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으로 가늘 길 드라마 속 이보희

▲ 집으로 가늘 길 드라마 속 이보희 ⓒ KBS


80년대 빛낸 섹시스타를 뽑게 된다면 과연 어떤 이름이 나올까? 80년대 당시 제5공화국은 철저한 사전검열을 통해 영화에서 나올 수 있는 반정부 성격을 모두 지워버린다. 당시 사정이 이렇다보니 그 어떤 시기보다 에로영화들이 많이 나왔다. 그래서 섹시스타 역시 많은 관심과 사랑을 받았다.

우선 위의 질문에 대해 80년대를 기억하는 분들이라면 두 명의 이름은 확실히 떠올릴 것 같다. 바로 <애마부인>의 안소영과 <무릎과 무릎 사이>의 이보희다. 여기에 이보희와 함께 80년대 트로이카로 불린 이미숙과 원미경까지 더해지면 당시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던 여배우들 이름은 다 나왔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안소영은 단 한 작품으로 인기를 얻었다면 80년대 트로이카들은 당시 한국사회에 엄청난 센세이션을 일으키며 뜨거운 반응을 얻었다. 오늘은 이 두 배우들 중 아직까지 연기자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이보희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만약 2000년대 TV드라마를 통해 그녀를 안 팬들이라면 위에서 언급한 내용이 조금 당황스러울 것이다. 그녀가 인기를 얻었던 2000년대 드라마 <달려라 울 엄마>(2003년), <애정의 조건>(2004년), <아현동 마님>(2007년) 등에서 보여준 캐릭터는 억척스럽거나 도도한 도시적 이미지가 강했다.

따라서 그저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중견배우로 알고 있던 팬들에게 그녀가 80년대 대표 섹시스타라는 것이 도저히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 같다. 특히 80년대 한국영화계를 대표하는 트로이카란 사실을 알면 더욱더 놀라게 될 것 이다. 그녀는 이미숙, 원미경과 함께 80년대를 완벽하게 지배했던 여배우다.

분명 그녀는 80년대 한국영화계를 대표하는 섹시스타이자 청춘스타로 군림했다. 그리고 TV드라마보다 영화에만 출연하면서 흥행성 갖춘 영화배우로 인정받았다. 당시 그녀가 영화에 출연하느냐 안하느냐에 따라 사람들의 관심도가 현격한 차이를 보일 정도였다. 어떻게 평가해도 80년대는 그녀의 시대였음을 부인할 수 없을 것 이다.

2000년대 중견배우가 아닌 80년대 풋풋했던 이보희



바보선언 영화스틸컷(이보희)

▲ 바보선언 영화스틸컷(이보희) ⓒ 바보선언


지금부터 이야기하는 이보희는 2000년대 익숙한 중견탤런트가 아니다. 80년대 많은 사랑을 받았던 전성기 시절의 그녀다. 아무리 몇 번 언급해도 지금 그녀의 모습에서 80년대 이보희를 떠올리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TV드라마 이미지에 익숙한 팬들이라면 지금부터 하는 이야기가 더욱더 낯설게 느껴질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80년대 그녀에 대한 정의는 섹시스타, 육체파 배우 등으로 이야기할 수 있다. 당시 그녀 이름을 처음 알려주었던 작품들이 에로영화가 많았기에 이런 수식어는 자연스럽게 붙어왔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너무 안타까운 사실이 하나 있는데, 그녀는 이미 80년대 연극을 통해 주목받고 있는 배우였다. 당시 잘 나가던 육체파 배우들이 자신의 자리를 찾지 못하고 도태되었던 것과 달리 그녀가 2000년대에도 활발한 활동을 펼칠 수 있었던 것은 이런 연기에 대한 밑바탕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기본기가 확실한 배우란 이야기다. 그녀가 지금 이전 이미지를 완전히 없애버리고 TV드라마에서 종횡무진 활동하는 것 역시 그냥 얻어진 것이 아니다. 만약 그녀가 연기에 대한 기본기가 없었다면 이렇게 오랫동안 살아남지 못하고 다른 스타들과 마찬가지로 자연스럽게 시간이 지남에 따라 도태되고 말았을 것이다.

그녀가 처음 영화계에 데뷔한 것은 80년대 최고 명작 중 한편으로 뽑히는 <바보 선언>(1984년)을 통해서였다. 이 작품은 한국을 대표하는 감독 중 한명인 이장호가 연출을 맡았다. 그녀는 이 작품에서 혜영 역을 맡아 열연했다. 많은 사람들이 <무릎과 무릎 사이>에서 보여준 그녀의 이미지 때문에 데뷔작이 이 작품인지 모르고 있는 경우가 많다. 이 작품은 왜 그녀가 탄탄한 연기력을 갖춘 배우인지 단적으로 알 수 있게 해준다.

연기파 배우 김명곤과 호흡을 맞춘 그녀는 이장호 감독이 은유와 비유로 풀어낸 상징적인 의미의 이야기를 좋은 연기로 표현하고 있다. 특히 신인이란 점을 감안하면 그녀의 연기는 100점 만점이라고 해도 될 것 같다. 그녀는 <바보선언>을 통해 제20회 백상예술대상(1984년) 영화 여자신인연기상을 차지한다. 이미 시작부터 충분히 장래가 촉망되는 배우로 인정받았던 것이다.

<바보선언>에 대한 여담으로 당시 당국의 철저한 사전 감시를 받고 있던 이장호 감독은 이 작품에 대한 미련을 완전히 버리고, 은유와 상징으로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려고 했던 영화다. 거의 포기 수준으로 만들었던 영화가 자신의 대표작이 되고 만 아이러니한 작품이기도 하다.

이후 그녀는 이장호 감독 <일송정 푸른 솔은>(1983년), <과부춤>(1983년)에 연속 출연하면서 이장호 감독의 페르소나란 이야기를 듣게 된다. 그리고 1984년 드디어 이장호 감독이 연출한 화제작 <무릎과 무릎 사이>를 통해 80년대 최고 섹시 심벌로 떠오르게 된다.

그녀에게 섹시스타의 힘을 실어준 작품 <무릎과 무릎 사이>, <어우동>


무릎과 무릎사이 영화스틸컷(이보희와 안성기)

▲ 무릎과 무릎사이 영화스틸컷(이보희와 안성기) ⓒ 무릎과 무릎사이


1984년 9월 개봉한 <무릎과 무릎 사이>는 당시 엄청난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특히 영화 포스터 두 장은 당시 중고등학교를 다니던 남학생들에게 꿈의 포스터로 이야기될 만큼 큰 인기를 얻었다. 그뿐만 아니라 그녀는 이 작품을 통해 당대 최고의 섹시스타로 등극하게 된다.

처음 이 작품 포스터를 보고 이장호 감독을 삼류 에로영화 감독으로 오해한 적이 있었다. <무릎과 무릎 사이>는 제5공화국에서 선택의 여지가 없었던 이장호가 영화감독으로서 생존하기 위한 작품이나 다름없었다.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당국의 감시 때문에 80년대 최고 걸작으로 불리는 <바보선언>을 그는 포기하다시피 만들어야했다.

그가 당국의 감시를 받게 된 것은 작품 성향 때문이다. 1981년 연출한 <어둠의 자식들>, 1982년 연출한 <낮은 데로 임하소서>, 자신이 기획자로 만든 배창호 감독의 <꼬방동네 사람들>은 빈민과 약자의 편에서 전개되는 영화였다. 당시 제5공화국이 출범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상태에서 사회비관적인 영화를 쏟아내면서 그는 요주의 인물로 찍히게 된다. 그래서 <바보선언> 연출시 당국의 엄청난 감시를 받아야했다.

더 이상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작품을 연출할 수 없었던 그는 과감하게 에로영화로 방향을 선회한다. 그런데 일류 감독이 만든 에로영화는 대중들에게 접근하는 방법 역시 달랐다. 이 작품은 한국을 대표하는 영화배우 안성기가 남자주인공으로 나온 작품이다.

안성기가 맡은 조빈은 자영(이보희)의 애인이다. 자영은 너무나 엄격한 집에서 자라 어머니의 엄청난 간섭을 받아야만했다. 그녀에게 있어 어머니의 생각과 강요 외에 다른 자유는 허락되지 않았다. 이런 자영이 묘한 성에 눈을 뜨면서 영화는 파격적으로 진행 된다. 특히 이 작품에서 자영의 어머니가 보여주는 이상행동은 당시 이장호 감독을 철저히 감시한 당국을 빗댄 것이란 이야기도 있었다.

자영이 보여주는 성적인 집착과 이상행동은 조빈에게 있어 큰 충격이다. 그리고 당시 사회 분위기에서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었다. 특히 영화에서 자영이 보여주는 이상한 성 호기심은 엄청난 비판과 방향을 불러 일으켰다. 쉽게 이야기해서 사회적으로 찬반이 엄청나게 나뉘게 된 것이다. 이런 사회적인 분위기는 당연히 이 영화에 출연한 이보희에게도 쏠렸다. 그녀는 이 작품이 가지는 엄청난 사회적 센세이션 때문에 많은 주목을 받게 된다.

<바보선언>이 가능성 있는 신인 여배우의 발견이었다면, <무릎과 무릎 사이>는 이제 확실한 스타로 발돋움하는 디딤돌이 된 것이다. 이 작품이 에로영화이기 때문에 큰 연기가 필요 없었을 것이라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이보희가 맡은 자영 역할은 아주 복잡한 심리를 가진 인물이다. 만약 그녀가 연기로 제대로 받쳐주지 않았다면 관객들에게 큰 반응을 얻기 힘든 인물이기도 했다.

이렇게 자신의 인기를 넓혀가던 그녀가 완벽하게 전 국민적인 섹시스타로 탄생하게 된 작품은 이장호 감독이 1985년 연출한 <어우동>을 통해서다. 사극 에로라는 신선한 요소를 들고 나왔던 이 작품은 당시 흥행 대성공을 거두며 그녀에게 완벽한 섹시 스타 이미지를 심어준 작품이다.

이 작품은 당시 에로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연기파 배우들이 대거 출연한 작품이었다. 안성기, 김명곤이 남자주인공으로 출연하여 영화가 탄탄한 작품이 될 수 있도록 뒷받침해준다. 물론 두 남자 배우가 뛰어난 연기를 보여주었지만, 이 작품은 이장호 감독, 안성기, 김명곤의 영화가 아닌 완벽한 이보희 영화라 해도 될 것 같다.

<어우동>이 전 국민에게 사랑받는 영화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그녀가 보여준 매력 때문이었다. 그녀는 이 작품에서 실존 인물 어우동을 사실감 있게 잘 표현했다. 그녀가 보여준 뛰어난 연기력은 권위 있는 시상식 제22회 백상예술대상(1986년) 영화 여자최우수연기상을 수상하며 보상을 받는다. 다만 아쉬운 점이 있다면 당시 보수적이었던 한국 영화제에서 이 작품을 외면한 것이다.

이보희 에로영화만 있다고? 천만에 만만에 말씀!

이장호의 외인구단 영화스틸컷(이보희와 최재성)

▲ 이장호의 외인구단 영화스틸컷(이보희와 최재성) ⓒ 이장호의 외인구단


가장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는 부분이 그녀가 출연했던 작품 중 <무릎과 무릎 사이>,<어우동>의 흥행성공과 화제성 때문에 단지 80년대 섹시스타 이미지로 그녀를 기억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녀가 에로영화 비슷한 것에 출연했던 것은 4-5편 안쪽이다. 그녀가 1990년대 중반까지 출연한 영화 수가 16편 정도인 것을 감안하면 얼마 되지 않는 수이다.

제일 처음 이 글을 작성할 때 언급한바 있지만 그녀는 연극에서 자신을 갈고 닦은 연기자였다. 두 작품뿐만 아니라 작품성 뛰어난 좋은 영화에서 그녀는 자신의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한다.

그녀가 단지 섹시스타가 아닌 청춘스타로 떠오르게 해준 작품은 1986년 <이장호의 외인구단>을 통해서였다. 이 작품은 80년대 최고 인기를 구가하고 있던 이현세의 만화 <공포의 외인구단>을 영화로 옮겨온 작품이다. 원래 원 제목으로 만들려고 했던 작품은 당국의 사전검열 때문에 공포란 단어가 사라지고 이장호 감독 이름이 직접 들어가게 되는 웃지 못 할 에피소드가 있었다. 이 작품에서 이보희는 여자주인공 엄지 역을 맡았다. 그리고 남자주인공은 당시 최고 청춘스타로 군림하고 있던 최재성이 맡았다. 흥행역시 대성공을 거둔다.

이후 큰 관심을 모았던 <달빛 사냥꾼>(1987년) 역시 좋은 모습을 보여준다. 그녀 연기가 이 영화에서도 빛을 발했다. 이 작품은 제25회 대종상 영화제(1986년) 신인감독상, 남우조연상(신성일), 제23회 백상예술대상(1987년) 영화대상, 신인감독상, 영화작품상, 시나리오상 등을 수상하며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1987년 이장호 감독, 김명곤과 다시 호흡을 맞춘 영화 <나그네는 길에서도 쉬지 않는다> 역시 작품성이 뛰어난 영화다. 개인적으로 이 작품은 이보희가 출연한 작품 중에서 가장 작품성이 뛰어난 영화중에 한편이라고 생각한다. 만약 <바보 선언>이 없었다면 베스트 오브 베스트 작품으로 이 영화를 추천했을 것이다.

그리고 박철수 감독이 연출하고 남자주인공으로 이덕화가 나온 <접시꽃 당신>(1989년)은 이보희의 연기력이 얼마나 뛰어난지 다시 한 번 보여준 영화다. 이 작품에서 그녀가 연기한 수경 역은 배우의 연기력이 없었다면 사람들 마음을 움직일 수 없었을 것이다. 물론 이덕화 역시 대단한 연기력을 보여주었다. 이 작품은 당시 많은 관객들에게 큰 사랑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한국멜로영화 걸작 중에 한편이다. <접시꽃 당신>은 제24회 백상예술대상(1988년) 영화감독상, 영화 남자최우수연기상, 여자최우수연기상을 싹쓸이한다.

이후 <아메리카 아메리카>(1988년), <깜동>(1988년) 등이 <접시꽃 당신>과 같은 해에 개봉하면서 그녀는 최고의 전성기를 보내게 된다. 다만 아쉬운 점이 있다면 최고의 전성기를 보내던 그녀가 결혼과 함께 갑자기 연기공백을 6년 넘게 가진 것이다. 이후 그녀는 다시 스크린에 복귀하지만 예전과 같은 인기를 이어가지는 못했다.

80년대 한국영화계에서 가장 빛나는 별이었던 이보희, 그녀가 단순히 섹시스타 이미지로만 있었다면 결코 지금과 같은 평가를 받지 못했을 것이다. 그녀는 어느 누구보다 자신이 출연한 영화에서 뛰어난 연기를 보여주었고, 맡은 역할에 생기를 불어 넣었다.

그녀가 영화에서 보여준 연기열정이 있었기에 지금도 여전히 안방극장에서 그녀를 만날 수 있는 것이다. 특히 한국에서 여자배우들의 수명이 짧은 것으로 유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려 30년 가까이 계속 그녀를 볼 수 있다는 것은, 그녀가 연기에 대해 얼마나 큰 열정을 가지고 있는 배우인지 보여주는 반증일 것이다. 단순히 섹시스타가 아닌 80년대를 지배했던 연기파 배우 이보희는 앞으로도 한국영화사에 큰 존재로 남을 것이다.

이보희 무릎과 무릎사이 어우동 무비조이 MOVIEJOY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