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추태후 천추태후에 출연 중인 최재성과 이덕화

▲ 천추태후 천추태후에 출연 중인 최재성과 이덕화 ⓒ KBS


80년대 우리나라 최고의 청춘스타는 누구일까요? 아마 이 시기를 중고생 및 대학생으로 보낸 사람들이라면 여러 스타들의 이름을 거론할 것 같습니다. 얼핏 생각해도 손창민, 채시라, 최수종, 이미연, 김혜수, 박중훈, 강수연 등 지금까지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스타들의 이름이 떠오릅니다.

하지만 아마도 이 사람의 이름이 나오면 모든 것이 정리 될 것 같습니다. 그 이름은 바로 최재성입니다. 최재성이라니? 그 시대극이나 사극에 많이 나오는 중견 배우 말이야? 아마도 이렇게 반문하는 분들이 많이 있을 것 같습니다.

특히 2000년대 들어 그를 알게 된 팬들이라면 최재성이란 배우는 특별난 것 없는 평범한 중견 탤런트일 뿐입니다. 그와 동시대에 청춘스타로 떠올랐던 손창민, 채시라, 최수종, 이미연, 김혜수, 박중훈과 비교해보면 지금 그의 위치가 정말 이해되지 않을 것 같습니다. 분명 80년대 최재성이란 배우를 모르는 분들에게 제가 위에서 했던 이야기들은 쉽게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 사실입니다.

80년대를 되돌아보면 가요계는 조용필씨의 전성시대였습니다. 다른 가수들이 많이 있었지만 사실상 그를 능가하는 인기가수는 한 명도 없었습니다. 노래 실력이나 음악에 대한 열정 모두 당시 한국 대중음악을 대표했던 가수입니다.

조용필씨가 한국대중음악을 대표하는 스타였다면, 80년대 젊은이들에게 가장 큰 사랑을 받았던 청춘스타는 최재성 1인을 정점으로 하는 시대였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습니다. 그의 인기는 당시 다른 청춘스타들과 확연히 다를 정도로 최고의 인기를 누렸습니다. 그가 나온 대부분의 드라마는 엄청난 인기를 얻었고 많은 드라마 팬들을 안방극장으로 끌어들였습니다.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도 80년대 중반부터 90년대 초반까지 그의 인기를 능가할만한 청춘스타가 떠오르지 않습니다.

드라마를 통해 보는 최재성의 80년대와 90년대 초반

여명의 눈동자 최재성

▲ 여명의 눈동자 최재성 ⓒ MBC


최재성은 요즘 KBS2에서 방송중인 대하사극 <천추태후>에서 강조 역으로 열연하고 있습니다. 최근 들어 그는 선이 굵은 연기를 많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개와 늑대의 시간>(2007년) 마오역, <연개소문>(2006년) 이밀역, <불멸의 이순신>(2004년) 원균역, <장길산>(2004년) 장충역, <제국의 아침>(2002년) 정종역, <야인시대>(2002년) 마루오까 역까지 남성미 넘치는 역할을 많이 맡았습니다. 특히 <천추태후>에서 호흡을 맞추고 있는 채시라와는 90년대 초반 MBC드라마를 통해 남녀주인공으로 엄청난 인기를 얻기도 했습니다. 이 이야기는 뒤에 풀어 놓도록 하겠습니다.

2000년대 들어 주연보다 선 굵은 조연으로 얼굴을 보이고 있는 최재성이기에 그의 모습에서 80년대 최고의 청춘스타란 이미지를 발견하기 쉽지 않습니다. 가끔 저도 TV에서 그를 볼 때면 옆집 아저씨 같은 친근한 이미지에 저 사람이 내가 어렸을 때 최고의 청춘스타였지 하는 생각을 까먹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가 출연했던 80년대 드라마를 더듬어보면 그의 인기가 어느 정도였는지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습니다.

80년대 최고의 청춘스타 최재성은 KBS드라마 <고교생 일기>(1983년)를 통해 젊은층에게 자신을 어필합니다. 이 드라마는 최재성뿐만 아니라 강수연, 손창민, 이청, 조용원, 윤유선 등이 동반 출연한 작품으로 당시 중고생에게 엄청난 인기를 얻었습니다. 지금과는 사뭇 다른 이미지의 최재성은 앳된 모습에서 보여준 반항아적인 거친 모습으로 인기를 얻었습니다. <고교생 일기>는 1기, 2기, 3기까지 이어지지만 1기를 제외하고는 큰 인기를 얻지 못하며 3기에서 막을 내리게 됩니다.

특히 1기에서 강수연과 함께 출연한 조용원은 자동차 사고 이전까지 최고의 청춘 심벌로 뭇 남성들에게 사랑받기도 하였습니다. 드라마 <고교생 일기>가 최재성의 인지도를 올려주었다면, 그를 최고의 청춘스타로 만들어준 드라마는 다른 작품이었습니다.

개와 늑대의 시간 마오역으로 열연한 최재성

▲ 개와 늑대의 시간 마오역으로 열연한 최재성 ⓒ MBC


KBS드라마 <사랑이 꽃피는 나무>(1987년)는 최재성을 전 국민이 사랑하는 청춘스타로 만들어준 작품입니다. 이 드라마는 최재성뿐만 아니라 손창민, 안정훈, 최수지, 최수종, 이미연, 이상아, 손지창, 신애라까지 당대를 대표하는 청춘스타들은 모두 다 나온 작품입니다. 아마 한국 드라마 역사상 이렇게 많은 청춘스타들이 배출되고 오랫동안 사랑받은 청춘드라마는 이후 거의 없을 것 같습니다. 청춘스타들뿐만 아니라 다정한 어머니역으로 출연한 김창숙씨는 국민어머니라는 호칭까지 얻었습니다.

수많은 청춘스타들이 나왔지만 <사랑이 꽃피는 나무>(1987년)가 배출한 최고의 스타는 당연 최재성과 최수지라 할 수 있습니다. 그의 인기는 이 작품을 기점으로 하여 다른 청춘스타들이 근접할 수 없는 철옹성을 구축하게 됩니다. 남자 청춘스타의 경우 항상 모든 이야기는 최재성을 기점으로 하여 누가 그의 인기에 근접했느냐가 주 관심사였을 정도로 대단한 인기를 모읍니다.

이 드라마를 계기로 하여 응집된 그의 인기가 완벽하게 폭발한 작품은 다름 아닌 1991년 MBC드라마 <여명의 눈동자>입니다. 채시라, 박상원과 함께 주연을 맡은 최재성은 최대치역을 실감 있게 표현했습니다. 이 드라마는 한국 전쟁드라마 역사상 가장 성공한 작품이기도 합니다. 당시로서 많은 제작비가 투입된 시대극답게 TV드라마임에도 꽤 수준 높은 완성도를 보여줍니다. 이 작품을 연출했던 김종학 감독은 지금도 최고의 드라마 제작자로 이름을 날리고 있습니다.

<여명의 눈동자>가 큰 성공을 거두면서 그는 제28회 백상예술대상(1992년) TV 남자최우수연기상을 수상합니다. 그에게 있어 이 작품이 소중한 이유는 청춘스타의 벽을 완벽하게 넘을 수 있게 해주었기 때문입니다.

이후 그가 출연했던 드라마 중에 기억에 남는 작품은 이덕화, 황신혜와 함께한 <은하수를 아시나요>(1991년), 고현정과 함께한 <두려움 없는 사랑>(1992년), 신애라, 임상아, 오현경과 함께한 <야망의 불꽃>(1995년), 광주민주화운동을 다루었던 <화려한 휴가>(1996년) 등이 있습니다.

영화를 통해 보는 최재성의 80년대와 90년대 초반

이장호의 외인구단 주연을 맡은 최재성과 이보희

▲ 이장호의 외인구단 주연을 맡은 최재성과 이보희 ⓒ 판영화


80년대 청춘스타 최재성의 인기는 비단 드라마에만 머문 것이 아닙니다. 그는 1986년 <이장호의 외인구단>에 주인공 오혜성 역으로 출연합니다. 이 작품은 당시 최고의 인기 만화가 이현세의 <공포의 외인구단>을 영화로 만든 작품입니다.

그가 TV드라마 <고교생 일기>를 통해 청춘스타에 입문했다면, 이 영화는 그를 명실상부한 당대 최고의 청춘스타로 만들어준 작품입니다. 1987년 TV드라마 <사랑이 꽃피는 나무>를 통해 청춘스타 최재성의 철옹성을 구축하는 데 디딤돌이 된 작품입니다.

그는 오혜성의 반항아적인 이미지를 이 영화를 통해 잘 표현했습니다. 이 작품은 최재성뿐만 아니라 당시 배창호 감독과 함께 흥행감독으로 이름을 날리고 있던 이장호 감독, 영화에서 최고의 여배우로 이름을 날리고 있던 이보희(엄지역/80년대 TV드라마 출연이 없었음), 국민배우 안성기(감독역) 등이 참여했습니다. 이름만으로 보면 80년대 올스타 군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영화 O.S.T '난 너에게'(정수라)는 당시 최고 인기 가요가 되었습니다. 최재성 개인에게도 이 작품은 제25회 대종상 영화제(1986년) 신인상을 안겨다준 작품입니다.

이후 최재성은 당시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고 있던 조용원, 김진아와 함께 로드무비 형태의 영화 <고속도로>(1987년)에 출연합니다. 이 작품은 출연배우에 비해 흥행은 저조한 편이었습니다. 특히 최재성뿐만 아니라 조용원의 인기 역시 당시 최고였다는 것을 감안하면 아쉬운 흥행 성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1988년 첫 포문을 연 영화는 박중훈과 함께 한 <아스팔트 위의 동키호테>입니다. 이 작품은 그해 한국영화흥행 순위 8위에 오를 정도로 큰 성공을 거둡니다. 동원한 관객 수는 7만6천명이었습니다. 당시 전산망이 제대로 갖추어져 있지 않았기 때문에 이 관객 수는 서울관객 수만을 집계한 것입니다. 1980년대는 서울 관객 동원이 10만 정도면 빅히트한 영화였습니다. 지금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한국영화 관객동원력이 떨어지는 시기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같은 해 <돌아이 4 - 둔버기>에 출연합니다. 원 <돌아이> 시리즈의 외전 격으로 평가 받는 이 작품은 <돌아이>시리즈 성공주역, 가수 전영록이 나왔던 작품만큼 인기를 끌지 못합니다.

1988년 그가 얼마나 인기 있었는지 알 수 있는 것은 한 해 동안 무려 네 편의 영화에 주조연을 맡았다는 것입니다. 그해 세 번째 작품은 <이장호의 외인구단 2>입니다. 하지만 이 작품은 1편에 비해 좋지 못한 평가를 받습니다. 1편 성공의 주역 안성기와 이보희가 빠졌고, 엄지 역은 이응경에게 돌아갔습니다. 당시 이 작품은 1편의 인기와 최재성의 인기에 기대어 나쁘지 않은 흥행성과를 거둡니다. 하지만 최재성이 가지고 있는 청춘스타 이미지를 팔아 만든 속편이란 비판 역시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1편이 큰 흥행성공을 거둔 것을 생각하면 아쉬운 일입니다.

1988년 마지막 네 번째 작품은 <풀잎 사랑>입니다. 이 작품은 평범한 청춘물로 최수종, 하희라가 함께 한 작품이기도 합니다.

장미빛 인생 주연을 맡은 최재성과 최명길

▲ 장미빛 인생 주연을 맡은 최재성과 최명길 ⓒ 태흥영화(주)


지금 생각해도 87년과 88년 최재성의 인기는 아무도 넘볼 수 없는 위치에 있었습니다. 당시 TV드라마나 영화에서 그를 제외시킨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의 출연여부에 따라 젊은 층들의 반응이 달라졌기 때문입니다. 그 누구도 그의 인기를 넘볼 수 없었던 시절이기도 합니다. 유일한 적수가 있었다면 당시 <사랑이 꽃피는 나무>를 통해 큰 인기를 얻었던 최수지 정도였을 것 같습니다.

1989년 <달콤한 신부들>은 최재성의 인기에 유일하게 맞설 수 있었던 <사랑이 꽃피는 나무>의 히로인 최수지가 함께 출연한 작품으로 당시 젊은이들에게 큰 관심과 화제를 모았습니다. 이 영화는 주인공들뿐만 아니라 <실미도> <공공의 적>으로 유명한 강우석 감독이 연출을 맡은 작품이기도 합니다. 흥행은 안타깝게도 실패합니다.

같은 해 그는 <내 사랑 동키호테>에 출연합니다. 이전작과 마찬가지로 박중훈과 함께 호흡을 맞춘 이 작품은 전작보다는 못하지만 괜찮은 흥행성적을 보여줍니다. 이후 <담다디>(1989년), <사랑은 지금부터 시작이야>(1991년), <아담이 눈뜰 때>(1993년)까지 영화 출연을 계속 이어갑니다.

최재성이 주연을 맡았던 영화중에 최고의 작품이라 생각하는 <장밋빛 인생>은 1994년에 나옵니다. 여자 주인공 마담 역은 최명길이 맡았습니다. 이 작품에 대한 평가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영화 자체로 평작 수준이라는 비판도 존재합니다. 하지만 당시 시대상황을 리얼하게 표현해 놓은 만화방은 쉽게 무시할 수 없는 우리 사회의 모습이었습니다. 그 좁은 만화방에서 벌어지는 인간군상의 심리적인 모습들은 그 당시 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는 불안과 혼돈(混沌)을 그대로 옮겨놓은 것처럼 느껴집니다.

이 작품은 엄밀히 말하면 최재성의 영화라기보다 최명길의 영화라고 평가하는 것이 올바를지 모릅니다. 하지만 최명길이 제15회 청룡영화상(1994년) 여우주연상, 제31회 백상예술대상(1995년) 영화 여자최우수연기상을 수상하는 데 가장 큰 조력자는 최재성이라고 해도 무방할 것 같습니다. 이 작품에서 그는 충분히 자기가 맡은 역할에 대한 소임을 다했습니다.

이후 <파트너>(1997년)는 김보성과 함께 한국형 느와르 액션의 진수를 보여줍니다. 작품성은 떨어질지 모르지만 최재성이 가지고 있는 매력이 무엇인지 확실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작품은 최재성 개인에게 독배와도 같은 작품이 되었습니다. 이후 <깡패 수업2>(1999년), <깡패 수업3>(2000년), <흑우>(2000년)까지 비슷한 이미지를 차용한 영화에 출연하면서 최악의 선택을 하게 됩니다. 그의 인기 역시 급락을 합니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최고의 청춘스타. 지금도 볼 수 있는 것이 반가워!

여명의 눈동자 최재성

▲ 여명의 눈동자 최재성 ⓒ MBC


어떻게 보면 참 아쉽기도 합니다. 비슷한 시대 청춘스타로 활동했고, 지금 함께 활동하고 있는 배우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최고의 톱스타에 올라 있는 현실을 들여다보면 더 그렇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최재성이란 배우는 한 시대 최고의 정점에 섰던 청춘스타였습니다.

지금 톱스타 위치에 있는 배우들이 다른 배우들과 비교를 당하는 것과 달리 그는 비교대상이 없을 정도로 확고한 위치에 있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최재성 인기에 근접했다는 것만으로 톱 연예뉴스로 나오던 시절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80년대 중반부터 90년대 초반까지 그의 인기는 지금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2000년대 들어 그를 알게 된 팬들은 쉽게 수긍할 수 없는 이야기 같습니다. 지금 인기가 예전만 못할지 모르지만 한 시대를 풍미했던 청춘스타가 TV 브라운관에서 아직 생생하게 연기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즐거움 일임에 틀림없습니다.

그에게 열광하고 그를 닮고 싶어 했던 시절을 살았던 사람들에게 그는 더 큰 의미를 가지고 있는 배우입니다. 앞으로도 지금과 같이 TV드라마와 영화에서 종횡무진 활동하는 활기찬 중견배우로 남기를 기원합니다.

최재성 무비조이 MOVIEJO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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