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속 인물들의 심리를 탐구해봅니다. 그 때 그 장면 궁금했던 인물들의 심리를 펼쳐보면, 어느 새 우리 자신의 마음도 더 잘 보이게 될 것입니다.
[편집자말]
JTBC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이 막을 내렸다. 드라마 방영 내내 큰 화제였던 것처럼 이 드라마의 결말을 두고도 많은 말들이 오가고 있다. 많은 시청자들은 원작과는 달리 도준으로서의 삶이 모두 꿈이었다는 결말에 실망스러워하는 눈치다. 아마도 시청자들에게 카타르시스를 주었던 도준이 된 현우(송중기)의 성공담이 현실이 아니었다는 설정이 허탈감을 안겨주었을 듯싶다.
 
하지만, 드라마의 완성도를 떠나 심리학의 시선으로만 바라본다면 이 드라마의 결말은 꽤 의미 있어 보인다. 현우라는 한 사람이 내면의 모순을 바라보고 이를 통합해가는 과정으로 읽어낼 수도 있기 때문이다.
 
현우, 재벌의 집사로 사는 흙수저
 
윤 실장으로 불리는 현우는 순양그룹의 충성스런 집사다. 그는 가난 때문에 어머니를 잃었고, 사채만 잔뜩 진 무능한 아버지와 아르바이트를 하며 지내는 동생을 건사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 일한다. 그의 주요 업무는 순양가 사람들의 기분을 맞추는 것이다. 눈치 빠르게 아무런 토를 달지 않고, 순양가 사람들이 지시하는 것을 묵묵히 수행한다. 그는 라면을 먹다 불려 가 비데를 설치해주기도 하고, 목적 달성을 위해서라면 오너가 행사하는 폭력도 달게 받는다(1회). 덕분에 고졸 출신인데도 '실장'이 되었고, 동료들은 그런 그를 선망하면서도 '개같이 산다'며 혀를 차는 이중적인 시선으로 바라본다.
 
현우의 이런 삶은 자신도 모르게 도준을 죽이는 일에 동원된 후, "가난에서 벗어나게 해 준다"는 순양가의 제안을 따른 데서 시작되었을 것이다. 가난 때문에 우수한 성적에도 불구하고 대학을 포기해야 했고, '투잡'까지 뛰며 열심히 일해도 점점 더 가난해지기만 했던 현우에게 이 제안은 솔깃했을 것이다. 결국 그는 순양가의 충실한 집사가 되기로 하고 그의 가족은 마침내 '살만해'진다.
  
 도준이 된 현우는 미래를 살아본 경험을 이용해 승승장구 한다.
도준이 된 현우는 미래를 살아본 경험을 이용해 승승장구 한다.JTBC
 
하지만 현우는 도덕적 양심이 강한 인물이다. 그토록 가난에 시달리면서도 성실히 일하는 것 외의 다른 길은 생각도 하지 못했던 사람이었다. 이는 그가 가난에서 탈출할 수 있는 방법을 제안받았을 때 그 자리서 수락하지 않고 뛰쳐나갔던 부분에서도 잘 드러난다. 하지만 그는 회사원들 사이에서 초라한 자신의 모습을 느끼고 양심을 마비시키기로 결정한다(16회). 그리고 그 후 그가 하는 일은 오직 순양가 사람들의 배를 불리는 일이었다. 때로는 그 방식이 자신과 같은 서민들을 착취하는 방식이더라도 그는 그저 묵묵히 이를 실행에 옮긴다.
 
아마도 이는 자기 자신을 크나큰 모순에 빠지게 했을 것이다. 가난해서 빠져나오기 위해 자신을 가난에 빠뜨린 바로 그 방법들을 행해야 한다는 모순은 그를 분열시켰을 것이다. 그는 이 분열을 느끼지 않기 위해 '그 어떤 질문도 하지 않고, 거절하지 않고, 판단하지 않는다'고 스스로에게 주문을 걸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도준, 모순의 극대화를 경험한 삶
 
이런 현우가 생사를 오가며 도준으로 사는 꿈을 꿈 것은 심리적 분열을 해결하려는 무의식의 시도로 보인다. 현우는 도준으로 살면서 모순된 처지를 당사자와 관찰자의 입장에서 모두 경험한다.
 
"고등학교 3년 내내 아무 걱정 없이 공부에만 집중할 수 있었던 것도, 지금 이 순간 학업에만 집중할 수 있는 것도 든든한 부모의 경제적인 심리적인 지원 덕분이라는 생각 안 해봤어? 대를 이은 법조계 명문가인 너의 집안, 건강한 몸, 좋은 머리 그 모든 게 태어날 때부터 공짜로 주어진 특권이라는 생각은 안 해봤어?"
 

도준은 민영(신현빈)에게 이렇게 말할 만큼 '특권'에 민감하다(3회). 하지만, 재벌가의 손자로 다시 태어난 그는 자신이 가진 부와 미래를 아는 능력 그러니까 자신의 특권을 이용해 부를 축적하고 순양가를 쥐락펴락한다. 특권에 대한 반감을 자신의 특권을 이용해 해소하는 모순을 행한 셈이다. "너는 점점 더 나빠질 거야"라고 경고하는 민영의 말에 "절대 그러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하지만, 그가 하는 일은 늘 아슬아슬해 보인다. 사랑하는 이와의 이런 갈등을 통해 도준은 특권층에 복수하기 위해 또다시 특권을 이용하는 자신의 모순을 더 강렬하게 느꼈을 것이다.
  
 도준과 현우의 간극만큼이나, 도준과 현우 각각은 내면의 모순과 분열을 겪는다.
도준과 현우의 간극만큼이나, 도준과 현우 각각은 내면의 모순과 분열을 겪는다. JTBC
 
게다가 그는 도준과 현우로서의 자기 자신을 모두 관찰하듯 바라보기도 하는데 이를 통해 자신의 분열된 모습을 인식하게 되었을 것이다. 14회 말미 현우와 도준이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마주하는 장면은 그가 자신의 분열을 직면하는 순간이었을 것이다. 그는 이 장면에서 다음과 같은 독백을 통해 그 분열이 꽤나 깊었음을 통찰한다.
 
'부를 상속받은 나, 가난을 대물림받은 너. 우린 같은 시간 같은 하늘 아래서도 다른 세계에 산다. 전생과 이번 생 만큼이나 먼 궤도에서.'   

마침내 분열에서 나오다 
 
그렇게 현우는 자신의 분열을 직면한다. 깊은 분열을 알아차렸을 때 사람의 마음은 그것을 통합하는 방향으로 움직인다. 그래야 나 자신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우 역시 그랬다. 그는 생사의 기로에서 마침내 깨어났을 때 자신의 마음을 통합하려는 시도들을 한다.

현실로 돌아온 현우는 자신이 실제 함정에 빠져 있음을 알게 된다. 하지만 더 이상 당하지만은 않는다. 그는 '질문하지 않고, 거절하지 않고, 판단하지 않는다'는 주문을 깨고 나와 현우로서 지니고 있었던 양심을 살려낸다. 그리고 도준으로서 알게 된 지혜들을 섭렵해 특권에 기대지 않고 자기 자신을 지켜낸다.

그가 지켜낸 양심은 결국 도준으로서 살면서 그토록 원했던 재벌세습을 철폐하고, 순양가의 경영권을 박탈하는 결과로 이어진다. 이는 자신의 무의식 속 분열을 직면하고 용기 내 통합해 낸 사람이 스스로와 세상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지를 보여준 대목이었다.
 
 현우는 마침내 분열을 깨고 나와 자기 자신의 양심과 손을 잡는다.
현우는 마침내 분열을 깨고 나와 자기 자신의 양심과 손을 잡는다. JTBC
   
한 가지 아쉬운 건 이 과정이 지나치게 집약되어 조금 성급하게 마무리를 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이 심리적 과정들은 꽤나 의미 있어 보인다.

많은 시청자들이 이 드라마를 보는 내내 현우(혹은 도준)를 응원하는 마음으로 지켜봐 왔다. 이는 어쩌면 우리 마음에도 이런 부분들이 있기 때문 아닐까. 사실, 이 드라마의 결말에 대한 시청자들의 반응에서도 이런 모순된 마음들이 느껴진다. '재벌의 세습'을 비난하면서도 현우가 도준으로 살지 못한 부분을 아쉬워하는 것은 특권을 비난하면서도 특권을 부러워하고 바라는 마음이 현실의 우리들에게도 혼재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삶은, 그리고 우리가 속해 있는 이 사회는 현우와 도준이 겪었던 것처럼 우리를 꽤나 자주 모순된 상황 속으로 몰고 간다. 이런 상황들은 많은 이들을 심리적으로 분열시킨다. 우리는 이런 분열 속에 괴로워하면서 때로는 어쩔 수 없는 선택들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보다 자기 자신다운 선택을 위해 치열하게 고민하며, 통합을 위한 용기를 내기도 한다. 
 
<재벌집 막내아들>로 살아본 현우는 이를 잘 보여준 인물이었다. 우리가 이 드라마에 열광했던 이유는 아마도 이런 마음과도 관련이 있지 않았을까 싶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송주연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s://blog.naver.com/serene_joo)와 브런치(https://brunch.co.kr/@serenity153)에도 실립니다.
재벌집막내아들 송중기 분열 모순 통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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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는 상담심리사. 심리학, 여성주의, 비거니즘의 시선으로 일상과 문화를 바라봅니다. 모든 생명을 가진 존재들이 '있는 그대로 존중받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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