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코르사주> 스틸 이미지
그린나래미디어㈜
<코르사주>의 주인공 엘리자베트와 그가 시대적으로 피할 수 없었던 '코르사주'의 속박은 역사의 무게 그 자체다. 마리 크로이처 감독이 연출한 영화는 이미 알려질 만큼 알려진, 이 존귀하지만 불행한 생애를 살았던 여성에 대해 일반적인 전기영화 방식을 따를 생각은 애초부터 없던 것처럼 보인다. 대신에 1877-1878년, 엘리자베트가 40살을 맞이하던 1년 동안을 파격적 상상력과 실제 기록을 혼합해 재구성한다. 페미니즘이 시대정신이 된 21세기의 시야로 19세기 인물인 엘리자베트 황후를 재해석한 영화는 황후라는 코르셋에 속박된 주인공의 숨 막히는 일상과 이 때문에 우울증에 시달리던 나날을 안타깝게 보여주는 동시에 명배우 비키 크립스의 혼신의 연기를 통해 시대를 뛰어넘어 자기 삶의 주인공이 되고 싶은 한 여성의 갈망을 구현해 낸다.
이를 위해 영화는 역사책의 한 페이지를 차지하는 바람에 그 삶을 수많은 역사가들이 논평하며 써 내려간 실제 인물의 긍정과 부정적 면모가 교차하는 분량 중 한쪽을 명백히 편든다. 굳이 양비론을 펼 필요는 없다는 제작진의 단호한 태도다. 당사자에 대한 기록은 이미 차고 넘치니 굳이 반복 답습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 대신에 현대적 재해석에 선택과 집중하겠다는 선언과도 같은 영화 속 전개와 구성이다. 영화 내내 고풍스러운 유럽의 궁전과 성들이 등장하지만 기묘하게 빛바래고 낡은 느낌으로 묘사되는데 이는 그저 비용을 아낀 때문이 아니라 그렇게 점차 퇴색해가는 전제왕정의 쇠락을 시각적으로 은유하는 장치로 기능한다. 황제와 황후의 수고로움에도 불구하고 노쇠한 제국은 사라져 갈 운명인 것이다.
황제는 위엄을 상징하는 콧수염을, 황후는 올림머리와 '코르사주'를 수갑처럼 공적인 시간에 착용해야 한다. 후반에 황후는 머리카락을 손수 자르지만 오래된 담당 여관은 통곡하며 이를 가발로 만들기 위해 장인에게 실어 보낸다. 황제는 끝내 콧수염을 떼어낼 수 없다. 부쩍 후반부에 늘어나는 엘리자베트의 흡연 장면은 건강문제를 차치하면 '신여성'의 풍모와 겹쳐 보이는 연출이다. 거기에다 표현주의적으로 묘사된 인상적인 반복 장면, 미니어처처럼 축소된 비율의 궁전방에 엘리자베트가 갇혀 있는 속박은 상징성 그 자체를 취한다. 그런 강박에서 벗어나기 위해 왜 그토록 황후가 궁전을 벗어나 말을 달리며 여행에 나섰는지, 그리고 결말의 선택과 결단에 이르게 되는지를 대사 없이도 이끌어내는 장치다. 어느새 감독은 현실 고증에서 벗어나 주인공의 내면을 표현하기 위한 파격을 경주한다.
물론 섬세하게 재현한 역사고증이 만만치 않기에 당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정세와 시대상 재현도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정밀도를 지닌 작품이다. 그렇긴 하지만 이 영화 본연의 의도는 너무나 유명해진 나머지, 현재도 오스트리아의 상징과 같은 명성을 가진 이 황후의 불운했던 삶을 새롭게 조명하고, 시대를 잘못 태어난 여성에 대한 공감을 피력하는 데 있음을 결말부에서 확인할 수 있게 된다. 만약 저렇게 원치 않는 삶을 물려받았던 재기발랄하고 총명했던 여성이 현대에 태어나 자유롭게 살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안타까움을 관객은 극장문을 나서면서 자연스럽게 떠올릴 테다.
작품정보 |
코르사주 Corsage
2022|오스트리아, 프랑스, 룩셈부르크, 독일|드라마/시대극
2022.12.21. 개봉|114분|15세 관람가
감독 마리 크로이처
주연 비키 크립스(황후 엘리자베트 역)
출연 플로리안 타이트마이스터(황제 요제프 역), 아론 프리즈(황태자 루돌프 역),
로자 하자즈(공주 발레리 역), 카타리나 로렌츠(시녀 마리 역),
잔느 베르너(시녀 이다 역), 마누엘 루베이(사촌 루트비히 역),
콜린 모건(기수 베이 역), 알마 하순(파니 파이팔리크 역),
피느간 올드필드(루이 르 프린스 역), 릴리 마리 쇼트너(마리아 소피아 역)
수입 그린나래미디어㈜
배급 그린나래미디어㈜
공동배급 ㈜플레이그램
제공 ㈜플레이그램
2022 75회 칸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 최우수 연기상(비키 크립스)
2022 58회 시카고국제영화제 최우수 연기상(비키 크립스)
2022 66회 BFI 런던영화제 작품상
2022 몽클레어영화제 심사위원 특별상(연기 부문)
2022 28회 사라예보영화제 여우주연상(비키 크립스)
2022 70회 산세바스티안국제영화제 특별언급
2022 35회 유럽영화상 여우주연상(비키 크립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