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와세 나오미의 영화들은  치유와 감정 회복에 대해 이야기한다. 작품을 찍는 사람이나 그것을 보는 사람 모두 그녀의 영화속에서 상처를 회복하고 영혼의 안식을 얻게 된다. 영화 속에서 등장하는 아픔들은 대부분 실종, 혹은 버려짐과 죽음에서 기인한다. 사라진 사람과 죽은 자에 대해서 비통해하며, 버려진 것으로 인해 아파한다. 그 아픔을 잊고 회복하는 과정들을 가와세 나오미는 자신의 실제 경험들을 바탕으로 영화로 만든다.

<사라소주>는 쌍둥이 형제 케이의 실종으로 인한 슬픔을 안고 살아가는 슌과 부모에게 버려진 것과 마찬가지인 소녀 유, 그리고 그들과 같이 살아가는 가족의 모습을 보여준다.

최근작 <너를 보내는 숲>처럼 <사라소주>의 첫 장면 또한, 누군가가 죽었음을 암시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누군지는 모르지만 누군가 죽었고, 장례가 진행되던 그 날에 쌍둥이 형 케이가 갑작스레 사라진다. 이럴 때 대부분의 영화에서는 사라진 아이를 찾기 위해서 애를 쓰거나, 굉장히 슬퍼하며 끝없는 눈물로 감정의 과잉을 보여주기 마련인데 가오세 나오미는 오히려 묵묵한 가족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갑자기 5년 뒤로 점프한다. 그 이후에도 역시 인위적인 감정의 폭발이 없다. 과묵해진 슌과 조용히 일상 생활을 하는 그의 부모, 그리고 예전과 전혀 달라지지 않았을 것 같은 집. 딱 한번, 경찰이 케이의 부음을 알리는 순간. 감정이 타오르는 슌의 장면이 등장하는데, 그것도 잠시뿐이다.

 슌과 유가 골목길을 지나가는 장면

슌과 유가 골목길을 지나가는 장면 ⓒ 빈장원


그 어떤 곳에도 과잉은 없다. 너무나 조용해서 오히려 갑자기 폭발할 것만 같다. 이것은 유의 어머니(실제 어머니는 아니지만)가 유에게 출생의 비밀을 알려주는 장면에서도 대구를 이룬다. 누군가에게는 엄청날 수도 있는 이야기를 듣고서도 유는 그냥 평범하게 "엄마, 좀 이상한 것 같아"라고 이야기할 뿐이다. 이야기를 하면서 줄곧 걷던 두 사람은 잠시 멈추는 듯 하지만, 이내 다시 길을 걸어간다. 가오세 나오미는 그렇게 감정을 제어하고 슬픔이란 흰 종이에 잘 못 써진 글씨를 지우는 것처럼 쉽게 잊을 수 있음을 말하고 있다.

앞서 말했듯 가와세 나오미의 영화가 감정 회복의 과정을 담고 있다면, <사라소주>는 크게 세 부분에서 그것을 변주한다.

첫번째는 슌이 그토록 정성을 기울여 그린 그림. 케이의 모습이 그려진 그림. 그토록 그리워하는 감정들을 인내하며 케이를 그리면서 그것을 달랬을 것이다. 제발 자신을 쳐다봐 달라며 울부짓듯 그렸을 그 그림에서 이상한 그림자가 느껴진다. 그가 그린 그림은 끝까지 보여주지 않다고 마지막에 가서야 누군가에게 보여준다. 그런데 그 사람이 바로 유이다. 가족이 아닌 유에게 슌은 그림을 보여주는 것이다.

같은 나이에다 그가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점에서 유는 죽은 케이를 대신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으로 인해 첫 장면에서 형의 손을 잡지 못했던 슌은 어느 순간, 유의 손을 꽉 잡으며 절대 놓치 않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너를 보내는 숲>에서 아이를 하늘로 보낸 주인공의 남편은 아내에게 찾아와 왜 아이의 손을 놓았냐며 항변하는 장면이 있다. 실제 부모에게 버려졌던 감독은 자신은 절대로 그 누구도 버리지 않을 것임을 그의 작품 속에서 반복하고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두번째는 축제의 장면이다. 온 마을 사람들이 참여하는 축제에서 유는 단원으로 슌은 자원봉사자로 참여한다. 흥겨운 리듬과 어울러져 건강함이 느껴지는 이 장면에서 모든 사람들은 음악에 맞쳐 율동하며 소리를 외친다. 더불어 갑작스레 내리는 소나기는 그들이 가지고 있는 상실과 버려짐의 아픔을 모두 씻게 해주는 메타포처럼 보인다. 의식적인 행위 자체로서 또 다른 의식을 기원하는 가와세 나오미의 마음이 잘 드러나 있는 장면이고, 너무 신나서 보는 이로 하여금 같이 춤추고 싶게 하게끔 하는 마력이 있는 부분이다.

   마을 축제에서 서로의 아픔을 쓸어내리는 슌과 유

마을 축제에서 서로의 아픔을 쓸어내리는 슌과 유 ⓒ 빈장원


마지막은 출산 장면이다. 직접 어머니로 출연한 가와세 나오미가 아이를 낳는 장면에서 슌의 가족과 유의 가족은 같이 호흡을 맞추며 구호를 외치면서 아이의 탄생을 기다리고 있다. 그들의 바람 속에서 아이가 나오는 순간 그것을 바라보고 있던 슌의 눈가에서 한 줄기의 눈물이 흐르는데 그것이야 말로 그동안의 쌓였던 상처들을 말끔히 씻어 내고 있는 것임을 알게 해준다. 누군가는 실종되고 다시 돌아올 수 없지만, 이제는 그것을 떨쳐버리고 새생명의 탄생을 축하해야 할 것임을 소년 슌은 받아들일 준비가 된 것이다.

<사라소주>는 골목길에 관한 영화이기도 하다. 주인공들은 계속해 골목길을 걷고 달리며 때론 자전거를 타기도 한다. 숨가쁘게 골목길을 바쁘게 움직이는 카메라는  고레에다 히로가즈의 <아무도 모른다>의 야마자키 유타카의 촬영으로 인해서 생명감을 얻는다. 유독 골목길 장면에선 롱테이크가 이어지는데 카메라는 힘든 내색도 없이 주인공들을 뒤에서 옆에서 뒤따르며 같이 숨 쉰다.

이렇게 골목길과 실내 공간 위주로 부유하던 카메라는 마지막에 가서 첫 장면과 마찬가지로 집 내부를 빠져나와 어느 덧 옥상으로 올라가 마을을 비추며, 이내 하늘에서 도시 전체를 비춘다. 슌의 마음 속에 항상 내재되어 있던 케이의 영혼이 하늘로 올라가 세상을 바라보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장면이다.

숨막힌 골목길에서 갑작스럽게 마을 전체로 뻗어 나간 카메라는 이제 '쉼'을 허락하듯. 하늘 위에서 바라보고 있는데, 슌과 유가 뛰어 다니던 유와 그녀의 어머니가 출생의 비밀을 이야기하던, 케이를 놓치고 말았던 '골목길'은 전혀 볼 수 가 없다. 그렇게 상처는 치유되고 감정은 홀연히 회복되고 있는 것이다.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네오이마주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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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전주국제영화제 관객평론가 2008 시네마디지털서울 관객심사단 2009 서울국제청소년영화제 관객심사단 2010 부산국제영화제 시민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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