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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년 이상의 스포츠팬들은 1960년대 인기스포츠를 꼽으라고 하면 프로레슬링·프로복싱·여자농구·축구 등을 든다. 이 가운데 최고 인기스포츠를 고르라고 하면 아마도 열 중 대여섯은 프로레슬링이라고 답할 게다.

그 무렵 프로레슬링의 인기는 요즘의 메이저리그나 프리미어리그에 결코 뒤지지 않았다. TV의 인기 프로그램이었음은 물론이고 '대한늬우스'에도 빠지지 않고 한 토막 소식으로 등장했다.

절정의 인기를 누리던 프로레슬링의 최고 스타는 '박치기의 왕' 김일이었다. 김일이 서울장충체육관에서 치른 일본 선수와의 경기는 말그대로 한-일전이었다. 총과 칼만 들지 않았지 처절한 싸움이 링 위에서 펼쳐졌다.

"박치기, 박치기, 박치기"

@IMG2@일본 선수가 게다(일본 나막신)로 김일의 이마를 때리면 김일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머리를 쓰다듬고는 곧바로 박치기로 일본 선수를 링에 뉘어 버렸다. 그리고 링 위에 나뒹굴고 있는 게다를 관중석으로 던져 버렸다. 관중석은 열광의 도가니였다.

임택근·이광재 등 당대 최고 인기 아나운서들은 목청을 높여 "박치기, 박치기, 박치기~'를 외쳐댔다. 산만한 덩치의 외국선수들도 박치기 소리가 3번 이상 울려 퍼지는 일이 거의 없었다. 그 정도 소리를 치면 어지간한 선수는 링 바닥에 벌렁 나가 자빠졌다.

경기 중반까지 김일이 일방적으로 몰리거나 악랄한 반칙으로 피를 흘리는 등 체육관 안의 분위기가 달아올랐을 때는 예외적으로 대여섯 차례의 박치기가 상대 선수의 이마를 강타했다.

그 무렵 장충체육관에서 프로레슬링 한-일전이 벌어지면 경기 전부터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아나운서도 긴장하고 흥분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아무개 아나운서의 중계 시작을 알리는 방송 코멘트.

"고국에 계신 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여기는 장충체육관입니다. 지금부터 김일 선수의…"

그 아나운서는 태국 등 외국에서 열린 국제대회 중계가 많았다.

"고국에 계신 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여기는 태국의 수도 방콕입니다. 지금부터 제5회 아시아경기대회 남자농구 한국 대 태국의 경기를 중계방송해 드리겠습니다."

이래야 제대로인데 그만 서울 한복판에서 '고국에 계신 동포 여러분'을 찾고 있었던 것.

영웅도 세월을 이기진 못했다

김일은 1960년대 1인당 국민소득이 100달러도 되지 않는 세계 최빈국 가운데 하나였던 대한민국의 아버지들에게 삶의 고달픔을 잠시나마 잊게 해준 은인이었다. 청소년들에게는 천하무적의 영웅이었다.

그런 김일이 세월의 무게를 이겨내지 못하고 눈을 감았다. 병마와 싸우던 김일의 모습에서 적지 않은 장년 스포츠팬들은 다시 한번 세월의 무상함을 느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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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스포츠 취재 분야에서 오랜 경력을 쌓고 2005년 6월 명예퇴직한 뒤 2006년 8월부터 새로운 매체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쌓아온 경험을 오마이뉴스에서 마음껏 펼쳐 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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