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일 감독, 신작으로 돌아오다
이상일이라는 감독이 있다. 평범한 이름 같지만 그는 재일한국인 3세, '자이니치'다. 적잖은 재일교포 출신들이 일본영화계에서 활동 중이지만 일본영화 감독협회 이사장을 역임하다 작년 11월 세상을 떠난 고(故)최양일 감독 정도를 제외하면 일본식 이름을 사용하지 않고 영화판 메이저에 속한 이는 찾아보기 힘들다(최양일 감독조차 일본식 이름을 병용하며 활동했다). 하지만 정작 그의 작품에서 재일한국인 정체성이 딱히 두드러지진 않는다. 창작활동에 대한 선입견에 매몰되지 않으려는 작가적 의도라 넘겨짚어 본다. 하지만 한국인 이름 사용에 대한 단호한 고집과 그의 영화에서 꾸준히 확인되는 사회적 편견과 소수자 문제를 통해 이 감독은 결코 자기 정체성을 부정하는 것과는 거리가 먼 행보를 보여 왔었다.
감독의 데뷔작부터 꾸준히 대부분 작품들을 확인해왔다. 활동 전반기에는 2004년 < 69 >, 2006년 <훌라 걸스>처럼 결코 사회 기득권 주류가 아닌 주인공이 등장하지만 비교적 낭만적 해피엔딩에 가까운 이야기들을 선보였다. < 69 >는 격변기이던 68혁명 전후 고등학교를 배경으로 급진문화축제를 열려는 청소년들의 왁자지껄 난장을, <훌라 걸스>는 쇠락한 탄광마을을 살리기 위해 하와이언 센터를 유치하려는 주민들의 사연을 코믹하게 담아내 2000년대 초반 일본 인디영화 열풍의 일익을 담당했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이상일 감독은 적절히 사회적 코드를 삽입한 준수한 상업영화 연출가로 자리 잡을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감독의 영화경력은 2010년 <악인>을 기점으로 변모한다. 일본의 유명 작가 요시다 슈이치의 원작을 기반으로 실제로 회복 불가능한 범죄를 저지른 주인공의 후일담을 다루면서 극한의 상황에 내몰린 개인의 심리와 죄의식 등을 전면에 드러내기 시작했다. 차기작으로는 미국 수정주의 서부극의 상징과도 같은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용서받지 못한 자>를 메이지 시대 초반 북해도로 배경을 옮겨 리메이크한다. 2013년 <용서받지 못한 자>는 격동의 역사 속에서 낙오된 동병상련 신세의 과거 적들과 지역 배경인 북해도 원주민 아이누의 수난 역사를 버무려낸 작업이었다. 역시 요시다 슈이치의 소설을 영상화한 2016년 <분노>는 현대 일본사회에 잠재된 사회모순과 개인들의 불신을 미스터리 스릴러 형태로 강렬하게 담아낸다. 끔찍한 살인사건 용의자를 추적하는 가운데 동성애나 주일미군에 의한 강간 등 까딱 잘못하면 선정성 논란에 휩싸이기 안성맞춤 소재들이 과감하게 노출되어 큰 화제가 되었다.
그렇게 민감한 소재와 금기에 도전하면서 일본사회에 잠재된 문제와 극한적인 상황에 처한 당사자의 생존투쟁을 전개하는 감독의 중반 이후 경향은 2022년 등장한 신작 <유랑의 달>에도 고스란히 이어진다. 2020년 일본 서점대상을 석권한 나기라 유의 동명 장편을 영화화했다. 원래 BL 장르를 주로 집필하던 원작자의 첫 번째 본격 정극소설은 소아성애와 스톡홀름 증후군, 결손가정과 사회적 낙인 등 예민한 쟁점을 쉽게 상상하기 힘든 극한의 상황을 통해 풀어낸다. 이상일 감독의 후반기 세계관과 맞아떨어지는 이야기는 젊은 배우들 중 연기력을 인정받는 주연배우들의 열연과 뛰어난 스태프들의 협력으로 압도적인 위용을 드러낸다.
15년 전 사건에서 출발하는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