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년 열두 달 중 동심이 가장 살아 있는 달 12월이다. 인터넷이 일반화된 세상에서도 여전히 많은 아이들이 제게 선물을 안겨주는 산타클로스며, 그가 탄 썰매를 끄는 루돌프를 믿는다. 어딘가 산타와 그가 끄는 썰매가 있다고 믿는 아이들이 있는 한, 크리스마스의 행복한 이야기는 지속될 것이 분명하다.
 
있다고 믿는 한 정말로 그곳에 그것이 존재하리라, 그렇게 말하는 이야기가 있다.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동화로 꼽히는 <피터팬>이 그렇고, 원작자 J.M. 배리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네버랜드를 찾아서>가 그렇다. 이번 '씨네만세'에서 다룰 영화가 마크 포스터의 바로 이 작품이다.
 
네버랜드를 찾아서 포스터
네버랜드를 찾아서포스터브에나비스타코리아
 
천재작가의 답답한 일상
 
영화는 배리(조니 뎁 분)의 실패로부터 시작한다. 여러 연극을 연달아 성공시키며 천재라는 명성을 얻은 배리지만, 그의 신작은 여지없이 실패한다. 요즘 말로 하면 '폭망', 첫 공연부터 관객들은 대놓고 형편없는 연극이었다는 평가를 감추지 않는다. 당장 다음날 아침 신문엔 배리의 실패가 큼지막하게 실린다. 가정부는 그 기사만 쏙 오린 채로 산책을 나가는 그에게 들려준다.
 
커다란 개 포르도스와 함께 산책을 나간 공원에서 배리는 실비아(케이트 윈슬렛 분)와 그녀의 네 아들을 만난다. 병으로 남편을 잃은 실비아는 재력가인 친정어머니에게 의지해 겨우 살아가고 있는 것인데, 넷이나 되는 아이를 추스르랴 집안일을 하랴 정신이 없다. 이날도 아들들은 천방지축으로 뛰노는데 그러다 배리와 인연을 트게 되는 것이다.
 
배리는 여러모로 특별한 인간이다. 거침없이 행동하는 듯하면서도 어딘지 두려움도 많아 보이는 그는 왠지 모르게 어린 아이를 닮아 있다. 그는 아내인 매리(라다 미첼 분)와 함께 있을 때마다 묘한 분위기를 자아내는데, 마치 선생과 학생이나 엄마와 아들 같은 권력관계가 느껴지는 것이다. 사회적으로 성공하고픈 야망을 감추지 않는 매리와 달리 배리는 즉흥적이고 재미를 좇는 인간이다. 매리 앞에 서면 배리는 움츠러들기 일쑤이고 좀처럼 마음을 편히 내놓지 못 하는 것이다.
 
네버랜드를 찾아서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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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작 <피터팬>이 태어나기까지

배리에게 숨통을 틔워주는 건 실비아의 아이들이다. 그들과 자주 만나기 시작하며 배리의 삶에도 활기가 돈다. 네 아이들 중 셋째 피터에게 유독 마음이 쓰이는데, 그건 그가 아버지를 잃은 상실로부터 여적 헤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 형을 잃고 깊이 괴로워한 배리는 피터의 상처에 깊이 공감한다. 그로부터 그를 그 슬픔에서 꺼내주려 노력한다.
 
영화는 배리가 <피터팬>이란 명작을 쓰게 되기까지의 여정이며, 피터를 깊은 고통로부터 구원하는 과정이고, 또한 주변의 엉켜 있던 관계들을 바로 돌리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 속에서 아이는 어른이 되고. 어른은 제 안에 있는 아이를 지켜내기도 한다. 여러모로 <네버랜드를 찾아서>는 성장영화이며, 그 성장 가운데서도 마음 깊은 곳에 깃든 네버랜드를 잃어서는 안 된다고 역설하는 작품이기도 하다.
 
마크 포스터는 얼핏 잔잔할 수 있는 영화에 과감하면서도 멋드러진 연출법을 적극 적용한다. 독특한 상상력으로 일상 가운데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배리의 모습을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배리와 매리가 나란히 붙은 침실 문을 각기 열고 들어가는 장면은 영화가 만들어지고 십수년이 흐른 지금까지 회자되는 명장면이다. 사실적인 어두운 공간이 비춰지는 매리의 침실과 달리 배리의 침실은 빛으로 가득한 환상의 공간인 것이다. 그것이 그의 네버랜드다.
 
네버랜드를 찾아서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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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는 한 편의 작품이 삶을 구한다 

꿈도 환상도 연극도 네버랜드도 믿지 않는 피터를 배리는 설득한다. 믿는다면 언제나 그것이 존재한다고. 작품으로 또 삶으로 그 사실을 이야기한다. 남들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걸 믿는 것과 어른이 되는 것이 전혀 다른 일이며, 어떤 가치 있는 것은 믿음으로써만 지켜진다는 사실을 끝내 납득시켜내는 것이다. 그로써 이 영화는 사람이 다른 사람을 변화시키고 또 성장시키는 결코 쉽지 않은 과제를 달성하는 이야기가 된다. 멋지지 않은가.
 
팍팍한 현실 가운데서 인간은 너무나 쉽게 삭막해지고 만다. 요정이, 도깨비가, 루돌프가, 귀신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여긴다. 그러다 어느 순간에는 성공이, 사랑이, 우정이, 꿈이, 믿음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는다. 그렇게 인간은 인간을 지탱하고 삶을 풍요롭게 하는 걸 하나씩 잃어버리는 것인지도 모른다.
 
동심이 가득한 계절, 흐릿해져 가는 동심을 자극하는 영화를 원한다면 나는 자신 있게 이 영화 <네버랜드를 찾아서>를 추천할 수 있겠다. 때로는 한 편의 작품이 삶 전체를 구하기도 하는 법이란 걸, 나는 이 영화를 통해 알았으니.
 
네버랜드를 찾아서 스틸컷
네버랜드를 찾아서스틸컷브에나비스타코리아
 
덧붙이는 글 김성호 평론가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네버랜드를 찾아서 브에나비스타코리아 마크 포스터 조니 뎁 김성호의 씨네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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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영화평론가.서평가.기자.3급항해사 /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저자 / 진지한 글 써봐야 알아보는 이 없으니 영화와 책 얘기나 실컷 해보련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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