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은 마침내 '충분하다'며 삶의 충만함을 느낀다.
ENA
해보지 뭐, 안 되면 말고
불안을 수용할 수 있게 된 여름은 목표 대신 내면의 욕구를 따르는 용기도 낸다. 여름은 도서관에서 사서로 일하고 있는 대범(임시완)에게 호감을 갖게 된다. 하지만, 안곡에 오기 바로 직전 애인에게 상처를 받은 여름에게 사랑은 두렵기만 하다.
8회 여름은 이런 자신의 마음을 성찰하면서 '더 이상 슬픈 일 따위는 만들고 싶지 않다'고 주저하지만, 곧바로 '개 폼 잡고 있네'라고 마음을 고쳐먹고 대범에게 달려간다. 이때부터 둘은 가까워지고 서로를 보살피는 관계가 된다. 아마도 여름이 과거의 상처를 반복하지 않는 데 그러니까 '회피'하는 것에 몰두했다면 이런 용기는 내기 힘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불안을 감내하는 데 익숙해진 여름은 '해보지 뭐, 안 되면 말고'라는 마음으로 '하고 싶은 것'을 택할 수 있었다.
이는 또한 자신의 마음과 대범의 마음을 분리할 수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여름은 '대범이 나를 좋아할까'가 아니라 '내가 대범을 좋아하는지'에 초점을 두고 자신의 마음의 소리를 듣는다. 상대의 마음은 상대의 것이니 내가 어찌할 수 없지만, 내 마음을 존중해주는 것은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일 테니 말이다. 이런 용기가 여름에겐 대범과의 좋은 관계로 나아갈 수 있게 했을 것이다.
사실 그렇다. 많은 경우 사람들은 '안 될까봐' 걱정하느라, 혹은 다른 사람의 마음을 신경을 쓰느라 자신이 원하는 것을 시작하지 못한다. 하지만, 해보지 않으면 우리는 아무것도 얻을 수 없을 것이다. 나 자신하고 친해지기 위해서는 여름처럼 일단 '해보지 뭐 안 되면 말고'의 자세도 필요하지 않을까.
다 괜찮은 거야
그리고 여름과 안곡마을 사람들은 보여준다. 삶에서 일어나는 일은 웬만하면 '다 괜찮다'는 것을. 9회 여름에게 한글을 배우러 온 봄의 할머니 명숙(김혜정)은 여름이 "심심하다"고 하자 이렇게 말한다.
"괜찮아 심심해도 괜찮고 바빠고 괜찮고 다 괜찮은 거야. 그게 사람 사는 건데." (9회)
정말로 그랬다. 여름이 머무는 동안 안곡 사람들에게는 많은 일들이 벌어진다. 봄(신은수)은 알콜중독 아버지의 칼에 찔리는 사고를 당하고, 명숙은 살해 당한다. 근호(김요한)는 살인범으로 오해를 받고, 대범은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연구에 이용당한다. 할머니를 잃고, 아버지가 다시 도박에 빠졌을 때 봄은 자살을 시도하기도 한다.
이처럼 크고 작은 일들이 항상 벌어졌지만, 그래도 이들은 다시 평온을 되찾는다. 그리고 여름은 드라마의 말미 이렇게 회상한다. "괜찮다고 말하고 나니까 다 괜찮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고(12회). 심지어 삶을 포기하려던 봄도 그 순간 "괜찮다고 말하자 신기하게 정말 다 괜찮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고 고백한다.
여기서 기억할 건, 바로 이들의 삶이 '원래대로' 돌아오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어떤 일들은 항상 벌어지고, 그 일들은 삶에 흔적을 남긴다. 하지만, 여름과 안곡 사람들은 그 흔적들을 삶의 일부로 수용하고 변화해감으로써 전과 같지는 않지만 또 다시 '괜찮아'지곤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