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N<캐나다 체크인>이 막을 내렸다. 이 프로그램이 방송되는 지난 6주간 나는 두려운 마음으로 다음 회를 기다리는 모순 속에 살았다. '오늘은 또 얼마나 울까?' 걱정하면서도 어김없이 TV 앞에 앉았고 너무 울어서 머리가 아프면서도 마음은 온기와 생기로 채워지곤 했다.
 
효리와 동료 인숙이 입양 보낸 개들을 찾아 떠난 캐나다 여행은 이토록 감동적이었다. 한 생명의 안부를 확인하며 기쁨의 눈물을 흘리는 모습, 개 한 마리로 인해 지구 반대편의 이웃들과 부둥켜안는 장면, 그리고 자신을 구해준 이들을 온몸으로 반기는 개의 몸짓은 다시 떠올려도 뭉클해져 온다. 이 프로그램에 대한 리뷰와 댓글들을 보면 이런 기분은 나만의 것이 아니었던 듯싶다. 많은 이들이 행복한 만남을 지켜보면서 눈물을 흘렸다.
 
도대체 이 눈물의 의미는 무엇이었을까? 이는 단지 한 생명을 살렸다는 감동 때문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 가만히 돌아보면, 나는 효리와 인숙의 반복되는 만남과 이별을 지켜보면서 숱한 상실 속에 살아가는 우리의 삶을 마주했던 것 같다. 이런 일들이 삶 속에 늘 있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기에 그렇게 많은 눈물을 흘렸던 것 아닐까.
 
<캐나다 체크인>이 남긴 눈물의 의미를 살펴본다.
  
 입양보낸 개들을 만나기 위한 여행기를 담은 <캐나다 체크인>의 포스터
입양보낸 개들을 만나기 위한 여행기를 담은 <캐나다 체크인>의 포스터 tvN
 
상실을 자처하는 사람들
 

<캐나다 체크인>의 첫 회는 온통 눈물 바람이었다. 밴쿠버로 떠나는 날. 캐나다로 입양 가는 개들을 위해 이동 봉사를 하기로 한 효리와 인숙은 공항에서 입양 가는 개들을 돌봐온 임시보호자들과 만난다. 버림받고 학대 된 개들을 구조하고 보살펴 온 임시보호자들은 한결같이 그토록 바랐던 입양의 순간 눈물을 쏟았다. 분명 좋은 일이었지만 동시에 '더 이상 볼 수 없다'는 이별과 상실의 순간이기도 했다.
 
그런데 이들은 모두 이런 상실과 슬픔을 자처한 거나 마찬가지였다. 개를 보호하지 않았더라면, 사랑을 주지 않았더라면 이런 슬픔은 감내하지 않아도 됐을 터였다. 10년 넘게 유기견 보호 활동을 해온 효리와 인숙 역시 이를 두려워하기는 마찬가지다. 이들은 여행 중 종종 이런 대화를 나눈다. "이렇게 잘살고 있는 거 보니까 다음엔 좀 더 잘 떠나보낼 수 있을 것 같아?" "아니 그래도 힘들 것 같아." 이처럼 상실의 순간은 언제나 힘들다. 하지만, 효리와 인숙, 그리고 임시보호자들은 또다시 개를 구하고 사랑을 준다.
 
이는 반려인들도 마찬가지다. 반려동물의 생이 사람보다 짧다는 걸 알면서도 반려인들은 동물을 사랑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효리도 그랬다. 3회 효리는 토피노에서 자신의 첫 반려견이었던 (지금은 무지개 다리를 건넌) 순심이와 꼭 닮은 개를 만난다. 그리곤 시선을 떼지 못하며 눈물을 쏟다 이렇게 말한다. "강형욱 씨가 그랬잖아. 자기는 펫로스 증후군 극복 못했다고. 극복할 수 없어." 그럼에도 효리는 개와 함께 살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나는 이들의 모습이 인간의 삶 자체와 닮아있다고 느꼈다. 사실 삶 자체가 그렇다. 태어나는 순간 우리 모두는 '죽음'을 향해 가고 있고 그 과정에서 숱하게 사랑하는 이들을 잃는다. 그럼에도 우리는 또 누군가를 사랑한다. 죽음과 상실을 두려워하면서도 살아가고 사랑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인간의 숙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프로그램 속 동물을 구하고 보호하는 이들은 이런 숙명을 보다 기꺼이 받아들인 용기 있는 사람들이었다.
 
변화란 또 다른 만남과 헤어짐
 
캐나다 체크인 짧은 만남의 시간 뒤엔 다시는 볼 수 없을지도 모르는 상실의 순간이 늘 찾아왔다.
캐나다 체크인짧은 만남의 시간 뒤엔 다시는 볼 수 없을지도 모르는 상실의 순간이 늘 찾아왔다.tvN

사실 효리와 인숙의 여행 자체가 또 다른 상실의 여정이기도 했다. 효리와 인숙은 입양 보낸 개들을 만나러 가는 길에 늘 설레한다. 구조 당시의 모습, 함께했던 추억들을 떠올리며 "우리를 알아볼까?"라며 기대감으로 빛난다. 그리고 개들이 자신들을 알아보고 달려와 얼굴을 핥는 순간 이들은 매번 기쁨과 안도의 눈물을 흘린다.
 
하지만 만남의 시간은 늘 짧다. 짧게는 몇 시간, 길게는 1박 2일의 여정이 끝나면 이들은 다시 개들과 이별한다. 그리고 이렇게 탄식한다. "이젠 다시 볼 수 없겠지." 또다시 상실을 마주하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이들은 한바탕 눈물을 쏟아낸 후 이별을 받아들이고 다음 일정으로 나아간다. 틈틈이 서핑도 하고 쇼핑도 하면서 말이다.
 
한편, 효리는 여행 중 인숙과 대화를 나누면서 자신의 '잃어버린' 지난 모습을 마주하기도 한다. 5회 효리는 동료 연예인들이 파리 패션 위크에서 찍은 화려한 사진들을 보았다며 이렇게 말한다.
 
"인스타에서 연예인들 막 파리 가서 엄청 화려하게 사진 찍는 것 보니까 난 여기서 뭐하고 있지 그런 생각이 들더라."
 
이는 화려했던 시절과 그 시절의 자기 자신에 대한 상실감의 표현이었을 것이다. 지금의 내가 과거의 나와는 동떨어진 그런 느낌 말이다. 하지만 효리는 이런 상실감마저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인다.
 
"지금 이런 모습을 100% 받아들이진 못했고 약간 중간이랄까? 나중엔 어디론가 가겠지? 그리로 가든가 이리로 오든지. 두 갈래 길이 언젠가 한 길로 모이는 거 아니야? 결국 끝에서 다시 만나는. 지금이 좋아 너무 좋아." (5회)
 

이처럼 우리는 살아가면서 사랑하는 이들 뿐 아니라 자신의 과거와 이별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 역시 늘 변화해가는 나 자신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일 때 우리는 지금-여기에 충실한 삶을 살아갈 수 있다. 마치 효리와 인숙이 개들과의 추억을 놓아주고, 개들의 새로운 삶을 응원하듯 말이다. 효리의 말에는 이런 지혜가 가득 담겨 있었다.
 
함께하기에 상실을 겪어낼 수 있는 우리들
 
하지만 이들이 과연 오롯이 혼자였어도 이런 잦은 상실을 감내할 수 있었을까? 아마도 불가능했을 것이다. 1회 임시 보호했던 개와 이별하는 보호자들과 이동봉사자들은 서로를 안아주며 함께 눈물을 흘린다. 이를 지켜본 효리 역시 그 마음을 너무나 잘 안다며 이렇게 말한다.
 
"내가 입양하지 못한 미안함, 다시는 볼 수 없다는 서운함, 고생하지 않을까 걱정."
 
효리와 인숙의 여행길에서도 이런 모습은 반복됐다. 둘은 이별의 순간마다 서로를 토닥이면서 슬픔을 함께 나눈다. 때로는 눈물이 터질 것 같은 모습을 알아차리고 미리 티슈를 준비해주기도 한다. '그 마음 나도 안다'며 함께했기에 이들은 상실을 반복하면서도 계속 사랑하기를 주저하지 않을 수 있었을 것이다.
 
개들의 생명을 살리는 과정도 마찬가지였다. <캐나다 체크인>에 나온 개들 중 그 누구도 어느 한 명의 힘으로 구조돼 새 삶을 살게 된 경우는 없었다. 구조와 임시보호, 그리고 입양에 이르기까지 여럿이 팀이 되었기에 한 생명을 살릴 수 있었다. 바자회를 통해 불특정다수가 함께 하기도 했다. 그리고 생명을 살리겠다는 마음은 국경마저 넘었다.
 
구조된 개들의 사진을 보고 지구 반대편인 캐나다에서 '인연'이라 느끼고, 이들이 무사히 도착하길 간절히 기다리는 보호자들의 모습은 생명을 살리겠다는 마음이 언어와 문화의 장벽마저 허물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효리와 인숙을 기쁘게 맞이하고 개들의 지난 시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 부둥켜 안는 장면들은 생명으로 모두가 연결될 수 있음을 알게 했다. 이런 연결감이 있기에 우리는 숱한 상실 속에서도 살아낼 수 있는 것일 테다.
 
캐나다 체크인 언어도 문화도 다른 이들이 한 생명을 살리겠다는 마음으로 연결되는 장면은 언제나 뭉클했다.
캐나다 체크인언어도 문화도 다른 이들이 한 생명을 살리겠다는 마음으로 연결되는 장면은 언제나 뭉클했다.tvN
 
슬픔과 함께 산다고 불행한 건 아니야. 슬픔을 살아내면서도 행복할 수 있어.

<캐나다 체크인>을 보는 내내 떠올랐던 문장이다. 허은주 수의사가 책 <꽃비 내리는 날 다시 만나>에서 반려동물을 상실한 보호자들이 슬픔 속에서도 나름의 일상을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적은 글귀다.
 
정말 그랬다. <캐나다 체크인>에 등장한 사람들은 모두 동물을 사랑한다는 이유로 더 많은 상실 속에 살아가고 있었다. 하지만, 이들은 결코 불행하지 않았다. 슬픔을 살아내면서도 사랑하기를 주저하지 않기에 오히려 행복해 보였다. 생명을 살리는 일은 상실을 겪어내야 하는 일이지만, 그 결과 '생명의 연대'라 이름 붙여도 될 만큼 좋은 사람들과 연결되며 삶은 더욱 충만해졌다.
 
결국, 사랑한다는 것은 상실의 슬픔을 감내하는 것 아닐까. 상실의 슬픔을 주저하지 않을 때 우리 역시 더 많이 사랑하고, 더 많이 연결되며 연대하는 삶으로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 <캐나다 체크인>은 이를 경험적으로 증명해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송주연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s://blog.naver.com/serene_joo)와 브런치(https://brunch.co.kr/@serenity153)에도 실립니다.
캐나다 체크인 이효리 생명 연대 상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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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는 상담심리사. 심리학, 여성주의, 비거니즘의 시선으로 일상과 문화를 바라봅니다. 모든 생명을 가진 존재들이 '있는 그대로 존중받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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