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N 드라마 <환혼: 빛과 그림자>의 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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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군사 지식과 무술이 빛을 발한 것은 광해군 실각 이듬해인 1624년에 벌어진 이괄의 난 때였다. 이괄은 광해군을 몰아내는 인조 쿠데타(인조반정)를 성사시키는 데 결정적 기여를 했지만, 그 직후의 권력투쟁에 밀려 평안도 병마절도사(병사)로 가게 됐다. 그런 뒤 이괄이 평안도에서 반란을 일으켰을 때 부낭이 두각을 나타내게 됐다.
평안도 및 황해도 일부를 점령한 이괄의 반란군이 한양에 임박하자, 인조 임금은 명나라에 파병을 요청한 뒤 도성을 떠나 공주로 피신했다. 그런 다음, 이괄이 한양에 입성해 선조의 아들인 흥안군 이제를 왕으로 추대했다.
1년 전에 광해군을 몰아내는 데 결정적 공을 세웠던 이괄이다. 그런 이괄이 이번에는 인조를 도성 밖으로 밀어내고 새로운 왕을 추대했다. 국가 전복에 능한 인물이었던 것이다. 그런 이괄을 무너트리는 데 기여한 장본인이 부낭이다. 부낭은 평안도 안주목사 정충신이 경기도와 한양에서 이괄 군대를 격파하고 1등 공신이 될 때의 조력자였다고 <조선무사영웅전>은 말한다.
그런데 애초에 부낭에게는 참전 기회가 없었다. 평안병사 이괄에게 징발된 사람은 그가 아니라 그의 아버지였다. 아버지가 받은 '소집영장'을 가로채 남장 차림으로 말을 타고 평안병사의 군영에 들어갔던 것이다.
창 1자루 들고 입대하는 백성보다 말 1마리 끌고 입대하는 백성이 훨씬 나은 대우를 받았다. 부낭이 말을 갖고 왔을 뿐 아니라 무예까지 빼어나다는 점을 확인한 이괄은 그를 초장(哨長)으로 선발했다. 부대원 100명 정도를 지휘하는 초급 장교로 임명한 것이다.
그러나 부낭은 계급장에 만족하지 않았다. 그는 이상한 낌새를 채게 됐다. 이괄의 부대가 반란군이 되려 한다는 징후를 포착한 것이다. 그래서 탈영을 감행했다. 그가 밤중에 말을 달려 찾아간 곳은 평안도 안주목사 정충신의 관아였다.
부낭은 역모 사실을 고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구체적인 진압 방책까지 건의했다. 이괄이 필시 한양으로 진격할 것이니 그를 치려면 한양에서 승부를 봐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 책략을 따른 결과로 정충신이 이괄 부대를 격파하고 일등 공신이 될 수 있었다는 것이 안확의 설명이다.
전장에서 무공 세운 설죽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