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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유컨대 칸이 '신전'이라면 부산국제영화제는 '장터'이며 동시에 '아고라'입니다. 칸은 1년에 한 번 신들이 신전으로 내려오고, 인간들은 신전으로 가서 그 신들을 알현하고 경의를 표합니다. 반면에 신과 인간과의 대화는 거의 없습니다. 중간에 천사(언론)들이 신과 인간을 중재해 줄 뿐입니다.

하지만 부산에서는 모두가 인간입니다. 부산에 1년에 한번 장이 서면 모든 계층의 인간들이 모여 축제를 즐기며, 영화에 관한 모든 논의가 활발하게 이루어집니다. 그 중에 현자가 있어 그들이 대중들에게 지혜를 나누어 주기도 합니다. 올해 저희는 이 '장터'와 '아고라'를 좀 더 키워서 신명나는 한판을 벌여 보겠습니다.'

부산국제영화제 아시아 영화를 담당하고 있는 김지석 프로그래머는 올해 부산의 방향을 이렇게 표현했다. 영화계의 총동문회 성격을 띠고 있어 영화인들과 관객들을 한 자리에 모아 놓는 부산의 성격을 은유화 시킨 것이다.

전체 작품 줄었지만 프리미어 작품은 증가

'장터'와 '아고라'를 지향하는 제15회 부산국제영화제가 내달 7일부터 15일까지 열린다. 부산국제영화제 사무국 측은 지난 7일 오후 남대문 상공회의소 빌딩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올해 영화제의 주요 특징과 라인업을 공개했다.

상영작은 모두 67개국 308편으로 지난해 70개국 355편보다는 다소 줄어든 규모다. 하지만 월드·인터내셔널 프리미어는 155편으로 지난해 144편보다 11편 늘어나 프로그램은 더 실속 있어졌다는 것이 영화제 측의 평가다. 경쟁부문에 오른 작품들은 전부 월드 인터내셔널 프리미어 작품들이다.

특히 김동호 위원장이 치르는 마지막 영화제, 수영만과의 이별, 멀어지는 남포동, 독립영화 지원 확대 등이 올해 영화제에서 주목되는 부분이다.

특별전으로는 국가재건과 민족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애쓰고 있는 쿠르드족의 영화와 프랑코 정권 말기의 권력과 사회상을 우회적으로 비판한 스페인 영화, 프라하의 봄으로 일컬어지는 민주 자유화 운동과 분리 독립 등 정치적 격변기를 배경으로 한 체코 영화가 준비돼 관객들과 만나게 된다.    

김동호 집행위원장은 올해 영화제의 특징에 대해 "지난 15년 동안의 안정 기반를 바탕으로 새롭게 도약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내년 완공될 영화제 전용관 <두레라움>이 부산국제영화제가 새로운 시대를 열어간다는 상징적 의미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미래를 준비하는 영화제로서 모바일 영화제 시대를 개막하고, 아시아 영화제들간의 네트워크 강화로 미래에 대비한 준비를 해 나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개막작은 중국 장이모우 감독의 신작 <산사나무 아래>가 선정됐고, 한국의 장준환 감독과 일본의 유키사다 아사오 감독, 그리고 태국의 위시트 사나타티엥이 공동으로 작업한 <카멜리아>가 영화제의 피날레를 장식한다.

<산사나무 아래>는 <연인> <영웅> 베이징올림픽 개막식 등 대작 연출에 주력하던 장이모우 감독이 초창기의 소박한 모습으로 돌아온 영화로 순수함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카멜리아>는 부산을 배경으로 사랑을 주제로 한 작품이다. <사랑해 파리>, <뉴욕 아이 러브 유> 등 대도시를 배경으로 사랑 이야기를 옴니버스 형식으로 담은 영화들과 닮은꼴이다. 2007년 부산국제영화제가 투자해 설립한 영화사 '발콘'이 제작했다.

영진위가 탄압하는 독립영화, 부산이 지원 확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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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영화제에서 특히 눈여겨볼 부분은 최근 조희문 위원장 체제의 영화진흥위원회가 끊임없이 탄압하고 있는 독립영화 진영을 돕기 위한 부산국제영화제의 대응이다. 부산영화제는 올해 아시아영화펀드지원(ACF) 대상을 확대했다. 아시아영화펀드는 독립영화의 제작활성화와 안정적인 제작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만든 지원 프로그램이다.

영상미디어센터와 독립영화전용관 등 독립영화진영의 주요 기반이 됐던 곳들이 부당한 공모심사를 통해 운영주체가 바뀌고, 최근 들어 독립영화들에 대한 지원금마저 전액 삭감된 상태에서 부산국제영화제의 아시아영화펀드 지원 확대는 독립영화에 대한 힘실어 주기다. 다큐멘터리 제작을 지원하는 AND 펀드가 지난해 13편에서 올해는 18편으로 늘어났다. 선정된 국내 작품은 프린트 제작과 극장 상영 수수료, 홍보비용 등 배급지원금을 받게 된다.

다큐멘터리 경쟁 부문 심사위원에 영진위의 공모로 사실상 영상미디어센터를 빼앗긴 미디액트 김명준 소장이 선임된 것 또한 조희문 영진위에 대한 부산의 시선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부산영화제의 한 관계자는 "어려움을 겪고 있는 독립영화 진영을 돕기 위해 실무자들이 다방면으로 노력을 기울였다"며, "다행히 올해 영화제 스폰서 확보가 수월하게 이뤄져 기존 계획보다 2억~3억 정도가 추가로 확보된 것 같다"고 말했다.

영화를 사고파는 아시안필름마켓에도 '시네마달' '어뮤즈' 독립영화 배급사들의 참여를 지원해 독립영화에 실질적인 도움을 줄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 독립영화 배급사들은 올해 영화제 측의 지원으로 제공되는 부스에서 독립영화 세일즈 활동을 벌이게 된다. 

이와 관련, 이용관 집행위원장은 "프로젝트 마켓인 부산프로모션플랜(PPP)나 교육 프로그램인 아시아영화아카데미(AFA), 지원 프로그램인 아시아영화펀드(ACF)가 부산영화제의 위상과 권위를 높였다"며, "이들 프로그램이 영화제의 발전에 큰 공헌을 했음"을 강조했다.    

올리버 스톤 감독, 탕웨이, 아오이 유우 등 방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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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영화제를 마지막으로 퇴임하는 김동호 위원장과 함께 부산영화제의 시발점인 수영만 시대가 끝나고 남포동 시대가 저무는 것은 올해 부산영화제의 변화가 예고되는 대목이다.

내년 영화제 전용관인 두레라움이 완공됨에 따라 1회 때부터 수영만에서 열리던 개폐막식은 올해가 마지막이다. 수영만 야외상영관은 내년에 민간 투자로 재개발될 예정이라 더 이상 사용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영화제의 한 관계자는 전했다.

남포동은 핵심 상영관이었던 부산극장은 고액의 대관료를 요구해 결국 상영관에서 제외됐다. 따라서 대영시네마 한 곳만이 상영관으로 활용됨에 따라 영화제 시발지인 남포동의 위축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부산영화제는 김동호 위원장을 기념하는 행사로, 김 위원장이 해외 영화제를 다니며 찍은 사진들을 모아 영화제 기간 중 '열정-김동호와 Friends' 사진전을 열 예정이라고 밝혔다. 국내외 영화인들의 다양한 모습과 해외 유수의 국제영화제 풍경을 볼 수 있는 행사로, 소장가치가 있는 리플렛도 발간할 예정이라고 한다.

김동호 위원장의 퇴임 소식에 평소 가깝게 지내던 해외 영화인들도 올해 상당수 방문을 예정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주요 방문 예정 인사로는 미국 올리버 스톤 감독이 칸 영화제에 출품한 작품과 함께 부산을 찾을 계획이고, 이란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감독은 아시아영화아카데미 교장으로 부산에 머무르게 된다. 배우로는 <색계>의 중국배우 탕웨이, <하나와 앨리스> <훌라걸스>의 일본 배우 아오이 유우, 영국 배우 제인 마치 등이 부산영화제 관객들과 만날 예정이다.  

재능 있는 무명 감독의 수작 관객들이 발견해 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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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회 부산국제영화제의 또 다른 특색은 아시아 신인 감독들의 등장이다. 이름이 생소한 감독의 영화들이 작품 목록에 대거 올라 있다.

이에 대해 아시아 영화를 담당하고 있는 김지석 수석 프로그래머는 "올해 아시아영화와 관련된 슬로건을 '아시아영화의 심장'으로 내세울 예정"이라며, "영화제가 관객에게 주는 가장 의미 있는 즐거움 중의 하나인 '발견'에 중점을 뒀다"고 밝혔다.

김 프로그래머는 "소위 트레이드 매거진의 경우 새로운 작가와 영화에 대한 발굴을 게을리 해서는 안 됨에도 불구하고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면서, "특히 지역적인 편향이 심해 아시아영화의 경우 동북아 중심의 리뷰가 대부분이고 동남아나 중앙아시아, 그리고 이란을 제외한 중동 지역의 영화에 대해 별로 관심이 없다"고 지적했다.

이 때문에 종종 아깝게 묻혀버리는 동남아나 중앙아시아, 그리고 중동영화들이 많이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영화제를 즐기는 관객들이 무명 감독들의 수작에 관심을 가져, 재능 있는 감독들의 좋은 작품들을 찾아낼 수 있기를 요청했다.

신인 감독들 외에 유명 감독들의 작품도 여러 편 선보일 예정이다. 1회 영화제 때 <세친구>로 주목받았던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임순례 감독이 최근 제작을 끝낸 <소와 함께 여행하는 법>을 처음으로 공개하며, 칸 영화제에 출품됐던 일본 감독 기타노 다케시의 갱스터 영화 <하극상>, 사카모토 준지 감독의 <도시의 이방인>, 이란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감독의 <증명서> 등이 상영될 예정이다.

이밖에 독립영화계의 스타 윤성호 감독의 <할 수 있는 자가 구하라>, 국가 인권위원회의 인권영화 프로젝트로 부지영, 김대승, 신동일 감독 등이 옴니버스로 만든 <시선너머>, 광주민중항쟁을 소재로 한 김태일 감독의 장편 다큐멘터리 <오월애>가 부산국제영화제를 통해 첫 상영된다. 

정시 입장 완화, 스마트폰 예매는 10월부터 가능

한편, 부산영화제 측은 영화제 운영과 관련해 관객배려 차원에서 올해 정시입장을 완화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그동안은 1분이라도 늦으며 입장을 허용하지 않았는데, 올해는 상영시작 이후 일정시간 이내에 관람이 방해받지 않는 범위 내에서 상영관 입장을 허락하겠다는 것이다. 단, 정시에 입장하지 않을 경우 지정 좌석은 보장되지 않는다고 한다.

이와 관련, 부산영화제 강성호 사무국장은 "영화를 보러 온 관객들이 단 몇 분 차이로 상영관 입장을 제한당하는 것에 대해 불만이 많이 제기돼 왔다"며, 여러 가지 조건을 검토해 본 결과 그동안 정시 입장 관람 문화가 충분히 정착돼 있다는 판단에 따라 올해는 자율적 정시 입장제를 시행하려 한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관객들이 최대한 성숙한 의식을 발휘해 정시 입장을 존중해 줄 것으로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올해 부산국제영화제는 10월 7일 개막해 15일까지 9일 동안 진행되며, 개폐막작 예매는 9월 27일, 일반 상영작 예매는 29일부터 시작된다. 스마트폰의 어플리케이션을 활용한 예매도 이뤄질 예정이지만, 스마트폰 예매는 "정식 예매 개시일이 아닌 10월부터 가능하다"고 영화제의 관계자는 전했다.

부산영화제 협찬 경쟁, '네이버' 제친 '다음'의 승리
부산국제영화제 이용관 집행위원장은 7일 기자회견에서 "예산 문제가 난항이었는데 올해 협찬사가 많아졌다"며 도움을 준 스폰서들에게 감사하다는 인사를 전했다. 정부 지원금이 깎여 어려움이 예상됐는데, 예산에 큰 신경을 안 써도 될 만큼 협찬사들의 도움이 컸다는 것이다.

올해 부산국제영화제 협찬사들 중에서 유독 눈에 띠는 것은 포털 '다음(Daum)'의 등장이다. 그간 부산영화제를 도와온 파트너는 '네이버(Naver)'였는데, 그 자리가 '다음'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네이버는 12회 영화제 때 5억 원을 지원하며 부산영화제 '골드 스폰서'에 오른 이후 해운대 파빌리온 (영화제 본부 건물)에 마련되는 관객 카페 운영을 해마다 지원해 왔다.

몇 해 전, 서버 다운으로 해마다 원성이 자자하던 인터넷 예매 문제가 해결된 것도 당시 '네이버'의 서버 지원 덕분이기도 할 만큼, 다른 영화제에는 관심을 적게 가져도 부산영화제 만큼은 적극 협찬해 왔다.

이에 비해 '다음'은 전주, 부천, 제천, 충무로 등 다른 영화제들의 스폰서를 맡아 왔지만, 부산영화제와는 거리가 있었다. 이 때문에 예전에 이용자들로부터 '네이버가 후원하는 행사라 부산국제영화제에 대한 내용을 소홀히 다룬다'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올해 '다음'이 부산영화제의 협찬사가 된 것은 '네이버'보다 높은 협찬 금액을 제시했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네이버'는 3번째 등급에 해당하는 협찬사였는데, 올해 '다음'은 부산은행과 함께 2번째 등급에 해당하는 협찬사로 올라섰다.

'네이버'를 제친 '다음'의 협찬에 대해 부산영화제의 한 관계자는 "올해 '다음'이 협찬사로 결정된 것은 '네이버'보다 적극성을 보였기 때문인 것 같다"면서, 수년간 지속되는 것이냐는 물음에 "올해로만 한정되는 것으로 알고 있고 내년에는 또 다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부산국제영화제 PIFF 김동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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