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창래 작가의 소설 원작을 드라마화 한 왓챠 오리지널 시리즈 <오늘은 좀 매울지도 몰라>는 말기암 투병 중인 아내를 위해 요리하는 남편의 이야기이다. 그러기에 누구라도 알겠지만 '엔딩'은 정해져 있다. 하지만 엔딩과 상관없이, 아니 엔딩이 있기에 가능한 소중한 이야기들이 보는 이들의 마음을 울린다. 

지난 12월 19일 자 기사(링크: http://omn.kr/221mq)에서 자세히 다뤘지만 창욱(한석규 분)과 다정(김서형 분) 부부는 이제 함께 살지 않는다. 그런데 그만 아내가 대장암 선고를 받게 된다. 식이와 간병이 중요하다는 의사의 권고를 들은 아내 다정은 남편 창욱에게 부탁한다. "당신이 좀 해주면 안 돼?" 이제는 남남이나 다름없지만 한때는 동료이자, 부부였던 사이였다. 남편은 남에게 좀처럼 부탁이란 걸 하지 않는 아내가 자신에게 그런 부탁을 하는 의미를 대번에 헤아린다. 그리고 두말하지 않고 주방으로 들어간다.
 
 왓챠 <오늘은 좀 매울지도 몰라>의 한 장면
왓챠 <오늘은 좀 매울지도 몰라>의 한 장면Watcha
 
암환자 아내를 위해 모든 것을 마련한 남편 

라면만 겨우 끓일 줄 아는 남편이 하는 요리가 어디 쉽겠는가. 하지만 먹는 것도 쉽지 않고, 소화는 더욱 쉽지 않은 아내 다정을 위해 남편 창욱은 갖은 애를 다 쓴다. 남편만이 아니다. 뒤늦게 엄마의 투병 사실을 알게 된 아들은 의학의 한계를 넘어 좋다는 갖가지 약초 등에까지 시선을 돌린다. 한참 대학 생활의 재미를 알아갈 신입생인데, 엄마의 병에 대해 알고 싶다는 마음에 사진과 학생이 의대 수업을 청강할 정도다. 그런 아들이 아버지에게 말한다. 

"삼백초라고 아세요? 그게 암 환자에게 좋다는데..."

아버지의 대답은 뭐였을까? 마침 두 사람은 아픈 엄마를 위해 만들었지만 소용되지 않은 잔반을 양푼에 넣어 비빔밥을 만들어 먹던 중이었다. 아버지가 비빔밥을 한 숟가락 들어 보이며 말한다. "삼백초가 첫맛은 아리다는데, 이렇게 비벼서 먹으니까 잘 모르겠다." 그리고 일어나 주방으로 간다. 봉지 봉지 꺼내며, 이건 차가버섯, 이건 상황버섯, 그리고 냉장고를 여니 갖가지 가루들이 등장한다. 겨우살이, 차전자 등 아버지 창욱은 그가 할 수 있는 한 암환자를 위한 모든 것들을 마련해 두었다. 

그런 창욱이니 요리 하나도 허투루 할 수 없다. 갖은 잡곡이 섞인  밥, 깔깔한 그 맛을 달래기 위해 오래도록 불렸다 밥을 하는 건 물론, 천연의 재료들로 다시를 내고, 삼백초 등 좋은 재료들로 매 끼니의 밥상을 차린다. 그런데 막상 환자인 아내의 다정의 입맛은 예측불허다. 제주도에서 먹은 돔베 국수가 먹고 싶다 하지 않나, 후배 작가와의 만남에서 달달한 게 당긴다며 초콜릿 케이크를 주문한다. 그런 아내가 심심한 밥상에 질렸는지 '탕수육'을 주문한다. 남편이야 대번에 당신이 그 튀긴 돼지고기를 어떻게 소화시키려고 하며 걱정이 앞선다. 그런데도 아내는 달달한 파인애플을 넣어 만든 소스를 뿌린 탕수육이 먹고싶단다.
 
 왓챠 <오늘은 좀 매울지도 몰라>의 한 장면
왓챠 <오늘은 좀 매울지도 몰라>의 한 장면Watcha
 
결국 창욱은 아내를 위한 탕수육을 만들기로 한다. 기왕이면 제대로 탕수육을 만들어 보고 싶은 창욱은 탕수육 맛을 제대로 낼 수 있는 조리 도구인 '웍'을 사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웍을 사고, 재료를 준비했는가 싶은데 맛을 내려면 간을 한 고기가 숙성되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한다. 그렇게 하루하루 시간이 흐르다가 그만, 아내는 창욱의 요리를 기다리지 못하고 병원 중환자실로 향한다. 그나마 창욱이 만들어다 준 망고 주스조차 먹을 틈 없이 병세는 악화되고 만다. 냉장고에 가득 채운 암환자들을 위한 먹거리가 무색하게 아내는 더는 음식을 먹을 수 없는 상태가 되어버렸다. 

시간이 더는 그들의 편이 되어주지 못하는가 싶었는데, 창욱의 설득으로 수술을 받게 된 아내에게 기적이 일어났다. 암은 뼈까지 전이되었지만, 다행히 막혔던 위와 장의 통로가 마련되었다. 그저 얼마만이겠지만 아내는 다시 음식을 먹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왓챠 <오늘은 좀 매울지도 몰라>의 한 장면
왓챠 <오늘은 좀 매울지도 몰라>의 한 장면Watcha
 
지금, 여기, 그리고 우리

음식이 뭐라고. 그깟 먹는 게 뭐라고. 이런 반문이 나올 수도 있겠다. <오늘은 좀 매울지도 몰라>가 전하고자 하는 바는 음식 이야기가 아니다. 음식을 나누는 것을 통해 지금 여기에서 우리가 함께 할 수 있는 시간들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한때는 동료였고, 부부였지만 두 사람이 이른바 '금슬 좋은' 사이는 아니었다. 출판사 운영자로서, 인문학자이자 번역가로서 각자의 개성이 분명했던 부부는 진실이라는 이름으로 서로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가감 없이 드러냈다. 그리고 그것이 고스란히 두 사람에게 상처가 되었고, 아버지의 귀가를 아들이 받아들이기 힘들어할 만큼 가족은 서로 분리되어 있는 상태였다. 

그랬던 가족이 다정의 투병을 계기로 모여들었다. 자신의 몸조차 추스리기 힘든 다정은 출판사 일로 남편에게 운전을 부탁한다. 기꺼이 아내를 에스코트하는 남편, 그런 남편의 곁에서 다정은 웃음꽃을 피운다. 그리고 남편 창욱은 자신의 팔을 다정하게 잡는 아내에게 슬그머니 미소를 띤다. "당신 변했어"라고 다정은 웃으며 말한다. "좋게."

남편은 말한다. 진실이라는 이름으로 걸러지지 않고 내뱉었던 가시 돋친 말들을 이제는 삭히고 인내할 줄 알게 되었다고. 그들은 안다. 이제 자신들에게 서로에게 한없이 퍼부었던 그 화살같은 시간들이 더는 허락되지 않음을. '띄엄띄엄 탕수육'이라며 다정이 기다리던 탕수육조차 허락되지 않은 시간만이 그들에게 남아있음을. 드라마는 역설적으로 보는 이들에게 묻는 듯하다. 그러는 당신들에게는 많은 시간이 남아있는 것같냐고.

그래서일까. 그냥 덮은 줄 알고 황망해하던 수술 끝에 다정이 다시 조금씩 회복되어갈 즈음, 대패삼겹살을 먹고 싶다는 말에 이 식구는 당장 삼겹살 불판을 피운다. 겨우 한 점, 그것도 귀퉁이만 조금 베어 물지만 아내 다정은 대패 삼겹살이 너무 맛있단다. 어디 아내뿐일까. 아들도, 남편도, 이 가족은 가장 맛있는 삼겹살 만찬을 즐긴다. 

그리고 아내의 긴 투병을 위해 결국 차를 팔러 나온 남편은, 해삼탕을 먹고 싶다는 아내의 말 한마디에 차를 사러 온 이를 놔둔 채 마트로 달려간다. 그런데 말린 해삼을 불리는데 시간이 필요하다니, 이보다 더한 황망함이 있을까. 이 시간을 놓치면 어쩌면 아내에게 다시는 해삼탕을 먹일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걸 그는 이제 안다. 그가 집착하는 건 요리가 아니라 이 세상이 허락한 아내와의 시간이다.

수목장 장지를 보고 왔다는 다정의 말에 후배 작가는 어쩔 줄 몰라한다. 그런 후배에게 다정은 밝은 얼굴로 말한다. 지금이 그 어느 때보다도 가장 행복하다고. 살면서 우리는 많은 시간이 허락되었을 것이라 생각하며 산다. 관계도, 일도, 그리고 삶도. <오늘은 좀 매울지도 몰라>는 삶의 종착역을 향해가는 다정과 그의 식구들을 통해 우리에게 말한다. 그 먼 훗날의 행복이 아니라, 지금 여기서, 나와 함께 한 이들과의 소중한 시간을. 그래서 드라마는 슬프지만 따뜻하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이정희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 https://blog.naver.com/cucumberjh에도 게재됩니다.
오늘은 좀 매울지도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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