서 포토그래퍼 서준이 역의 배우 이관훈이 1일 오후 서울 상암동에서 오마이뉴스와 만났다. 인터뷰를 하기에 앞서 배우 이관훈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tvN드라마 <로맨스가 필요해>에서 포토그래퍼 서준이 역을 맡은 배우 이관훈이 1일 오후 서울 상암동에서 오마이뉴스와 만났다. 인터뷰를 하기에 앞서 이관훈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정민


모델 혜박과 함께 의류 브랜드 카탈로그를 촬영한 것을 시작으로 이관훈은 큰맘 먹고 수영강사를 그만두고 기획사를 구했지만 일이 들어오지 않았다. 그러던 중 연예인 축구단에서 최수종을 만나 하게 된 드라마가 <대조영>. 하지만 대사 한 마디를 수천 번 외워놓고 막상 촬영 때는 입을 떼기조차 힘들었다. 그는 촬영이 없는 날도 현장에 나가 다른 배우들의 연기를 모니터했다.

<대조영>이 끝나고 다시 차기작이 안 잡히기를 6개월, 지인의 소개로 뮤지컬 <진짜 진짜 좋아해>와 <클레오파트라> 공연에 참여할 수 있었다. 무대연기를 배우며 자신감도 얻었지만, 2009년 다시 카메라 앞에 서고 싶어 두드린 영화, 드라마 오디션은 꼭 최종까지 가서 낙방이었다. 그렇게 넘치던 에너지와 의욕은 바닥을 드러냈다.

먹고 살 돈도 떨어져 가던 중에 다시 기회가 왔다. 한국전쟁을 배경으로 한 전쟁드라마 <로드 넘버원>이었다. 그가 군인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 PD가 준 역할은 전라도 사냥꾼 권진철 하사. 인민군으로 만난 고향 동생에게 총을 겨눠야 하는 군인의 인간적인 갈등이 묻어나야 하는 배역이었다. 동생을 처단하려는 상사에게 "이놈은 빨갱이 아니어라, 지가 잘 안당께요"라고 소리치는 이관훈은 경상도 사나이가 아니라 그냥 전라도 사람 그 자체였다.

"나름 전라도 사투리를 준비했는데 잘 안되더라고요. '너 아니어도 할 놈 무수히 많다,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본다'는 PD 말에 바로 전라도로 내려갔죠. 광주, 순천, 여수, 벌교 다 돌아다니면서 할머니, 할아버지들 목소리를 녹음해왔어요. 그리고 결정적으로 도움을 많이 준 분은 성지루 선배예요. 대전 분인데 워낙 전라도, 경상도 할 것 없이 사투리를 잘 하시잖아요. 6개월은 전라도 사람으로 살았어요. 전라도 사람이 '아따, 젊은 양반 고향이 어디시오'할 정도로."

바스트샷 준다는 말에 맨몸으로 20m 암벽 뛰어올라가

 tvN드라마 <로맨스가 필요해>에서 포토그래퍼 서준이 역의 배우 이관훈이 1일 오후 오마이뉴스와 만났다. 배우 이관훈이 서울 상암동의 한 작은터널에서 포토그래퍼같은 모습으로 포즈를 취하고 있다.

tvN드라마 <로맨스가 필요해>에서 포토그래퍼 서준이를 연기하는 이관훈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관훈은 연기를 위해 실제로 사진 찍는 법을 배웠다. ⓒ 이정민

최근 tvN 드라마 <로맨스가 필요해>에서 이관훈이 연기하는 포토그래퍼 서준이는 거칠고 선 굵은 권진철 하사와는 전혀 다른 도회적인 모습이다. 게다가 바람기 가득한 자유연애가 서연(최여진 분)에게 처음으로 굴욕을 선사한 어려운 남자.

"<로드 넘버원> 찍을 때 부대원으로 출연하는 배우들끼리 숙소 TV로 멜로드라마를 보면서 '저렇게 앉아서 몇 마디 대사하는 연기는 얼마나 쉬울까' 했었어요. 근데 막상 해보니까 여자배우와 연기하는 것도 처음이라 밀고 당기는 미세한 남녀 간의 감정을 표현하는 게 어렵더라고요. 앞으로는 목숨까지 걸 수 있을 만큼 처절하게 사랑하는 연기를 해보고 싶어요. 영화 <나를 책임져 알피>의 주드로처럼 미워할 수 없는 바람둥이 역할도 탐나고요."

현재 이관훈은 <로맨스가 필요해>와 함께 대학로에서 연극 <청혼>의 무대에도 오르고 있다. 얼마 전에는 <옹박>의 감독 프라챠 핀카엡의 액션영화 <전설의 검을 찾아서: 더 킥> 촬영을 태국에서 마치고 왔다. 대역을 쓰지 않는 것으로 유명한 감독의 작품인 만큼 수없이 때리고 맞아야 했다.

하지만 그에게 몸이 힘든 것은 행복한 일이다. <로드 넘버원> 촬영 때도 20m 암벽을 장비 없이 먼저 올라가는 사람에게 바스트샷을 준다는 말에 맨몸으로 뛰어올라간 그다. 이관훈은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이 가장 힘든 일"이라고 말했다.

"빨리 성공해서 어머니, 아버지에게 뭔가 해드리고 싶어요. 부모님으로부터 정신적인 안정이나 물질적인 도움을 받으며 자란 건 아니지만 아무래도 가장 애틋하죠. 두 분이 부산 범어사라는 절 앞에서 10년째 손칼국수를 하고 계신데 가게는 작지만 장사가 잘 돼요. 부산에 오시면 놀러 오세요.(웃음)"

'옹박' 감독 프라챠 핀카엡의 액션영화
<전설의 검을 찾아서: 더 킥> 촬영 마쳐

 이관훈은 영화 <전설의 검을 찾아서: 더 킥>에서 악역을 맡았다. 얼마 전 태국 촬영을 마치고 돌아왔다.

이관훈은 영화 <전설의 검을 찾아서: 더 킥>에서 악역을 맡았다. 얼마 전 태국 촬영을 마치고 돌아왔다. ⓒ 이관훈


배우 이관훈이 영화 <옹박>의 감독 프라챠 핀카엡의 액션영화 <전설의 검을 찾아서: 더 킥>(이하 <더 킥>에 캐스팅돼 얼마 전 태국 촬영을 마쳤다.

<더 킥>은 방콕에서 20년간 태권도장을 운영하는 한국인 가족과 악당들의 대결을 그리고 있다. 조재현과 예지원이 부부로 출연하는 이 영화에서 이관훈은 이들 부부를 괴롭히는 악역으로 출연한다.

처음 이관훈은 감독으로부터 악역을 거절당했다. 감독이 해맑게 웃는 순박한 그의 사진을 본 것. 이에 이관훈은 태국까지 건너가 실물을 보여주고 배역을 얻어냈다. 태권도와 특공무술 유단자인 그의 이력도 캐스팅에 한몫했다. 

대역을 쓰지 않는 것으로 유명한 <옹박> 연출자의 영화답게 이관훈은 실제로 수없이 때리고 맞았다. 그는 "감독이 촬영에 들어가기 전 '위험한데 정말 할 수 있겠냐'고 세 번이나 물어봤다"며 "그래서 내가 '당신 나 죽일 거냐, 죽이지 않을 거면 할 수 있다'고 답했다"며 웃었다.

영화 <전설의 검을 찾아서: 더 킥>은 올 가을 개봉을 앞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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