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전 직전 선수대기실의 이승윤

출전 직전 선수대기실의 이승윤ⓒ 류재현


개그맨 이승윤(34)이 격투기 도전을 통해 패배의 아픔과 눈물, 그리고 진정한 희극(코미디)을 연출했다. 

이승윤은 23일 삼성동 섬유센터 3층 이벤트홀에서 열린 종합격투기 로드FC 대회에서 격투기 데뷔전을 치렀다. 상대인 박종우(24·순천PCK) 역시 데뷔전이라 양 선수 모두 양보할 수 없는 경기이자 물불 가리지 않을 난타전이 예상됐다. 하지만, 같은 데뷔전이라도 격투기에 입문한 기간으로 따지면 박종우가 2년인데 비해 이승윤은 고작 2달에 불과하니 결과는 이미 충분히 짐작하고도 남을 경기였다.

 <남자의 자격>의 이경규·이윤석도 경기장을 찾았다. 놀란 듯한 이경규의 표정이 인상적이다.

<남자의 자격>의 이경규·이윤석도 경기장을 찾았다. 놀란 듯한 이경규의 표정이 인상적이다.ⓒ 류재현


 이승윤을 응원하러 경기장을 찾은 동료들

이승윤을 응원하러 경기장을 찾은 동료들ⓒ 류재현


 이승윤의 경기 해설을 했던 동료 허경환

이승윤의 경기 해설을 했던 동료 허경환ⓒ 류재현


이승윤의 도전에 동료 희극인 선후배들은 걱정 어린 맘을 애써 감추며 대부분 생애 처음으로 격투기 경기장을 찾아 뜨거운 응원으로 힘을 보탰다. 하지만, 이승윤에 앞서 벌어진 경기가 거듭될수록 동료들의 표정은 굳어져 갔다. 그야말로 사력을 쏟는 상대와 맞서는 긴장감과 피와 땀이 튀는 경기가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응원의 메시지를 요청하는 사회자의 마이크 앞에 선 이들의 목소리에 평소의 유쾌함은 찾아볼 수 없었다.

 들어오는 이승윤(좌)를 보며 반격하려는 박종우

들어오는 이승윤(좌)를 보며 반격하려는 박종우ⓒ 류재현


드디어 이승윤의 경기가 시작됐다. 이승윤은 두려움을 떨쳐 버리려는 듯 경기 시작과 함께 득달 같이 공격을 퍼부었다. 하지만, 박종우는 예상했다는 듯 흔들림 없이 냉정하게 경기를 풀어갔다. 서로 대등하게 맞싸움을 한 듯했지만 1라운드 중반부터 이승윤의 눈가가 부어 오르고 코피가 흐르기 시작했다. 그래도 무사히 1라운드를 마쳤다.

 이 지경이 되었어도 포기하지 않았던 이승윤

이 지경이 되었어도 포기하지 않았던 이승윤ⓒ 류재현


 사력을 다하는 이승윤

사력을 다하는 이승윤ⓒ 류재현


 이승윤의 경기에 안타까워하는 동료들

이승윤의 경기에 안타까워하는 동료들ⓒ 류재현


하지만, 2라운드에 들어서자 이승윤의 체력은 급격히 저하됐고 박종우는 이런 움직임을 간파한 듯 침착하게 이승윤의 안면에 정타를 적중시켰다. 이승윤의 코에서 출혈이 낭자해져 갔다. "승윤아, 그만 포기해. 그만하면 충분해"라며 울먹이는 동료들의 목소리가 경기장에 울려퍼졌다.

이승윤은 포기하길 거부하고 거듭 싸울 의지를 보였다. 하지만 결국 2라운드 종료를 1분여 앞두고 심판의 요청에 의해 의사가 링에 올라왔고 경기는 중단됐다. 코뼈가 부러졌다는 것. 이승윤의 도전은 결국 2라운드 4분12초 TKO패로 마감하고 말았다.

경기 후 케이지 위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이승윤은 흐르는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짧은 시간 동안 운동하면서 격투기 선수들이 대단하는 걸 알게 됐고 존경하게 됐다. 참는 인내의 과정을 지켜보면서 남자다움에 반했다. 대단한 선수들과 함께 땀과 피를 묻힐 수 있었다는 게 영광이었다."

이 말에 동료들은 물론 관중들의 눈가에도 눈물이 고였다.

하지만, 이승윤은 역시 못 말리는 희극인이었다. 부상 정도를 걱정하는 사회자의 질문에 "연예인은 코가 생명인데 조금 부러진 것 같다. 이 기회에 성형수술을 해야겠다"라며 관중들의 걱정을 날려버렸다. 이어 그를 망쳐놓은 박종우에게 한 마디 하라는 요청에 이렇게 얘기했다.

"너는 형도 없냐? 내가 알려진 것과는 달리 실제로는 77년생이니 10살이나 많다. 얼굴이 이 지경이 되었는데도 개 패듯이 계속 때리니 속이 시원하냐? 솔직이 심판도 스톱을 왜 안 시키는지 원망하는 맘도 들었다."

 너는 형도 없냐?

너는 형도 없냐?ⓒ 류재현


그는 코뼈가 부러진 상태에서도 관객들을 울리고 웃겼다. 마치 격투기 경기를 소품으로 페이소스(극중의 연기자에게 동정과 연민의 감정을 불러 일으키게 하는 극적인 표현방식)의 진면목을 보여주는 듯했다. 비록 멍들고 찢어져 만신창이가 되었지만, 경기장을 나서는 이승윤의 환한 얼굴에서는 어려운 도전을 통해 새로운 미래를 스스로 만들어가는 행복함이 내비쳤다.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Life is a tragedy when seen in close-up, but a comedy in long-shot).
- 찰리 채플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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