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오페라의 유령> 1차 예매 안내 이미지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 1차 예매 안내 이미지에스엔코
 
뮤지컬 티켓 가격이 연일 최고가를 경신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22일 서울 충무아트센터에서 개막한 뮤지컬 <웨스트사이드스토리>가 처음으로 16만 원 고지를 돌파한 이후, 대극장 뮤지컬 제작사들이 연이어 높은 가격으로 티켓을 판매하고 있는 것. 

지난해 12월부터 서울 용산구 블루스퀘어 신한카드홀에서 공연하고 있는 <물랑루즈!>가 18만 원에 VIP석 가격을 책정했고 이후 지난 12일 개막한 <베토벤>과 20일 개막되는 <캣츠>가 17만 원, 오는 3월 부산 공연 개막을 앞두고 있는 <오페라의 유령>은 VIP 좌석 19만 원으로 신고가를 다시 경신했다. 지난해 10월 오리지널 내한공연 <태양의 서커스 뉴 알레그리아> 역시 최고가 SR석 19만 원(라운지 및 선물 지급한 VIP석은 제외)을 기록했으나, 한국어 공연으로는 <오페라의 유령>이 최초다.

코로나 팬데믹 중이었던 지난해만 해도 15만 원 수준에서 형성됐던 VIP 좌석의 표값이 불과 몇 달 만에 20% 넘게 인상된 19만 원까지 치솟았다. 최근 급격하게 오르고 있는 물가상승률을 고려한다고 해도 무리한 인상이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어 보인다. 관객들의 여론도 점차 악화되고 있는 상황이다. 곧 20만 원을 시도하는 작품도 나오지 않겠냐는 예상도 적지 않다.

뮤지컬 마니아들이 모여 있는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표값이 너무 급등해서 공연 보러 가는 횟수를 줄이고 있다", "제작사들끼리 누가누가 가격을 많이 올리나 경쟁하는 것 같다"는 비판이 쏟아진다. 지난해 뮤지컬을 50회 이상 관람했다는 김민지씨는 "명확한 이유 없이 단기간에 가격이 올랐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아무리 공연을 좋아하는 사람이어도 기회비용을 따져보기 마련이다. 갑자기 올라간 티켓값 때문에 실제로 관람 횟수를 줄이게 될 것 같다"고 말했다. 

티켓값 상승의 막을 열었던 <웨스트사이드스토리>와 <물랑루즈!>는 일부 뮤지컬 팬들로부터 '불매 운동'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SNS 상에서 벌어진 뮤지컬 <웨스트사이드스토리> <물랑루즈!> 불매운동
SNS 상에서 벌어진 뮤지컬 <웨스트사이드스토리> <물랑루즈!> 불매운동트위터캡쳐
 
제작사 측 "어쩔 수 없는 가격 인상"

그러나 제작사 및 관계자들의 입장은 달랐다. 전 세계 경기악화 및 물가상승으로 인한 "어쩔 수 없는 가격 인상"을 강조했다. 

<웨스트사이드스토리> 제작사 <쇼노트>는 12일 <오마이뉴스>에 "무대 세트, 조명, 의상 등 제작 비용이 크게 증가했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력 수급의 어려움까지 더해지면서 인건비도 상승했다"며 "무대세트, 의상, 소품 등을 국내에서 제작하더라도 원자재는 수입해야 하는 게 대부분이다. 제작비가 올라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해명했다.

<물랑루즈!> 제작사 CJENM 역시 "전 세계적으로 동일한 퀄리티를 유지하기 위해 무대, 의상, 소품, 가발 등 대부분 국내가 아닌 해외 지정 제작소에서 제작하고 있다. 일부 배우들도 해외로 직접 피팅을 가야 할 정도였다. 또 오리지널 제작진 등이 국내 제작에 참여해 제작비 규모도 워낙 컸다"며 "70여 곡의 팝송이 포함된 매쉬업 뮤지컬이라, 높은 로열티도 지급하고 있다"고 가격 상승 이유에 대해 설명했다.

<오페라의 유령> 홍보대행사 클립서비스도 "여러 나라에서 공연을 하는 투어보다 한국 단일 시장 내에서 (제작비를)소화해야하는 한국어 공연이 더 어려운 상황이다"며 "오리지널 스케일 그대로 세트와 의상이 한국과 영국, 호주 3개국에서 제작하다 보니, 그에 맞게 가격이 책정된 것이다" 라고 입장을 전했다.

관계자들은 공연 제작비가 급격하게 상승해서 가격을 인상하더라도 오히려 적자가 나는 공연도 적지 않다고 털어놓았다. 뮤지컬 제작사에서 근무하는 모 관계자는 "초연의 경우에는 세트, 의상, 조명, 영상디자인까지 모두 처음 제작하기 때문에 비용이 더 많이 든다. 더구나 티켓 수입에서 일부 퍼센티지로 라이선스 비용까지 내면 수익이 남지 않는 경우도 많다. 그럼에도 사활을 걸고 강행하는 것"이라고 호소했다. 또 다른 관계자 역시 "이렇게 높은 가격을 책정하면 흑자가 난다고 계산하고 가격을 정한 것은 아니다. 워낙 제작비가 높아 (수익이 나려면) 더 높은 가격이어야 했을 수도 있다. 관객 정서 등을 고려했고 많은 고민이 있었다"고 고백했다.

일부 팬들은 "스타 배우들에게 몸값을 더 올려주고 그 부담을 관객들에게 지우는 게 아니냐"고 토로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번 티켓값 인상은 배우들의 개런티와 관계없다는 답변이 많았다. 익명의 뮤지컬 제작자는 "배우들이 물가가 올랐으니 나도 개런티를 올려야겠다고 하지 않는다. 배우들의 개런티는 대개 변하지 않았다. 물론 신인에서 주연으로 바뀐다거나 할 때는 오르겠지만 주연배우들의 경우 이미 형성된 개런티로 계약이 진행된다"고 말했다.

제작사들이 VIP석의 비중을 늘리는 이유
 
 뮤지컬 예매 화면. 1층 좌석의 상당 부분이 VIP좌석에 해당한다.
뮤지컬 예매 화면. 1층 좌석의 상당 부분이 VIP좌석에 해당한다.인터파크티켓
 
티켓값 인상에 대한 관객들의 또다른 불만은 VIP석의 비중이 점점 늘어난다는 점이다. 과거엔 R석 등급이었던 좌석까지 현재는 VIP석의 가격을 매기고 있다는 것. VIP석과 그 아래의 등급 R석, S석, A석 등을 나누는 기준은 위치다. 관객이 좌석에 앉아 무대를 얼마나 잘 볼 수 있느냐에 따라 가격이 결정된다. 그러나 최근 관객들은 무대가 잘 보이지 않는 좌석까지 VIP석의 가격이 매겨져 있다며 불평을 쏟아낸다.

실제로 1000석 이상 대극장 뮤지컬의 경우, VIP 좌석의 비중이 과거에는 20% 내외였다면 현재는 전체 좌석 중 40% 가량이 VIP석에 해당되는 경우가 많다. 최근에는 2층에 위치한 좌석도 첫 줄과 두 번째 줄까지는 VIP석의 가격을 매기기도 한다. 공연 제작사들이 VIP석의 비중을 늘리는 이유는 한 가지다. 높은 가격의 좌석이 많이 팔릴수록 매출이 증가하기 때문이다. 팬들의 비판이 쏟아지는 까닭이다.

청강대 공연예술스쿨 최승연 교수는 이에 대해 한국 극장시설을 고려하지 않은 탓이라고 짚었다. 최 교수는 13일 오후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외국에 비하면 한국 뮤지컬 티켓 가격은 오히려 저렴한 편이라고 볼 수도 있다"면서도 "같은 가격이라도 미국 브로드웨이 2층에서 보는 것과 한국 공연장 2층에서 보는 것에는 차이가 있다"고 말했다.

"미국 브로드웨이는 할증제로 운영된다. 공연이 흥행하면 티켓 가격도 천정부지로 상승한다. 제일 앞줄이나 좋은 자리에서 보려면 100만 원을 호가하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브로드웨이에서도 한국 돈으로 약 20만 원을 주면 2층에서 공연을 볼 수 있었는데, 2층이라도 시야 확보가 잘 되고 음향시설이 좋아서 뒷자리에서 본다는 느낌을 받기 어렵다. 공연장의 폭이 좁고 대극장이라도 크기가 크지 않아서 어떤 자리에서든 무대를 꽉 차게 볼 수 있다.

반면 한국은 공연을 위한 극장이라기 보다, 다목적으로 지은 시설이 대부분이다. 공연장 인프라, 각도, 음향 등이 다르기 때문에 2층에서 본다면 공연에 몰입하기 어려운 경우도 많다. 이러한 상황에서 무대가 잘 안 보이는 2층 좌석까지 1층 앞줄과 동일한 VIP석 가격을 매기니 관객들의 비판이 많을 수밖에 없다."


공연 제작비도 증가하고 표값도 덩달아 상승하는 와중에 관객들의 불만은 더욱 커지고 있는 상황, 해법은 없을까?

최승연 교수는 한국 뮤지컬 시장이 건강하게 발전하기 위해서는 결국 작품과 공연의 질을 개선하는 방향으로 가야한다고 제언했다. 그는 "(작품의 질이 아니라) 유명한 배우들의 티켓 파워로 공연의 흥행이 결정되는 현실도 바람직하지 못하다. 결국은 공연이 작품 중심으로 가야한다. 어떤 배우가 나오든 상관없이 작품이 좋은 작품이면 공연장에 관객들이 모이는 분위기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 그렇다면 제작사들도 앞으로 (공연의 질에) 더욱 신경쓰게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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