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N 판타지 사극 <환혼: 빛과 그림자> 속의 진씨 가문은 모계 집단이다. 진호경(박은혜 분)이 수장인 이 술사 가문에서는 어머니의 공적 지위가 딸에게 계승된다. 그래서 여아 선호 사상이 지배적일 수밖에 없다. 신통력을 가진 여자 계승자를 출산하는 일이 이 가문의 명운을 좌우한다.
 
이것은 이 가문의 결혼 습속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 장욱(이재욱 분)이 속한 장씨 가문은 외부 여성이 자기 집으로 시집오도록 하는 반면, 진씨 가문은 외부 남성이 장가오도록 만든다. 집안을 계승할 여성 인력이 가문 바깥으로 유출되지 않게 데릴사위제를 유지하는 것이다.
 
이런 가풍은, 어렸을 때 잃어버린 큰딸 진부연(고윤정 분)이 살아 돌아온 뒤에 진호경이 보여준 행동에서도 나타난다. 진호경은 데릴사위를 들여 진부연과 맺어주고자 한다. 거기서 생긴 손녀가 가문을 잇도록 한다는 구상이다.
 
하지만 그 계획은 틀어진다. 진부연은 집을 벗어나고 싶어했고, '나와 결혼해 이 집에서 빼내달라'며 장욱에게 청혼한다. 결국 장욱은 진부연을 자기 집으로 데려가고, 진호경은 노여움과 분노에 떤다.
 
진호경은 집 나간 딸을 '탈환'하고자 이런저런 방법을 구사해본다. 나라를 이끄는 술사들의 여론을 움직여 진부연과 장욱의 결혼을 무효화시키려고도 해본다. 딸의 몸에 부착해둔 신령한 추적기를 통해 동선을 찾아내거나 고통스러운 신호를 보내기도 한다. 이로 인해 진부연이 겪는 육체의 통증은 딸이 가문을 계승하는 질서를 거부한 것에 대한 대가라고 할 수 있다.

여성 후손에게 대물림되는 공적지위
 
 tvN 판타지 사극 <환혼: 빛과 그림자> 한 장면.
tvN 판타지 사극 <환혼: 빛과 그림자> 한 장면. tvN
 
 tvN 판타지 사극 <환혼: 빛과 그림자> 한 장면.
tvN 판타지 사극 <환혼: 빛과 그림자> 한 장면. tvN
 
여성이 갖고 있던 공적 지위가 그 가문 내의 여성 후손에게 대물림되는 사례는 한국 고대사에서도 자주 발견된다. 신라 초대 왕후인 알영의 지위가 그의 여성 후손에게 넘어간 것도 그중 하나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는 알영의 탄생을 신화적으로 묘사한다. 상대적으로 자세한 내용을 담은 <삼국유사>는 사량리 우물가에서 계룡이 나타나고 계룡의 옆구리에서 여아가 나왔다고 말한다. "얼굴과 모습이 매우 고왔지만, 입술이 마치 닭의 부리 같았다"고 묘사한다. 냇가에서 목욕을 시키자 닭부리가 사라지고 사람의 얼굴이 됐다고 한다.
 
고대인들은 샤먼적 기질이 있는 인재들이 지식인이나 의료인뿐 아니라 군주나 장군 등에 진출하는 것을 당연시했다. 고대에는 사회적으로 축적된 지식이 많지 않았다. 그래서 머리가 좋아서 공부를 통해 지식을 축적하는 사람보다는, 타고난 신력이 있어서 공부를 하지 않고도 이것저것 볼 수 있는 사람이 선호될 수밖에 없었다.
 
고대인들이 샤먼을 존경했다는 점은 그런 기질의 소유자들이 탄생하고 활약하는 것을 신화적으로 묘사한 데서도 나타난다. 고대인들은 영적 능력이 없는 일반인을 신화 속 주인공으로 만들어주지는 않았다. 알영이 신화의 주인공이 됐다는 것은 그런 능력이 있었거나 아니면 그런 능력을 가진 사람들로부터 지지를 받았음을 의미한다. 
 
알영에게 그런 능력이 있었다는 점은, 지식과 기술이 세습에 의해 전승되던 그 시절에 그의 자손들이 영적 능력을 보유한 사실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알영의 아들인 남해왕은 차차웅으로도 불린 무당 지도자였다. 알영의 딸인 아로공주는 시조 사당인 박혁거세 사당의 최고 사제가 됐다. 고대 사회의 최고 사제는 기본적으로 샤먼이었다. 알영의 능력이 자녀들에게 유전된 결과로 판단할 수 있다.
 
그런 능력을 토대로 알영은 왕후 지위를 행사했고, 그 지위는 여성 후손에게 대물림됐다. 이 점은 박혁거세와 남해왕을 이은 제3대 유리왕(유리이사금)의 결혼에서 나타난다.
 
알영의 손자인 유리왕의 세 왕비 중에서 신원이 확인되는 인물은 제1왕비다. <삼국사기> 신라본기 유리왕 편은 제1왕비가 박씨라고 말한다. 이 시대 신라에서 박씨 성을 쓰는 집안은 딱 하나였다. 알영과 박혁거세의 자손들뿐이었다. 제1왕비는 알영의 손녀였다. 초대 왕후인 알영의 왕후 지위가 손녀에게 대물림됐던 것이다.
 
그런데 제2대 왕후가 된 사람은 남해왕의 부인인 운제다. 알영의 손녀는 왕후가 됐지만, 알영의 딸은 왕후가 되지 않았던 것이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알영에게는 아로공주라는 딸이 있었다. 이 딸을 남해왕의 왕비로 들일 수는 없었다. 근친혼이 허용되는 사회에서도, 이복남매라면 몰라도 친남매 간의 결혼은 쉽게 용인되지 않았다.
 
알영과 박혁거세에 의해 박씨 가문이 개창된 지 얼마되지 않은 시절이었고 왕족 숫자가 많지 않았다. 알영의 딸이 가문 내의 사촌형제와 결혼해 왕후 지위를 계승할 수도 없었다. 그래서 알영의 딸은 어머니의 지위를 잇기 힘들었다.
 
남해왕의 배우자가 된 운제 왕후의 신원을 추론케 하는 단서가 있다. <삼국유사> 기이 편은 "지금의 영일현 서쪽에 운제산 성모가 있다"면서 "가뭄 때 기도를 드리면 감응이 있다"고 말한다. 운제 왕후가 죽어서 신으로 추앙됐고 그 증거가 지금의 포항시 운제산에 남아 있다는 이야기다.
 
고대 사회에서는 살아생전에 샤먼적 기질을 갖고 활동한 사람들이 사후에 신으로 추앙됐다. 운제 역시 그러했기에 그가 신으로 숭상됐으리라고 볼 수 있다. 운제 역시 샤먼으로 보이며 그가 왕후가 됐다는 점은 그와 알영 사이에 친족관계 등의 밀접한 인연이 있었을 가능성을 추론하게 만든다.
 
여성 공적 지위의 대물림

여성의 공적 지위가 여자 후손에게 대물림되는 사례는 필사본으로 남아 있는 <화랑세기>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이 책은 진골정통이나 대원신통 같은 모계 혈통에서 신라 왕후나 후궁이 배출됐다고 말한다. 알영의 여성 후손들이 영향력을 상실한 뒤에는 새로운 모계 혈통이 등장해 왕후나 후궁 지위를 세습하는 일이 있었던 것이다.
 
비슷한 장면이 고려시대 역사에서도 나타난다. 고려 태조 왕건의 제4왕후는 신정왕후다. 신정왕후의 딸은 이복남매인 제4대 광종과 결혼해 대목왕후가 됐다. 왕건의 제6왕후인 정덕왕후가 낳은 딸은 문혜왕후로 추존됐고, 문혜왕후의 딸은 제5대 경종의 제2왕후인 헌의왕후가 됐다. 왕건의 손녀와 손자가 결혼했던 것이다.
 
또 천추태후로 알려진 헌애왕후는 추존 왕후인 선의왕후의 딸이다. 선의왕후는 왕건의 제6왕후인 정덕왕후의 딸이다. 정덕왕후의 딸이 선의왕후가 되고 선의왕후의 딸이 천추태후가 됐던 것이다.

출가외인 논리가 지배했던 조선왕조에서는 공주가 어머니를 뒤이어 왕후가 되는 일은 없었다. 하지만, 고대 국가는 물론이고 고려시대에도 왕후의 딸이 왕후가 되는 일은 얼마든지 가능했다.
 
고대 사회에서 여성의 공적 지위가 여성 후손에 의해 대물림되는 일이 많았던 결정적 이유가 있다. 고대 사회의 남성들이 여성의 지위를 존중해줬기 때문이 아니다. 고대의 사회체제가 여성들의 힘을 인정해줬다. 
 
남자 무당보다 여자 무당이 훨씬 많은 데서도 느낄 수 있듯이, 신통력이 중시되고 샤먼들이 사회를 이끌던 고대에는 여성이 사회적 헤게모니에 접근하는 일이 오늘날보다 수월했다. 이것이 여성들의 영향력 강화를 낳고 여신 숭배, 여성 사제의 출현은 물론이고 여성에 의한 공적 지위의 세습도 가능케 만들었다.

<환혼>에 나오는 진씨 가문의 풍속은 픽션에 불과하지만, 일정 부분은 고대 사회의 실상과 맞닿아 있다고 볼 수 있다.
환혼 데릴사위 여신 숭배 여성 사제 알영 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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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시사와역사 출판사(sisahistory.com)대표,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친일파의 재산,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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