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에 관심이 없다. 얼마만큼! 태어나서 야구장에 한 번도 가보지 않았다. 더 이상 무슨 설명이 필요하겠는가? 하루도 빠지 않고 야구장에 가는 사람이 나 같은 사람을 만나면 아마 외계인 취급할 것이다.

 

이런 나지만 한 번씩 언론보도를 통하여 위대한 업적을 남기고 떠나는 야구 영웅들은 알고 있다. 박철순, 김시진, 최동원, 선동렬씨다. 말하고 보니 투수 선수들이다. 또 하나 야구장 한 번 가보자 않은 나에게도 21년 전 그 경기는 잊을 수 없다.

 

1987년 5월 16일 롯데 자이언츠 최동원 선수와 해태 타이거즈 선동렬 선수가 벌인 연장 15회 선발 투수 완투 무승부는 한국 프로야구사에 영원히 남을 명승부다. 참고로 최동원은 209개, 선동렬은 232개의 공을 던졌다.

 

위대한 족적을 남긴 선수들이 떠나는 모습은 현역 때보다 어쩌면 더 아름답다. 아니 거룩하기까지 하다. 야구를 좋아하든, 좋아하지 않든 모든 이들은 마지막 공을 던지는 그들에게 기립박수를 보낸다. 아름답고, 거룩하기에.

 

하지만 위대한 업적을 남긴 선수들이 쓸쓸히 퇴장하는 모습은 마음을 아프게 한다. 지난 8일 국내에서 17년간 선수생활을 했던 위대한 선수 한명이 떠났다. ‘정민태 선수’다. 야구장에 한 번도 가보 않았지만 알고 있는 사실 하나는 1999년 ‘20승’을 이루었다.

 

이후 국내 선수로는 20승을 올린 선수-2007년 22승을 올린 두산 리오스는 외국인 선수-가 더 이상 나오지 않았다. 언론은 정민태 선수에게 ‘마지막 20승 투수’라는 이름을 붙였다. 정민태 선수는 통산 124승(96패), 한국시리즈 제패 4회, 한국시리즈 최우수선수(MVP) 2회 등 쉽게 이루지 못할 위대한 업적을 남겼지만 8일 쓸쓸히 떠났다.

 

눈물이 났다. 어찌 저 위대한 선수를 그냥 보내는가? 500만 명 관중도 중요하고, 올림픽 메달도 중요하다. 하지만 이것은 아니다. 마지막 20승 투수라는 찬사만 보내면 무엇하나. 124승을 올린 위대한 선수를 그토록 쓸쓸히 보낸단 말인가? 한 두해 성적이 좋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위대한 선수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야구를 사랑한다면. 올해 들어 2군에 머물고, 아무런 활약과 승수를 올리지 못한 것 때문에 은퇴식도 해주지 못한다는 말인가? 20승 올릴 때만 위대한 선수이고, 1승도 올리지 못하면 이전에 올린 20승은 아무것도 아닌가?

 

자본주의가 무엇이냐고 묻는 다면 미국 메이저리그도 손가락에 꼽힐 것이다. 인간성이 메마른 메이저 리그지만 위대한 업적을 남긴 선수가 떠나갈 때 경의를 표한다. 그가 좋지 않은 성적으로 퇴장할지라도.

 

‘근위축성 측삭경화증’ 실제 병명이 있지만 일반 사람들에게는 ‘루 게릭 병’ 이름으로 더 잘 알려진 병으로 선수 생활을 마감한 ‘루 게릭(Lou Gehrig)’ 선수다. 루 게릭 선수는 1923년에 뉴욕 양키즈에 입단했다. 1925년부터 14년 동안 2130 게임에 단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연속 출전하는 대 기록을 달성했고, 16년 선수 생활 동안 안타 2712개, 홈런 493개, 타점 1995점, 타율 .340 이라는 위대한 기록을 남겼다. 

 

하지만 그는 근육이 마비되는 ‘근위축성 측삭경화증’에 걸려 야구 방망이를 더 이상 휘두르지 못할 그에게 뉴욕 양키즈 은퇴 경기를 치르게 한다.

 

은퇴식 날짜도 경의롭다. 언제이기에 경의로운가? 미국 독립기념일인 7월 4일이라면 수긍할 수 있으리라. 뉴욕 양키즈와 관중 6만명은 위대한 영웅, 위대한 발자취를 남긴 그를 위하여 양키즈 스타디움에 모여 영원히 돌아오지 못할 야구장에서 마지막 가는  영웅에게 경의를 표했다.

 

마지막 자리에 한 소년이 나타났다. 2년 전(1937년) 만났던 재활 치료를 거부하는 소아마비 소년이었다. 그 소년은 루 게릭에게 “저를 위해 홈런을 한 번 쳐주면 저도 걷는 법을 배우겠습니다.”고 했다. 루 게릭은 그 날 홈런 두 개를 쳤다.

 

2년 후 그 소년은 마지막 가는 영웅 루 게릭에게 목발을 내던지고 안겼다. 루 게릭은 말했다. “나는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입니다”, 1941년 루 게릭은 38세로 숨을 거두었고 그의 등번호 4번은 야구 역사상 처음으로 영구 결번이 되었다.

 

13년 만에 500만 관중도 좋다. 올림픽 메달도 좋다. 한국 시리즈 우승도 좋다. 하지만 루 게릭 처럼 보내지는 못하지만 17년을 프로야구에 삶을 던진 정민태 선수에게 작은 경의를 표하지 못하는가?

 

이유가 정민태 선수가 몸담았던 현대유니콘스가 해체되었기 때문에, 기아에서는 1군 생활을 한 번도 하지 못했기 때문인가? 은퇴식을 해줄 구단이 없다면 다른 방법이 없는가? 전혀 방법이 없는가? 야구 올스타 전에서 공 한 번 던지게 할 수 없었는가?

 

2008년 7월 10일자 <한겨레>는 '마지막 20승 투수’ 정민태의 아쉬운 은퇴'라는 제하에 다음과 같은 기사를 실었다.  

 

2005년 8월 9일, 일본과 미국에서 16년간 통산 381세이브를 달성한 당대 일본 최고 마무리 사사키 가즈히로(40·전 요코하마 베이스타즈)의 은퇴 경기가 마련됐다. 고교 때부터 절친한 친구이자 평생 라이벌로 지내온 강타자 기요하라 가즈히로(당시 요미우리 자이언츠) 한 타자만을 상대로 사사키가 마운드에 올랐다. 볼카운트 2-1, 사사키는 그의 전매특허였던 포크볼을 던졌다. 위력 없이 떨어지는 공. 벌써 한바탕 눈물을 쏟고 타석에 들어선 기요하라는 헛방망이를 돌렸다. 그리고 마운드로 걸어가 “세계 최고의 포크볼이 와서 때릴 수 없었다”며 사사키의 손을 잡고 다시 한번 뜨거운 눈물을 쏟아냈다.<한겨레-마지막 20승 투수’ 정민태의 아쉬운 은퇴 홍석재 기자>

 

미국과 일본이 하니까 따라하자는 것이 아니다. 야구를 좋아한다면, 사랑한다면 오로지 애구만을 위해 살아왔던, 야구만이 인생이었던 위대한 선수를, 한 시즌 20승을 올린 선수를 그토록 쓸쓸히 보내서는 안 된다. 다시는 이런 일을 범해서는 안 된다.

 

대한민국 야구사에 위대한 족적을 남긴 정민태 선수여 잘 가시라. 내 비록 야구에 관심은 적었지만 '정민태'라는 이름 석자는 가슴에 새길 것입니다.

 

 

2008.07.12 11:49 ⓒ 2008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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