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지시각 1월 30일 스코틀랜드 글래스고 출신 DJ 소피(SOPHIE)의 사망소식이 전해졌다. 2010년대 초부터 전자음악 시장에서 활동해온 그는 마돈나, 찰리 XCX와 같은 팝스타부터 빈스 스테이플스 같은 힙합 스타, JYP엔터테인먼트 걸그룹 있지와 협업하는 등 활약을 펼쳐왔다. 뉴욕타임스는 소피의 죽음을 추모하며 '팝의 바운더리를 확장한 아티스트'라는 극찬을 남겼다. [기자말]
 샘 스미스, FKA 트윅스 등 신진 팝스타들이 소피의 죽음을 추모한 가운데 2016년 소피와 작업했던 팝스타 찰리 XCX는 '사랑한다. 절대 잊지 않을게.'라는 추모 메시지를 보냈다.

샘 스미스, FKA 트윅스 등 신진 팝스타들이 소피의 죽음을 추모한 가운데 2016년 소피와 작업했던 팝스타 찰리 XCX는 '사랑한다. 절대 잊지 않을게.'라는 추모 메시지를 보냈다. ⓒ Charli XCX


스코틀랜드 글래스고 출신 아티스트 소피 제온(Sophie Xeon), 소피(SOPHIE)의 음악은 강력했다. 고막을 찢어 놓는 과격한 소리가 총알처럼 날아다니고 육중한 강철 대포가 생전 들어보지 못한 굉음을 내뿜는 세계는 그야말로 전쟁터였다. 왜곡된 형태의 음성이 혼란을 가중했고 불규칙한 구조로 쾌감을 유도했다. 그렇지만 소피는 기술에 경도되어 속도와 폭력마저 찬양한 20세기 미래파들과 달랐다. 2010년대 소피는 음악 신(scene)에서 가장 유연하고 한계를 알 수 없는 아티스트였던 동시에 차세대 팝 음악의 기대주로 주목받던 뮤지션이었다. 

소피는 활동 초부터 모호함을 즐겼다. 2010년대 초 DJ A.G. 쿡이 설립한 레이블 PC 뮤직(PC Music)의 일원으로, 넘버스(Numbers.) 레이블에서 'BiPP'와 'Lemonade'로 비범한 실력을 뽐낼 때부터 확실히 알려진 것은 없었다. 호명되기와 거리를 둔 그의 주된 관심은 직관적인 대중의 호응이었다. 버블검 팝의 가벼운 멜로디와 미니멀한 재료로 이리저리 휘어지는 리듬, 예측을 거부하는 전개와 독특한 디지털 질감은 전자 음악 신을 넘어 대중음악계의 비상한 관심까지 획득했다. 숱한 광고 음악으로의 활용과 더불어 영원한 댄스 플로어의 제왕 마돈나, 찰리 XCX, 빈스 스테이플스 등이 이 수수께끼의 인물에게 협업을 요청했다.  

때문에 소피에게 제61회 그래미 어워드 베스트 댄스/일렉트로닉 앨범 부문 노미네이트를 안긴 첫 정규 앨범 < Oil of Every Pearl´s Un'Insides >는 독특한 작품이었다. 결과물과 자의식을 분리해왔던 과거와 달리 데뷔작 발매와 동시 자신이 트랜스젠더 여성임을 공표했으며 스스로를 '그녀(She)'로 부르도록 요청했다. 좀체 모습을 드러내지 않던 과거와 달리 각종 매체에 얼굴을 비추며 자신의 존재를 알렸다. 2017년 '틴보그(Teen Vogue)'와의 인터뷰에서 소피는 세간의 오해에 대해 이렇게 답했다. 

"언제나 나는 솔직했다. 크라프트베르크, 에이펙스 트윈, 오테커도 자신의 일을 설명하기보다 결과물을 통해 신비한 이미지를 구축했다. 그런 의도가 있었지만 돌이켜보니 잘못 해석된 것 같기도 하다. 이제 나는 대화(Conversation)에 참여하고자 한다."
 
 소피의 2018년 첫 정규 앨범 <오일 오브 에브리 펄스 언-인사이드>는 제 61회 그래미 어워드 베스트 댄스/일렉트로닉 앨범 부문에 노미네이트 되며 역대 세번째로 그래미에 노미니된 트랜스젠더 아티스트가 됐다.

소피의 2018년 첫 정규 앨범 <오일 오브 에브리 펄스 언-인사이드>는 제 61회 그래미 어워드 베스트 댄스/일렉트로닉 앨범 부문에 노미네이트 되며 역대 세번째로 그래미에 노미니된 트랜스젠더 아티스트가 됐다. ⓒ MSMSMSM

 
소피가 완전한 암약으로 일관한 것은 아니다.  2015년 실패한 첫사랑의 경험을 토로한 'Just like we never sayed goodbye'같은 곡은 은근한 정체성 고백이었다. 그러나 앨범을 기점으로 소피라는 뮤지션을 바라보는 시각은 완전히 달라졌다. 훌륭한 테크니션이었던 그는 우아한 목소리와 영롱히 반짝이는 키보드 연주를 바탕에 둔 발라드 'It´s okay to cry'로 더는 자신의 정체성을 숨기지 않겠노라 선언했다. 

'Ponyboy', 'Faceshopping'처럼 급진적인 과거를 가져온 곡에서도 BDSM 스타일의 뮤직비디오로 충격을 안겼고, 탄력적인 'Immaterial'에서는 쾌활하게 자신의 중성적 포지션을 노래했다. 앨범의 문을 닫는 9분짜리 'Whole new world / Pretend world'은 완연한 선전포고였다. 데뷔 때부터 그를 지켜본 마니아층은 메시지 경도의 위험을 제기하기도 했지만, 참신함을 내주는 대가로 소피는 강력한 트랜스젠더 스피커가 되었다. 2018년 '페이퍼' 매거진과의 인터뷰에서 트랜스젠더 정체성에 대해 토한 열변은 새 시대의 미래주의 선언과도 같았다.

"어떤 몸으로 태어났는지, 어떻게 삶을 영위하고 마쳐야 할지에 대한 논의는 이제 끝났다. 가족 모델, 통제의 구조 역시 사라질 것이다."

그 시점부터 사람들은 소피의 음악을 '팝'으로 소비하기 시작했다. 하이퍼 팝, 퓨처 팝 등 차세대의 장르를 수식하기 위한 용어들이 등장했고, 그 소리는 빠르게 트랜스젠더 및 성소수자들에게 '안전한 공간'으로 인식되었다. 돌출되고 과격하며 때로는 몽환적인 이들의 음악은 비록 정치적 메시지보다 즉각적 자극에 집중했을지라도 그 아래 깊숙한 곳에는 1970년대 말 디스코와 하우스의 태동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성소수자 커뮤니티의 댄스 문화가 단단히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2010년대 말 100 겍스(100 gecs), 아르카(Arca), 킴 페트라스(Kim Petras)와 같은 아티스트들이 소피와 함께 동시다발적으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낸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대중화된 최첨단 음악 아래 더욱 과감한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서구 사회에서 강력한 대안 세력으로 부상한 케이팝 역시 이 변화무쌍한 소리와 무경계적인 장르 교배의 음악으로부터 많은 영감을 받았다. 2020년 JYP의 신예 걸그룹 있지의 '24 HRs'에 참여한 소피의 모습은 단순한 해외 작곡가와의 협업을 넘어 일종의 연대와 같은 순간이었다. 
 
 데뷔 초 본인의 정체성을 감추던 소피는 첫 정규 앨범 발매와 동시에 트랜스젠더로의 자아를 강하게 표출하며 활발히 얼굴을 비쳤다.

데뷔 초 본인의 정체성을 감추던 소피는 첫 정규 앨범 발매와 동시에 트랜스젠더로의 자아를 강하게 표출하며 활발히 얼굴을 비쳤다. ⓒ SOPHIE 유튜브 캡처

 
소피는 1월 30일 세상을 떠났다. 아테네에 머무르던 새벽, 밤하늘에 휘영청 떠오른 보름달에 반해 어디론가 올라가다 발을 헛디뎌 추락했다. 향년 34세였다. 고대 그리스 신화 속 한 일화라 해도 믿을 정도로 초현실적인 죽음에 전 세계적인 추모 행렬이 뒤따르고 있다. 국내에서도 음악 팬들의 충격이 감지되지만, 여전히 대다수에게 그의 이름은 낯설다.

많은 것이 바뀐 2021년의 세계에도 소수에 가해지는 폭력은 여전하다. 주류 사회는 저항의 메시지에 '평온한 투쟁'을 강요하면서도 '안전한 공간'은 마련해주지 않는다. 소피는 메이저를 향한 투쟁의 디스토피아와 마이너들을 위한 유토피아의 공존 지대를 조성하며 미래 문법을 가다듬었다. "소피가 없는 미래를 상상하니 마음이 아프다"라는 '피치포크'의 추모 기사 말미의 문장이 머릿속을 맴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도헌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 브런치(https://brunch.co.kr/@zenerkrepresent/569)에도 실렸습니다.
소피 SOPHIE 음악 일렉트로닉 추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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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음악평론가 - 대중음악웹진 이즘(IZM) 에디터 (2013-2021) - 대중음악웹진 이즘(IZM) 편집장 (2019-2021) 메일 : zener1218@gmail.com 더 많은 글 : brunch.co.kr/@zenerkrepres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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