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메모리아> 스틸 이미지.
찬란
제시카가 병원에서 목격하는 6000년 전의 천공수술 흔적을 가진 유골은 그가 겪는 괴이한 소음이 인류 역사와 함께 한 오래된 현상임을 짐작케 해준다. 그리고 밀림으로 진입할수록 좀 더 선명하게 다가오는 소리들은 과거 라틴아메리카가 겪은 기억과 연동되기 시작한다. 고대 문명의 자취에서 정복과 식민 그리고 정치적 혼란을 거듭한 대륙의 사연이 암호처럼 하나둘 드러나는 것처럼 느껴지곤 한다. 소리는 기억을 내포하고, 그 기억은 시공간을 초월한 대화이자 세계의 진실을 여는 창으로 기능하는 듯 보인다.
물론 이 영화를 지극히 개인적 방식으로 관람한다 해서 딱히 틀렸다거나 문제되지는 않는다. 실제로 감독이 구체적으로 정치나 역사적 맥락을 풀어내지도 않는다. 그렇기에 관객이 아무리 치열하게 시사적인 관점으로 영화를 대한다 해도 반드시 그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다는 보장도 없다. 그저 보는 이들 각자 마음껏 중력에 갇혀있던 속박을 벗어나 우주에서 무중력 상태로 유영하며 제각각 꿈을 꾸게 만드는 식이다. 시간이 지나면 친절하게 결말을 제시해주는 게 아니라 관객 각자가 답을 찾아야 한다. 결코 친절한 태도는 아니다.
결국 <메모리아>는 정답을 도출하는 게 아니라 가능성을 상상하게 만드는 기획이다. 이 영화를 본 감상을 수식어를 통해 규격화하기란 지독하게 난감한 일이다. '형언할 수 없다'는 탄식이 절로 나올 법하다. 하지만 강렬한 무엇인가를 보고 듣고 느낀 건 분명하다. 이 영화를 보고 극장 문을 나서는 순간, "내가 대체 무엇을 본 걸까?" 필사의 탐구가 시작될 테다. 마치 네시나 설인 같은 미지의 생물들, 일명 '크립티드'라 불리는 존재를 목격하긴 했는데 증인은 달랑 나 혼자고 아무런 증거도 자료도 없는 그런 심정에 가깝다.
아무튼 많은 기대와 그 이상의 염려를 몰고 다니던 아피찻퐁 위라세타쿤의 신작은 이제 '월드'에서 '유니버스' 클래스로 한층 더 확장된 성취를 과시하는 중이다. 소리를 새로운 필살기로 삼아 자유자재로 구사한 장대한 콜라주의 결과는 그야말로 정글에 펼쳐지는 '감각의 제국' 그 자체다.
<작품정보> |
메모리아 Memoria
2021|콜롬비아, 태국, 프랑스 외|시네마틱 사운드 오디세이
2022.12.29. 개봉|135분|12세 관람가
감독 아피찻퐁 위라세타쿤
주연 틸다 스윈튼
출연 엘킨 디아스, 잔느 발리바, 후안 파블로 우레고, 다니엘 히메네스 카초
수입 및 배급 찬란
공동배급 소지섭, ㈜ 51k
2021 74회 칸영화제 심사위원상
2021 57회 시카고국제영화제 골드휴고 작품상-국제경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